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 그 야성의 필력

2017-12-29     미셸 르 브리 | 작가

잭 런던(1876~1916)은 오랫동안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로 고통받았다. 그는 주체적인 삶을 산 작가였지만, <늑대개> 등 아동소설 작가로만 과소평가된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사회참여 작가의 표본으로 열렬히 칭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각종 모순으로 점철된 존재였다. 단순한 관념론자를 넘어, 그는 살아있는 자의 힘을 이야기하는 작품 집필에 고집스럽게 매진했다. 


“나는 무기력하게 잠든 행성이 되느니, 차라리 나를 구성하는 각각의 원자가 눈부신 빛을 발하는, 끝내주는 별똥별이 되고 싶다. 우리 인간의 임무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혈관에서 피가 들끓는 것을 느끼고, 폭풍우에 몸을 내맡기고, 말 40여 마리의 격한 발굽소리처럼 내달리듯 살고, 매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리라. 나는 하루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바둥거리며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시간을 불태우며 살겠다.” 

이렇게 세상에 대한 그의 불화(不和)는 시작됐다.
부랑배, 신문팔이, 청소부, 얼음배달원, 막 노동자, 굴 도둑, 경찰 끄나풀, 바다표범 사냥꾼, 대학생, 사회주의 활동가, 금채굴꾼, 작가, 목장일꾼, 종군 기자 등을 전전했던 잭 런던은 그의 말처럼 삶을 불태웠다. 명예와 돈을 열정적으로 추구했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던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전설이 됐고, 그로 인해 그의 작품이 묻힐 정도였다. 물론 그는 ‘인생보다 위대한’ 거인이자 사이클론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소용돌이이자 끝없이 팽창하는 은하계였다. 

추종자들도 감당하지 못한 자가당착 덩어리

그러나 그가 지독한 자가당착 덩어리였다는 점은 쉽사리 간과되곤 한다. 그의 열렬한 추종자들마저도, 자신들의 영웅을 무난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공산주의 운동가로 일했고, 사후 50년 후 일어날 1968년 5월 혁명을 예견했으며, 자연보호주의자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 글렌 엘런에 자리한 자신의 목장에서 자연보호를 실천했고, 철길 따라 떠도는 방랑자들의 시대에 비트족(1950년대 전후 미국의 풍요로운 물질 환경 속에서 보수화된 기성질서에 반발해 저항적인 문화와 기행을 추구했던 일단의 젊은 세대-역주)의 대부가 되다시피 했다. 우리는 헛되이 그런 그를 관습의 틀에 붙잡아 두려했다. 그는 자신에게 강요되는 모든 틀을 금세 뛰어넘었다. 공산주의자라고? 사회주의자라고? 아마 모두 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강한 육체와 약육강식의 논리’만을 유일한 종교로 숭배했다. 또한 신랄한 인종차별주의자로서 ‘앵글로 색슨계 순수 금발의 우월성을 예찬한 반면에, 흑인종, 황인종, 혼혈인, 그리고 판초 비야, 사파타 같은 영웅들을 기리는 멕시코인들을 비웃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멕시코인들은) 잡종처럼, 물고기도, 새도, 포유류도 아니고, 백인도, 인디언도 아니며 두 종의 미덕은 전혀 없고 단점만 물려받았다.” 심지어 <전대미문의 침략(The Unparalleled Invasion)>에서는 ‘황인종의 위협’을 종식시키는 수단으로 세균전을 강력하게 권하기도 했다. 제국주의자이자 남성우위론자였던 그는 사회주의 작품인 <슬롯의 남쪽(The South of Slot)>에서 서부 개척자들의 귀농과 그 신성한 가치를 찬양했다. 우리는 그의 여기저기를 다듬고, 그의 작품 이것저것을 감춰 그를 ‘교화된’ 틀 안으로 집어넣으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아마도 이제 사상과 도덕적 질서와 문학을 혼동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를 오로지 작가로서 바라봐야 할 때가 된 듯하다. 그것도 위대한 작가로서 말이다. 편견 없이 그의 작품을 읽어보자. 때마침 필립 야보르스키의 멋진 진두지휘로 <라 플레이아드> 총서에서 그의 작품 일부가 두 권으로 출간됐다.(1) 그의 일탈, 수치스러운 주장, 급변하는 태도, 이중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하는 것은 그 내용이 위대하고 풍성하며 때론 상호 모순되는 사상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즉,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길을 터주는 ‘다른 무언가’의 힘이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그 힘을 불러냈다. 그러나 그 힘은 그가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조차 재빨리 그를 잠식하고 자극하고 관통하는, 걱정스럽고 혼란스럽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아마도 세상의 중심에서 왔으리라 짐작되는 것이었다. 그는 그 힘이 자신의 것인지 의심했지만 글을 쓰면서 이야기의 형태로 그것을 드러내려 했고,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려 했다. 물론, 우리가 그에게 친밀감과 감동을 느끼는 것은 ‘다른 무언가’의 힘 때문이다. 그렇다, 잭 런던을 가뒀던 창살과도 같은 해석의 틀을 내려놓고, 그의 내면에서 작품이 되기 위해 빠져나온 것을 다시 취해야 한다. 

