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 속에 날개를 단 브라질 우파

2018-01-31     안 비냐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모두 물러가라!’ 경제위기에 직면한 아르헨티나인들이 15년 전 외쳤던 이 외침이 오늘날 비리 스캔들에 휩쓸린 브라질에서 또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어느 기존 정당도 불신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는 가운데, 군대와 연계된 강경우파가 수면에 떠 올라, 아우게이아스의 더러운 축사를 깨끗이 청소(부패 척결을 의미-역주)하겠노라 약속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열린 자유포럼 개막식에는 승리의 기운이 감돌았다. 브라질 남부에 위치한 도시 포르투알레그레는 전 세계적으로 1988년 노동자당(PT, 좌파정당)이 브라질에서 처음 정복한 도시이자 세계사회포럼(WSF, ‘세계경제포럼’에 맞서 반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전 세계 사회운동가들의 회의)의 요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30년째 이 도시에서는 브라질의 극자유주의 우파 모임도 함께 열린다. 자유포럼은 오랫동안 내부자만의 모임으로 국한되다 몇 년 전부터 대규모 회합으로 확대됐다.

2018년 대선승리를 점치며 들떠있는 우파

2017년, 2,600석 규모의 포럼장이 관중으로 가득했다. 연사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자유주의 사상이 공개 토론장에서 이처럼 뜨거운 환영을 받은 적이 없었다.” 엘리오 베우트라오 미제스 연구소 소장이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몸담은 미제스 연구소는 공식적으로는 ‘비정치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창시자인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의 계보를 잇고 있다.(1) “우리는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노동자당 반대시위를 벌이며 좌파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으로 2018년 대선 승리를 점치고 있다.” 

우파가 축배를 들 만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노동자당이 13년이나 집권한 브라질에서 마침내 강경우파가 선거도 치르지 않고, 일시적으로나마 ‘정권’을 잡은 것이다. 2016년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대통령직에 오른 미셰우 테메르 전 부통령은 현재 자유포럼이 표방하는 자유주의 로드맵을 착착 실행해나가고 있다. 가령 재정지출 증가액을 직전년도 물가상승률로 제한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가 하면, 대대적인 민영화, 노동법 완화, 연금개혁(많은 이들에게서 연금수혜 혜택을 박탈),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잔재가 남아 있는 ‘노예노동’의 정의를 축소하는 데 매진 중이다.

올해 자유포럼은 사회민주당(PSDB, 우파) 소속의 후앙 도리아 상파울루 시장이 막을 열었다. 사업가 출신인 그는 “하루에 무려 15시간씩 일하는 경영자”로 유명하다. 그가 추구하는 이상은? “세금을 인하하고, 시장규제를 완화하며, 자유경영의 걸림돌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한편 그는 “더디고 복잡한 관료주의적 공공시스템”을 뿌리 뽑기 위해 오늘날 여전히 공공부문이 맡고 있는 시 운영사업들(공원, 경기장 운영 등)을 하루빨리 민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관용차 대신 우버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정치계의 관행도 쇄신하겠다”는 그의 선언은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현재 도리아 시장은 사회학자 로랑 델쿠르가 미국의 조세저항운동에 빗대어 ‘열대의 티파티’라고 부른 브라질 신흥우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말쑥한 차림의 그는 서민층 출신으로, 자수성가형 성공담의 주인공 이미지를 잘 구현한다. 그는 ‘성실한 노동자’를 자처하며 상파울루 외곽지대에 사는 서민층은 물론, 부촌에 거주하는 특권층에 이르기까지 계층을 초월한 지지표를 얻고 있다. 그는 2016년 유세현장마다 매번 상대 노동자당 후보인 페르난도 아다지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연설을 끝맺었다. “쿠바로 썩 물러가라!”

이처럼 냉전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화법이 이 ‘신흥우파’의 특징 중 하나다.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여전히 노동자당을 통해 브라질을 장악하려 하는, 쓰러뜨려야 할 적인 것이다. 로드리고 테예체아 시우바 경영연구소(IEE) 소장은 “노동자당이 표방하는 볼리비아식 이데올로기는 문화, 학교, NGO(비정부기구)는 물론, 많은 젊은이들의 머릿속까지 침투했다. 만일 호세프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했다면, 브라질은 지금 공산주의 국가가 됐을 것”이라며 자못 심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노동자당 지도자(2003~2010년 대통령 역임)가 빈민촌(파벨라)뿐 아니라 주식시장에도 얼마나 뜨거운 활기를 불어넣었는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2)

“노동자당의 머리통을 박살내야 한다”

