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영혼, 디북(Dibbouk)
2017-12-29 마샤 포젤
디북은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해 살아있는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떠돌이 영령으로, 개체의 경계 및 생사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우주의 법칙을 크게 위반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성서에는 이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등장하지 않으며, 유대교의 초기 신앙에서도 디북은 눈에 띄지 않는다. B.C. 초기에 쓰인 탈무드에서는 육체와 분리된 영혼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을 최초로 공식 언급한 것은 16세기 사페드(오스만 제국)의 대표적인 신비신학 이론가 이삭 루리아였다. 그는 디북에 대해 한 영혼에서 다른 영혼으로 옮겨 붙길 좋아하는 존재로 묘사했다. 따라서 악의 기운과는 거리가 먼 디북은 사악한 존재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과업을 수행하지 못한 영혼의 운명
유대교의 신비철학 ‘카발라’에 의하면, 모든 영혼은 신으로부터 이 세상을 개선하기 위한 과업을 하나씩 부여받는다. 그런데, 지상에 머물다 가는 동안 과업을 수행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 영혼이 자신의 과업을 완벽하게 수행하면 육신이 죽고 나서 신의 모든 비밀을 완전히 깨우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자신의 중차대한 잘못을 깨닫고 게헨나(지옥)에 끌려가 영혼이 정화된다. 이후 다시 땅으로 돌아가 윤회(1) 현상인 ‘길굴(Gilgul)’을 통해 새로운 몸으로 환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정 횟수 환생을 반복하고 난 다음에는 최종적으로 그 업무가 완수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화의 게헨나에 이르기에는 영혼 스스로 자신이 너무 무겁다고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영혼은 지상 위에 남아 다른 영혼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다른 영혼을 통해 스스로 승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다른 영혼이 무단으로 들어와 자신의 삶을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된 불행한 영혼을 구제하고자 세 가지 영령 간에 싸움이 벌어진다. 다른 이의 몸에 들어간 디북의 영령과 영혼을 침범당한 ‘피해자’의 영령, 그리고 디북을 타이르는 현자의 영령 사이에 공방이 벌어지는 것이다.
싸움의 의식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령 현자가 분필로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놓으면 디북이 현자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 원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 현자는 디북에게 다른 영혼들 중 특히 이 영혼을 선택한 경위와 이 영혼으로부터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본다. 이어 현자는 디북에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깨우쳐준 뒤, 순서에 따라 산 자들의 세계를 떠나야 한다고 일러준다. 현자에게 설득된 디북이 저승으로 떠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현자가 디북을 위협해 떠나도록 해야 한다. 이 같은 사투의 결말이 늘 정해져 있지는 않다.
디북의 사례에 대한 명확한 집계는 없지만, 이디시 희곡은 이런 디북이라는 소재를 통해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1920년 바르샤바에서 만들어진 샬롬 안스키(Shalom Anski)의 작품 <디북 혹은 두 세계의 사이에서> 또한,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상연되고 있다.
미처 살지 못한 삶은 어디로 가는가
폴란드 제작자 미하엘 바진스키는 1937년 이를 영화로 각색했다. 연극과 마찬가지로 이디시어로 각색된 이 영화는 눈에 띄는 전위 무용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작품 속 젊은 남녀는 서로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알았지만, 장애물 때문에 하나가 되지는 못했다. 이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남자의 영혼은 사랑하는 여인, ‘레아’의 살아있는 몸속으로 들어가는데, 남자의 죽은 영혼으로부터 레아를 벗어나게 해주고자 동원된 위대한 랍비 역시 둘을 갈라놓지 못한다. 레아는 먼저 죽은 연인의 뒤를 따라 저승으로 가게 되는데, 앞서 등장한 몇몇 장면에서 레아가 예언처럼 했던 대사들이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태어날 때, 우리들은 오래 살 운명을 타고 났다. 만일 일찍 세상을 떠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미처 살지 못한 이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그가 미처 누리지 못한 기쁨이나 고통들, 그의 머릿속에서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생각들, 그가 미처 낳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글·마샤 포젤 Macha Fogel
번역·배영란
(1) 윤회(Métempsychose): ‘영혼의 이동’을 가리키는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용어로, 하나의 동일한 영혼이 계속해서 다른 육신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개념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