게토에서 들 고양이처럼 자란 유아기

그는 참으로 멀리서 왔다. 187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오클랜드의 게토에서 들 고양이처럼 자랐다. 박탈당한 유년기,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죽어야 한다면 내 숨이 다할 때까지 치열하게 싸우다가 죽을 것이고, 지옥은 그런 죽음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내가 여자였다면 성공하기 위해 모든 남자들에게 몸을 팔았을 것이다. 어렵지 않게 나는 성공했을 것이다.” 

육체노동을 시작해 날품 풀이와 선원생활을 전전했으나, 그의 인생은 더 최악의 상황까지 이어진다. 15세에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18세에 수감됐다.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미 서부극에서나 나올법한 ‘프리스코 키드’가 되어 폭력배의 일원으로 이 기차 저 기차에 무단 승차하며 방랑하고, 부랑자를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필요하다면 그들을 약탈하는 일도 서슴지 않던 그는 결국 이 길에는 출구가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독서에 이어 학업에 몰두한다. “나는 사회의 지하실에 살고 있었지만,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수구와 배수구가 뒤얽힌 그곳은 불결했고 숨쉬기 어려운 공기가 가득했다. 지상층이 안 된다면 다락방이라도 꿈꿔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더 이상 근육이 아니라 뇌를 써서 먹고 살기로 했다. 지식에 대한 미친 질주가 그렇게 시작됐다.”

지식의 허기를 게걸스럽게 채우며 오클랜드 고등학교에 이어 앨러미다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저녁에는 먹고 살기 위해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공부한 그는 통상 2년의 준비 기간이 걸린다는 버클리대학 입학시험을 4개월 만에 통과했다. 하지만, 그는 밀폐된 이곳 사회의 규범에 자신이 절대 동화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다시 덫에 걸린 것일까? 에릭 마일스 윌리엄슨은 자신도 역시 오클랜드 최하층 출신이었지만 그곳에서 벗어난 뒤에 쓴 그의 아름다운 에세이(2)에서 “잭 런던은 게토에 사로잡혔지만, 아마도 그것이 그의 작품의 비결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게토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게토의 공포와 증오와 폭력성이 그곳 출신들에겐 평생 배어있는 법이다.

잭 런던은 찰스 다윈, 애덤 스미스, 허버트 스펜서, 칼 마르크스를 탐독했고,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껏 자신이 겪은 일에서 의미를 찾은 듯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보다 사고의 지평이 넓은 이들이 모든 내 사상과 다른 많은 것들을 구상해뒀다. 그들 덕분에 내가 사회주의자였음을 깨달았다.”
 
이로써 그는 모든 것이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고, 무한한 우주 저 멀리 있는 별부터 해변의 모래알 하나를 구성하는 무수한 원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깨달았다. 최고의 기쁨은 세상에서 작용하는 힘과 관련을 맺는 것이었다. 폭풍우가 치는 날 소피아 서덜랜드 범선을 조종하던 바다표범잡이 선원 시절의 경험을 묘사한 그의 글을 보면 더 확실하다. “나는 키를 잡고 내 손으로 수백 톤의 나무와 철을 이끌고 수천 톤의 파도와 바람에 맞섰다. 내 모든 근육이 기쁨으로 전율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가장 순수한 마르크스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는지…. 그는 한동안 사회노동당에서 활동하며 각종 정치 모임을 열었고, <오클랜드 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했지만 금세 질려버렸다.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비참한 처지에 있던 이들에 대해 대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는 그들을 잘 알았다. 그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출판사 편집자에게 런던 최하층민에 관한 책에 관한 아이디어를 전하면서 (자신의 동료였던)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동물들! 그들은 모두 동물들이다. 그게 전부다. (…) 물론, 이따금 초월적인 섬광이 비치는 멍청이들이지만….”

그렇지만 그는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는 시, 철학에세이, 단편소설 등 닥치는 대로 써서 먹고 살아보려고 했으나 처절한 실패로 이어졌다. 가슴속에는 가늠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다시 노동자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금, 금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897년 7월 14일, 샌프란스코항에 엑셀시오르 호가 누더기를 걸친 인부 15명과 클론다이크에서 발견한 금 1톤을 싣고 도착했다! 그 소식은 몇 시간 만에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방랑자, 실업자, 가난한 자, 모험가, 몽상가 수천 명이 항구로 몰려들었고 그 수는 계속 늘었다. 벼랑에 몰린 사람들은 기적을 기다렸고, ‘클론다이크’라는 이름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7월 25일 출발한 첫 번째 무리에 잭 런던도 있었다.