자유포럼의 관중석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반공주의 노선을 표방한 브랜드 ‘비스타 지레이타’(‘오른쪽으로 눈을’이라는 뜻)의 옷을 입고 있었다. 특히 ‘침착하라. 공산주의자는 되지 말자!’, ‘1917년 공산주의는 죽었다’ 등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가 눈에 띄었다. 이들 젊은이 대부분은 국제 자유주의 계열 단체 ‘자유를 위한 학생들’의 브라질 지부 출신이었다. 이 단체는 2010년 브라질 대학가를 점령한 데 이어, 3년 뒤 자유브라질운동(MBL)의 산파 노릇을 하게 된다. 자유브라질운동(MBL)은 호세프 대통령이 2014년 10월 재선에 성공한 뒤로 끈질기게 탄핵시위를 주도했다. 현 브라질 정치지형에서 매우 파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자유브라질운동(MBL)의 ‘젊은 리더들’은 상대 진영에 냉소와 조롱을 보내고, 욕설과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령 2015년 4월 12일, 자유브라질운동(MBL)의 유명 지도자 킴 카타기리는 “노동자당이 피를 흘리게 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아예 머리통을 완전히 박살내야 한다!”고 선언했다.
브라질의 강경우파는 2013년 6월 이후 극심해진 ‘노동자당에 대한 반감’과 양극화 현상에 기대어 득세했다. 당시 브라질에서는 1985년 군사독재 종식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3) 처음에 시위대는 주로 교통, 보건, 교육 등에 대한 재정 확충을 요구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당시 시위 중이던 우파세력 내에 두 경향이 합세하게 된다. 하나는 ‘인종주의’를 표방하며 ‘정체성’을 부르짖는 극우세력이었고, 나머지는 자유주의 세력이었다. 그들은 시위대를 장악한 뒤 부정부패 척결 등을 미명으로 내세워 시위의 흐름을 노동자당 반대 시위로 변질시켰다”고 델쿠르는 설명했다. 시위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6월 20일, 시위대의 타깃은 더 이상 예산삭감이나 미흡한 공공서비스가 아니었다. 브라질리아의 공관들(연방정부 청사 소재지), 더 나아가 노동자당이나 비리의 표적이 된 정치계와 연관된 모든 상징물이 타깃이 됐다.

2015년,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대형 건설업체들이 페트로브라스에 제공한 뇌물이 정치계로 흘러 들어가는 부정부패 시스템의 존재가 낱낱이 드러났다. 페트로브라스의 고위 임원들은 초기 진술에서 거의 모든 정당이 연루돼 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언론매체와 담당 검사들은, 2003년 브라질을 집권한 노동자당만을 표적으로 삼아 마치 노동자당이 이 비리 시스템을 창안한 주체인 듯 몰아갔다.(4) 거리로 나온 시위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평균적인 브라질 시민의 모습과는 괴리를 보이게 된다. 시위 기간에 상파울루 연방대학의 사회학 연구팀이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5) 시위자의 대부분은 특권층 출신 백인 도시민들이었다. 

“시위자의 90%가 노동자당을 무너뜨리려는 목적으로 거리에 나왔다. 그들은 노동자당이 추진하는 사회정책을 못마땅해한다. 노동자당의 가장 대표적인 정책인 빈곤 지원 프로그램 ‘보우사 파밀리아’를 비롯해, 대학 신입생 선발 시 흑인 및 원주민 등에게 제공하는 인종쿼터제, 쿠바 의사 채용에 큰 역할을 한 ‘더 많은 의사’ 프로그램 등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당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조’보다는 능력주의에 더욱 주안점을 두기를 원한다.”

“무임승차자”, “날강도”… 좌파를 향한 증오

좌파정당 혹은 좌파정당이 대변하는 것들에 대한 증오는 SNS에서 온갖 조롱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한 가장 큰 피해자는 북동부 주민이다. 그들은 흔히 ‘지체장애인’, ‘게으름뱅이’, ‘무임승차자’ 따위로 조롱받는다. 인종주의(브라질 북부는 남부보다 흑인 인구의 비율이 높다)와 계급 멸시는 종종 거리에서도 공공연하게 표출되곤 한다. 노동자당 비판에 열성적인 명문가 출신자들은 노동자당이 역사적으로 차별받아온 계층에게 일부 권리를 허용하며 부유층의 특권을 야금야금 침해해왔다고 볼멘 목소리를 낸다. 노동자당은 그들에게 ‘가난뱅이’와 한 비행기를 타는 치욕을 안겨줬으며(그동안 많은 부자들은 서민층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2015년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실수까지 범했다. 지우마 호세프가 가사노동자의 고용주를 상대로 정식고용 신고와 최저임금 지급, 법정 노동시간 준수를 제도화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6)'

