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비즈니스’ 산업 주역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2017-12-29     올리비에 피오 | 기자

아프리카 경제의 성장과 함께, 민간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자산가들이 영어권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블랙 비즈니스’의 주체들은 개인의 성공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신화를 강화하는 동시에 박애주의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줄이고자 한다. 에티오피아에서부터 남아공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의 백만장자들은 사업과 자선을 결합시킴으로써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미덕을 자본주의에 입히고 있다.


그들의 이름과 얼굴은 경제전문지 커버에 단골로 등장한다. 여기서 그들이라 함은, 알리코 당고트, 토니 엘루멜루, 파트리스 못세프, 모 이브라힘, 예림 하비브 소우, 모하메드 울드 부아마투, 장 카쿠 디아구 등을 말한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신흥 부호들로, 최근 20년 사이에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 수장들과 세력가들의 엄청난 재산에 이미 익숙하다.

‘블랙 비즈니스’ 산업 주역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들의 출신은 나이지리아, 남아공, 에티오피아, 코트디부아르 등이며 연령은 45~70세, 대부분 평범한 서민가정 출신의 자수성가형 인물들이다. 그들은 몇 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주로 영어와 자국의 방언들), 전용 제트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국제사회의 주요 행사(G20 정상회담, 다보스 포럼 등)에 초청되고, 여러 세계 경제 거물들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

백만장자인 동시에 박애주의자
 
휴식을 취하고 비즈니스를 논하기 위해 찾는 클럽, 일류 레스토랑, 스파샵 등의 특별 회원인 이 백만장자들은 서방국가와 중동, 아시아 부호들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플로리다나 유럽에서 휴가를 보내고, ‘프리미엄’ 병원에서 맞춤형 치료를 받고, 명품 액세서리에 열광하고, 골프나 스쿼시를 즐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출신 백만장자들은 다른 나라 자산가들의 그릇된 방식, 예를 들어 서방국가들로의 자본유출 등을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아프리카 대륙의 특성(거래와 관련된 오래된 관습, 연대 문화 등)에 적합한 ‘아프리카 자본주의’를 표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출신국, 나아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경제 발전(아프리카 자본의 우선시, 민간분야 발전과 개인 창업 장려)과 인적 발전(보건, 교육, 전력보급 지원)에 대해서도 야심을 보인다. 이들 중 다수는 재력을 나타내는 상징인 자선재단도 설립했다. 범아프리카 기부자 네트워크인 African Grantmakers Network(AGN)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자산가 상위 40명 가운데 22명이 2014년에 자선활동을 벌였으며 그 총액은 7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남아공의 시장조사기관 뉴월드웰스(New World Wealth)가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백만장자는 2010년 10만 명에서 2016년 14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이들의 자산총액은 8천억 달러에 이른다.(1) 나이지리아 GDP의 2배에 달하는 액수다. 컨설팅 업체 ‘캡제미니(Capgemini)’는 아프리카 백만장자들의 자산 누적액이 2008~2017년 80% 증가했으며, 자산총액은 1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했다.(2) 두 수치 간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이 백만장자들이 보유한 자산의 출처와 정확한 액수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엘리트 계층의 자산이 급증하면서 백만장자의 수도 늘어났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아프리카 백만장자의 수를 25명으로, 잡지 <벤처스(Ventures)>는 55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자산가들의 실제 자산 규모와 증가속도를 고려하면, 이는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진 수치로 보인다.

