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자, 아리스토파네스
2017-12-01 아가트 멜리낭 | 연출가, 번역가
지금으로부터 약 2천5백 년 전, 오늘날 그리스의 하늘과 똑같은 하늘 아래서 난폭하고 불손한 시인 한 명이 자신의 작품 <새>가 상연되기를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리스토파네스. 지성과 예술의 전성기이자, 전쟁이 일상이었던 시대에 태어난 시인이다.
기원전 414년 3월 말의 어느 이른 아침,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의 프로필라이아(아크로폴리스의 정문)에 기대어 서서 언덕 아래 디오니소스 극장을 바라본다. 커다란 구름이 아리스토파네스의 머리 위로 안개를 흩뿌린다. 물푸레나무와 소귀나무가 흔들리고, 새 몇 마리가 ‘티오 티오 티오 티오 티오틱스’하고 울며 줄지어 날아간다. 길 잃은 개구리는 ‘브레케케켁스 코악스 코악스’하고 읊조린다. 3월 우기에 열리는 디오니소스제는 연극과 쾌락과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한 축제로 며칠에 걸쳐 이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1만 명의 지식인들은 클레오폰(Cleophon)(1)보다 더 큰 야심을 내보이면서 트라키아(Thracia)의 제비들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든다.”(2)
노래, 춤, 취기, 연극, 경연 등…. 이제 곧 아리스토파네스의 <새>가 경연 무대에 오를 것이다. 6개월 전 합창단장이 임명됐고, 24명의 아마추어 합창단원들과 3명의 배우들은 리허설을 시작했다. 노예들은 계단식 나무좌석들을 설치했고, 시민들 중에서 제비뽑기로 심사위원단이 선출됐다. 밀랍 가면이 준비됐고 가죽으로 된 남근상이 빛났으며, 악기 연주자들이 전주곡을 연주했다. “뮤즈여 들어라. 내가 기쁨의 노래를 시작할지니!”(3)
이때, 아리스토파네스는 31세였다. 우리는 그에 대해, 그의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로도스 섬 출신일까, 아니면 훗날 집을 마련한 에기나 섬 출신일까? 중요하지 않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어쨌거나 아테네 시민이었다. 우리는 그가 결혼했고 자녀가 있었으며, 그중 막내가 아버지의 작품들을 연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아리스토파네스가 대머리였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가 작품에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에서 자신이 맹인임을 밝혔듯, 아리스토파네스는 <평화>에서 자신의 탈모증을 고백했다. “대머리에게는 무엇이든 줘라! 가장 고귀한 시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말라!”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플라톤은 아리스토파네스와 함께 사랑과 제3의 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마 반신상의 존재가 그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에게는 그의 작품들이 남아있다. 총 44편 중 11편이 희곡이다. 다작은 아니지만 작품성은 탁월하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마술사다.
평화를 열망한 작가, 전쟁광에게 공격받아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원전 445년경 페리클레스 시대가 한창일 때 태어났다. 파르테논 신전이 건설되고, 에우리피데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등장으로 지적 및 예술적으로 전성기를 이뤘던 시기다. 그러나 아테네는 전쟁이 일상이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대립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27년 동안이나 지속했다. “농부일 때의 삶은 참 평화로웠는데….”(4) 스파르타가 쳐들어오자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도시의 성벽 안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이집트의 배 한 척을 통해 전파된 페스트로 아테네 시민의 1/3이 사망했다. 페리클레스의 후계자였던 전쟁광 클레온은 전쟁을 계속하기를 원했다. 결국 그는 전투 중에 죽었다. 이후 니키아스가 휴전 협정을 이끌어내면서 아테네는 ‘니키아스의 평화’라고 불리는 휴전기를 맞게 됐다. 몇 년에 불과했지만, 시민들이 그토록 원하던 평화였다.
