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등반왕’ 에르조그의 불편한 진실

2018-01-31     필립 데스캉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한 남자의 절단된 손가락과 발가락 조각이 네팔의 마하라자,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을 감동시키며 세계를 순회한 후 드골 정권의 장관회의 테이블에 놓였다. 1950년 6월 3일 안나푸르나(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정한 해발 8,000m급 고봉) 정상에 올라 프랑스 국기를 꽂다가 손발 모두에 심한 동상이 걸린 모리스 에르조그는 고난을 승리로 바꾸고 상처를 성공의 전리품으로 미화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천만 부 이상 팔린 그의 등정일기는 머나먼 원정을 이상화하면서 모든 대륙에서 고산정복의 사명을 불러일으켰다.(1) 


그러나 1990년대에 발굴된 자료들에 의해 에르조그가 들려준 놀라운 동화는 수상쩍은 우화로 탈바꿈했다. 우상파괴자들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2) 원정등반대 대장에서 청소년스포츠부 장관으로 변신한 에르조그는 그를 ‘성폭력자’라고 밝힌 친딸(3)로부터 죄의 대가를 받고, 산악정신을 훼손한 그의 행위를 용서하지 않는 산악인들의 무관심 속에 2012년 12월 사망했다. 에르조그는 원정계약 조항에 따라 5년간 그의 위험한 행동을 증언할 수 없었던 리오넬 테레, 가스통 레뷔파 등 그보다 훨씬 단련된 동료들을 무시하며 홀로 등반역사를 쓰고 영광을 독점했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영웅’은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발을 희생한 자일 파트너(줄을 함께 묶고 등반하는 등반 동료-역주), 루이 라슈날의 역할을 깎아내렸다는 점이다. 에르조그는 1955년 젊은 나이에 사망한 라슈날의 죽음에 편승해 라슈날이 집필하던 등반기 내용 중 가장 ‘비판적인’ 부분들을 삭제했다.(4)

‘헛된’ 정복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1786년 몽블랑 등정에 성공한 자크 발마와 미셸 파카르부터 1953년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까지 거의 모든 고봉(高峯)의 첫 등정은 자일 파트너와 함께 이뤄낸 업적이다. 이 ‘헛된’ 정복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수많은 산악소설들을 토대로 우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슈퍼 리치들에 대한 부유세 인하를 정당화하기 위해 쓴 ‘선발 등반자(premiers de cordée)’라는 은유적 표현을 해체해보려 한다.  

로제 프리종-로슈의 소설 <수직의 도전자(Premier de cordée)>(Arthaud, 1942)는 등반 가이드의 아들이 살아가는 여정을 통해 선발 등반자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피에르 세르베타즈는 산악인에게 허용된 가장 완벽한 만족감을 바로 지금 맛보았다. 이는 바로 선두로 오르기. 그는 아주 평온하고 안전한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따라 오르는 것을 그만뒀다. 그는 등반대장이 됐다. 명령을 내리고, 싸우고, 책임을 맡고, 행동하고, 다른 이들의 목숨을 책임진 역할을 말이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구절은 역사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 역사의 결말은 베르트(Verte) 첨봉을 오르기 위해 조르주와 자일 파트너가 된 피에르가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면서 드러난다. “지금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 강인하다고 느꼈다. 어제의 걱정은 악몽처럼 사라졌다. 지금으로서는 동료의 등반안전만 생각한다. 그들의 목숨은 같은 위험에 맞서 둘을 견고하게 묶어주는 자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피에르와 조르주는 많은 산악인들이 그러하듯 ‘자리를 바꿔가며’ 위로 올라간다. 자신이 편하게 느끼는 코스에서는 그 사람이 선두에 서고, 신뢰를 얻기 위해 번갈아 가며 동료에게 의지한다. 조르주는 이렇게 함으로써 발가락을 절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고, 피에르는 고소공포와 현기증을 이길 수 있었다. 강인한 가이드이자 탐험가인 프리종-로슈는 어떤 위험을 만나도 서로 도우면서 생기는 이런 힘을 칭송했다. 특히 프랑스 사부아 지방의 무장 항독지하단체가 나치군대와 맞닥뜨리는 <밤의 산골마을 사람들(Les Montagnards de la nuit)>(Arthaud,1968)에서 더더욱 그렇다. 현대등산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등산화를 발명한 피에르 알랭은 “실리와 거리를 두고 본다면, 산악인은 무의식적으로 인류의 대의를 위해 헌신한다”고 말했다.(5) 등산이 떠올리는 보편적 가치들은 일상에서의 탈출과 무관하다. 

알피니스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명성에의 집착

그 반대로, 알피니즘의 역사는 협력과 경쟁, 이타주의와 상업주의라는, 현대사회의 긴장과 매우 밀접하다. 알랭은 이미 1948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심판이나 경기장 없이 대자연에서 이루어지는 등산에도 경쟁이 존재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알피니즘에서의 경쟁은, 날씨가 좋지 않거나 발이 미끄러진 상황에서 등반대의 전진과 구조 활동에 필요한 등반대 간의 협력과 양립해왔다. 1957년 뱅상동과 앙리라는 두 젊은이가 조난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산악구조는 도움을 주고받는,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이었다. 동굴탐사분야는 여전히 그렇다. 샤모니의 전문 가이드들이 구조대를 조직하지 못해 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서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육상구조대나 해상구조대 같은 전문적인 산악구조대(무상구조 활동)를 만들게 됐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지만, 레이건-대처 시대에 새로운 등산 방식이 유행하게 됐는데,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숭배를 수직적으로 투영하는 단독 등반이다. 이에 따라 많은 산악인들이 개인적 인정을 받기 위해 대기록을 세우려고 안달하며 단독등반이라는 지옥의 고리에 들어섰다. 개인적으로 인정받으면 후원자들의 지원이 쏟아지면서 혼자서 또 다른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단독등정 성공이라는 쾌거뿐 아니라, 비극적인 사건에도 열을 올리는 언론이 부추긴 것이다. 이 시기의 등반사고 사상자 수를 집계하기란 매우 ‘쉽다’. 크리스토프 프로피를 제외하고, 이 세대의 프랑스 ‘영웅들’은 모두 사망했다(현재 살아있다면 50~70세).

