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에서 워싱턴까지, 거꾸로 된 ‘68혁명’
대서양 양안에 보수주의 및 민족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통합과 ‘열린 사회’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수세에 몰렸다. 가령 독일은 권위주의에 물든 중유럽, 일방주의의 유혹에 빠진 미국 등 두 중요한 전략적 동맹과 점차 멀어지는 추세다. 이런 현상은 과연 68혁명 이후 유럽 전통이 돼온 자유진보적(liberal)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가?
독일의 힘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분야는 무엇보다 통상 분야다. 그런 만큼 ‘통상’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봐야만, 이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현 상황을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현 상황은 대략 이렇다. 독일의 매우 중요한 경제 동맹국 중 일부는 이제 정치적‧이념적‧문화적으로 독일과 적이 됐다. 독일 산업의 최대 고객이 돼주던 미국은 점점 더 공개적으로 파트너의 중상주의와 사회적 선택에 반기를 든다. 독일 산업을 위해 최대 하청 노동력을 제공해오던,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눈부신 성공의 숨은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이웃나라 독일에 반발한다. 난민 강제할당제 등으로 그들 국가에 의무를 강요하는 것에 말이다. 2017년 3월 7일 <파이낸셜 타임스>의 한 칼럼에서 기디언 래치먼은 “현 상황은 과거의 끔찍한 독일 악몽을 재현할 위험이 있다. 독일이 유럽의 중심부에서 고립된 강대국이 될까 두렵다”고 썼다.
언뜻 두 분파는 이념적으로 상반된 듯 보이지만, 한 가문에 속하는 두 자본주의 분파는 나름 ‘시장’이라는 신성한 관계로 엮여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독일이 독자적으로나 혹은 유럽연합집행위원회를 통해 마치 교황에 버금가는 권위로 법치국가와 민주주의 자유를 준수하도록 이웃 나라를 강압하려 한다면, 지금보다 더 독일이 자국의 번영을 좌우하는 고객이나 공급자 역할을 하는 국가들을 격분하게 만든다면, 결국 이들 국가는 점점 더 자신들의 오만한 파트너에게서 등을 돌리려 할 것이다. 사실 바르샤바 동유럽연구소(OSW)의 한 경제학자가 악의 없이 지적한 것처럼, “독일은 프랑스와, 그리고 좌파가 집권 중인 그리스 및 포르투갈이 표방하는 국가 관리주의 시각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유럽연합(EU) 내에 함께 재정규율(균형재정)에 기초한 자유시장 모델을 지지할 동맹국이 필요하다.”(2)
시대적 유행이라도 되는 것일까? 그동안 독일과 미국 간에 은밀하게 감지되던 이상 조류는, 트럼프의 기이한 언행이 다시 한번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중요하게 부각됐다. 2016년 3월 반이민 장벽과 자유무역 축소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경선 후보 시절 트럼프는 유럽의 난민수용 정책을 자신의 반면교사로 삼았다. 그는 “독일에서 메르켈이 한 일은 치욕스러운 일, 너무 서글프게도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에도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BMW 자동차에 대해 35% 관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독일에서 대체 미국산 쉐보레를 몇 대나 봤는가? 많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아마도, 거의 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운을 뗀 뒤, 반면 “뉴욕 5번가에 가면 집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주차돼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독일인은 나쁘다. 몹시 나쁘다.”
2017년 3월 싸늘했던 백악관 방문,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 협정 탈퇴를 재천명한 이탈리아 주요 7개국 정상회의 이후, 독일 총리는 동맹국 미국의 신뢰를 문제 삼았다. 2017년 5월 28일, 메르켈 총리는 맥주 파티 형식으로 열린 한 행사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난 것 같다. 이제 우리 유럽의 운명은 우리 손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 후, 메르켈은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세력에게 경고장을 날렸다(2017년 6월 29일). 미국의 자유주의 진영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가 대변하는 세력에 대해 반대 관점을 표명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듯, 독일의 주요정당들도 이제는 반(反)트럼프주의를 선거 전략뿐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위상을 대변하는 지표로 사용한다. 가령 반트럼프주의를 통해 그들은 “우리가 그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가령 사민당의 총리 후보로 나섰던 마르틴 슐츠는 “미국 정부는 지금 문화전쟁을 선포했다”고 분개하며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에 응하자”고 촉구했다.(4)
1948~1949년 베를린 공수작전에서,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방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중한 환대에 이르기까지 독일과 미국의 관계는 그동안 돈독하기로 유명했다. 그런 만큼, 오늘날 양국관계가 악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광기 탓으로만 돌려진다. 그러나 양국의 이익이 갈리는 사안은 비단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UN 국제이주협정(GCM)을 탈퇴하면서 공격했던 난민정책과 자유무역만이 아니다. 백악관 주인과는 무관하게, 이미 오래전부터 양국 간에는 많은 사안에 걸쳐 국익이 엇갈렸다. 가장 주목할 만한 첫 사건이 2003년 독일의 이라크 파병 거부였다.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의 정보기관이 독일 총리의 휴대폰을 도청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큰 충격을 안겼다.
