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현대판 신성로마제국을 꿈꾸나?

2018-01-31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아름다운 소설 같은 이야기, 미담 한 편을 소개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1999년 6월 3일자에 “유로존의 병자”로 취급했던 독일이, 노동유연성 제고를 위해 2003~2005년에 가결한 하르츠법안(슈뢰더 정부가 추진한 이 법안은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단축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탄력적 저임금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역주) 덕분에 ‘기적적으로 회생한’ 사실이 그것이다.


이 개혁안들은 그 자체로 기업 경쟁력을 회복시켰고, 메르세데스-벤츠의 해외 판매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 개혁안들을 프랑스에도 적용하도록 확신을 심어줬다. 그러나 이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경제사학자 스티븐 그로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계적인 수출국으로서 독일의 성공을 이해하려면 독일국경 너머의 상황을 들여다봐야 한다. 독일식 개혁모델은 상당 부분 중·동부 유럽 국가들과 연결된 상업망의 발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1) 더 정확히는 ‘비셰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으로 불리는 폴란드, 체코공화국, 헝가리, 슬로바키아 4개국과의 불평등한 경제교류에 근거한다. 25년 전부터, 부유한 국가 독일은 사실상 미국이 멕시코에 설립한 자국 공장들에 적용했던 방식을 이웃국가들에 실행하고 있다. ‘인근 국가로의 해외이전(Delocalization)’ 방식을 말이다.

번거롭고 힘들고, 
수익이 낮은 일은 이웃국가에

19세기 말,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제2제국(독일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 간에 견고하게 구축된 독일-중유럽 간 특권적 경제 교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냉전 때문에 가로막혔던 독일-중유럽 관계는 독일 사회민주당(SPD) 당수를 지낸 빌리 브란트 전 총리(1969~1974 재직)가 내놓은 동방정책(독일통일 전 서독이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등 동유럽의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펼친 외교정책-역주)에 힘입어 1970년대에 산업·기술·금융 제휴의 형태로 재개됐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맹수들로서는 식사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1990년대 초부터 독일 다국적기업들은 산업의 종말론적 분위기에서 민영화된 국영기업들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1991년 폭스바겐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자동차 회사 슈코다(Škoda)를 인수한 것도 인상적인 일이었는데, 이웃의 자본주의 국가 독일은 기존시설들을 하청 플랫폼으로 이용했다. 

독일은 이를 위해 제대로 된 평가도 주목도 받지 못한 ‘해외 이전’이라는 낡은 제도를 이용한다. 바로 역외가공 트래픽이다. 1986년 유럽법안으로 성문화된 이 절차는 중간재(혹은 부품)를 가공하고 제조할, 즉 완제품으로 만들 비회원 국가에 일시적으로 이 재료들의 수출을 허용하고, 이후 그 완제품을 원산지 국가가 재수입 시 부분적, 혹은 전면적 면세혜택을 적용하는 것이다.(2) 동구권 붕괴 이후 중유럽 국가들의 수입쿼터제가 확대되자 독일의 고용주들은 만족스러운 미래를 점칠 수 있게 됐다. ‘최소비용의 최대효과’를 낼 수 있는 체코슬로바키아 노동자들에게 수도꼭지 크롬도금이나 욕조광택 등의 하청을 준다. 그리고 즐로티(폴란드 화폐 단위-역주)로 임금을 받는, 손이 빠른 폴란드 여성들에게 옷감을 나눠주고 그들이 만든 재킷을 회수해 ‘메이드 인 베를린’이라는 상표를 붙여 판다. 