명성에 대한 집착은 알피니스트들에게 더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2006년 마칼루(8,463m)에서 TF1과 France2 채널 라이브방송 직후 실종된 장 크리스토프 라파이유처럼 통찰력 있는 등반가조차 잃게 만드는 덫이다. 라파이유는 실종 2년 전 ‘8,000m 완주경쟁’을 비난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4월 히말라야 눕체에서 우엘리 스텍이 추락사했는데, 그가 시샤팡마(8,013m)와 안나푸르나 남벽을 ‘단독’ 등정했다는 주장에 대한 진위여부 조사 결과(6)가 나온 직후였다. 스텍의 등정사실 날조는 그가 대부분의 동료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다. 

스키 알피니즘의 발전이 보여주는 등산의 산업화

등산 관련 시장은 어떨까? 등산을 사랑하는 한 경제학자는 “알피니즘의 상업화는 그 시작부터 존재해왔으며,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여가활동이 최초로 ‘산업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7) 등산기술을 고안하며 즐기기 위해 영국의 그랑 부르주아들(Grand-bourgeois: 대자본가-역주)은 현지 ‘가이드’를 고용했는데, 그 후 이런 뜻밖의 행운은 빠른 속도로 규범이 따르는 등반가이드라는 직업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가이드의 계약상 의무사항 및 제약으로 대담한 시도가 제한되면서 지난 세기의 주목할 만한 등정은 거의 모두 ‘가이드 없이’ 이뤄졌거나, 가이드들이 고객의 안내자가 아니라 아마추어 등반가로서 활동한 결과였다.

에베레스트(8,850m) 같은 맹목적으로 숭배받는 몇몇 고봉들은 1인당 7만 유로를 내고 셰르파와 산소기구(8,000m를 6,000m 정도로 느끼게 함)의 도움을 받아 모험을 즐기고자 하는 부유층들의 관심을 끈다. 서약위반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이런 상업적인 원정들은 등반 내내 산에 로프를 고정하면서, 인간이 자연에 적응한다는 알피니즘의 본질을 짓밟는다. 이렇게 해서 ‘모험가들’이 ‘선발 등반자’ 없이 줄지어 단독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8)

물론 자일을 이용한 (알피니즘) 구현방식이 산악정신에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스키 알피니즘(산악스키-역주)의 비약적 발전이 이를 입증한다. 스키 알피니즘은 미끄러운 스키장 같은 곳에서 뒤로 미끄러지는 현상을 방지하는 플러시 천을 이용해 경사면을 오르는 것이다. 등반 파트너는 자일의 끝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파트너의 존재는 등반을 포기할 때, 나침반을 이용해 움직일 때, 눈사태가 나서 조사할 때, 구조대에 알릴 때, 그리고 더 많은 경우에 꼭 필요하다. 몇 시간의 고생 끝에 정상에 도착해 은혜로운 순간을 함께 하고 눈가루 속에 미끄러지는 것도 파트너와 함께 하는 일이다.

브리앙송(프랑스의 남부 알프스 도시-역주) 근처에서는 산을 타는 사람들의 동사(凍死)를 방지하기 위해 12월 중순 수백 명의 산골주민들이 산악인들과 자일로 서로 몸을 묶음으로써 인간을 연결하는 행위의 의미를 떠올리고자 했다. 자일을 잊는다는 것은 ‘매일매일 걷기와 의미를 주는 지평선’을 분리하면서 산을 잊는 것이기 때문이다.(9) 산악인은 자신의 목숨보다 다른 이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길 때, 그리고 등반대가 두 번째, 세 번째 대원의 속도에 맞춰 전진할 때 그 뜻을 이룬다. 가장 아름다운 성공은 후발등반자, 즉 대열의 제일 마지막 사람이 거두는 성공이다.  


글·필립 데스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Maurice Herzog, <Annapurna premier 8 000(최초의 8,000m 안나푸르나)>, Arthaud, Grenoble-Paris, 1951.
(2) David Roberts, <Annapurna, Une affaire de cordée(안나푸르나 초등 당시 어떤 일이 있었나)> Éditions Guérin, Chamonix, 2000.
(3) Félicité Herzog, <Un héros(영웅)> Grasset, Paris, 2012.
(4) 무삭제판: Louis Lachenal, <Carnets du vertige(고산 일지)>, Éditions Guérin, Chamonix, 1996.
(5) Pierre Allain, <Alpinisme et compétition(알피니즘과 경쟁)>, Arthaud, 1948.
(6) Rodolphe Popier, ‘Annapurna 1, South face, Ueli Steck, 8-9 October 2013’, www.pioletdor.net
(7) Gilles Rotillon, <La leçon d’Aristote.  Sur l’alpinisme et l’escalade(아리스토텔레스의 교훈, 알피니즘과 클라이밍에 대하여)>,  Éditions du Fournel, L’Argentière-La-Bessée, 2016.
(8) Damien Vernet & Jo B., ‘Des montagnes dans nos villes(도시에서의 산행)’, Fédération sportive et gymnique du travail(근로자 스포츠·체육연맹).
(9) Paul Keller, <La montagne oublié, Parcours et détours(잊혀진 산, 코스와 우회)>,  Éditions Guérin,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