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데리다를 만나다

2017-12-29     알리오샤 왈드 라소브스키 | 작가

자본론의 저자에 심취한 저서 <마르크스의 유령들>(Galilée, 1993)을 시작으로 2004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자크 데리다는 정치 분야에 늘 관심을 기울였다. 민주주의, 민족국가의 주권, 형법 제도, 의무의 정의, 공포정치, 테러리즘, 기술과학, 세계화 등의 주제에 대한 고찰은 그의 마지막 저서 <깡패, 이성에 대한 두 개의 에세이(Voyous, 2 essais sur la raison)>(Galilée, 2003), 하버마스와의 뉴욕에서의 대담을 책으로 출간한 <9.11테러의 의미. 뉴욕 대담(Le ‘concept’ du 11 septembre. Dialogues à New York)>(Galilée, 2004) 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1975~1976년의 강의를 책으로 펴낸 <이론과 실천(Théorie et pratique)>(1)에서 데리다는 그의 저서 <마르크스의 유령들>보다 훨씬 이전부터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칼 마르크스 사상에서 영향 받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강의 전반에 걸친 정치와 역사에 대한 관심은 1845년 마르크스가 쓴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를 주제로 한 강의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11강에는 “철학자는 단지 세상을 다르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데리다는 철학자 포이어바흐가 던진 경구의 의미를 묻는다. 철학의 종말을 고하는 것인가? 혹은 실천적 학문의 시작을 의미하는가?

이 책에서는 이론과 실천 간의 대립 논리에 대해 그 용어 자체를 분석하면서 조금씩 해체한다. ‘이론’은 사고(思考)하는 것만을 뜻하고 ‘실천’이란 행동만을 지칭하는가? 이 물음에 “결코 간단하거나 명백하지 않다”고 답한다. 우선 ‘이론’이라는 단어는 의미론적으로 시선, 관조, 견해, 말, 의도 등을 아우른다. 두 번째 단어인 ‘실천’은 의미장(意味場)이 더 광범위해서 행동, 몸짓, 변형, 작동, 실행, 노동, 생산, 기술 등을 포함한다. 이 의미장으로부터 데리다는 의미의 조합을 제시하며 베네데토 크로체와 안토니오 그람시, 혹은 루이 알튀세 등을 사상과 프락시스(Praxis,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 행위의 총체)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그는 강의를 통해 좀 더 포괄적으로 철학적 테두리에 대한 그의 사상을 펼친다. 사고에서 행동으로 옮겨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장애물, 경계선, 한계 등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철학의 주변부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질문은 다른 형식을 빌려 그의 저서 <아마도 서약 위반(Le parjure peut-être)>에서 다시 등장한다.(2) 허구를 기술하는 것과 증언의 관계는 무엇인가? 진실과 사실, 진심과 거짓, 발명과 시뮬라크르에서 문자의 위상은 무엇인가? 데리다는 1964년 출간된 헨리 토마스의 소설 <서약 위반(Le parjure)>을 예로 든다. 이 소설은 헨리 토마스, 자크 데리다의 친구로 예일대학교에서 문학이론을 강의하던 벨기에 출신 폴 드 망교수에게 영감을 받은 듯한 소설로, 주인공이 중혼(重婚)과 서약 위반으로 고소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데리다는 소설을 읽으며 ‘통사론적 변화’를 등장인물의 갈등 구조에 연결한다. “명민한 독자라면 <서약 위반>은 허구이며, 소설가가 글을 쓰는 행위(즉 소설)는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또한 소설 속의 화자가 돼 공공연한 고백, 즉 서약 위반이라는 스토리를 드러냄으로써 비밀을 폭로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라고 데리다는 설명한다. 더 나아가 “문학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세 개의 유령”, 즉 ‘배신’, ‘진실’, ‘거짓말’에 대한 심도 있는 사유를 통해 이러한 분석을 발전시킨다. 


글·알리오샤 왈드 라소브스키 Aliocha Wald Lasowski
작가, 철학자. 릴 대학 교수 

번역·유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자크 데리다, <이론과 실천. 1975~1976 고등사범 학교 강의(Théorie et pratique. Cours de l'ENS-Ulm)>, Galilée, Paris, 2017
(2) 자크 데리다, <아마도 서약위반, ‘통사론적 급변’(Le parjure, peut-être, ‘Brusques sautes de syntaxe’)>, Galilée, Pari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