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 천사의 수천 개 얼굴

2017-12-29     리오넬 오바디아 | 리옹 2대학 인류학과 교수

다신론적 종교, 특히 아시아 종교에서도 서구 악마와 유사한 존재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악마’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유럽 역사학자들은 종종 악마가 일신론자들의 발명품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시대와 장소를 넘어 문명·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유대·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세계 밖에서도 서구 악마와 유사한 존재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아시아 종교에서도 다양한 모습의 악마들이 있지만, 보통은 경외감이 들도록 인간과 동물이 뒤섞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 내 상대적으로 다른 문화‧종교적 배경 속에서도 악마의 원형이나 ‘악의 모방자’를 찾아볼 수 있다. 

‘카우다’는 외관상으로 서구 악마의 이미지와 가장 가깝다. ‘악마의’ 화신인 카우다는, 15세기 인도에서 탄생한 시크교에서 뿔과 털, 날카로운 이빨 등을 지닌, 동물 형상의 야만인으로 묘사돼 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악마로, 야만스럽고 잔인한 모습을 하고 있다. 수염, 돌출된 송곳니, 뾰족하게 선 귀와 뿔이 인상적인 카우다는 털이 수북한 근육질의 상반신 나체를 꼿꼿이 드러내고 있다.

시크교 전설에 따르면, 창시자 구루 나나크가 자신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부하 두 명을 데리고 아삼주(인도 동부)를 횡단했다고 한다. 카우다는 튀겨 먹을 요량으로 나나크의 부하 마르다나를 결박해 납치했다. 나나크가 살려달라는 부하의 절규를 듣고 그를 구하러 갔을 때, 카우다는 나나크까지 튀길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나나크는 카우다에게, 부하보다 자신을 먼저 튀기라고 요구했다. 그다음, 발가락질 한 번으로 펄펄 끓던 기름을 얼음처럼 차갑게 만들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영적 지도자의 힘에 깜짝 놀란 카우다는 나나크로부터 은총을 받은 후, 범죄와 연을 끊고 시크교의 영적 수행에 참여했다.

다양한 얼굴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한냐’

아시아의 또 다른 악마로 ‘한냐’가 있다. 일본 악마인 한냐(般若, 반야) 역시 서구 악마와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한냐는 11세기에 쓰인 <겐지 이야기>와 같은 소설에 등장하는 ‘오니’라는 일본 전통 요괴 중 하나다. 쇠로 된 이빨이며 길쭉한 뿔, 튀어나온 눈과 무시무시한 웃음 등 끔찍스러운 형상을 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전통연희인 노오와 교겡, 그리고 19세기 일본의 국교였던 신도의 ‘가미 노 미치’라는 제례의식 중 몇몇 춤에는 한냐가 ‘기자’라 불리는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한냐의 가면은 일반적으로 붉은색을 띠지만 점점 불행으로 치닫는 인간의 감정 단계를 색깔로 표현하기 위해 가끔은 푸른색이나 흰색을 띠기도 한다. 한냐는 강한 질투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인간성을 잃고 악마가 됐다. 한냐는 인간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자신이 지닌 마력을 통해 분출한다. 불행으로 점철된 한냐의 몸과 마음에 대한 지배력은 한냐가 드러내는 신체적 특징에 따라 달라진다. ‘나마나리’일 때의 한냐는 뿔이 있긴 하지만 그나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추나리’ 한냐는 동물적 측면이 더 강하게 보이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마귀를 쫓음으로써 선과 종교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반면, ‘호나리’ 한냐는 분노가 최고조에 달해 끔찍하고 망측한 표정을 확연히 드러낸다. 

다음으로 소개할 악마는, 역시 아시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여신(그렇다 해서 이를 아시아에서 보편화된 유형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인 ‘다키니’다. ‘칼리’나 ‘시바’처럼 힌두교의 가혹한 제신과 탄트라교, 불교 제신의 다키니들은 사실상 양면성을 지닌다. 사납고 노기를 띤, 욕망에 불타오르고 동물같이 매섭고 잔인하며, 희생의 피를 요구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보살처럼 차분한 분위기와 명상자의 반쯤 감은 눈, 침착한 미소와 섬세한 손짓으로 ‘무드라’ 자세를 취하는 모습도 있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개종 후 그 종교를 옹호하기 위해 폭력성을 띄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남아시아의 고대 지역 수호신들과 연관 지어지는 다키니가 그런 경우다. 다키니는 구울(1)이나 마녀, 때에 따라서는 용맹한 전사 여신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동일한 악의적 성향

