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재원, 금융소득 뒤에 숨어 있다
60살 퇴직의 공식적인 종말, 분담금 납입 기간의 증가…. 프랑스 정부는 연금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오로지 노동기간 연장이라는 단 한 가지 수단에만 의존하려 든다. 미친 짓이다. 금융시장을 안심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그 대가로 퇴직자의 구매력이 저하된다. 다른 자금 조달원에 더 비중을 두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그리고 이렇게 명명백백한 사실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산방식부터 고령자의 규정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전반적으로 조정하는 일이 시급하다.
프랑스 정부는 왜 금융시장 불안을 우려하며, 퇴직연금 개혁을 압박하는 것일까?
프랑스의 경제일간지 <레제코>는 “대통령은 자신이 상대하는 유럽의 각국 대표와 금융시장에 그가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퇴직연금 문제가 단지 이런 시도의 일환이라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시장에 어떤 시그널을 주어야 하고, 아직 프랑스가 혜택을 누리는 AAA 등급을 절대로 잃지 말아야 한다”고 쓰고 있다.(1) ‘어떤 시그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평균수명 연장을 구실로 더 오랫동안 일을 하게 하려는 의도다.
더 일하거나 덜 받거나 더 물리거나
정부의 슬로건은 시민들의 귀에 그와 상반되는 메아리가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싫증 나도록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퇴직연금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그 제도의 균형을 위해선 3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더 오래 일을 하거나, 아니면 연금을 줄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분담금을 늘리는 것이다. 이 가운데 분담금 증액은 1993년의 개혁(이른바 ‘발라뒤르’ 개혁으로, 민간 부문의 급여 생활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과 2003년의 개혁(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라파랭-피용’ 개혁)에 의해 단호하게 배제됐다. 나머지 다른 두 가지, 즉 더 오래 일하거나 연금을 줄이는 방식만이 작동됐다. 분담금 납입 기간이 37.5년에서 40년, 이어 41년으로 연장됐고, 퇴직연금과 각종 연금의 액수를 정하는 데 기준이 되는 임금은 물가에 따라 연동한다. 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 퇴직연금은 임금을 가장 많이 받는 10년이 아니라 25년 기간 평균으로 계산하고, 임금이 분담금 전체 평균에 못 미치는 해에는 세금을 공제해주는 것이다. 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연금 수급자는 20%에서 15%로 가차 없이 줄어들었다. 별로 놀랍지 않은 사실이 있다. 급여 생활자의 3분의 2가량은 더 이상 60살에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분담금 납입 기간이 연장되면서 완전한 금액의 퇴직연금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평균연령은 61~62살인데 일자리를 떠나는 연령은 58.8살이다. 그렇게 해서 연금 액수를 결정짓는 대체율(다시 말해 마지막 임금 대비 연금액 수준)은 장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인구와 경제의 갖가지 변화 양상을 비교 분석하면 소득재분배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와 경영자 쪽에서는 왜 소득재분배 문제를 금기시하는가? 1980년대와 1990년대 국내총생산(GDP)은 8%포인트 이상 증가했지만, 임금 생활자의 소득은 오히려 악화됐다. 1970년대 말 정점에 이른 임금수준을 빼고 생각해도, 이 기간에 임금생활자의 GDP는 4~5%포인트 정도 크게 감소했다.(2) 반면에 주류 계급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잘 지켜왔다.
인구 상황을 살펴보면, 퇴직연금제도의 개혁은 분명히 시급하다. 퇴직연금정책방향결정위원회(COR)의 심의와 특히 최근에 나온 위원회의 보고서(3)에 따르면 무엇보다 2030년 이전에 상황이 악화되면서 퇴직자 한 명을 위해 분담금을 내는 사람 수가 2008년 1.8명에서 2050년에는 약 1.2명이 된다. COR은 40년에 걸쳐 시대 상황에 맞춘 예상을 내놓고 있으며, 경제위기가 사회복지 체계에 미치는 큰 영향도 고려하고 있다. 경제위기 때문에 사회복지 회계는 갑작스럽게 악화될 것이다. 특히 실업은 급속도로 증가한 것에 견줘 훨씬 천천히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10년 가운데 상당 기간 여러 위기의 영향을 지각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미미한 비율로 다시 성장세를 보여도 기업은 생산력을 만회하고 나서야 채용을 할 것이다. 2006년(다시 말해 경제위기가 닥치기 이전에) 퇴직연금제도 전체의 적자는 22억 유로였다. 2008년에는 규모가 109억 유로로 올랐고, 2010년에는 322억 유로에 이를 것이다.(4)
COR는 가능한 3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이 가정에 따르면 2050년의 적자액은 가치로 표현했을 때 650억~1150억 유로로 전망된다. 이 시기까지 누적된 금액은 GDP의 77~117%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추가분은 별 의미가 없다. 공포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가장 우호적이지 않은 시나리오는 40년에 걸쳐 급격한 파동 부분이 제거된 증가분만으로 분담금이 10.4%포인트, 다시 말해 1년에 0.26%포인트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5) 물론 1993년과 2003년의 연금 개혁이 사회적 반대에 부딪혀 폐기된다면, 그때는 증가분이 15%포인트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1년에 0.375%포인트 상승하는 것이다.