한 마디로 번거롭고 힘들고, 수익이 낮은 일은 이웃국가에 떠넘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연합(EU)’의 경계가 이미 허물어진 것처럼, 1990년대부터 이미 이런 일들이 가능해졌다. 경제학자 쥘리 펠레그랭은 설명했다. “역외가공 트래픽은 멕시코와 미국 접경지대에서 마킬라도라 산업(1965년 멕시코와 미국 접경지대에서 20km 이내, 즉 마킬라도라에 투자하는 내·외국인 기업에 보세 가공무역을 허용하고 재수출을 조건으로 원자재 및 시설재에 무관세를 적용했는데, 이후 마킬라도라 지역이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멕시코의 경제 및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역주) 발달의 단초를 제공한 미국식 조치의 유럽 버전이다.”(3) 

독일은 특히 섬유 및 전자, 자동차 제조 부문에서 다른 회원국들보다 이 하청방식을 많이 활용한다. 1996년, 라인지역 기업들은 폴란드‧체코공화국·헝가리·슬로바키아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프랑스 기업들의 27배 이상(금액 기준) 재수입했다. 같은 해 비셰그라드 그룹이 EU에 수출한 것 중 13%, 독일이 비셰그라드 그룹으로부터 수입한 것 중 16%가 역외가공 트래픽에 속했다. 어떤 부문들은 완전히 역외가공 방식이 휩쓸었는데, 이를테면 독일이 수입한 폴란드산 섬유 및 의류의 86.1%가 이 방식을 따랐다. 쥘리 펠레그랭은 10년 안에 “중·동부 유럽의 기업이 주로 독일기업에 의해 통제되는 생산라인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모스크바가 주도한 경제상호원조회의(1949~1991)에 따라 여전히 같은 울타리에 묶여있던 동구권 국가들의 소비자들은 신속하게 서구권 제품에 접근하게 됐다. 

독일을 굴복시키려던 유럽 통합, 
독일에 힘을 주다

1990년대 후반 자유무역협정으로 관세율이 대폭 낮아짐에 따라, 역외가공 트래픽은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외국인직접투자: 외국인이 단순히 자산운용 목적이 아니라 경영참가 및 기술제휴 등 국내기업과 지속적인 경제관계를 수립할 목적으로 투자하는 것-역주)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다국적기업들은 이제 제조공정 일부를 해외로 이전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인건비가 보다 저렴한 지역에 계열공장을 짓는 데 자금을 투자한다. 1991년과 1999년 사이 독일이 동유럽 국가들에 쏟은 외국인직접투자 물량은 23배로 증가했다.(4) 2000년대 초, 비셰그라드 그룹 국가들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 비중의 1/3 이상을 독일이 단독으로 차지했으며, 독일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에서 자본의 지배력도 확장해 나갔다. 자동차 부품(보쉬, 드렉슬마이어, 콘티넨털, 벤텔러)·플라스틱·전자 공장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르샤바에서 부다페스트까지 이 지역 평균임금이 1990년에 베를린의 1/10에 불과했고, 2010년에는 1/4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유럽 노동자들은 지금도 실시 중인 탄탄한 직업·기술교육 시스템의 혜택을 받았다. 이들은 아시아의 동일업계 노동자들보다 훨씬 우수하며,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컨테이너가 상하이에서 로테르담에 도착하는 데 4주가 걸린다. 반면, 프라하 북동부의 믈라다 볼레슬라프 소재 공장에서 만든 부품을 실은 대형 화물트럭이 독일 북동부의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폭스바겐 본사에 합류하는 데는 5시간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독일은 2000년대 초 폴란드, 체코공화국, 슬로바키아, 헝가리의 최대 교역국이 됐다. 베를린 입장에서 이 국가들은 해외로 이전한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의 플랫폼으로 변모한, 6천만 주민을 거느린 배후지(背後地, 도시나 항구의 배후에 위치하면서 그 도시나 항구의 경제적·사회적 기능이 미치는 주변 지역-역주) 역할을 한다.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국민들도 이 비대칭 교역에서 이익을 얻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아우디와 메르세데스-벤츠는 중국 상류층과 더불어 성공을 이룩했지만, 자동차 가격을 폴란드 및 헝가리의 저임금에 맞게 낮추지 않는다면 성공할 확률은 낮아질 것이다. 