그러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양국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분쟁거리는 더욱 다양해졌다. 2017년 6월 중순 미국의 상원이 러시아 혹은 러시아와 거래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추가 경제제재 조치를 발표하자, 러시아의 주요 통상 파트너이자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건설사업을 함께 추진 중이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까지 그 파급효과가 미쳤다. 6월 15일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부는 공동담화문을 통해 “역외적용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하며, 이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훼손”하는 조치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도 이른바 녹색기술을 수출하려던 독일 산업에 큰 타격이 됐다. 틸로 브로드만 독일기계공업협회(VDMA) 회장이 친절하게 설명하듯이, 미국의 행위는 “환경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무책임한” 처사였던 셈이다.(6)
미국이 보기에 독일은 단순히 쉐보레 수입을 자제하는 것으로만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유럽의 단일통화로 수출하면서도 많은 이득을 취하고 있다. 자국 경제의 활력도에 비해 “사실상 지나치게 평가 절하된 일종의 독일 마르크화”로 동맹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2017년 1월 말 백악관 무역고문 피터 나바로의 이런 비판에 대해, 볼프강 쇼이블레 전 재무장관도 친히 나서서 “유로화 환율은 엄밀히 말해 독일 경제의 경쟁적 위상에 비해 너무 낮다”는 사실을 인정해줬다.(8)
물론 독일의 다국적기업이 뉴욕 거리를 부지런히 세단 자동차로 메우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미국에 대대적으로 투자도 하고, 산업계 등에 무려 7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주고 있다. 트럼프가 그토록 회생을 갈망하는 미국의 산업 말이다. 가령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스파턴버그 BMW 공장은 무려 9천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독일의 유력 경제일간지 <한델스블라트>의 국제판 편집장 슈테판 테일이 인정하듯, “허풍과 단순화된 논리를 몽땅 거둬내고 보면, 사실상 독일이 세계질서에 기여하기보다는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비판은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9)
잠시 세계지도의 위치를 옮겨보자. 서구 지도자들이 미국 대통령에게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동안, 정작 트럼프는 중유럽에서 큰 쾌거를 올렸다. 2017년 7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회의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 잠시 바르샤바를 방문했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들과 한 차례 얼굴을 붉힌 뒤, 이 미국의 대통령은 폴란드(2015년 이후 극보수주의 성향의 카친스키가 이끄는 ‘법과 정의당’이 집권)의 용기를 한껏 치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서구가 정말 생존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라고 폴란드의 정치지도자들 앞에서 목소리를 드높였다. 사실 트럼프의 발언은 폴란드 지도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 역시 “과연 우리는 필사적으로 지켜낼 만큼 우리 스스로 우리의 가치관을 신뢰하는가?”라고 물으며 그와 똑같은 논리로 난민 강제할당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의 정치 지형에서 좌파를 실질적으로 완전히 뿌리 뽑을 정도로, 광적인 반공주의를 표방하고, 기독교를 신봉하며, 안정과 보수를 중시하는 국가인, 폴란드는 트럼프가 집권한 미국과 자연스러운 동맹국이 됐다. 물론 이런 상황은, 독일로서는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임무는 완수됐다. 비셰그라드 4개국은 각기 독일의 최대 통상 파트너가 됐고, 독일 산업을 위한 제조공장으로 변신했다. 그들은 독일에 저가 노동력을 제공하며 독일의 임금인상 압박을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10) 물론 열렬한 범대서양주의로 잠시 폴란드와 체코공화국, 루마니아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 제외하면, 비셰그라드 그룹 국가들은 독일에 매우 신뢰할 만한 동맹국이 돼 줬다. 헝가리 경제학자 베아타 파카스는 “EU 가입 후 비셰그라드 그룹 국가들은 독일의 재정균형정책을 옹호해왔다”(11)고 지적했다. 특히 그리스 문제와 관련해서 독일의 편이 돼줬다. 역사적인 침략국인 독일과의 이런 밀월관계에 대해 전 정부 인사인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는 2011년 11월 29일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나는 아마도 역사상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 최초의 폴란드 외무장관이 될 것이다. 그 말은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나는 강한 독일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독일이 더 두렵다.”
