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에 등장한 급진적 민족주의 좌파

2017-12-29     장-아르노 데랑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협상은 없다. 자결(自決)만이 있을 뿐!” 코소보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자결(알바니아어로 Vetëvendosje)운동’이 내세운 슬로건이다. 이 문구는 민영화의 속임수, 정치인의 부정부패, 서방 국가의 극심한 개입을 비판하는 동시에, 끝이 보이지 않는 전후의 악조건들 속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의 간절한 열망을 담고 있다.


조기 총선이 치러진 2017년 6월 11일 밤 자정을 넘긴 시각, 시민들은 축제 시작에 앞서 확정된 총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록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인파 속에 간간이 애국가 열창과 프리슈티나 축구팀 서포터들의 구호가 들렸다.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의 교외에서 온 수천 명의 청년들 중에는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유명 좌파지식인들도 섞여 있었다.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는 서민들로 교육수준이 높으며, 무엇보다 매우 젊은 나이인데, 이것은 ‘자결운동’ 유권자들의 특징이다. 자결운동은 2014년의 두 배인 27.5%의 지지율을 얻어 제2당으로 올라서면서, 코소보해방군(UCK) 게릴라 출신의 급진 정치세력들로 이뤄진 ‘사령관 연합(Kadri Veseli, Ramush Haradinaj, Fatmir Limaj)’의 뒤를 바짝 쫓을 수 있게 됐다.

자결운동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알빈 쿠르티는 9월 초 총리직에도 도전했지만, 연정이 구성되면서 UCK 사령관 출신이자 코소보미래동맹(AAK)의 수장인 라무쉬 하라디나이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1) 이로 인해, 자결운동은 ‘친유럽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노선을 표방하는 다른 정당들 사이에서 고립돼 ‘유리 천장’에 막힌 신세가 됐다. 게다가 최근의 상승세를 굳히겠다는 야심으로 도전한 가을의 지방선거에서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도출되면서, 당 내부적으로 향후 전략을 둘러싸고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시민들의 ‘존경’을 얻으려면, 자결운동은 계속해서 급진 노선을 고수해야 할까, 아니면 경제가 낙후하고 주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코소보의 특수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민주적 모델을 도입해야 할까?

코소보 행동 네트워크(KAN)에서 파생된 자결운동은 2005년 정당이 됐다. 그 이듬해 자결운동의 ‘최종지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자결운동은 시민들의 자결권을 보장한다는 이름으로 코소보의 독립을 주장하고 ‘국제사회’의 주재로 진행되는 세르비아와의 협상을 거부했다. 자결운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혁신적인 활동, 임팩트 있는 슬로건, 정당 지지자들의 열정과 패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진 정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7년 2월 시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UN코소보임시행정부(UNMIK)의 루마니아 경찰은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2명을 사살하고 쿠르티를 체포했다. 사실 쿠르티는 그 전에도 투옥된 경험이 적지 않았다. 1995~1996년 알바니아 대학생 운동을 이끌었던 쿠르티는 1999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코소보 공습 당시 세르비아 경찰에게 체포돼 구금됐다. 그 후 테러 혐의로 15년을 선고받았다가 2001년 10월 세르비아의 대통령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에 의해 특사로 석방됐다. 2015년 11월에는 국회의원 신분이었음에도, 코소보와 세르비아 간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세르비아와의 ‘대화’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체포됐다. 훗날 그는 투옥 기간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저서들을 탐독했다고 회고했다.

쿠르티는 불의에 맞서 몸을 사리지 않고 청렴결백한 이미지를 가진 노련한 혁명가의 모델과 완벽하게 부합한다. 지성인 쿠르티의 첫 번째 멘토는 다름 아닌 아뎀 데마치였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시절에 무려 28년을 감옥에서 보낸 인물이다. 데마치는 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 티토 집권기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자주관리형 사회주의(2)에 맞서 엔버 호자(1908-1985) 치하의 알바니아가 내세운 신스탈린주의 모델에 찬성했다. 자결운동은 티토식 유고연방 사회주의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고 하지만 이 체제를 추종하는 의원들이 정당 내부에 일부 남아있어, 최근 들어 다시 성장하는 급진좌파 세력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자결운동의 홍보 담당자인 벨짐 캄베리는 설명했다. “우리는 모든 좌파 정당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코소보 문제에 있어서 민족주의적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 세르비아 정당들을 제외하면 말이지요.” 자결운동은 ‘주권주의적’ 좌파를 표방한다. 또한, 쿠르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민족주의가 발칸반도의 폭력과 전쟁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중요한 개념이라는 사실은 믿습니다. 국가를 우파의 손에 넘어가도록 둘 수는 없습니다.”

‘자결운동’은 변함없이 자결권을 주장하면서,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통합을 놓고 국민투표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은 다른 정당들에게는 터부시되고 있을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열띤 논쟁의 대상이다. 쿠르티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99년 이후 코소보는 파산국가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EU는 모든 종류의 개발을 억제하는 ‘안정’의 환상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쿠르티는 코소보 내 세르비아인들과 직접 대화하는 것에 호의적인 입장이다. 자결운동은 또한 지지율을 높이려는 방편으로 사회주의인터내셔널과도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지역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코소보의 EU 가입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를 주의 깊게 지켜본 쿠르티는 만약 자결운동이 집권당이 된다면 “강대국들의 잠재적인 폭력”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결운동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과제는 코소보 자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모든 발칸 국가들이 선택한, 민영화와 외국인 투자를 골자로 하는 경제개발 모델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이 모델의 효과를 입증할 만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2014~2015년 겨울, 불과 몇 주 동안 전체 인구의 7%가 넘는 10만여 명이 코소보 땅을 떠났다. 평화의 시기에서는 보기 드문 집단탈출이다. “정부는 사람들이 떠나도록 그냥 내버려 뒀습니다.” 쿠르티가 말한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회적 압력을 조금이나마 낮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코소보를 가장 먼저 등지는 이들은 바로 우리의 잠재적인 유권자, 젊은이들입니다.” 

급격한 변화들, 그리고 야만적인 민영화로 거의 모든 경제 활동이 파괴되고 실업률은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코소보에서, 이민은 젊은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보인다. 


글·장-아르노 데랑 Jean-Arnault Déren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하라디나이는 과거에 전범으로 기소돼 두 차례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법정에 섰으나, 증거 부재로 두 번 다 무죄 판결을 받았다. 
(2) 자주관리: 노동자가 관리주체가 되는 방식. 노동자의 자주관리는 한편으로는 기업소유자ㆍ경영자가 관리하는 자본주의적인 기업관리와 대조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레닌주의적인 사회주의의 ‘국가관리’, ‘당관료 관리’와 대비된다.-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