악트 쉬드의 ‘위대한 정신’?
2017-12-01 티에리 디세폴로 | 출판평론가
‘소규모 지역 독립출판사’ 악트 쉬드(Actes Sud)의 ‘성공스토리’ 주인공인 프랑수아즈 니셍이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프랑스 언론은 하나같이 마크롱 대통령의 ‘파격 인사’를 환영했다. 신임 문화부 장관은 누구나 축하의 대상이었지만 악트 쉬드의 ‘정신’은 특히 박수받을 만했다. 악트 쉬드의 정신은 프랑수아즈 니셍의 부친인 위베르 니셍(1925~2011)이 1978년 설립한 이 ‘위대한’ 출판사를 이끄는데 기여한 바 있다. 벨기에 국적의 광고인을 거쳐 작가이자 악트 쉬드 출판인으로 전향한 부친의 출판사에 프랑수아즈 니셍은 ‘회계 담당’(<리베라시옹>, 2017년 5월 17일)으로 1980년에 합류하게 된다.
프랑스 제9위 출판사의 최고경영자로 ‘소박하고 친근하며 붙임성 좋은’ 프랑수아즈 니셍의 임명에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앙드레 말로의 자리’였던 문화부장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문화적 문외한인 테크노크라트’가 아닌 모두가 인정하는 시민사회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랑수아즈 니셍은 뤽 베송 감독의 제작사인 유로파 코프사의 이사회와 케 브랑리 박물관, 소시에테 마르세예즈 드 크레디 은행, 프랑스 국립도서관 등의 회원으로서도 묵묵히 활동 중이다. ‘파리 사교계의 탐욕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프랑수아즈 니셍은 ‘대체의학과 지속가능개발을 지지하는 입증된 환경운동가’(<리브르 엡도>, 2017년 5월 26일)이기도 하다.
회사 매입이 아니라, ‘만남’을 가질 뿐?
그런데 프랑수아즈 니셍은 원고는 물론 작가영역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현재까지 프랑수아즈 니셍은 출판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프랑수아즈 니셍이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작가는 절친한 친구인 이탈리아계 알제리 소설가 잔 베나뫼르가 유일하다”(2017년 6월 30일)라고 쓴 바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 언론이 이 신임 문화부 장관에게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문학소녀’였던 그가 영화, 연극, 조형예술, 사진을 사랑하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기 때문이다.(<렉스프레스>, 2017년 5월 17일, <파리마치>, 2017년 6월 1일) 결과적으로 프랑수아즈 니셍을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치하하는 바다. 아를 지역의 첫 번째 출판사인 악트 쉬드는 출판사가 주는 ‘예술적인 이미지 때문에 프랑스 경제인연합회보다 공공서비스 이미지와 더 잘 부합함’(<르몽드>, 2017년 5월 19일)에도 불구하고, ‘민간 이니셔티브를 국제적으로 전파할 줄 아는 파급력을 가진’ 출판사로, ‘위대하지만 가난한’ 아를이라는 도시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데 기여했다.
게다가, 프랑수아즈 니셍은 공공·민간 부문의 장점을 활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2016년 악트 쉬드는 쇠유 출판사 다음으로 국립도서센터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1) 프랑스 일간지 <라 크루아>는 “프랑수아즈 니셍이 출판사 직원 300명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며, 직원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걸 중요히 여긴다.”(<라 크루아>, 2014년 10월 10일)라고 쓴 바 있다. 프랑수아즈 니셍이 추구하는 기업의 조직모델은 생화학을 전공하면서 얻은 독창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라 크루아>가 악트 쉬드가 이제는 갈리마르와 같은 출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출판사로 거듭난 것 아니냐고 질문했을 때, 프랑수아즈 니셍은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 보이며 “시스템 안쪽에도, 바깥쪽에도 있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이는 훗날 마크롱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 동안 공공연히 외치는 말이 된다. 