이후 독일과 폴란드 간에는 더욱 빈번하게 마찰이 빚어졌다. 두 국가의 갈등은 EU 대 비셰그라드 국가라는 지역 간 대립으로까지 비화했다. 블랙리스트 상단에 오른 문제는 메르켈 총리의 난민수용정책과 16만 명의 망명 신청자를 EU 내에 분산 수용하는 방안이었다. 2015년 말 유럽이사회는 독일 총리의 적극적인 주도 아래,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16만 명의 망명 신청자를 EU 국가 내에 강제 분산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망명권(비호권)을 준수한 이 조처는 사회학자 볼프강 슈트렉이 분석한 것처럼, 어느 정도 “유럽 정책으로 위장한 독일의 정책을 유럽에 강제”(13)하는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1월 폴란드 정부를 상대로 한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법치국가 구제” 절차, “폴란드 내 합법적이고 독립적인 헌법재판소의 부재”를 문제 삼은 권고안, 그리고 2017년 12월 제재 착수 등은 이런 감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로써 크게는 비셰그라드 그룹 국가와 서유럽,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오데르-나이세선(1945년 이후 독일의 서부국경) 양편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극도로 신중하기로 유명한 메르켈 총리조차 8월 말 침묵을 깨고 이렇게 선언했다. “더 이상 평화를 위한다는 구실로 침묵을 지킬 수 없다. 폴란드의 법치국가 문제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다.” 그러자 카친스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거부”한 이웃 나라를 비난하며, 지금이라도 ‘막대한 금액’의 피해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응수했다.(14)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의 자유주의 엘리트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민제한 정책을 강행했다. 이 같은 행보에 EU를 상대로 비슷한 입장을 견지하는 중유럽 국가의 지도자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헝가리 총리, 폴란드 외무장관, 체코 대통령, 슬로바키아 대통령은 차례대로 이슬람 국가 출신자들에 대해 입국금지 조처를 취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2017년 10월 종종 “체코의 트럼프(미디어 제국을 이끈다는 점에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 더 가깝지만)”에 비견되는 바비시가 총선에 승리하자, 비셰그라드 국가들의 지역결속력은 한층 강화됐다.
미국과 폴란드는 모두 에너지, 기후 문제에서 독일과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U가 온실가스 감축을 선결과제로 내세운 시점에 때마침 독일은 에너지 정책을 전환했다. 반면 폴란드는 석탄의 전략적 중요도가 높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 요구를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입장이다.
사실 이 문제가 이처럼 뜨거운 쟁점이 된 것은 양국이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와 미국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를 수입하는 폴란드는 발트해, 아드리아해, 흑해에 속하는 12개 유럽국을 주축으로 한 일명 ‘3해(발트해, 아드리아해, 흑해) 이니셔티브’(TSI)라고 불리는 인프라개발사업을 기반으로, 중유럽 안에서 중요한 에너지공급국가가 되기를 기대했다. 폴란드의 주도로 출범한 이 동맹체는 다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독일을 견제하는 계기가 돼줬다. 2017년 7월 이 모임에는 귀빈 중의 귀빈, 트럼프 대통령이 초청됐다.