‘아프리카 자본주의’의 새로운 흐름 주도

아프리카 백만장자들의 성공담, 언론장악력, 아프리카 개발에 관한 담론은 수십 년 전부터 아프리카 발전에 걸림돌이 돼온 기존 세력가들 및 정치인들의 나태와 대비를 이루며 큰 주목을 받아 왔다. 가나의 사회학자 조지 아이케이는 부패한 관리들을 일컫는 “하마”에 맞서는 “치타”로 이들을 치켜세웠다. 독립 직후의 시기와 달리 이제는 정부와 대규모 해외 민간 투자자들만 국가 개발에 힘쓰는 것이 아니다. 빈곤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그래프 참조), 점점 더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역동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현지 기반의 민간 기업들도 지역, 국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로 시장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Dangote Cement’와 ‘Guaranty Trust Bank’, 남아공의 ‘RMB Holdings’와 ‘Standard Bank’, 모로코의 ‘Attijariwafa Bank’가 그 예이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다국적 기업과 해외 정부들은 아직 조심스러워하고 있다.(3) 아프리카에 백만장자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오랜 기간 지속돼온 남부와 북부의 개발 불평등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기 어렵다. 이들 자산의 대부분은 구조 및 전략적 분야(산업 생산, 인프라 등)가 아닌 경제 분야(광산, 은행, 통신,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변화는 분명 일어나고 있다고, 변화를 이끄는 당사자들은 말한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백만장자 토니 엘루멜루는 53세로, 현재 아프리카 내 대형은행 중 한 곳인 ‘United Bank for Africa(UBA)’의 수장인 동시에 호텔, 에너지, 농업 분야에 진출해 있는 재벌 그룹이자 라고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대형기업 ‘Transcorp’의 회장이다. ‘Heirs Holdings’라는 개인 투자기금을 이용해 아프리카 및 해외 투자자들이 설립한 석유화학, 인프라, 농업 분야의 회사에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초현대식으로 꾸며진 Heirs Holdings의 본사는 인구 1,800만의 대도시 라고스 인근의 라군을 따라 형성된 부촌,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식당 운영자의 아들로 아프리카의 26번째 부자가 된 엘루멜루가 손님들을 맞이하는 장소다. 건물은 통유리로 돼 있고, 그 앞에는 정원과 분수, 그리고 협력업체들을 위한 수영장이 있다. 직원들에게는 최신형 컴퓨터, 텔레비전, 휴식 공간이 제공된다. 요한 바오로 2세, 버락 오바마 미 전 대통령 등과 찍은 사진들이 즐비하고 감색 슈트와 흰색 셔츠가 완벽한 상태로 정리된 개인 공간에서, 그는 런던, 토론토, 뉴욕에서 유학한 여러 언어에 능한 어시스턴트들과 함께 일한다. 그는 말했다. “아프리카가 조만간 세상을 놀라게 할 겁니다. 절망, 기근, 에이즈의 땅은 이제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우리만 돈을 벌고 있지만, 우리가 아프리카 사람인만큼 우리의 야심은 국내외적으로 극심한 빈부격차를 줄이면서 아프리카인들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보(Ibo)족 출신의 기독교인 엘루멜루는 1990년대에 금융기관에 입사, 33세의 나이로 나이지리아 5대 기업인 ‘Standard Trust Bank’의 최연소 사장이 됐다. 그로부터 10년 후 UBA 인수를 기점으로 그는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엘루멜루의 성공이 정치인들과의 돈독한 관계 덕분에 가능했다고 폄하하지만, 이제까지 그의 이미지에 누가 될 만한 사건은 없었다.

그는 명실공히 ‘아프리카 자본주의의 표본’이다. 이 표현은 2010년 시위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그 뒤 각종 국제 콘퍼런스에서 거론됐다. “성공은 두 개의 축, 즉 민간분야의 정치 참여와 박애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 저의 경제적‧사회적 철학입니다.” 엘루멜루가 설명한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자본주의의 핵심은 무엇일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혁신과 창업을 동시에 장려해야 하며, 부유층이 자신이 받은 혜택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의 트리클-다운 경제이론(Trickle-down economics)(4)을 아프리카의 실정에 맞춘 듯한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가장 부유한 이들의 소득으로 사회 전체가 부유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 아시아 등 대부분 국가의 경제가 강력한 정부정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과는 크게 다르다.