프랑수아즈 니셍은 “기업은 어떤 체계 속에 갇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리브르 엡도>, 2008년 5월 2일)라고 말한 바 있다. 활발히 움직이는 악트 쉬드는 설립 10년도 채 안 돼 다른 출판사의 매입을 처음 시행했다. 25년 후에는 15개 브랜드(l’Imprimerie nationale, Inculte, Payot&Rivages, Le Rouergue, Sindbad, Solin, Textuel, Les Liens qui libèrent 등)를 부분 또는 완전 소유하기에 이르렀으며, 갈리마르의 ‘플라마리옹’을 매입하면서 프랑스 출판사 매입건수 면에서 2위에 올랐다. 악트 쉬드에서는 이런 순위 따위를 가볍게 무시한다. 2011년 11월,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실린 니셍 가의 ‘전설’에 대한 기사에서 프랑수아즈 니셍은 ‘파리지앵 출판업의 탐욕스러움’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악트 쉬드의 매입 활동은 ‘시장점유율 차지’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고, 단지 출판사의 ‘도움이 필요한’ 동종업계 회사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악트 쉬드가 ‘자본을 좇는 회사’가 아닌, 반짝이는 ‘은하계’인 이유다. 프랑수아즈 니셍이 만든 ‘금지어’ 리스트까지 있다. ‘자회사’ 대신 ‘협력출판사’, ‘회사 매입’ 대신 ‘만남’(<리브르 엡도>, 2017년 5월 26일, 2018년 5월 2일)이라고 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에 크게 기여한 문화프로젝트
‘만남’의 성과가 많았던 해인 2005년 7월, 프랑스의 출판 전문 잡지 <리브르 엡도>의 기자가 자신의 기사 제목을 ‘악트 쉬드, 지속적인 매입 성공’으로 붙였을 때, 프랑수아즈 니셍은 “비출판분야의 주주들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게 우리 목표는 아니다. 이는 우리의 기본 윤리에 관한 문제다”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의 발언은 사실이다. 악트 쉬드 파티시파시옹(Actes Sud Participations)의 지분 95%는 프랑수아즈 니셍과, 그의 남편이자 악트 쉬드의 사업개발 이사인 장 폴 카피타니가 소유하고 있다. 모든 활동은 “수익집중, 주인, 위계질서라는 개념이 없는 협동에 가치를 둔다.” 2012년 3월, 플라마리옹 매입을 시도해 비록 실패로 끝난 적도 있었지만, 그때는 ‘프랑스 출판업의 자립성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함’(유럽1, 2012년 4월 18일)이었다. ‘자립성’은 니셍 가의 기본개념이다. 악트 쉬드라는 이 ‘은하계’에 속해있는 출판사들은 본사의 자립성에 더해 자사만의 자립성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성을 갖춤으로써 프랑스 출판업 전체의 자립성을 고취할 수 있다.
그 해, 플라마리옹 ‘구출’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다음 해에 ‘Payot&Rivages’를 매입했다. 100%의 지분 소유를 확정한 후, 두 출판사는 “앞으로도 두 출판사의 자립성은 전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1년 후, 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플라마리옹에서 경력을 쌓은 젊은 엘렌 피아마가 Payot&Rivages의 경영을 맡게 된다. 2017년 1월, 엘렌 피아마는 “‘대중을 겨냥할 수 있는’ 도서들로 ‘공급 재편’을 달성했고, ‘기자들을 공략하고 높은 주목도를 위한 도서 프로모션을 진행하게 됐다”(<리브르 엡도>, 2014년 5월 23일, 2017년 2월 10일)는 말로 자신이 이끈 Payot&Rivages의 지난 3년을 평가했다. 이 상황은 프랑수아즈 니셍이 그토록 애착을 가진다고 했던, 부친 위베르 니셍이 정한 사훈, 즉 ‘팔릴만한 책이라서 출판한다? 그건 우리 관심 밖이다’와는 전혀 다르다. 이익을 남기는 데 무심한데도 수백 권의 책을 팔았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조화인가.