독일과 독일의 파트너인 중유럽, 미국의 관계가 이처럼 새롭게 변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정말 그것이 새롭게 변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폴란드는 1990년대부터 자국의 방위를 위해 EU보다는 미국과의 관계에 더 역점을 둬왔다. 2017년 4월 10만 명의 군인들이 폴란드에 파병됐을 때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은 “수세대에 걸쳐 고대하던 일”(19)이라고 말했다. 자유주의 논평가들이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동유럽에 득세한다고 EU 자체가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이 현상이 위협하는 것은 유럽통합이라는 구상이다. 동유럽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현상은 오랫동안 다른 국가에 종속돼 살아온 이 국가들이 일종의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통해 자국의 주권을 강화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잘 보여준다. 사실상 이들 국가는 75년에 걸쳐 소련의 지배와, 미국, EU, 독일의 간섭에 시달려왔다.
다소 불평등하지만 중유럽의 생활 수준은 분명 향상됐고, 각국에는 러시아와 EU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부르주아지들이 등장했다.(20) 이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들 국가가 자국의 주권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오늘날 폴란드나 헝가리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자국의 독립성을 명분으로 삼아 권위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한 친정부 온라인 매체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5년 전만 해도 헝가리 언론의 대부분이 독일의 손아귀에 있었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말자. 당시는 조금이라도 독일의 견해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면, 다음날 곧바로 헝가리의 독일 언론이 반격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21)
사실상 오늘날 유럽 대륙 내에 극심한 여론분열을 불러온, 다른 많은 국가주권을 외치는 정당들이 그렇듯, 비셰그라드 그룹의 지도자들이 건설하기를 원하는 것 역시 바로 반(反)EU모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신보수주의의 세례를 받은 국가들로 구성된 유럽모델을 의미한다. 사실 제도적인 측면에서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모델인 것이, 2016년 봄 폴란드가 제안한 EU조약 개정안도 그와 비슷했다. 바슈치코프스키 외무장관이 설명한 것처럼, “주요 권한을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아닌 유럽이사회에 부여하자”는 의견이다.(22) 이 말은 곧 유럽통합의 첫 단계로 되돌아가자는 것을 뜻한다. 즉 상품과 자본, 노동자의 이동이 자유로운, 주권 국가들 간의 단순한 자유무역지대로 회귀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반EU모델은 이념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U의 지도자들이 신보수주의 세력에 강제할 것으로 생각되는 어떤 사상적 교리를 깨부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의 표트르 부라스는 이렇게 분석했다. “‘법과정의당(Pis)’은 좌파의 ‘사회공학’ 주제에 방점을 둔다. 좌파는 과거 ‘사회공학’을 통해, 정교분리, 생태, 소수민족 찬양, 범세계주의, 다문화 공존 등에 기초한 진보적인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서구사회를 열심히 개량하고자 했다. ‘법과정의당(Pis)’,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폴란드야말로 오늘날 본래의 가치를 배반한 서유럽과 달리, 진정한 ‘서구’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24)
2017년 7월 루마니아 바일레 투스나드 하계대학 행사에서, 헝가리 총리는 동구권 몰락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27년 전 여기 중유럽에서 우리는 유럽이 우리의 미래라고 굳게 확신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유럽의 미래라고 느낀다.”(25) 그는 “이제 우리가 같은 우리에서 함께 울던 안락하고 따뜻한 사회자유주의 세계는 끝났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2) Konrad Popławski, The Role of Central Europe in the German Economy: The Political Consequences, 동유럽연구소, 바르샤바, 2016년 6월.
(4) <Der Spiegel>, 2017년 2월 4일.
(6) <르몽드>, 2017년 6월 10일.
(8) <파이낸셜타임스>, 런던, 2017년 1월 31일과 2월 6일.
(10) 이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한층 심도 있게 다룰 예정.
(12) <르몽드>, 2017년 2월 9일 인용.
(14) <르몽드>, 2017년 8월 31일 인용.
(16) <파이낸셜타임스>, 2017년 3월 14일 인용.
(18) <뉴욕타임스>, 2009년 10월 13일.
(20) Philippe Descamps 필립 데캉, ‘Désenchantement européen en Slovaquie 인간적인 자본주의를 찾는 슬로바키아인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9월호‧한국어판 2017년 10월호.
(22) Andrew Rettman, ‘Poland to push for “radical” new EU treaty’, EU Observer, 2016년 6월 28일.
(24) Piotr Buras, ‘Europe and its discontents: Poland’s collision course with the European Union’, European Councilon Foreign Relations, Policy Brief, 2017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