2014년 말, 엘루멜루는 자신의 이름을 딴 개인재단을 만들어 아프리카의 혁신 기업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1억 달러의 재원을 마련한 그의 재단은 매년 보건, 교육, 농업,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의 아프리카 스타트업 1,000곳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케냐와 나이지리아의 스타트업들이 대부분 선정되기는 했지만 세네갈, 부르키나파소, 모로코의 젊은 기업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아프리카는, 민간 분야와 공공 분야를 막론하고 이제까지 아프리카의 발전을 막아온 국제 사회의 도움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힘과 부로 오롯이 일어서야 한다.” 골수 자유주의자인 엘루멜루는 이렇게 주장한 후, 아프리카 신흥 부호들이 벌이는 자선활동에 관해 설명했다. “우선은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목표가 달성된 후에는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지요.”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막대한 세금납부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하는 영미권 민간기업과 개인 자산가들의 박애주의 모델과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5) 엘루멜루는 말을 이어간다. “이미지는 결국 똑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창하는 아프리카의 박애주의는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경우 서구와는 달리 정부가 경제 및 인적 성장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 돈만 주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배고픈 자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라.’ 그것이 아프리카의 속담이었던가? 중국 속담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는 1990년대 초 빌 클린턴 재임 시절에 사회복지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문제 삼으며 미국에서 탄생한 실용적 박애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자유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논리를 탑재한 엘루멜루는 공유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는 아프리카에서도 오늘날에는 개인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든 어디든, 부유한 사업가들과 수많은 정치인들은 권력과 특권에 집착합니다. 아프리카에 족벌주의와 부패가 만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비단 서구 사회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진정한 자각인가, 기회주의적 과시인가

55세의 남아공 출신 사업가 파트리스 못세프는 거대 광산 기업 African Rainbow Minerals(ARM)의 창업자로, 불과 몇 년 만에 아프리카의 8번째 부자로 올라섰다. 부의 대부분이 백인들에게 편중된 남아공에서 드문 흑인 부자, 못세프는 광산권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 사무소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성공스토리는 2002년 흑인경제육성정책(BEE, Black Economic Empowerment)의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대규모 광산 기업들과 아프리카민족회의(ANC) 간에 체결된 이 협정은 광산 업계의 26%을 10년 이내에 흑인 투자자들에게 양도하도록 했다. 남아공의 ‘블랙 비즈니스’를 이끄는 다른 백만장자들에 비해서는 ANC와의 연결고리가 약했지만 어쨌거나 ANC에 관련돼 있던 못세프도 바로 그때 자신의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광산업이 남아공에서 백인 투자자들과 흑인 투자자들의 공존을 보여주는 정치적 상징물인 것에 반해, 수익 구조상 국가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부분은 미미하다.

2013년 1월 30일 못세프는 재산의 절반인 약 1억 달러를 할애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거주민들 중 최초로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가입했다. 더 기빙 플레지는 부유층이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하는 기부서약으로,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도 여기에 서명했다. 그러나 못세프의 재산은 대부분의 경우와는 달리 이런 유형의 파트너십에 열광하는 미국의 재단으로 넘어가지는 않을 예정이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이 남아공의 한 민간 가톨릭 학교에서 수학한 경험을 살려 가톨릭 재단이사회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못세프가 요구한 조건은 “빈민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원하는 것”이었다.

케이프타운의 교외, 도시 북부 흑인거주 구역에 거주하는 40세 전후의 루부요 라니는 이 철학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 정보처리학과 교수 출신의 라니는 못세프 재단의 지원으로 2004년 ‘Silulo Ulutho Technology’를 설립하고 흑인 공동체에 신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라니는 1990년 아파르테이트(인종적 차별대우)가 철폐된 이후 흑인 중산층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허름한 건물을 사무실로 쓴다. “도시에서 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세우려면 우선 신기술과 친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게 됩니다.” 라니는 설명한다.