270번 퇴짜 끝에 ‘북부의 키플링’으로

화이트 패스와 함께 유콘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경로인 칠쿠트 패스는 처음부터 전설적인 산길이었다. 한겨울 깎아 지르는 빙산의 가파른 계단 1,500개를 지나는 칠쿠트 패스는 장비를 갖추고 정상에 오르는 데 석 달이 걸렸다. 공포의 극한을 경험하는 고통의 서사시와 다름없었다. 엑셀시오르 호가 도착하고 열흘 뒤에 길을 나선 잭 런던은 이 산길을 거침없이 통과했지만 괴혈병에 걸려 탐사를 거의 하지 못하고 도슨 시티에 머물렀다가 얼음이 녹기 시작하자 발걸음을 돌려 7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당시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4달러 50센트 상당의 금가루가 전부였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귀한 보물이 담겨 있었으니, 바로 도슨 시티의 술집에서 얻어들은 수천 가지 이야기였다.

그는 여러 출판사에 수많은 단편소설을 보냈지만 편집자들은 클론다이크를 한물간 이야기로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배고픔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1년 동안 74개 잡지사와 21개 신문사에 274번이나 글을 보냈고 270번 퇴짜를 맞았다! 1899년 10월 30일에서야 잡지 <애틀랜틱 먼슬리>에서 단돈 120달러에 ‘클론다이크강’을 게재하기로 했다. 이 모험담은 당시 다소 폐쇄적이었던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이자 하나의 사건이 됐다. 그 후로 모든 게 급속도로 진행됐고 그는 ‘북부의 키플링’으로 떠받들어졌다. 

잭 런던은 아직 알지 못했다. 시대가 기다리는 인물이 바로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잭 런던은 그의 내면에서 위기 속의 미국인, 게토, 자신들이 일구던 땅에서 내쫓긴 농부들, 파산한 은행들, 불법거주자, 거대 트러스트, 상선의 선장, 그리고 산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욕망의 열차를 들춰냈다. 또한 밴더빌트, 록펠러, 버펄로 빌, 바넘 같은 초창기 미국의 거인들을 묘사했다. 새로 태어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혼돈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연달아 3편의 소설과 여러 단편소설, 런던 최하층민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한 르포르타주 <밑바닥 사람들>을 펴낸 후 자신도 놀랐던 자신과의 만남인 <야성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을 썼다. 

처음에 이 글은 그저 북극에 사는 동물 이야기를 그린 단순한 단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곧 이 이야기에 사로잡혔다. <야성의 부름>은 마치 그에게 자신 스스로의 논리를 강요하고, 그의 상상을 넘어서는 곳으로 그를 이끌 듯이, 문자 그대로 그를 관통해서, 그를 통해 말하고, 그를 당황하게 하는 강렬함으로 그의 이야기가 됐다. 그는 자신을 휩쓸어가는 파도에 저항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를 덮치는 파도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잠을 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밤이면 엄청난 공포가 밀려와, 엄청나다고!” 그를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그는 이렇게 불평했다. 그의 손을 통해 태어나는 것들이 여전히 그일까, 아니면 태초 인류가 생긴 이래로 묻혀 있던 심연에서 온 그 무엇일까? 썰매견 벅의 내면에서 눈을 뜬 늑대는 생고기와 뜨거운 피에 대한 욕망을 부르짖는다. 그렇지만 늑대 무리 선두에서 창백한 달빛을 받으며 뛰는 거대한 이 늑대는 바로 그 자신이고, 그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기나긴 겨울밤에 늑대가 사냥감을 찾아 숲을 나서 얕은 계곡까지 내려왔을 때 우리는 무리의 선두에서 창백하게 밝은 달빛 또는 북극광의 반짝이는 빛을 받은 그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덩치가 거대한 그는 동료들을 압도했고, 그의 울부짖음은 무리의 노래, 태초에서 온 노랫소리를 이끌었다.”

그 자신이 늑대가 된 야성의 작가

이 책을 마쳤을 때, 그는 부서지고 지칠 대로 지쳤지만 다시 태어났다. 스스로 늑대가 돼 편지에 ‘Wolf’라고 서명하고, 늑대 형상의 장서표를 그리고, ‘달의 계곡’(캘리포니아)에 천연 화강석과 세쿼이아 줄기로 건축한 거대한 집을 ‘울프하우스(늑대의 집)’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에겐 창조의 원천이었지만 로마인들에겐 파멸의 원천이었던 수수께끼 같은 존재인 늑대는 이제 그에게 개인적인 신화가 됐으며, <야성의 부름>은 그의 대표작이 됐다. 