“노동자당에 대한 반감은 시멘트처럼 그들을 결속시킨다. 마치 반공주의가 조앙 고울라르 대통령이 이끌던 좌파 정부에 대한 반감을 조직적으로 조장해 1964년 군사쿠데타로 좌파 정부를 실각시킨 것과도 비슷하다. 1960년대 고울라르에 반기를 들고 거리에 나섰던 사회계층인 백인 특권층은 얼마 전에도 호세프를 규탄하는 가두 행진을 벌였다”고 델쿠르가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2015년 시위 때 군부가 재집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 운동가는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시위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억압적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모았다. 에스테르 솔라노는 그들의 성향을 설명했다. “여론조사 대상자의 70~80%가 범죄자에 대한 형벌을 강화하고, 형사 처벌이 가능한 연령대를 16세로 낮추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동시에 그들은 오로지 노동자당만을 표적으로 삼은 비리사건 수사를 맡은 법조계 인사나 연방경찰에 대해 강한 높은 경애심을 나타냈다.”

이 수치는 브라질 여론조사기관(IBOPE)이 사회의 보수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2010년과 2016년 각기 벌인 여론조사의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기간 형사 처벌이 가능한 연령을 낮추는 데 찬성하는 사람은 63%에서 78%로 증가했고, 사형제를 지지하는 사람도 31%에서 49%로 늘어났다. 스스로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응답자도 49%에서 59%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종식 이후로 ‘보수적’ 성향의 의원, 다시 말해 대지주나 복음주의 기독교도, 군인의 이익을 옹호하는 자들이 의회 내에 지금처럼 많은 비중을 차지한 적이 없었다”고 리우데자네이루 주립대학 정치학 교수 마우리시오 산토로가 설명했다. 

거리의 운동은 점차 제도권까지 잠식해나갔다. 2016년 10월 시의회 선거에서 그때까지 “비정치적인 성격의 시민운동”을 자처하던 자유브라질운동(MBL)은 다양한 정당에서 무려 45명의 입후보자를 냈다. 그중 10명은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됐고, 한 명은 미나스제라이스 주 몽치시앙 시(인구 2만 5천 명 규모)의 시장으로 당선됐다. 포르투알레그레에서는 펠리페 카모자토가 자유브라질운동(MBL) 계열의 정당인 ‘신당’(2011년 창당된 Partido Novo-역주)의 후보로 나와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2015년 전까지 나는 정치에 완전한 문외한이었다.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빙그레 웃었다. 이 새내기 정치인은 친구들과 바투카다(브라질 집단 무용-역주) 공연단을 결성한 뒤 노동자당 반대 운동에 합류했다. 공연단의 이름은 ‘미친 자유주의 패거리’였다. 그들은 축구경기 때 부르는 응원가를 개사해 “볼리바르인이여, 노동자당 지지자들을 애도하라!”라고 부르고 다녔다. 이 노래는 2015년 시위현장에서도 널리 열창됐다. 카모자토는 시의회 사무실에서 자랑스레 과거를 회상했다. “우리는 대통령이 포르투알레그레를 방문했을 때 숙소를 찾아가 창문 밑에서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대통령이 한숨도 못 자게 방해했었다.” 

그는 이런 종류의 도발로 세간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덕분에 선거에서도 큰 덕을 봤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로 귀결된다. 바로 나랏돈으로는 정당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5년 대법원은 페트로브라스 비리 사건이 발생한 뒤로 정당에 대한 모든 민간자금 지원을 금지했다. 그때까지 정당 재정의 70%는 민간에서 맡았다. 그러나 이제는 선거에 들어가는 국가의 지원액을 투표가 열리기 전 의회가 결정하도록 한다. 가령 내년도(대통령, 주지사, 국회 혹은 지방의회 선거가 줄줄이 열린다) 선거지원액은 3억 유로로 추산된다. 카모자토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정당도 기업처럼 재정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고 개탄했다. 29세의 이 시의회 의원은 모든 도시문제에는 소홀하면서도 정작 기업가 정신에 걸림돌이 될 만한 시 규정을 손보겠다는 의지만큼은 단단하다. 카모자토는 일찌감치 “선량한 시민들”의 무기 소지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피의자들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도록 풀어주는 “마르크스주의 이념의 판사들”을 비판하며 큰 인기몰이를 했다. 지난 8월에는 ‘집 없는 노동자 운동(MTST)’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을 ‘날강도’, ‘건달’ 등으로 표현하는 일도 있었다. “자유브라질운동(MBL) 지지자들은 증오를 퍼뜨리는 법을 잘 안다. 사람들은 그들을 추종한다. 지난해 평생 처음으로 나는 분노한 청년들로부터 공산주의자, 볼셰비즘 추종자라며 공격을 받았다.”