연속 100주 이상 베스트셀러였던 기울리아 엔더스의 <매력적인 장(腸) 여행>(2015년 발매)과 같은 책의 출간이 앞으로 어떤 ‘만남’을 선사할지 알 수 없다. 80년대 후반부터 악트 쉬드의 초기 매입 활동에 기여한 작품들은 러시아 이주를 다룬 니나 베르베로바의 소설 <반주자>와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들이었다. 2000년대 말에는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추리소설 <밀레니엄 시리즈> 출간 덕분에 대주주들의 지분을 재매입하고 악트 쉬드의 매각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지난 5월,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제롬 가르생이 프랑수아즈 니셍에게 문화부 예산한도와 재단들에 대한 정부의 임무 위임에 관해 질문했을 때, 신임 문화부 장관은 “현장경력 덕분에 장관으로 임명됐다. 우리가 아를에서 한 일이 문화교육진흥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 훌륭한 후원자들도 큰 프로젝트 진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실수를 하면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훌륭한 후원자들이 진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문화교육에 늘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닌 듯하다. 대표적으로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파리의 루이뷔통 재단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아를의 ‘아틀리에 공원’에 설치될 알루미늄을 구겨 만든 57미터의 탑을 디자인했다. ‘아틀리에 공원’은 11헥타르의 황폐해진 철도 차고지가 현대미술의 장으로 다시 태어난 공간으로, 악트 쉬드의 새로운 사옥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2018년 완공 예정인 이 ‘큰 프로젝트’는 제약회사 로슈의 후계자이자 빈센트 반 고흐 재단의 후원자, 뤽 호프만의 딸인 마야 호프만이 이끄는 루마 재단에 의해 추진된다.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성과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다. 마야 호프만 이사장은 이미 고급호텔들을 사들였으며, 사업기회를 엿보는 아를의 부동산업자들은 투자자들과 ‘예술과 문화의 도시’에 매료된 ‘퇴직자들’(<라프로방스닷컴>, 2016년 2월 17일)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실업률 14.5%의
‘위대한 문화도시’, 아를
사실 아를은 수십 년 전부터 문화행사들을 개최하고 있다. ‘아를에서의 만남’ 사진축제가 대표적이다. 악트 쉬드 또한 출판사 주변에 서점이며 독립영화관, 전시관으로 탈바꿈한 옛 예배당, 공연장을 마련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문화교육 부문에서의 공급 활성화’는 부동산 부문에 비해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 ‘문화교육’은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소외된 외곽 거주자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2016년 프랑스 전국 실업률이 10.2%이었던 반면, 아를의 실업률은 14.5%(<라프로방스닷컴>, 2016년 5월 27일)였다. 1996년에 만들어진 레 쉬드 세계음악페스티벌의 창시자 마리 호세 쥐스타몽은 텔레라마와의 인터뷰(2014년 2월 22일)에서 “초기에는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층은 상류층에 한정되고, 서민 관객들은 점점 줄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신임 문화부 장관이 내세우는, 메세나를 기반으로 한 현장경력이 항상 장점은 아닌 듯하다.
‘악트 쉬드의 정신’을 프랑수아즈 니셍이 말하는 ‘사랑, 출판, 우정의 혼합물’로 한정 짓는 것은 성급해 보인다. 프랑수아즈 니셍은 자신의 이성적인 문화를 진보성향으로 제한하는 게 아니라, 한 발짝 더 나아가 영적인 접근을 통해 악트 쉬드의 정신을 함양시키기 때문이다. 슈타이너 발도르프 교육모델(2)을 기반으로 해서 2015년 아를에 문을 연 ‘조숙한 아이들을 위한 자율사립학교’와 신임 환경부 장관 니콜라 윌로와 생태운동가이자 농부철학자인 피에르 라비가 의기투합해 만든 마크롱 정부의 슬로건(Le Monde, 2017년 5월 19일), ‘가능성의 땅’이 이를 잘 말해준다. 니콜라 윌로와 피에르 라비는 악트 쉬드와 LLL(Les Liens Qui Libèrent)이 공동출판한 <희망의 길> 집필에 참여했다. LLL은 악트 쉬드의 협력출판사로, 티베트 불교의 스승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의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프랑수아즈 니셍이 마크롱 후보와 그가 꿈꾸는 ‘너그럽고 행복한 사회’(<악튀알리테닷컴>, 2017년 5월 6일)를 지지한 건,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었다. 악트 쉬드의 정신이라면, 부르주아 계급이 ‘이해타산이라는 차디찬 물속에 빠뜨려 버린 경건한 광신과 속물적 감상의 신성한 전율’을 되살려, 칼 마르크스가 그 시절 <공산당 선언>에서 비판했던, 부르주아 계급의 실수에 체계적인 답변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글·티에리 디세폴로 Thierry Discepolo
<출판사들의 배신(La Trahison des éditeurs)>, Agone, 2011의 저자
번역·권진희 classic16@gmail.com
미국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 및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악트 쉬드는 26만 4,167유로, 쇠유는 26만 4,365유로의 지원금을 받았다.
(2) 종교적 교리의 통합과 비합리주의, 반민주주의, 엘리트주의, 친자본주의에 기반한 교육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유산에 대한 내용은 <Anthroposophie et écofascisme(인지학과 에코파시즘)>, 그리고 VeriteSteiner.wordpress.com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