Silulo Ulutho Technology는 케이프타운에서 40개의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5천 명 이상의 교육생이 배출된 덕분에 라니는 2016년 스위스 슈밥(Schwab) 재단이 수여하는 사회사업가 상을 받았다. “저는 파트리스 못세프가 부유층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를 주창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아프리카 백만장자는 이를 비웃지만, 서민 출신으로 비교적 단기간 내 성공을 거둔 자산가들에게는 크게 와 닿는 부분이 많습니다.” 라니가 말한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도 해당하는 질문이 하나 남아있다. 이것은 진정한 자각인가, 아니면 과시용 행동 또는 일회성의 기회주의적 행동인가?

극심한 기근으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에서도 새로운 아프리카 자본주의가 싹트고 있다. 뉴월드웰스의 2015년 순위에 의하면, 에티오피아에는 3천 명가량의 백만장자들이 살고 있으며 이는 2007년 이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볼레 지역,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간선도로를 따라 검은 유리로 지어진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10년 전부터 에티오피아 부호들은 자신의 기업과 은행의 번쩍거리는 본사 건물을 이 지역에 두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거리의 가장자리에는 세계적인 육상 영웅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도 있다.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는 1천5백 미터와 1만 미터 트랙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두 차례 획득하고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여덟 차례나 거머쥔 전설적인 장거리 육상 선수다.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뒤 게브르셀라시에는 사업을 시작했다. 아르시 지역의 평범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4개의 호텔을 포함해 여러 채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자동차 거래 회사와 커피 농가를 운영 중이다. 직원 수가 2천 명이 넘는다. 구릿빛 피부와 넉넉한 미소가 인상적인 전 육상선수의 얼굴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부자가 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사회를 소집하고, 현장을 방문하고,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대해 욕심이 생겼습니다. 정직함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사업은 국민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많은 자산가들이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 현실을 의식한 듯, 그는 유독 ‘정직함’을 강조했다.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가 공공정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사방에서 떠드는 것과 무색하게,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에티오피아에서도 정경유착 문제가 심각하다. 게브르셀라시에는 재단을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 정관은 이미 작성된 상태다. 재단 설립 목적은 ‘에티오피아 아이들의 교육’이다. “저는 오래전부터 저의 주변, 가족, 고향에 제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것이 윤리적 당위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한 명의 백만장자를 키워내려면 도대체 몇 개의 도시와 마을이 필요한 것일까?
 
‘친절한 자본주의’가 아프리카의 길?

코트디부아르는 뉴월드웰스 보고서에 포함된 유일한 프랑스어권 국가이다. 2015년 코트디부아르 백만장자의 수는 2천 명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수치는 2024년까지 2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고원 아래, 에브리에 라군 가장자리에 위치한 비즈니스 구역은 아비장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오른편에는 공사 중인 골조가 서 있다. 바로 프로젝트 ‘Noon’의 공사 현장으로, 객실 257개에 건물 옥상 발코니에는 인피니티 풀이 들어설 최신식 초호화 호텔이 세워질 예정이다. 건물 전면에는 코트디부아르의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문구가 내걸려 있다. ‘아프리카의 최고급 현대식 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최고의 아프리카식 퓨전 식도락 경험을 제공합니다.’ 아프리카의 유명 셰프들이 제공하는, 정통 메뉴와 현지 맛의 조화로 탄생한 특별 요리를 의미한다.

