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로 인한 이탈리아의 양극화

2018-01-31     프란체스카 란치니 | 기자

세자노 보스코네에서 밀라노의 ‘디자인 지구’까지의 거리는 4km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짧은 여정 가운데, 우리는 이 현대도시의 다양한 면면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이탈리아를 강타한 한 현상을 함께 볼 수 있다. 알프스 너머 도시들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많은 골목가게들이 이제는 완전히 전멸한 것이다.


세자노 보스코네의 한 신문가판대. 굳게 닫힌 철제 셔터 위로 붉은색 글씨가 행인의 시선을 잡아끌려는 듯, 같은 문장을 애타게 세 번이나 반복했다. “임차인을 찾습니다.” 그 문장은 마치, 이 외곽도시의 황량함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처절한 절규처럼 다가왔다. 세자노 보스코네는 2014년, 134개 소도시의 300만 인구를 통합한 ‘밀라노 광역도시’로 편입됐다. 오늘날 이 광역도시는 ‘이탈리아의 경제중심지’로 통한다. 그러나 구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면, 도시는 금세 이민자와 노인들로 우글거리는 베드타운으로 변한다. 게다가 오늘날 이곳에서는 작은 골목가게들조차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텅 빈 상가, 과도한 세금이 원인일까

다른 이탈리아 지역에서처럼 세자노 보스코네에서도 자영업 종사자들의 상점이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서구지역들에 비해 이 현상은 이 지역에서 조금 늦게, 비교적 천천히 진행됐다. 그러다 2008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급변했다. 일부 전문가는 ‘사막화’ 현상을 운운할 정도였다. 2008년과 2016년 이탈리아에서는 전체 상점의 13.6%가 증발했다. 이런 현상은 하루 134개 점포가 문을 닫던 2013년에 이르러 최고 절정에 달한다.(1)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임차인을 찾지 못한 빈 점포가 60만 개 이상으로, 전체 상점의 1/4을 차지한다. 

밀라노 대학의 루카 잔데리기 경제학과 교수는 “물론 위기를 비껴간 지역도 있다”는 말로 말문을 뗐다. 그러나 이어 “인구밀도가 낮은 고원이나 산악지대에서는 상품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머지않은 미래에 기본적인 서비스 일부가 아예 이뤄지기 힘들 수도 있다”고 개탄했다. 이탈리아 최대 상업, 관광, 서비스업 단체연합인 콘프콤메르치오 연구소의 마리아노 벨라는 최근 페루자, 파르마, 트리에스테 등 이탈리아 중소도시의 구시가지들의 상황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는 구시가지가 어쩌면 “관광객을 위한 박물관이나 은행, 보험사, 다국적 패션기업의 지사만 가득한 곳”이 돼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개 상인들은 원인을 ‘과도한 세금’에서 찾았다. 그들은 관료주의의 온상이자 세금 걷는 기계인 국가를 경멸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의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현 이탈리아의 경제상황이다. 여러 해에 걸친 경기침체로 가계소득이 추락하고 소비자가 지갑을 닫으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대형체인이나 할인매장보다 경쟁력이 낮은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의 경제는 2014년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마테오 렌치와 그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파올로 젠틸로니의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경제는 여전히 너무나 취약하다. 2015년과 2016년 경제성장률이 1% 이하에 그쳤고, 현재 빈곤 인구도 470만 명(총 6천만 명 중)을 넘는다. 그중에서도 청년층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빈곤층 인구가 65세 이상 노년층은 4%인데 반해, 18~34세 청년층의 경우 무려 10.4%에 육박한다.

한편 온라인상거래의 발전도 톡톡히 한몫했다. 2016년 이탈리아에서는 온라인상거래 부문이 무려 200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하며 18%나 성장했다. 물론 아직은 프랑스나 독일, 영국에는 못 미치는 수치다. 이들 국가에서는 이미 온라인상거래 비율이 이탈리아의 2~5배 높다. 한편 생활방식이나 소비습관의 변화도 일부 분야에 직격탄이 됐다. 가령 이탈리아가 사상 초유의 언론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신문가판대가 하나둘 문을 닫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독서인구 감소는 자연스럽게 많은 서점들의 경영난으로 이어졌다.(2) 뿐만 아니라 은행 위기로 대출이 경색되고, 북부도시들에서는 주택 임대료가 급등했다.

