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 모여’ 하는 선거판의 술책

2017-12-29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민주적인 연극에서 연상되는 모습과는 달리, 선거는 유권자가 자신의 대리인을 선택한다기보다는 정당이 지지층을 선별하는 자리다. 정당의 주요 기조를 중심으로 ‘시민’ 과반수를 ‘결집’시키는 선거는 특히 정당에게 정권 쟁취나 유지를 위해 민주적 시장의 지분(노동자, 공무원, 임원 등)을 충분한 수로 확보하는 일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과반인 연합을 형성하는 것이다.(1) 정당 수뇌부는 유권자별 범주를 어떻게 구분하고 그들을 동원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하는가? 다시 말하자면 인구 분포에서 어떻게 지지층을 만들어내는가?

그들은 우선 생활조건의 변화를 포착하는 통계, 선거 후 설문조사, 여론조사를 참고한다. 그리고 매 선거에서 관찰된 일관성에 주목하고, 잠재적 지지자의 기대·성향·불만을 파악한다. 상기 자료들은 사회구성원을 성별·연령·학력·거주지, 그리고 무엇보다 직업과 직군으로 분류한다. 부분적이고 단편적이지만 이 자료들은 프랑스 유권자 지형과 그 안에서 대립하는 상반된 이해관계를 개괄적으로 보여준다. 운전기사들이 자신들이 모는 자동차의 주인인 고위임원과 똑같이 투표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정당의 전략가들은 우리의 생존조건이 세계관을 이끌고 정치적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조사 결과를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꼼꼼하게 살핀다. 

그러나 지표는 개인의 정치적 인식을 후보자를 위한 표로 전환하는 방법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한 집단의 이해와 그 집단을 대표한다고 자임하는 정당에 던지는 표, 그 둘의 관계는 굉장히 유기적이다. 이 관계는 정치화와 계급적 인식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부유층에서는 둘 다 모두 강하고 서민층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둔감하다. 돈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1981년처럼 좌파에게 투표하지 않고, 표심 결정에서 학업 수준의 비중이 상당히 늘었으며, 정계에 대한 거부감은 극에 달했다. 이해관계와 선거 사이의 관계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매단 낚싯줄의 미끼처럼 각 집단의 고민을 겨냥해 다듬어진 주제와 가치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자들은 목표로 삼은 대중(중소기업 사장, 수공업장인, 상인)의 관심을 사로잡고, 그들을 동원하고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현안(예를 들어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세 부담’ 등)을 공적인 토론의 장에 올리려고 노력한다. 언론 인터뷰와 교육, 불안한 치안, 경제 등과 관련된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도시에서 열리는 ‘회의’는 해당 부류에 “난 당신의 이해관계에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를 비밀스럽게 전하는 자리다.

이런 메시지를 분석하면, 2000년대 중반부터 사상적 지평을 형성하고 중요한 사회 집회의 최전선을 장식하는 여섯 가지 주제군으로 묶인다. 좌파와 우파 각각 두 개씩, 그리고 이런 구분을 뛰어넘는 두 개로 구분된다.

 

선거판의 단골주제를 여섯 개 군으로 묶다

1848년 이래로 질서를 강조하는 연설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첫 번째 묶음은 국가정체성, 권위, 이민자로부터의 보호, 치안, 가족을 포함한다. 이러한 키워드는 국민전선은 물론 전통적 우파가 문화적 자유주의에 맞서 가톨릭 부르주아를 공략하기 위해, 때로는 이슬람의 공포에 경악한 서민층을 공략하려고 앞세우는 우파적 가치다. 좀 더 세속적인 두 번째 묶음은 재산, 기업, (필연적으로 몰수에 가까운) 세제, (일명 ‘복지병’에 반대되는) 개인적 책임과 연관 있다. 이는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기업경영자와 자본소유가, 더 나아가 납세자의 환심을 사야 할 때면 정치세력의 각축장 어느 쪽에서든 힘주어 강조하는 우파적 이익이다. 

다른 그룹 두 개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선거전을 달군다. 하나는 다양성, 개방성, 관용, 권리, 자유 등이 중심이 되는, 간단히 정리하자면 문화적 자유주의다. 이 주제들은 정치적 공방에서 희미해진, 억압에 대한 공동의 경험으로 형성된 연대감 또는 우애처럼 노동자 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대신한다.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좌파적 이익 항목에 기재될 만한 임금, 노동조건, 공공분야 서비스, 사회보장 등과 연관된 주제는 긴축재정과 규제 완화에 반대한다. 공산주의 운동이 사라지면서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자본축적 제도 철폐 등의 구상은 정계 스펙트럼 밖에서만 명맥을 잇고 있다. 