 
고문왕, 군국주의자에 열광하는 자유주의자들

대개 자유브라질운동(MBL)의 공격적인 메시지는 SNS에서 표출되곤 한다. 무려 250만 명의 팔로워를 자랑하는 그들의 메시지는 곧장 자신들을 팔로윙하는 수많은 ‘뉴스’ 사이트들을 타고 널리 전파된다. 이미 유력매체가 이념적 편향성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한 브라질에서는,(7) 정보제공의 목적보다 공격에 주안점을 둔 인터넷 사이트들이 부지기수다. 특히 ‘보수’ 성향 사이트들 공격 분야에는 일가견이 있다. 앞서 언급한 사회학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오늘날 조사 대상자의 11%는 룰라 다 시우바의 장남이 대형 다국적 육류업체(프리보이)의 소유주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브라질의 최대 범죄조직 ‘제1도시군사령부’(PCC)가 노동자당의 오른팔 노릇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53%에 달했다. 지난 7월 브라질탐사저널리스트협회(ABRAJI)는 이들 온라인 매체가 자신들의 뉴스 조작 사실을 폭로한 저널리스트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공격을 가하는 데에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가령 이들 온라인 매체가 올린 범죄 관련 동영상의 조작 사실을 폭로한 아젠시아 푸블리카 사이트가 그동안 자유브라질운동(MBL)의 공격에 시달려왔다. 자유브라질운동(MBL)은 브라질탐사저널리스트협회(ABRAJI)의 맞대응에, 그들이 “저널리스트를 가장한 극좌파 운동가”들을 모아놓은 조직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도발적 행태 덕분에 빛을 본 정치 지도자도 있다. 바로 브라질의 대표적인 극우 인사, 자이르 보우소나루 연방하원의원이다. 그는 현재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2위로 급부상했다(그러나 10월 3일 여론조사업체 ‘다타폴랴’가 벌인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 투표 의향자의 16%에 불과). 군인 출신으로 1990년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 보우소나루는 결코 의정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다. 오히려 도발적 행위로 많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다. 대표적인 예가 2016년 4월 17일 TV로도 생중계된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 표결 때의 활약상이다. 보우소나루는 당시 자신이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공산주의 반대, 군부 지지, 나아가 지우마 호세프에게 공포를 안겨줬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브릴란치 우스트라 대령에 대한 헌정”이라며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했다. 우스트라 대령은 1970년 당시 극좌파 단체의 일원이던 호세프 전직 대통령을 24시간 직접 고문한 인물로 악명이 높다. 그런가 하면 보우소나루 하원의원은 한때 여성, 흑인, 동성애자를 깎아내리는 발언으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오늘날 4백만 명이 넘는 페이스북 친구를 거느린 정치인이 됐다”라고 사회학자 파블로 오르텔라노는 말했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최근 단순히 독재정권(1964~1985)의 희생자만이 아니라 모든 브라질 국민을 경악케 한 토니우 아미우톤 마르친스 모우랑 장군의 발언에도 박수를 보냈다. 모우랑 장군은 “국가제도가 사법의 힘으로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나와 친한 고위장성들도 모두 같은 의견이다”라고 말했다.(8) 며칠 뒤 에두아르두 빌라스 보아스 육군 참모총장도 “헌법은 혼란 사태가 발생할 경우 군의 개입을 허용하고 있다”(9)고 지적했다. 역사학자 모 쉬리오는 ‘브라질의 쿠데타 가능성’(10)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물론 독재종식 이후 제정된 1988년 헌법에 의하면 군은 결코 혼자 힘으로는 정치영역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러나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의 위상이 제로에 가까운 지지도를 보이며 위태로운 상황이니만큼, 현재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군을 장악할 수 있는 권위를 잃어버렸다.” 