2004년, 독일의 지칠 모르는 지원 하에 EU가 중유럽 국가들로 확대될 당시, 중유럽의 라인 산업지대로의 병합은 이미 꽤 진전된 상황이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이 재정위기로 사라진 이윤을 복구하기 위해 비셰그라드 국가들로의 공장이전을 가속화했고, 결국 독일은 2009년 이후 더욱 강해졌다. 프라하 국제관계 연구소(www.iir.cz/en/static/vladimir-handl)의 블라디미르 한들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독일이 패권국가의 역할을 하도록 부추긴 것이 다름 아닌 유럽 통합이었다는 건 역사의 모순이다. 유럽 통합은 냉전종식 이후 경제대국 독일을 굴복시키려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5)

유럽대륙 지도에서 독일의 권력이 드리운 그림자는 신성 산업제국을 나타낸다. 이 제국의 중심부는 각 지방에서 적절히 숙련된 노동력을 사들인다. 북동쪽으로 네덜란드(라인 산업지대의 중요 물류 플랫폼), 벨기에, 덴마크는 거대한 이웃국가 독일을 제1의 무역판로로 삼는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상대적 경쟁력을 지닌 고부가가치 산업부문에서 자치권을 보장받는다. 남쪽의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이 자치권 역시 특히 서비스 및 보험 분야에서 자체적인 주력상품을 보유한 독일의 생산사슬 및 이익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식민지는 아니지만 지위가 낮은 동쪽의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및 불가리아의 산업은 그들의 최우선 고객, 바로 베를린에 좌지우지된다.

독일 내 노조의 힘도 약화시킨 해외 이전

좌파성향의 한 경제학자 그룹의 말마따나 주변국으로의 공장 이전은 강력한 징계효과를 발휘한다. “매우 인접한 해외로 생산력을 이전하는 새로운 가능성은 독일의 노사 간 권력관계를 변화시켰다. 노조와 기업의 위원회, 혹은 어느 한쪽은 부문별 협약에 저촉되는 사항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부분 노동자들의 임금하락으로 이어졌다.” 임금 노동자 대표들은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6) 그 결과, 고용 유연화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실속 없는 일이 돼버렸고, 임금은 붕괴했다. 독일 경제연구소의 마르셀 프라츠셔 소장은 2017년, “미숙련 노동자들의 시급이 1990년 이후 12유로에서 9유로로 하락했다”고 언급했다(<파이낸셜 타임스>, 2017년 6월 12일).

독일 기업가들은 경제적 뒷마당의 개발로 모든 면에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새로운 회원국들로 흘러 들어갈 예정이던 유럽 자본의 상당 부분이 마법을 부린 듯 베를린으로 갔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경제학자 콘라트 포플라프스키는 이렇게 설명한다. “EU의 단결이라는 방침에 따라 비셰그라드 국가들에 행해진 투자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코 독일이다. 이 막대한 자금으로 2004~2015년 비셰그라드 국가에 300억 유로 규모의 수출이 추가로 발생했다. 이윤을 얻는 방식은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처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이뤄졌다. 자금 대부분은 기반시설 구축에 할당됐는데, 덕분에 독일과 중동부 유럽 간 상품운송이 쉬워졌다. 이는 동쪽의 이웃국가들에 현대식 설비를 짓기 위해 적당한 운송망이 필요했던 독일 자동차 회사들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7)