이제 시대와의 관계를 반영하는 두 개의 그룹이 남았다. 하나는 낙관적인 태도로 경제모델을 새로운 지평, 즉 생태적 전환, 디지털 단절, 기본소득제 등을 활용해 다시 바람직한 미래로 이끄는 방향 재설정을 제안한다.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브누아 아몽, 장뤼크 멜랑숑 모두 이 주제에 집중하는데, ‘정상으로 복귀’할 수 없는 위기의 시대를 종식시키길 원하는 이들을 겨냥한다. 좌‧우파 양측 모두가 앞세우는 마지막 주제는 세계화와 대륙 차원에서 조직된 유럽연합 기구에 대한 비난을 축으로 한다. 통화와 재정 주권, 무역, 더 나아가 경제 보호주의 등의 개념을 포괄한 이 주제는 2005년 유럽헌법조약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행된 이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신념과 정치적 셈법의 밀월관계

하단의 표는 사회집단, 선거의 주제 및 현안, 정치전략, 이 세 가지 요소를 연결해 주요 대선 후보자들이 1차 투표를 위해 구축하려 했던 다양한 연합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표에서는 유권자들이 누구에게 투표하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후보자들이 어떤 유권자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표는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된다. 왼쪽 열에는 18세 이상의 프랑스인이 활동하는 직군을 나열해(퇴직자는 현역 당시 직업으로 편입) 사회동원도와 정치참여도 지수를 표시했다. 오른쪽 행에는 주어진 현안을 중심으로 표심을 사로잡고 과반 연합을 구성하기 위한 후보자들의 노력을 반영했다. 연설, 선언, 선거공약에서 앞서 언급된 주제 6개 중 하나로 해당 직군을 공략하겠다는 의지가 보일 때 빨간 점으로 이를 표시했다. 그렇지만 빨간 점이 없다고 후보자가 해당 직군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아니며, 지지기반 확보를 위해 다른 직군에 좀 더 노력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각각 다른 색의 정치 계획이 행 상단의 육각형 안에 표시돼 후보자가 내세우는 주요 공약이 주로 어떤 내용인지 쉽게 식별할 수 있게 했다. 

필연적으로 대략적이고 불완전하며 과하게 기계적인 이 표는 사회적 지위에 중심을 뒀기 때문에, 나이나 대도시와 쇠락한 지역 사이의 지리적 대립 등 일부 구조적인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대신 정계에서는 다소 수치스러울 법한, 신념과 정치적 셈법의 밀월관계를 드러낸다. 연설가가 목이 쉬도록 사람들을 설득할 때, 전략가는 유권자들의 면모를 자세히 살피고 표수를 더한다. 표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선거 마케팅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고 대표민주주의의 본원적 결점과 마주하게 된다. 선거는 사회적 다수인 노동자 계층, 소시민층의 의사를 정치적 과반으로 자동 전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선거 기간에 국민이 유권자로 변모하는 일은 사회적 거름망을 쓰는 것과 같다. 2012년 (선거권이 없는) 외국인, 무당적자, 상시적 기권자의 비율이 고급지적직업을 가진 이들 중에서 10.7%였던 반면, 청소부나 건설노무자 중에서는 39.5%에 달했다. 사회학자 카미유 푀니는 “물론 경제활동인구에서 임원보다 노동자의 수가 훨씬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임원의 비중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2) 두 번째 필터(사회적 거름망)는 가장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정치적 능력’을 약화시키는 반면 가장 가진 게 많은 인구집단의 선거 영향력을 강화한다.(3) 

매우 불균등하게 배분된 이 ‘능력’은 해석의 틀을 다루는 기술, 대부분 뒤틀린 정당 역사에 대한 지식, 이 세계의 규칙과의 친밀도, 선거판에서 나아갈 길을 찾고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주제와 그것으로 얻는 객관적 이익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을 종합한 것이다. 이 능력은 교육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1970년대 말, 고등교육 졸업자들 83%가 정치인들의 성향을 쉽게 좌·우파로 분류한 반면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이들의 성공률은 31%에 불과했다. 또한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입장 간 연관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교육수준이 낮은 이들이 (사회보장납부금을 줄이면서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겠다는 등의) 상호모순적인 제안에 현혹될 가능성이 크고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표를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40년 전부터 관찰된 교육수준 급상승으로 균형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서민층에 정치문화를 전파하던 조직의 와해와 지식층이 불러온 혐오감의 확대로 그 효과가 반감됐다. 

그래서 이제는 개표가 시작돼 소수가 과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Bruno Amable 브뤼노 아마블, ‘Majorité sociale, minorité politique 정치진영을 X레이로 분석한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3월호‧한국어판 2017년 4월호.

(2) Camille Peugny, ‘Pour une prise en compte des clivages au sein des classes populaires, la participation politique des ouvriers et des employés(서민층의 분열을 이해하기 위해, 노동자의 정치참여)’, <Revue française de sciences politiques>, Paris, vol. 65, n°5-6, 2015년 10~12월.

(3) Cf. Daniel Gaxie, <Le Cens caché. Inégalités culturelles et ségrégation politique(감춰진 국세조사. 문화적 불평등과 정치적 차별)>, Le Seuil, Paris, 1978, p. 116; Pierre Bourdieu, <La Distinction. Critique sociale du jugement(구별짓기)>, Éditions de Minuit, Paris, 1979, 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