세자노 보스코네의 보행자 도로는 낡은 가게, 텅 빈 점포들로 가득했다. ‘불안정 세대’에 속하는 광고업계 출신의 30대 남성, 안드레아 가브리엘레는 한때 의욕이 넘쳤었다. 그는 골목상권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이곳에 술집을 열기도 했었다. “다른 외곽 지대처럼 이곳에도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장소가 턱없이 부족했다. 낡은 카페를 리모델링해서 밤까지 문을 연, 활기차고 현대적인 장소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다. 2년 만에 결국 손을 털고 마케팅 분야로 돌아왔다.” 사실 이 외곽지역에서는 상권의 중심이 작은 골목에서 큰 대로변으로 옮겨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만 해도 밀라노의 주변은 여전히 들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교외 지역에 조성된 작은 마을들은 대개 수많은 가게들이 활기찬 상점가를 형성한 상권 주변에 형성됐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산업화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가져왔다. 물론 지금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기는 했으나, 1961년 5천 명이었던 주민이 1991년 2만 6천 명으로, 30년 만에 인구가 5배 이상이 된 것이다.  한편 국가개발을 담당하는 주무관청이 부재한 탓에, 밀라노 외곽지대는 난개발을 면치 못했다. 변변한 편의시설 하나 없는 서민가 주위로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미국식 모델을 본떠 자가용 없이는 이용이 불가능한 대형매장들이 대로변을 타고 들어섰다. 프랑스보다 11년 늦게 생긴 대형마트가 1990년대 이후 순식간에 이탈리아의 북부도시들을 가득 채웠다.(3) 유수 대형마트 오샹도 2005년 이탈리아에 처음 문을 열었다. 탈근대 시대의 성당처럼 붉은색의 거대한 아치가 세워진 오샹의 매장은 20만 명의 잠재고객을 유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여러 해에 걸친 적자 끝에(2011~2014년, 누적손실이 1,600만 유로에 달했다), 오샹은 결국 2015년 7월 문을 닫았다. 소비전문 사회학자 바니 코델루피는 “미국처럼 쇼핑몰이 줄도산하는 이른바 ‘데드몰’ 현상이 이탈리아에도 상륙했다”고 지적했다. 데드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형마트 간의 과열경쟁, 과잉공급, 과도한 임대료, 편의성이 부족한 가게 설계 등이었다.

2016년 오샹은 대대적인 수술 끝에 매장을 재개장했다. 오늘날 오샹 점포는 “도시를 위한, 동네를 위한 대형마트, 오샹 시티”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고 등장했다. 바니 코델루피는 이제 이곳은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가 말한 논 플레이스(Non-place: 고속도로, 국제공항, 호텔 체인, 휴양지 클럽, 쇼핑몰, 슈퍼마켓, 현금지급기 등 사람들이 편의를 위해 잠시 지나치는 익명의 공간을 의미-역주)가 아니라, 기존의 공공장소를 대체하는 문명화된 안락한 공간, 이른바 ‘하이퍼 플레이스(Hyper-place)’가 됐다고 말했다. 오늘날 오샹 건물에는 기존에 쇼핑몰을 채우던 일반 쇼핑 브랜드 외에도, 시 행정기구나 공인회계사 사무실, 치과, 어린이를 위한 놀이시설들이 다채롭게 입점해 있다. 

낙후된 지역을 살릴 정책은 어디에?
 