아리스토파네스는 18세 때 처음으로 두 작품을 쓴다. 그는 작품에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이 두 작품으로 꽤 골치 아픈 일들을 겪는다. “나는 클레온이 내 희곡 때문에 고통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나를 위원회로 끌고 가서 나에 대한 온갖 험담을 늘어놓았다.”(5) 클레온의 폭력에 지친 아리스토파네스는 평화를 주장한다. “비상식적인 결정이 내려질 때 우리는 기침을 하거나 눈물을 흘린다.”(6) 전쟁이 끝없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리스토파네스는 <아카르나이의 사람들>을 집필한다. “클레온이 계략을 준비한다면, 나는 정직과 정의와 동맹을 맺을 것이다. 나는 결코 클레온과 똑같은 악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1년 뒤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사>에 붉은 얼굴을 한 데마고그(선동가)를 등장시킨다. “말썽꾼 선동가여, 너는 이 도시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고, 우리의 아테네는 너의 고함과 외침 소리로 가득 차버렸다. 네가 한마디만 더 하면 나는 너의 입을 틀어막아 버릴 테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악에 맞설 용기와 폭풍적인 힘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속에서 미움 받는 데마고그의 역할은 소시지 장수가 맡았다. “나는 가장 미천한 신분 출신이다!” 소시지 장수는 주장한다. “그런데 신이 방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구와 치즈, 양파를 땅에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7) 기원전 421년에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다. <리시스트라테>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섹스파업을 벌인 끝에 획득한 평화다. 니키아스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아리스토파네스는 작품을 쓴다. 작품의 주인공은 포도를 재배하는 농부다. 그는 냄새가 고약한 풍뎅이를 타고 구름을 가로질러 제우스의 신전으로 올라가, 갇혀있는 ‘평화’를 구출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신들은 더 높은 하늘로 이사”를 간 상태다. ‘평화’는 ‘소란’과 ‘전쟁’으로 둘러싸인 동굴 속에 갇혀있다. “그들은 ‘전쟁’의 적인 구름을 쫓아내고 ‘평화’를 되찾은 후 제물을 바친다.”
포도를 재배하던 농부는 예전처럼 평화로워진 자신의 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화과가 통통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잘 익은 무화과를 따서 맛있게 먹는다.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투구 제작자들과 갑옷 장수들은 파산한다. 소녀들은 몸을 깨끗이 씻고, 제모하고, 가벼운 튜닉을 차려입는다. 석탄 상인, 개구리, 기사, 새, 구름으로 구성된 합창단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합창단장의 목소리를 빌어 이야기한다. 그는 가면을 쓰고, 욕을 하고, 불평하고, 비난하고, 간청한다.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맛본 관객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다. 전략가, 시인, 신, 건축가, 철학자 등을 모조리 없애버리자! 1등을 노리는 아리스토파네스는 아첨하고, 논쟁하고, 모방하고, 과장하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희곡을 ‘발명’한다. 저속한 말, 추잡한 비유, 정치적 암시, 그리고 새와 구름의 부드러운 노래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
그러나 “저는 그 어느 것과도 비슷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당신에게 가져갑니다.”(8) 갑자기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에서 소크라테스에게 달려든다. 독자들은 아리스토파네스를 비난하면서, 24년 후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라고 몰아세운다. 애석한 일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리스를 쇠약하게 만들고 파멸에 이르게 한 그의 철학사상을 야유했을 뿐이다. 비판의 표적이 된 철학교수, 맨발의 소크라테스. 무대 위에 설치된 메카네(나무 크레인)에 의지해 그는 “공중에서 발을 내딛으며 태양을 바라본다.” 소크라테스는 판테온 신전에는 없는 새로운 여신, 구름을 섬긴다. 소크라테스에게 제우스는 없는 존재다. “누가 울고 있지?” 한 농부가 놀란 듯이 말한다. 만약 신이 우는 것이라면 비는 파란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답한다. 옳은 논변은 농촌, 연장자, 좋은 교육을 옹호하는 반면 그 반대 논변은 온수욕, 간통, ‘풍만한 엉덩이’ 숭배를 장려한다. 소크라테스는 부조리의 나라에서 영혼을 타락시키는 자가 된다. 누런 얼굴을 한 그의 제자들은 명상을 하지 않을 때는 자기 여동생을 강간하거나 태양을 향해 엉덩이를 들고 방귀를 뀐다. 이 최초의 ‘진정한’ 철학적 희곡은 고작 3위에 올랐고, 아리스토파네스는 작가로서 반동적 이미지를 굳혔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친구였던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대한 집착과도 일맥상통한다. “근친상간 예술의 개척자여!(9) 당신은 거지 애호가이자 어리석은 행동의 판매자다.” 그로부터 2천 년 후 카를로 고치와 카를로 고도니 간에 있었던 베네치아 논쟁과도 놀랍도록 유사하다. 내용도, 수단도 동일하다. 이 둘은 극작 방향과 관련해 무대 위에서 서로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에우리피데스에 관한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던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의 연극 속에 그를 세 차례나 등장시키고 그에 대한 패러디를 수도 없이 한다. <아카르나이의 사람들>에서는 에우리피데스가 메카네를 타고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거지 옷과 장식들을 나눠주도록 한다.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여성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한다. 늙은 여인으로 변장한 그는, 노인을 좋아하는 스키티아 출신의 궁수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난다.