이는 1906년 갈라르 백작 부인이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여전히 여러 출판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안타까운 제목인 ‘숲의 부름’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다.) 늑대 벅의 날카로운 이빨에 겁에 질린 갈라르 백작 부인은 맹수인 늑대를 ‘반려견’으로 둔갑시켰다. 이는 작품을 얼마간 훼손한 행위였다. 이 작품은 ‘자유를 향한 찬가’와는 거리가 멀며, 창조적이면서도 파괴적이고, 무심하고 무시무시하면서도 찬란한, 모두의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자신의 내면에서 구해야 하는 야성적인 힘의 부름에 관한 이야기다. 벅이 처음 경험한 것은 ‘몽둥이와 쇠스랑’의 법칙이었다.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먹거나 먹히거나, 그것이 법칙이다. 그리고 그는 시간의 심연에서 비롯된 이 계율에 복종했다.” 

마침내 갈라르 백작부인은 프랑스어 완역본을 포이보스 출판사에 제안하면서 제목을 <정기(精氣)의 부름(L'Appel de la force)>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나 마치 런던이 저승에서 훼방을 놓기나 한 것처럼, 당시 편집자는 <야성적 부름>을 선호했다. 그렇지만 책에서 다루는 것은 분명 정기이기도 했다. 부서지고, 심하게 두들겨 맞고, 오래전 그를 길들였던 도덕, 사랑, 연민 등 모든 것을 박탈당한 벅이 중얼거리며 귀를 기울였던 것은 바로 정기의 부름이었다. 밤에 울려 퍼지는 신비롭고도 음산한, 그를 전율하게 한 늑대 친구들의 울음소리이자 “피에 대한 욕망, (…) 뜨거운 피로 입을 적시는 기쁨이자 육신을 벗어나 열정의 장막 속으로 날아간 예술가를 사로잡고, 황폐한 전장에서 모든 생명을 앗아가려는 전사이자 전쟁광을 사로잡고, 무리를 이끌며 늑대의 오래된 울음소리를 내는 벅을 사로잡은” 황홀경이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의 마르크스도 없고, 책에서 배운 지식도 없으며, 그저 암흑 속으로의 침잠뿐이었다. 반박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최초의 경험이자 이 책 저 책을 읽을수록 깊어지는 미스터리의 불안한 표현이었으며, 이론(理論)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영역이었다. 조지프 콘래드,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 허먼 멜빌이 다른 언어로써 탐구하게 될 창조의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그의 사회주의자 친구들은 ‘새로운 잭 런던’을 걱정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다음 작품인 <바다의 늑대(The Sea Wolf)>가 출간되자 한층 심해졌다. 이 소설에는 정기만을 믿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출신의 난폭한 금발의 선장 울프 라슨, 그리고 그가 조난에서 구해줬으나 연대적 가치를 내세우며 그에게 대항하는 반 베이던이 등장한다. 런던은 이 소설이 희망적인 내용이고 반 베이던이 주인공이며 라슨은 들러리격 조연에 불과하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그 누구의 눈도 가리지 못했다. 아니, 아마도 자기 자신의 눈만 살짝 가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독서를 통해 자신이 만들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무너뜨리고 분해하고 잠식하는 힘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답과 이론,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호막을 끊임없이 갈구했다. 모순덩어리라고? 그보다는 자신을 자유롭게 할 대답에 대한 필사적인 탐구다. 모든 시대적 사상과 충동과 조바심이 그의 내면에서 뒤얽힌 듯, 거듭 실망하면서도 이 답에서 저 답으로 헤맨 그는 관념론자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스펀지에 가깝다. 그의 운명은 이 모든 것을 구현하는 것이었고, 그의 천재성은 다른 이들이 길을 잃고 헤맸을 이 들끓는 마그마에서 형태나 얼굴과 같은 무엇, 그러니까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잭 런던은 천생 작가인 것이다.  


글·미셸 르 브리 Michel Le Bris
작가 겸 에세이스트, 프랑스 생말로에서 매년 열리는 ‘놀라운 여행자들’이라는 도서영화축제의 최초 기획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Jack London, <Romans, récits et nouvelles>, Gallimard, ‘La Pléiade’ 총서, Paris, 2016. 필립 야보르스키 주관 편집, 두 권으로 구성, 각 권당 1476쪽.
(2) Eric Miles Williamson, <Oakland, Jack London and Me>, Texas Review Press, Huntsvill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