세자노 보스코네에서 디자인 지구까지 가려면, 넓은 간선도로를 타고 4km 정도 이동해야 한다. 밀라노 시청에서 일하는 도시계획전문가 가브리엘레 라바이오티는 이 간선도로를 모두 세 개 구간으로 구분했다. 그에 의하면 각 구간은 이 현대도시의 세 가지 다른 현주소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먼저 이탈리아의 명소 두오모 광장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14번 전차의 마지막 정차지인 지암벨리노 거리. 지암벨리노 거리에는 쓰레기봉투가 도로를 따라 줄 서 있었다. 그런가 하면 레일 사이의 잔디도 관리한 지 꽤 오래된 듯 엉망이었다. 이곳 서민 지구는 대개 수십 년 전 이탈리아 남부나 동부에서 이주한 오래된 주민들과, 최근 1990년대~2000년대 유입된 비유럽 출신의 이민자들(18개 국적을 지닌 이민자 약 6천 가구가 거주)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 물론 두 종류의 거주민이 잘 융화돼 산다고 보기는 힘들다. 비교적 최근 유입된 비유럽 이민자들은 버려진 가게를 활용해 지역상권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 기여했다. 라바이오티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허리띠를 졸라맨 빈곤층을 위해 값싼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다. 가령 할랄 정육점, 베르베르식 구이 전문점, 이집트식 시장이 언제나 대문을 활짝 열고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 손님들은 외상이나 할부로 물건을 살 수 있다. 전쟁 직후의 이탈리아처럼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서민운영 가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로렌테지오 시영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영시장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밀라노에 있는 다른 시장들처럼, 1954년 문을 연 이곳도 입점할 상인을 찾지 못해 애를 먹기는 매한가지다.(4) 한때 시장은 허물리거나 전문할인매장으로 대체될 위험에 처했었다. 그러나 말고기 전문 정육점을 운영하는 비토 란디요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시칠리아 출신인 이 50대 남자는 동료들 몇 명과 의기투합해 상인연합을 결성했다. 그들은 시청에서 지원금을 받아, ‘혼종문화(Hybridation)’를 모토로 한 시장 재건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식료품점들이 입점하던 자리에 지역단체나 문화행사,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어학원 등을 다채롭게 유치하며 시장 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라바이오티는 잠벨리노 거리의 두 번째 구간에 대해 좀 더 많은 우려를 드러냈다. 세자노 보스코네처럼 이곳도 많은 상점이 사라지거나, 임차인을 찾지 못해 빈 점포가 늘고 있다. 대개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 외곽지역 너머 대형마트로 장 보러 다니는 은퇴자들이 대부분인 이 지역에서는 가게들이 수십 년 전부터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도 구닥다리 플라스틱 테이블과 슬롯머신이 놓인 허름한 술집, 불결한 잡화점, 불투명한 유리문이 달린 태국식 마사지센터 등이 눈에 띈다. 중세시대 이후 이 이탈리아 서민 도시의 허파 노릇을 했으며 최근까지도 나름대로 건재한 모습을 보이던 수공업자들의 작업장 역시 오늘날 하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가령 목공세공업자, 목수, 융단직조공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이처럼 낙후된 지역을 되살리기 위한 일관성 있는 정책이 없다. 그저 유명 건축가(5)가 참여하는 별 실효성 없는 단기사업에 그치고 있다. 로마 사회투자연구원(GENSIS) 소속 연구원 스테파노 삼파올로는 “지난 20년간 우리는 낙후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무려 2억 유로를 투입해 총 700여 개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사업들을 전체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주무관청이나 산하기관이 없다 보니 모든 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잠벨리노 거리가 끝나고 이윽고 ‘디자인 지구’의 관문으로 통하는 안드레아 솔라리 거리가 시작되는 세 번째 구간에 도착하자, 주변 풍경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쪽 공원에는 벨에포크 양식의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수많은 근린상점들(매대가 가득 찬 신문가판대, 고급 식료품점, 지하포도주창고, 꽃집 등) 사이로 명품 브랜드 점포가 즐비했다. 세련된 고급매장들 중간에 1927년 조부가 일군 사업을 물려받았다는 철물업자 쥴리오 벨라티의 가게도 보였다. 그는 ‘1960년대 황금기’를 무척 그리워했다.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의 중산층은 원하면 누구나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뒷방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손자가 먼 미래에 가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2010년 사회학자 지암파올로 파브리스는 앞으로 ‘탈성장’ 사회에 대비하려면 소비습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과도한 소비 열풍을 줄이고 현대사회의 상품들을 일부 포기함으로써 좀 더 균형 잡힌 삶의 양식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6) 경제위기가 발생한 뒤 이탈리아에서는 소비생활의 양극화가 날로 심화하고 있다. 소수의 부유층은 고급상품을 즐기는 특권을 누리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제조-판매-사용-대체가 순식간에 일어나는, 조악한 일회성 저가조립 상품으로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글·프란체스카 란치니 Francesca Lancini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Nei centri storici i negozi sono sempre di meno’, Confcommercio, 2017년 2월 27일. www.confcommerciovv.it
(2) ‘La lettura in Italia’, 이탈리아 통계청(ISTAT)이 발표한 보고서, 로마, 2016년 1월 13일.
(3) 이탈리아 최초의 대형마트는 밀라노에서 30km 거리에 위치한 카스텔란차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4) 2017년 11월, 지구별로 약간의 격차는 있지만, 밀라노 광역도시가 운영하는 시영시장의 경우 전체 점포의 20%가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채 빈 점포로 남았다. ‘Mercati al coperto sempre più vuoti’, 2017년 11월 13일, www.repubblica.it.
(5) 가령 렌초 피아노가 밀라노 외곽지역 되살리기 작업에 참여했다. Renzo Piano, <Diario dalle periferie / 1 Giambellino>, Skira, 밀라노, 2016년.
(6) Giampaolo Fabris, <La Sociétà post-crescita. Consumi e stili di vità>, Egea, 밀라노,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