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테러하는 과학을 테러하다

2010-05-10     필리프 리비에르

 질병 치료의 혜택을 누리되 핵폭탄에 대한 걱정은 안 할 수 없을까? 전세계와 인터넷 통신을 하되 감시를 안 받을 수 없을까? 기하학은 발전하되 탄도미사일 발사에 악용되지 않을 수 없을까? 아니, 불가능하다. 과학은 철저하게 두 가지 얼굴을 지녔다. 민간용과 군사용, 치료제와 독약. 과학이 어떤 사회와 만나느냐에 따라 최고의 성과를 낼 수도 있고 반대로 최악의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 드물지만 간혹 과학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2003년부터 활동하는 그르노블의 단체 ‘부품과 노동력’(PMO)은 다양한 기술 형태에 관한 책을 여러 권(1) 출간했다. PMO는 모호한 태도를 배제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PMO는 치밀한 조사를 실시한 뒤 기술 영역을 완전히 거부하기로 했고 산업 발전이 중단돼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심지어 스스로 ‘연구의 적’이라고 선언했다.

유전자변형물질, 이동전화, 나노기술 같은 기술 분야를 거부한다. PMO는 꽉 막힌 단체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 분야가 경쟁과 이득을 위해 어떻게 진행돼왔는지를 밝히고 프랑스가 세계의 경쟁 속에서 어떤 위치인지를 말한다. 지금은 늘 선두에서 달려 ‘꼬끼오!’ 하고 승리를 외쳐야 하는 경쟁시대다. 대중은 달리는 선수가 도착하면 박수를 쳐주고 달리기 경주를 지원해주지만 규칙은 절대 정하지 않는다.

한편 기술 분야 경쟁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기 마련인데, 다름 아닌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기술 경쟁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가드레일 역할을 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회의’와 기타 계몽적 성격인 공개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오렌지 랩스의 통신 연구원들도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별하는 일을 활발히 한다. PMO 활동가는 기술 경쟁에 호의적인 사람들의 주장에 반박한다. 오히려 기술에 대한 망상을 가진 사람들을 그저 좇아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함께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PMO 활동가는 우리 미래를 조종하고 군사용 연구, 의료계, 화학산업, 새로운 녹색 자본주의 사이에서 조종당하는 엔지니어를 가리켜 ‘기술 맹신자’라고 부른다.

2010년 초, PMO 활동가는 소란을 부리며 나노기술에 대한 공개토론을 무산시켰다. 이들은 자크 엘룰의 생각에 동조하며 공장기계 파괴운동을 전개한 노동자의 행동에 동참하자고 말한다. 19세기에 공장기계 파괴운동을 한 노동자는 기계가 자신들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며 기계를 부순 바 있다.(2) 그 이후 이 노동자들은 ‘에코 테러리즘’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노동자들이 쓴 저서가 최근에 출간됐다. 바로 <새로운 적을 찾아서>(3)다.

사실 진정한 에코 테러리스트는 미국의 시어도어 카진스키(‘유나보머’라는 별칭으로도 불림)다. 카진스키는 1978∼96년 대학교수, 엔지니어, 항공회사 대표 같은 사람들에게 폭탄이 설치된 소포를 보냈다. 이 소포로 3명이 죽고 23명이 다쳤다. 카잔스키의 1971년 저서 <선언>과 최근 저서들이 2009년 말 프랑스어로 번역돼 나왔다. 책들에 대한 소개는 장마리 아포스톨리데가 맡았다. 아포스톨리데는 저자 카진스키의 광기 어린 주장과 신랄한 사고를 통해 카진스키가 엘룰에게 영향받은 통찰력 있는 생각을 지녔다고 본다.(4) 따라서 성공을 거둔 소설가들(장크리스토프 뤼팽, 마이클 크라이튼)이 카진스키를 가리켜 단순히 ‘에코 테러리스트’라고 가정하는 것은 소설 같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독특한 생각을 보이는 사람을 편하게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타르나크 일당’(bande de Tarnac·2008년 프랑스 코레즈의 타르나크에서 체포된 무정부주의자 9명. 당시 프랑스 당국은 이들이 테제베를 테러하려 했다고 발표했으나, 당사자들은 이를 강하게 부인해 논란이 됐다-역자)을 가리켜 ‘폭동이 다가온다’고 낙인찍은 것처럼 시대에 복종하지 않는 새로운 관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는다는 것이다.

PMO는 과학계의 새로운 테러리즘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그 새로운 테러리즘이란 바로 생화학무기다. PMO는 2001년 탄저균을 보내는 활동을 했는데 9·11 테러보다 더 파급력이 큰 사건이었다. PMO는 과학계의 거짓말과 위선을 폭로하며 인간에게 최고로 위험한 바이러스와 세균을 무기화하는 은밀한 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PMO는 군대의 지원을 받아 생화학무기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탄저균’이 든 봉투는 과격한 환경운동 집단이나 알카에다 요원이 아니라 바로 생화학무기를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나온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글•필리프 리비에르 Philippe Riviére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여성의 우월성에 관하여>(2009) 등이 있다.

<각주>
(1) 2008년 L’Echappée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테러 & 소유: 기술 시대, 국민의 안전에 대한 조사> <휴대전화, 대량파괴를 불러오는 기술제품> <RFID: 완전한 안전> <지금은 나노 세계: 나노기술, 전체주의사회의 프로젝트>.
(2) 커크패트릭 세일, <공장기계 파괴운동: 산업시대에 기계를 부수는 사람들>, L’Echappée, 몽트뢰유, 2006.
(3) <새로운 적을 찾아서: 2001~2005년 현대역사의 반추>, L‘Echappée, 2010.
(4) <1971년 선언>과 <산업사회의 미래>, Climats, 2009. <기술 시스템의 붕괴: 유나보머, 전체 업적>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