여기에서 살펴본 세 가지 예는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적 전통과 연관이 있다. 이 예시들에서 알 수 있는 점은, 르네상스 시대의 괴이한 사탄, 또는 그 후에 등장하는 바포메트(2) 같은 악마가 지닌 보편적인 특성뿐 아니라, 신체적 특징과 각각의 문화‧풍습이 함께 어우러질 때, 다양한 모습의 악마 유형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카우다의 경우는 잔인하고 거친 동시에,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지배신(支配神)’을 통해 다른 신들까지 포섭하고 개종시키는 능력을 지닌다. 악도 신적 모습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시아 종교에선 보편화돼 있다. 한냐의 경우, 질투와 원망을 이겨내지 못해 인간을 악마로 만들어 반사회적인 감정을 표출한다. 다키니는 힌두교도와 불교도들이 믿는 신들의 양면성, 즉 보호자와 파괴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서구 악마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반문할 수 있다. 악마는 때로 치유자나 창조자로서, 인간의 조언자나 구원자, 자신이 지배하고자 하는 세계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신의 고유 영역인 파괴자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남에게 해악을 끼치려는 성향 역시 전설과 예술 또는 연극과 같은 대중문화를 거치며 많이 약화됐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 간의 유사성이 악마의 보편적인 정체성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만일 카우다, 한냐, 다키니의 신체적 특징을 보고 기독교 문건과 특히, 중세 후반기 자료(이후의 자료에 등장하는, 주변을 둘러싼 상징물을 제외하면 너무나 닮은 바포메트 포함)에서 묘사되는 서구 악마와 닮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들의 신성(神性)이 특정 문화적 맥락에서 인간사회의 악을 부분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글·리오넬 오바디아 Lionel Obadia
리옹 2대학 인류학과 교수이자 종교학자로, 특히 <사탄(Satan)>, Éditions Ellipses, 2016의 저자로 유명. 현재 국립연구원(Agence nationale de la recherche, ANR) 인문학 부서 책임자

번역·권진희 classic16@gmail.com
미국 몬터레이 통번역대학원 및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구울: 몇몇 동양종교에 등장하는 여자 흡혈귀로 시체를 먹는다.
(2) 바포메트: 양성의 몸으로, 흑산양의 머리를 가진 악마. 사실여부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중세시대에 ‘성전기사단’의 비밀의식을 통해 숭배 받았다는 설이 있다.

[참고 도서]
<사탄(Satan)>, 리오넬 오바디아, Éditions Ellipses, 2016
<악마(Le Diable)>, 자크 뒤켄느, Plon, 2009
<신, 인간 그리고 악마(Dieu, l’Homme et son Diable: Méditations sur le Mal et le cours de l’Histoire)>, 프랑수아 페이토, Buchet-Chastel, 2005
<악마와 예술(L’Art du Diable)>, 아르투로 그라프, Parkstone International, 2009
<사탄의 기원(L’Origine de Satan)>,일레인 페이절스, Bayard, 1997

박스기사

악마의 모습을 지닌 여신, 칼리

검은색 피부의 이 인도 여신은 전통적으로 무서운 인물로 표현된다. 혀는 입 밖으로 길게 나와 있고 눈빛은 사납기 그지없으며, 51명의 두개골로 만들어진 목걸이는 무릎까지 늘어져 있다. 이 여신은 시체처럼 누워있는 시바의 몸 위에서 나체로 춤을 추고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허리에는 잘린 팔로 엮인 옷을 걸치고, 한 손에는 목이 잘린 머리를, 또 한 손에는 파괴의 힘을 상징하는 검을 들고 있다. 그럼에도 이 여신은 성서적 의미로 볼 때 악마가 아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이런 모습이 일반적으로 악마의 흉악함을 연상시키는 것과는 달리, 인도에서는 다른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1이란 숫자는 산스크리트어 알파벳의 글자 개수를 뜻한다. 칼리의 무시무시한 형상은 칼리가 시간의 여신으로서, 죽음과 출생 사이의 긴장을 관장함을 뜻한다. 실제로, 힌두교에서 칼리는 파괴의 어머니이자 창조의 어머니다. 칼리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며, 인도 북부의 벵골 지방에서 특히 숭배되고 있다. 인도의 콜카타(캘커타)란 지명은 칼리에서 유래했다. 1837년까지 칼리 숭배 암살단원들은 칼리를 섬기지 않는 이들을 칼리의 이름으로 살해했다. 인도 남부에서도 지방 여신들과 함께 칼리를 숭배하고 있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칼리가 인도 토착 원주민을 가리키는 ‘아디바시’들이 숭배하는 고대 여신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칼리의 숭배자들은 칼리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악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칼리를 숭배한다는 것이 끝없는 윤회의 수레바퀴로부터 벗어나 두려움, 질투, 무관심을 초월하는 ‘해탈’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칼리는 여러 장소와 사람들에게 출몰하는 나쁜 유령들에게만 무시무시한 ‘악마’로 간주될 뿐이다. 백인인 시바의 흑인 부인 칼리는 인도의 여성 영성 ‘샥티’의 주요인물 중 하나다.  

글·나탈리 칼메 Nathalie Calmé

[참고 도서]
<인도 문명 사전(Dictionnaire de la civilisation indienne)>, 루이 프레데릭, Robert Laffont, 1987
<인도의 신화와 신(Mythes et dieux de l'Inde: Le polythéisme hindou)>, 알랭 다니엘루, Champs Flammarion,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