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인간에게 속삭이는 것

2018-01-31     라울 기옌 | 언론인 겸 양봉업자

“꿀벌은 멸종과 거리가 멀며, 설혹 멸종한다 하더라도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 전체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믿음을 일소하려면, 몇몇 국가의 양봉업자들이 겪은 전례 없는 손실과, 농업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로 생긴 중대한 위험에 대해 알아야 한다. 

 
봄이 오기도 전에, 햇볕이 조금만 비치면 양봉꿀벌들은 외출에 나선다. 무리를 이루거나 홀로 지내는 여타 벌과 생물들과는 달리 유럽과 근동, 아프리카를 비롯한 드넓은 지역에서 유래한 이 양봉꿀벌은 지역마다 다양한 변종을 이루며 전 세계에서 양식됐다. 벌집에 주렁주렁 매달린 일벌들은 오로지 그들이 비축해놓은 꿀에 의지하며 연중 제일 추운 시기를 벌집 안에서 보낸다. 이때는 양봉업자가 벌집을 처음 방문해 떼거리로 죽은 일벌들을 발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트알프 지역의 발고드마르에서 35년 간 양봉업을 해온 베르나르 티롱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동절기의 꿀벌 사망률은 5%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에는 30%에 이른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 꿀벌의 사망률은 유럽과 일본,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등 전 세계 대부분의 온대지역에서 급증했다. 어느 캐나다의 한 저자는 “25%라는 현 사망률은 이례적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경제적 측면에서도 끔찍한 재앙이 될 것이다”(1)라고 자국의 양봉업 전망을 우려했다. 티롱은 “만약 현 상황에서 양봉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면, 나는 이 일을 할 생각이 없다”며 현시점에서 드러난 난제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일단 초원에 더 이상 꽃이 없다. 젖소에게 풀을 먹여 최대한의 젖을 얻어내기 위해, 건초를 두 번 베며 꽃이 피기도 전에 풀을 베어내는 탓이다. 산울타리도 사라지는 추세다.” 벌들이 꿀을 모으는 밭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오늘날 재배되는 유채나 해바라기 품종의 화밀 양이 예전보다 줄었다. 라벤더의 개화 기간은 3주에서 1개월 사이였는데, 오늘날에는 8일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꽃을 일찍부터 수확했으며, 수확도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낫을 가지고 손으로 직접 베어냈기 때문에, 꿀벌들이 꿀을 모으고 농부들로부터 도망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계로 꽃과 함께 꿀벌까지 죽여 버리고 있다.”
 
티롱은 꿀벌들 자체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꿀벌군집에 속한 개체 수와 여왕벌의 수명이 전보다 줄었다. 예전에 내가 양식하던 벌집의 여왕벌은 3~4년을 살았는데, 이제 여왕벌의 수명은 2년이 고작이다.”
 
사회적 동물의 쇠락
 
이런 악화의 원인은 다양한데, 전반적으로 이윤을 얻기 위해 생태계에 가하는 압력이 커지는 것과 관련이 깊다. 첫째로는 대부분의 꿀벌군집을 황폐화하는 꿀벌응애의 침입을 들 수 있다. 꿀벌응애는 꿀벌의 알 뭉치 안에서 번식해 꿀벌성체의 액체에서 영향을 취한다. 아시아에서 유래된 이 체외 기생충은 1950년대 유럽의 꿀벌 종이 동아시아에 도입되면서부터 유럽 꿀벌 종에게도 전염됐으며, 전 세계 상품 교역망을 통해 빠르게 번져나갔다. 최근 몇 년간 아시아 무늬말벌이라는 포식성 곤충이 비슷한 경로를 통해 번져나갔고, 이는 양봉업자들에게 큰 골칫거리가 됐다.
 
여기에 살충제의 영향까지 더해졌다. 담배의 발암 위험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거대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투쟁했듯, 다국적 기업들이 대규모로 유통한 상품들은 과학자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끼친다. 게다가 농약 성분 중 하나인 네오니코티노이드의 사용이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 연구도 여럿 존재한다. 최근의 한 연구는 이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야생벌의 사망률을 3배로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증명했다.(2) 또 다른 연구에서는 양봉꿀벌군집의 쇠락과 꿀벌 수컷의 정자 생존력 감소 간의 연관성(3)이 밝혀졌다.
 