라군 가장자리의 왼편에는 로더(loader)가 땅을 파고 있다. 여기에도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대형 게시판이 보인다. ‘2020 코코디 만(Cocody bay).’ 오‧폐수 정화, 신설 교량, 아름다운 해변, 요트와 범선이 있는 미래지향적인 마리나. 광고 문구는 다음과 같다. ‘성장을 향한 새로운 다리’. 총 공사비용은 1억 5천~3억 유로이다. ‘무지개’ 건물의 6층에서 만난 알랭 쿠아디오는 자국의 역동성을 이끈다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현재 50대로 코트디부아르 기업 총연맹의 회장직을 지낸 그는 가족 기업 Kaydan(전화, 부동산, 투자 기금)의 창업자이다. 직원 수는 350명이고 연 매출액은 4,500만 유로다. 캐나다에서 유학한 이 백만장자는 ‘아프리카 자본주의’가 영미권 국가들 때문에 생겨났다고 말했다. “영미권 사람들은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프리카의 행정시스템은 열악했고 정치도 불안정했습니다. 그래서 현지 기업들은 나름의 요령대로 거래와 무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투철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오늘날의 사업가들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쿠아디오가 설명했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식민지 시절에 프랑스인들이 상당히 견고한 행정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따라서 예전에는 공무원이나 정부 관료가 되기를 꿈꾸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저희 세대가 민간 기업과 개인적 이니셔티브를 중시하는 서구 기준에 따라 사고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인 199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박애주의에 관해 묻자 쿠아디오는 농담조로 말했다. “미국식 박애주의를 실천하는 프랑스 사업가들을 이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변화가 눈에 띄고 있지만요.” 

코트디부아르의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이자 방카슈랑스 부문 1위인 NSIA(Nouvelle Société interafricaine d'assurance)의 본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기업은 1995년 장 카쿠 디아구에 의해 설립됐다. 그는 2015년 <포브스>가 선정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의 25번째 부자이다. 현재는 44세인 그의 딸 자닌이 12개국에 2천 명의 직원들을 두고 있는 이 기업을 이끌고 있다. 다카르, 파리, 런던에서 공부한(금융 엔지니어링) 이 사업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프리카 대륙은 지난 몇 세기 동안 엉망진창이었고, 1960년대부터는 강대국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아프리카인들은 새로운 성장주기의 주체이자 수혜자가 됐습니다.”(6)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친절한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될까? “우리 순진한 척 하지 맙시다.” 디아구는 반박했다. “사업은 어디까지나 사업입니다. 성공을 위해 아프리카인들은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자본주의’는 독자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고만 해두지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장에 있어서는 지난 4세기 동안 해왔던 것보다는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아고는 넓은 사무실의 흰색 벽면에 걸려 있는 한 액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70세인 디아고의 아버지가 <포브스> 커버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온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겁니다. 현재 우리의 거래처들은 유럽이나 중국 업체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우리와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약간의 타협을 할 용의도 있지만, 저의 아들 세대로 내려가면 아프리카 업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통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은 디아고는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범 아프리카적 정체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2000년대부터 아프리카인들은 경제 성장이 우리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의식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나이지리아와 교류가 없었지만, 지금은 나이지리아에 자회사까지 두고 있습니다.” 

‘좋은 거버넌스’와 
부패척결은 동시에 가능할까

바마코에서는 세간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모리타니의 백만장자 모하메드 울드 부아마투가 ‘아프리카 자본주의’에 대한 야심을 피력했다. “거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던 전통입니다. 최근에는 전화, 금융, 인프라, 에너지와 같은 다른 분야들도 부상하고 있습니다.” 64세의 사업가가 설명한다. “역사적인 이유로, 아프리카의 투자자들은 매우 강력한 경제 애국주의를 보입니다. 이와 같은 감정은 개인적인 이익 추구 이상의 야심으로 이어집니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에는 방향을 틀어, 자국민 모두의 발전과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모르족 출신인 부아마투는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1970년대에는 교사로 일하다가 수입-수출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그는 수많은 부동산을 비롯해 모리타니의 주요 이동통신 업체인 마텔(Mattel), 자신이 설립한 은행인 Générale de Banque de Mauritanie(GBM), 자동차 수입업체 한 곳과 시멘트 제조업체 다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순백색 젤라바 차림의, 자신을 이슬람교도로 소개한 이 백만장자는 2015년 ‘Egalité des chances en Afrique(아프리카에서의 기회의 균등)’ 재단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교육, 보건, 인권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정관에 명시된 또 다른 미션은 바로 ‘법과 민주주의가 바로 선 국가의 확립’이다.