좌파 덕에 살만해지면, 
우파적 자유를 꿈꾼다

이제 우파(극우, 자유주의, 고전적 우파세력)는 특히 도시 외곽 지역에서 전통적인 노동자당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이 지역의 생활 수준은 최근 10여 년간 상당히 향상됐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좌파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 신흥 중산층은 자유롭게 사업하고 소비하기를 꿈꾼다”고 사회학자 윌리엄 노자키는 말했다. 그는 페르세 아브라모 재단(노동자당 계열)의 주문으로, 도리아 시장이 당선됐을 당시 상파울루 외곽지대에서 노동자당의 지지도 하락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시행한 연구를 주관했다.(11) “신흥 중산층은 우파나 복음주의 교회가 표방하는 능력주의 담론에 약하다. 여전히 빈곤층에만 호소하는 노동자당의 논리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리오데자네이루 외곽지대 주민들도 보우소나루와 그리고 대형 복음주의 교회인 ‘신의 왕국의 보편 교회’의 성직자 출신인 마르셀로 크리벨라 신임시장(브라질공화당(PRB), 우익정당)에게 대대적으로 표를 던졌다. 빈민가에서 가톨릭교회보다 더 탄탄하게 입지를 굳히고 있는 복음주의 교회는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인 세계관을 표방하는 경향이 짙다.(12) 이런 성향을 지닌 유권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자유주의 우파는 가령 지난 9월 현대예술 등으로 점차 표적 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일례로 자유브라질운동(MBL)은 퀴어 전시회가 문을 닫도록 만들었다. 이 젊은 자유주의자들은 총 전시작품 265점 중 3점이 “소아성애나 동물성애를 찬양하거나 기독교 문화를 모독”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 남자의 나체 퍼포먼스를 기획한 상파울루 현대미술관도 공격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두 차기 선거를 노린 전략에 불과하다. 그들은 ‘문화전쟁’이 사람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매우 훌륭한 동력이 돼준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들은 페미니스트, 흑인, LGBT에 적대적인 담론을 활용해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의 대의에 동참하도록 이끌고 있다.”

그러나 오르텔라노, 솔라노가 이끄는 사회학 연구팀에 의하면,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사상에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솔라노는 복음주의 신도들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그들은 좌우파의 각축장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다. 좌파인지 우파인지는 그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은 스스로 ‘보수주의자’로 자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셰우 테메르의 경제정책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이것은 복음주의자들만의 특성인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사실 우경화 현상이 차기 선거에서 우파의 승리를 완전히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브라질 국민은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이나 연금개혁에 반대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은 호세프 탄핵 시위 때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대다수의 브라질 국민은 국가의 축소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양질의 교육과 의료 혜택을 갈망한다.” 사실 자유포럼의 극자유주의자들이 무조건 승리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행여 극우세력(군과 민간인 포함)이 앞으로 더욱 적극적인 발언의 자유를 확보하고, 고전적 우파와 자유주의 우파가 정권을 잡게 될지라도, 화려한 재건을 꿈꾸는 우파가 훨씬 더 급진적으로 우경화될지라도, 룰라 다 시우바는 여전히 2018년 대선전에서 전체 투표의향자의 무려 30%의 지지를 받는 가장 강력한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안 비냐 Anne Vign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Cécile Marin, ‘사상학파의 급증’, <Manuel d'économie critique du Monde diplomatique(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비평경제교과서)>, 파리, 2016년.
(2) Geisa Maria Rocha 게이사 마리아 로차, ‘Bourse et favelas plébiscitent Lula 룰라의 집권 8년, 브라질은 정말 나아진 걸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0년 9월호.
(3) Janette Habel 자넷 아벨, ‘Un pays retrouve le chemin de la rue 노동자당 집권 10년, 거리시위에 나선 브라질 국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7월호. 
(4) Anne Vigna 안 비냐, ‘Au Brésil, les ramifications du scandale Odebrecht 대통령을 탄핵시킨 브라질 오데브레히트사의 부패 사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9월호.
(5) 조사결과는 http://gpopai.usp.br/pessquisa/?rel=mas 참조.
(6) Renaud Lambert, ‘브라질, 가사 노동자들의 반역’, <마니에르 드 부아>, 제156호, ‘노동. 전투와 유토피아’, 2017년 12월~2018년 1월.
(7) Carla Luciana Silva 카를라 루치아나 시우바, ‘Veja, le magazine qui compte au Brésil 베자, 브라질 신자유주의의 선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12월호.
(8) 2017년 9월 15일 브라질리아 프리메이슨 지부 회의.
(9) 글로부 TV와의 인터뷰, 2017년 9월 19일.
(10) <리베라시옹>, 파리, 2017년 9월 26일.
(11) ‘Percepções e valores políticos nas periferias de São Paulo’, Fundação Perseu Abramo, 상파울루, 2017년. 
(12) Lamia Oualalou 라미아 우알랄루, ‘Les évangélistes à la conquête du Brésil 브라질 대선을 쥐락펴락한 복음주의교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10월호‧한국어판 2015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