비셰그라드 국가들의 대차대조표는 더 대조적이다. 한편으로 독일의 투자는 산업기반을 쇄신하고 대규모 기술이전을 끌어냈으며 생산성과 임금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이 지역을 하청과 종속의 경제 속에 가둬버린다. 산업의 도구는 서유럽의 자본, 특히 독일의 자본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감은 2017년 6월 말, 브라티슬라바의 폭스바겐 대규모 공장에서 1992년 이후 처음으로 파업이 터졌을 때 드러났다.(8) 당시 슬로바키아 정부는 16%의 임금 인상 요구안을 지지했다. 슬로바키아 국민당과 사회민주당 연립정부를 이끄는 로버트 피코 총리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세계적으로 가장 고급스럽고 품질이 가장 우수한 자동차를 만든다는 회사가 왜 높은 노동 생산성을 자랑하는 슬로바키아 노동자들에게는 서유럽의 동종 업계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급여의 절반 혹은 1/3밖에 지급하지 않는가?”(9)

한 달 전, 체코 총리 보후슬라프 소보트카도 거의 유사한 발언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경고했다.(10) 조립공장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거대 유럽시장을 목표로 한 주권적 생산성을 개발하는 것, 이것이 바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유럽에 대한 대안으로서 비셰그라드 국가지도자들이 경제적 측면에서 추진해온 것이다.(11) 이런 대안이 없다면 지역별 임금이 급상승한다 해도, 이 같은 상대적 번영은 독일산 자동차의 구매를 조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조민영 sandbird@hanmail.net
서울대 불문학과 석사 졸업. 역서로 <지도로 읽는 아시아> 등이 있다.

(1) Stephen Gross, ‘The German Economy and East-Central Europe’, <German Politics and Society>, vol. 31, n° 108, 뉴욕, 2013년 8월.
(2) 블라디미르 안드레프(Wladimir Andreff)가 취합한 자료 참조, ‘Union européenne: sous-traiter en Europe de l’Est(유럽연합: 동유럽에 하청을 주다)’, <Revue d’études comparatives Est-Ouest(동서 비교 연구 리뷰)>, vol. 32, n° 2, 파리, 2001년.
(3) Julie Pellegrin, ‘German production networks in Central/Eastern Europe: between dependency and globalisation’, <Wissenschaftszentrum Berlin für Sozialforschung(베를린 사화과학 연구소)>, 1999년, 이 단락에 나오는 수치들은 앞의 논문에서 참조했음.
(4)  Fabienne Boudier-Bensebaa and Horst Brezinski 파비안 부디에-벤세바, 호르스트 브레진스키, ‘La sous-traitance de façonnage entre l’Allemagne et les pays est-européens(독일과 동유럽 국가 간 하청 제조방식)’, <Revue d’études comparatives Est-Ouest(동서 비교연구 리뷰)>, op. cit.
(5) Vladimir Handl, ‘The Visegrád Four and German hegemony in the euro zone’, Visegrádexperts.eu, 2014년. 
(6) Christian Dustmann, Bernd Fitzenberger, Uta Schönberg et Alexandra Spitz-Oener 크리스티안 더스트만, 베른트 피첸베르거, 우타 숀베르그, 알렉산드라 스피츠-외네르, ‘From sick man of Europe to economic superstar: Germany’s resurgent economy’,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vol. 28, n° 1, 내슈빌, 2014년 겨울.
(7) Konrad Poplawski 콘라트 포플라프스키, ‘The role of central Europe in the German economy. The political consequences’, <Centre d’études orientales(동양 연구소)>, 바르샤바, 2016년 6월. 
(8) Philippe Descamps, ‘Victoire ouvrière chez Volkswagen(폭스바겐 노동자들의 승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9월호, <경제 주권을 외치는 중앙유럽 노동자들>(박스 기사) 한국어판 2017년 10월호.
(9) <Financial Times>, 런던, 2017년 6월 27일자에 언급됨.
(10) Ladka Mortkowitz Bauerova 라드카 모르트코비츠 바우에로바, ‘Czech leader vows more pressure on foreign investors over wages’, 블룸버그, 뉴욕, 2017년 4월 18일.
(11) ‘De Varsovie à Washington, un Mai 68 à l’envers(바르샤바에서 워싱턴까지, 거꾸로 된 68혁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