<개구리>에서는 디오니소스가 훌륭한 작품들과 작가들이 점점 더 사라져가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지하세계로 가서 이미 죽은 위대한 시인들 중 한 명을 데려오기로 한다. 이에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는 디오니소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시 경합을 벌인다. 나이가 더 어린 에우리피데스가 먼저 운을 띄운다. “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여성, 노예, 주인, 소녀,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말을 했소!” 그러자 복수심에 가득 찬 아이스킬로스가 반박한다. “그것은 죽음을 무릅쓴 대담함 아니었소?” “아니오. 나는 다만 민주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오!” 결국 승리는 아이스킬로스에게 돌아갔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못 박는다. “음악을 하찮게 여기고 비극 예술의 섬세함을 무시하는 소크라테스의 옆에는 남지 않는 것이 좋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에우리피데스의 사실주의, 무신론, 철학을 비판한다.
전쟁이 다시 발발했을 때도 아리스토파네스는 이상향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새>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은 도시의 삶에 싫증을 느낀다. “너는 우리처럼 빚을 지고 있어. 그리고 너는 우리처럼 빚을 갚기 싫어하지.” 벌금, 세금, 소송…. 그들은 평온한 곳으로 떠나 평온한 일상을 보내기를 원하고, 곧이어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이제는 오디새가 된 테레우스 왕의 도움을 받아, 두 주인공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새들에게 공개한다. “바빌론 시보다 더 높은 벽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신들의 통행료로 운영되는, 새가 왕인 도시를 공중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새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노래한다. “만약 너희들이 우리를 신으로 여겨준다면, 상쾌한 아침과 온화한 겨울과 여름을 예언하는 뮤즈를 가지게 될 거야.” 구름뻐꾹나라는 그렇게 탄생한다. 석공 새들이 벽을 만들고 펠리컨은 목수 일을 한다.
여기에 인간들도 있다. 검사관, 예언가, 법령 조사관은 가차 없이 내쫓긴다. 주인공은 제한적 이민을 요청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한다. 날개 사무소가 오픈했다! 새들은 약간 화가 나있다. 아테네 시민들은 모든 것의 중심인 인간, 눈으로 덮인 올림포스 산, 새들의 왕국을 화합시키기 위해 협상을 잘 해야 할 것이다. 목가(牧歌)를 타고 흐르는 시, 과감한 줄거리, 상황과 연결된 희극성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파네스는 우승에 실패한다. 심사원단이 아메이프시아스의 <흥청거리는 사람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새>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항복한다. 낙담한 아리스토파네스는 <여자들의 의회>에서 권력을 여자들에게 넘긴다. 여기서 아리스토파네스는 가장 긴 그리스어 단어를 만든다. 글자 수가 무려 171개! 마지막 작품인 <플루토스>는, 앞을 못 보게 된 부(富)의 신이 시력을 되찾은 후 정직한 자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다. 아리스토파네스는 60세 무렵 세상을 떠난다. 그리스의 하늘은 그때와 달라진 게 없건만, 오늘날 그 하늘 아래에서는 부채 위기를 둘러싼 논쟁이 끝도 없이 지속되고 있다. 막대한 타격을 입은 아테네와 테살로니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방황한다. 다른 용도로는 사용된 적 없는, 현재 비어 있는 고대 올림픽 경기장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콘크리트는 이곳저곳 갈라져 있다. ‘영원한 그리스’는 분해돼 팔려나간다. 해변, 섬, 땅, 자원. 어떤 이는 아크로폴리스를 팔라고도 말한다.
현대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종종 상연된다. 카롤로스 쿤(1908~1987)과 그의 예술극장, 알렉시스 솔로모스(10), 최근 타계한 스피로스 에반젤라토스는 <새>를 신화적으로 연출해 주목 받았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구사한 빛나는 단어들과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강렬한 웃음 요소들은 우리에게 위안과 영감을 주고, 또 우리를 일깨운다. 과거에서처럼, 그리고 과거에서보다 더,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들은 불멸성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를 흔들고, 자극하고, 불러낸다. 그러니,
“시인이 기쁘고 유쾌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찬란한 환호성이 저 먼 곳에까지 들릴 수 있게 하라.”(11)
글·아가트 멜리낭
연출가, 번역가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아테네의 정치인
(2) <개구리>(Eugène Talbot의 표준 번역본), Alphonse Lemerre, Paris, 1987. 모든 인용문들은 상기 번역본 <전집>에서 참조함. 단, <새>는 Agathe Mélinand, Les solitaires intempestifs, Paris, 2017
(3) <새>
(4) <구름>
(5) <아카르나이의 사람들>
(6) <구름>
(7) <평화>
(8) <구름>
(9) <개구리>에서 아이스킬로스가 에우리피데스에게 한 말
(10) Aristophane vivant(살아있는 아리스토파네스), Hachette, Paris, 1972의 저자
(11)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