“오늘날 아프리카인들이 원하는 것은, 특정 정치체계에서 어떤 특권이나 부정부패 없이 모두가 똑같은 조건으로 사업하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의 산물인 특권은 독립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고,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강력하게 작용해왔습니다.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은 같은 아프리카인들에 의해 식민지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즉, 개인적 부 또는 씨족의 부를 얻기 위해 정치적 권력을 이용하는 이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국가 경제 전체를 손에 넣기 위해 정부를 이용하는 일부 아프리카 정치인들을 겨냥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맞지 않나? 민간분야와 공공분야 간의 구분이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명확했던가? ‘아프리카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은 민간분야야말로 정계의 ‘하마’와 대비되는 고귀한 메커니즘에 의해 돌아간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이 자산가들은 어떻게 단기간에 그런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까? 아프리카에서 고위관료들과의 연결고리 없이 통신사업권을 따내고, 은행을 설립하고, 광산업체와 탄화수소업체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좋은 거버넌스’와 부정부패 척결은 모 이브라힘이 주력하는 부분이다. 수단 출신의 이브라힘은 2006년 런던에서 재단을 설립했다. 71세의 그는 British Telecom에서 일하다가 Celtel을 만들었다. Celtel은 아프리카 14개국에 2,400만 가입자를 거느리고 있던 아프리카의 거대 이동통신업체로 2005년 인수됐다. 이브라힘의 이름을 딴 재단은 매년 아프리카의 훌륭한 리더십 상을 수여한다. 수상자에게 5백만 달러의 상금과 평생 매년 20만 달러를 지급하는 이 상은 “해당 국가의 보안, 보건, 교육, 경제 및 정치 발전에 기여”했다고 판단되는 아프리카 국가 수장에게 주어진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자본주의’ 당사자들은 정계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하지만(2016년 베냉 대통령으로 당선된 기업가인, 파트리스 탈롱은 예외), 이브라힘은 정면승부를 택했다. “부정부패가 존재하고 정치인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한, 민주주의와 부의 재분배는 실현될 수 없으며 국가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에서 자주 그리고 비중 있게 다루는 이 상의 수상자 선정 과정은 얼마나 공정할까? 분명한 사실 한 가지. 이 상이 설립된 지 10년이 지났으나, ‘훌륭한 리더십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된 이는 단 4명에 그쳤다. 


글·올리비에 피오 Olivier Piot
기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New World Wealth & AfrAsia Bank, <Les millionnaires africains 2006-2016(아프리카의 백만장자들 2006-2016)> 보고서, www.afrasiabank.com
(2) Capgemini, <World wealth report 2017>, www.worldwealthreport.com
(3) Olivier Piot 올리비에 피오, ‘Les entreprises françaises défiées dans leur pré carré, 프랑사프리크의 재구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4월호‧한국어판 2017년 5월호.
(4) Trickle-down economics: ‘적하(滴河)효과’라고도 함.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시는 것처럼 대기업이나 고소득층 등 선도부문의 경제적 성과가 늘어나면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 등 낙후부문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일컫는다.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인 부시가 재임 중이던 1989~1992년 채택한 경제정책으로, 정부가 투자증대로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결국은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끼쳐 전체적으로 경제수준이 향상된다는 주장이나, 클린턴 정부 등장 이후 폐기됐다.
(5) Cf. Nicolas Devoux, Les Oubliés du rêve américain. Philanthropie, Etat et pauvreté urbaine aux Etats-Unis(아메리칸 드림에서 소외된 사람들. 미국의 박애주의, 정부, 도시 빈민층),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2015
(6) Cf. Manière de voir, n.143, <Afrique. Enfer et eldorado(아프리카. 지옥과 낙원)>, 2015년 10~11월, http://boutique.monde-diplomatique.fr에서 조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