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주의, 환상과 신중함 사이

2017-12-29     모드 르레스트 | 종교학자

프랑스에서 악마주의는 명맥이 끊긴 데다 더는 유효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각종 공권력과 사회학자들, 신자들 간의 의견은 엇갈린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악마주의가 종교적 소명보다는 클리셰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6일, 알프마리팀 그라스 지방 알렉시드토크빌 고등학교에서 17세 소년이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3명의 부상자를 냈다. 조사 초기 단계부터 범행 동기는 명확해 보였다. 대량학살에 매료된 이 청소년은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일컫는 ‘외로운 늑대’이자 고딕문화 마니아였던 것이다. ‘악마주의의 위협’이라는 망령을 되살리기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고딕문화를 애호하는 것과 악마주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악마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다. 설령 그 청소년이 자신의 고딕문화 취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사탄의 형상이나 이념을 신봉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기 쉬울 수 있지만, 사회학자 니콜라 왈저(2)는 이렇게 경고했다. “문화와 종교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예컨대 헬페스트(3) 축제 때 클리송에는 메탈음악 애호가 10만 명이 모인다. 그렇지만 프랑스에 10만 명의 악마주의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양상을 지닌 악마주의 네트워크
 
이는 일부 악마주의자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 사항이다. 이들은 공식 석상에서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해 자신들의 믿음을 전파하고 일부 클리셰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예컨대, 사이트 forum-eso.com에 게재된 글에서 ‘아엘리우스 수루타스’라는 아이디의 사용자는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며 (…) 사탄을 자연의 힘처럼 묘사한 앤턴 라베이의 <사탄경>에 등장한 원칙을 고수하는 라베이언 사탄주의”를 “사탄을 지옥의 수장으로 숭배하는 유신론적 악마주의”와 구분했다.
 
라베이언 악마주의는 1966년 태동했다. 유신론적 악마주의와 달리, 라베이언 악마주의는 그들만의 성경과 교회를 갖추고 있다. 라베이언 신도들에게 사탄은 하나의 힘이며 철학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실재하는 존재는 아니다. 절대자유주의, 반교권주의, 진화론을 표방하는 라베이언 악마주의는 사이언톨로지교 출신 미국인이자 사탄교회 창립자 앤턴 샌더 라베이의 에세이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사탄교회의 성경인 <사탄경>은 2006년 이후 프랑스어로 번역됐다. 반면, 중세 미신에서 파생한 종교의식을 갖춘 유신론적 악마주의자들에게 사탄은 타락천사다. 이들의 종교의식은 희생과 섹스, 주술을 기본 축으로 한다. 그러나 MIVILUDES(3) 출신이자 <악마주의: 광신적 이탈의 위험(La Documentation Française, 2005)>의 저자 자키 코르도니에에 의하면, 프랑스의 악마주의 신도들은 더 이상 라베이언 악마주의와 유신론적 악마주의의 구분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파헤쳐진 무덤이 ‘매년 600~630개씩’ 늘어나는 것은 이 두 가지가 혼재해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계산법
 
반면, 니콜라 왈저는 이런 결론을 분명하게 부인했다. 왈저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라베이언 악마주의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유신론적 악마주의자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악마주의 교리의 신봉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네 가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악마주의 교리를 존중하며 둘째, 해당 종교의식을 실천하는 것. 셋째, 자신이 악마주의자임을 천명하며, 넷째, 어느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다. 왈저는 “MIVILUDES는 프랑스 내 악마주의자의 수를 2만 5천 명으로 집계하지만, 우리는 이 기준에 따라 약 1백여 명 정도로 추산했다. 이는 전부 악마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른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사탄(Ellipses, 2016)>의 저자이자 인류학자 리오넬 오바디아에 따르면, 문제는 악마주의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제대로 된 집계조사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악마주의자 집단은 단순히 라베이언과 여타 악마주의 무리 간의 구분법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밝혔다. 전문 저널리스트 에르베 SK 게나노는 한술 더 떠 “미국에서 사탄의 신전(4)이 미디어에 미친 영향은 이성적이고 무신론적인 접근법을 대폭 대중화했지만, (…) 오늘날 악마주의자들의 상당수는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 (…) 그리고 주술의 명백한 효용성을 계속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악마주의의 개념 자체도 상대화해야 하는데, 리오넬 오바디아가 설명하듯 “이 개념은 가톨릭교회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느슨해진 20세기 동안, 반문화가 급부상했고 이에 악마주의자들 또한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파리 5구에는 비교(秘敎)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이 가득하다. 지베르 죈 서점에는 서재 한 칸 전체가 흑마술과 악마주의 설교 서적에 할애돼 있다. 그렇지만 해당 서점 담당자는 “그런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딱히 표가 나지도, 가게 안에서 따로 모이지도 않는다”며 농담조로 말했다. 파리 6구에 자리한 ‘이방인의 서점(Librairie de l’Inconnu)’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언제부터인가 악마주의 신도들이 더 이상 자기네 서점 문을 드나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리오넬 오바디아는 이렇게 지적한다.
 
“그들이 눈에 띄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면, 그 심정을 헤아려봐야 한다. 그들에 관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양산됐는지를 생각해보라.”  
 
 
글·모드 르레스트 Maud Le Rest
종교학자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과 및 국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Nicolas Walzer: <악마주의, 사회에 어떤 위협이 되는가?(Pygmalion, 2008)>의 공동저자이자 <세속의 사탄: 암흑에 빠진 청소년의 초상(Desclée de Brouwer, 2009)>의 저자
(2) Hellfest: 프랑스의 유명한 메탈 및 하드록 페스티벌. 매년 루아르아틀랑티크의 클리송에서 열린다.
(3) MIVILUDES: Interministerial Mission for Monitoring and Combatting Cultic Deviances, 분파간 분쟁 방지 및 감독을 위한 부처간 협의체
(4) Satanic Temple: 미국의 과격파 라베이언 악마주의 집단. 이들의 신전 중 가장 큰 곳이 미시건 디트로이트에 자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