1960년대 이후 벌집의 수는 미국에서 절반으로, 유럽에서 1/3로 줄어들었다. 최근 10년간 벌집 수가 유럽에서 약 160만 개, 미국에서 약 250만 개로 안정되는 추세지만, 양봉업자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4) 따라서 남은 양봉업자들은 벌집을 더 많이 양식하고, 더 많은 지출을 하며 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하는 셈이다. 오늘날 꿀벌의 재생산 문제는 꿀 생산 문제보다 더욱 심각하며, 꿀벌양식에 특화된 일부 양봉업자들에게서 꿀벌 떼를 사야 하는 상황이다. 이탈리아는 유럽 최대의 꿀벌 공급국이 됐고, 뉴질랜드는 캐나다에 꿀벌을 항공편으로 수출한다(2015년 당시 약 35톤).(5) 양봉업자들은 역동성이 떨어지는 벌집의 여왕벌을 교체하거나 분봉(分蜂)을 촉진하려면 새로운 여왕벌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왕벌을 키우지 못하면 여왕벌 전문 양식업자들에게서 구입해야 한다.
 
극소수의 저개발 지역을 제외하면, 더 이상 양봉은 채집경제에 속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양봉은 자연을 개발하고 변형시키는 과정에 들어갔다. 일례로 설탕을 꿀벌의 사료로 사용하면서 많은 이득을 얻었지만, 그만큼 벌꿀자원의 손실을 맛봐야만 했다. 꿀벌의 언어를 해독할 줄 알았던 카를 폰 프리쉬는 1963년에 이렇게 설명했다. 
 
“꿀벌군집에서 꿀을 채취할 때, 양봉업자들은 곤충들이 겨울철을 날만큼 충분한 양의 꿀을 남겨놓지 않는다. 그 대신 가을에 각 군집에 액체형태로 된 설탕 2~5kg을 놓아둔다. 이 설탕물은 꿀벌의 취향에 꼭 들어맞는 사료인 데다, 꿀은 설탕보다 훨씬 값어치가 높으니 양봉업자에게도 이득이다.”(6) 
 
폰 프리쉬가 권장했던 설탕 사료의 장점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일각에서는 설탕의 양을 줄이려 했으나, 대부분의 양봉업자는 가장 저렴하거나 가장 질 좋은 시럽을 찾는 데 혈안이 됐다. 또한 꿀벌응애의 방제를 위해 아미트라즈 같은 합성 진드기 박멸제나 수산, 의산, 정유 따위를 연중 한두 차례 접종해야 했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양봉은 경제적 의존도가 점차 커지며 부업보다는 전업의 형태로 점점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지역의 양봉업자들은 여타 농업생산자들이 겪는 것과 동일한 생산요소, 시설비, 방역처리, 생산방식, 수익 등에서 선택문제에 직면했다. 물론 일부 농업생산자들이 실질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받는 것을 고려하면, 양봉업자들의 상황은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제약은 비슷하며, 상품 유통망이 세계화됐다는 점도 같다. 예컨대 양봉용 자재공급업체에서는 식품용 플라스틱이 수입 목재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설탕은 대부분 브라질 수입산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벌의 이름으로’ 금지하길 요구했던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이미다클로프리드를 만든 중국의 화학 공장에서 생산한 아미트라즈로 꿀벌응애를 박멸하고 있다.
 
세계 온대지역의 양봉업자 대부분은 미국이나 유럽의 양봉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대부분 겪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세계 도처의 문제는 아니며, 특히 유럽의 양봉꿀벌 종을 도입한 호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동식물을 대상으로 하는 세관의 엄격한 검역정책 덕분에 꿀벌응애는 호주의 꿀벌군집에 침입하지 못했다. 게다가 호주의 꿀벌들은 대규모의 자연공간을 보장받는다. 결과적으로 호주의 양봉업자들은 큰 손실을 경험하지 않았으며, 꿀벌 떼가 야생의 상태로 되돌아와 일부 지역을 점령한 나머지 일각에서는 꿀벌이 침입종으로 여겨질 정도다. 일부 자연보호공원에서는 꿀벌이 벌집을 지어 토종곤충에 가하는 경쟁위협에 맞서기 위해 꿀벌박멸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도 한다.
 
그 밖에, 전 세계 나머지 지역에서 벌집의 수는 지난 50년간 급증해, 전 세계적으로 1961년에는 약 4,900만 개였던 벌집이 오늘날에는 약 8,300만 개에 달한다.(7) 야생 자연공간이 파괴되는 속도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자연 서식처에 해를 미치는 집약적 공장식 농업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열대 아메리카에서는 아직 온대지역에서만큼 대규모로 퍼지지 않은 덕분이다. 더욱이 열대 아프리카의 꿀벌 종들은 꿀벌응애에 더 잘 견디며, 주변 환경이 열악해질 경우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일례로, 열대 아프리카 꿀벌들 중 아프리카 꿀벌(Apis mellifera scutellata)은 현재 열대 아메리카에 우연히 도입됐는데, 원래 살던 지역에서보다 훨씬 세를 확장해 유럽의 꿀벌 종을 대체했다.
 
이들 지역에는 야생의 꿀벌군집 또한 풍부하다. 예컨대 남아프리카의 경우, 유럽의 숲에 비해 양봉꿀벌에 덜 호의적인 지역이자 양봉 활동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서 1㎢당 12.4~17.6개의 꿀벌군집이 발견됐다. 양봉이 널리 퍼진 독일의 꿀벌군집 밀도를 측정한 결과, 1㎢당 2.4~3.2개에 불과했으며 이는 양봉업자들이 보유한 꿀벌군집이다.(8) 유럽의 평균 밀도 수준(9)이다. 반면, 미국의 일부지역 특히 캘리포니아에서는 야생 꿀벌 종 군집이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상황이다.(10) 여기서 살아남은 유일한 꿀벌들은 사육과정을 마쳤으며, 인간의 손에 완전히 의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온대지역 대부분에서 야생 꿀벌 종이 멸종하고, 인간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사육종으로 변화한 것은 집약적 농업의 발전 및 산업화가 생태계에 어떤 손실을 가져왔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자연환경의 파괴가 전례 없는 속도로 일어나고 있는 열대지역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또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라울 기옌 Raúl Guillén
저널리스트, 양봉업자.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과 및 국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저서로 <세금혁명> 등이 있다.
 
(1) Jean-Pierre Rogel, <La Crise des abeilles. Une agriculture sous influence(벌의 위기: 영향을 받는 농업)>, Multimondes, Montréal, 2017.
(2) Ben A. Woodcock et al., <Impact of neonicotinoid use on long-term population change in wild bees in England>, Nature Communications, 2016년 8월 16일, www.nature.com
(3) Jeffery S. Pettis et al., <Colony failure linked to low sperm viability in honey bee (Apis mellifera) queens and an exploration of potential causative factors>, Plos One, 2016년 2월 10일, http://journals.plos.org
(4) Dennis van Engelsdorp et al., <A survey of honey colony losses in the United States fall 2008 to spring 2009>, Journal of Apicultural Research, vol. 49, n° 1, 2010.
(5) 뉴질랜드 정부, <Ministry for primary industries 2015 apiculture monitoring programme>, 2016년 1월.
(6) Karl von Frish, <Vie et mœurs des abeilles(벌의 생활과 풍습)>, Albin Michel, Paris, 1969.
(7) Simon G. Potts et al., <Declines of manage honey bees and beekeepers in Europe>, Journal of Apicultural Research, vol. 49, n° 1, 2010.
(8) Robin F. A. Moritz et al., <The size of wild honeybee populations(Apis mellifera)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conservation of honey bees>, Journal of Insect Conservation, vol. 11, n° 4, 2007년 12월.
(9) Rodolfo Jaffé et al., <Estimating the density of honey bee colonies across their natural range to fill the gap in pollinator decline censuses>, Conservation Biology, vol. 24, n° 2, 2010년 4월.
(10) Bernhard Kraus et Robert E. Page Jr, <Effects of Varroa jacobsoni on feral Apis mellifera in California>, Environmental Entomology, vol. 24, n° 6, 1995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