퇴직연금에 관한 토론을 다시 이성의 레일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이런 예상 결과의 가치를 상대적으로만 인정하는 것이다. 2009년 발표된 코티스 보고서(6)에 따르면, 비금융권 회사에 의해 자본과 땅을 소유한 사람에게 흘러 들어간 소득은 1982년엔 그들의 부가가치 총액의 3%였으나 2007년엔 8%(총 766억 유로)로 뛰었다.(7) COR는 이 5%포인트 증가분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 규모는 2008년 예정으로 산출된 모든 퇴직연금제도의 적자액보다 7~8배 많고, 2010년을 내다보고 예정한 것보다 2.5배가 많다. 달리 말하면 임금 총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금융소득과 배당이자에 경영자 쪽의 노령연금 분담금 비율을 동일하게, 다시 말해 8.3%(8)를 적용한다면 연간 87억 유로의 재원이 모이게 된다. 이것은 퇴직연금제도를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다.
소득재분배? 말도 꺼내지 마!
“이미 충분히 오른 사회보장 분담금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노동장관 에리크 뵈르트는 노조와 토론을 벌인 뒤 이렇게 선언했다. 그의 주장은 프랑스 경제인연합회(Medef)의 로랑스 파리조 회장이 여러 차례 반복한 말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파리조 회장도 “60살의 상징적인 금기를 깨뜨리라”고 권고한다.(9) 경영자 쪽과 정부가 이처럼 소득재분배를 손댈 수 없는 신성한 것으로 여긴 지 30년이 넘었다. 소득재분배는 세계경제의 자본화와 동질 관계에 있고, 따라서 결국 위기로 이어진 제 모순의 심화와 동체인 셈이다.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논거는 경쟁력 상실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배당금과 분배되는 다른 각종 이익에까지 분담금 사정액의 기반을 확대한다고 해도 비용(따라서 경쟁력)에는 아무런 결과가 초래되지 않는다. 삭감되는 것은 투자 능력이 아니라 배당금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일무이한 해법’, 그러니까 급여 생활자를 더 오랫동안 일하게 하는 것을 둘러싼 논쟁이 차단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논쟁을 저지하는 데 참여하는데, 그럼에도 시민 사이에는 기만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국제금융관세연합(ATTAC)과 코페르니쿠스재단이 주도한 “퇴직연금에 대한 시민의 요구 사항을 들어줘라”는 주장이 대중 사이에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10) 분담금이 면제된 모든 소득, 예를 들어 상여금과 경영에 참여해 받는 이익, 적립금 형태의 각종 수당에 분담금을 부과하자는 발상이 조금씩 진척을 보이고 있다.
이자소득에 적용만 해도 재원 너끈
그런데 소유 계급과 그들의 금융기관은 공공기금에 의해 구제받은 이후 오늘날 임금 생활자와 퇴직자에게 그 위기의 부담액을 떠넘기고 싶어한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임금생활자의 반감이 고조되는 것을 우려하며, 자본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반드시 고려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모든 정황으로 보건대 이런 노력은 ‘예고된 재앙’에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들리는 바로는 메워야 할 적자가 수백억 유로, 게다가 2050년에는 1천억 유로인데, 자본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이 겨우 수십억 유로라니 말이다!
최근에 대수롭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가 들려온다. “오늘날 퇴직자의 생활수준이 경제활동인구의 생활수준을 상회한다”고 테라노바의 올리비에 페랑 회장이 선언한 것이다.(11) 그 말대로라면 퇴직자가 퇴직연금의 재원을 조달하는 편이 좋겠지만, 이런 주장은 두 가지 반대에 부딪힌다. 이 주장의 근거는 집단 체제에서 비롯된 퇴직연금과 부유한 퇴직자층만이 받는 부가적인 이전 소득을 합쳐 나온 것이다. COR의 자료를 보면 퇴직자의 이전 소득이 경제활동인구보다 2배 더 많다. 퇴직자의 이전 소득이 배제된다면 경제활동인구 평균소득의 85%에 해당하고, 이전 소득이 포함된다면 98%를 차지한다. 결국 “경제활동인구에 대한 퇴직자들의 상대적인 생활수준은 거의 비슷하다”.(12)
다른 한편으로 퇴직자의 분담금 납입 기간을 늘리는 것은 그들이 퇴직 뒤 여전히 경제활동인구에게 부양을 받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퇴직자 연금은 감소할 것이다. 마뉘엘 발스, 올리비에 페랑, 프랑수아 올랑드, 마리졸 투렌, 마르틴 오브리(13)는 차례차례 “2020~2050년에는 분담금 납입 기간을 늘려야 할 것”이라며 이런 사실관계를 감추고 있다.
통계의 눈속임, 연대에는 눈흘김
더구나 토의를 순전히 재정적 문제로 한정하는 것은 잘못됐다. 퇴직연금은 복합적인 문명의 쟁점에 속한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세대 간 연대뿐만 아니라 사회집단 간 연대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수행된 모든 개혁과 앞으로 계획하는 개혁은 각자가 수령하는 연금과 분담금을 가능한 한 최대로 근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14) 그러면 이제 남게 될 것은 연금 기금이 바닥나더라도 재분배를 보완하기보다는 자본화에 유리한 선전 연설을 다시 배치하는 일뿐이다.
두 번째 쟁점은 사회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돼 있다. 그들에게 거의 죽을 때까지 일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집단생활에 참여하는 의미를 잃게 한다. 그 이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 자체의 위상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을, 그것도 평생에 걸쳐 일하게 하는 것을 거부하는 일은 오래전부터 추구해온 해방의 속성을 내포한다. 철학 용어로 이것은 ‘복종 상태에서 인간성을 잃은 노동으로 물러나는 것에서 개인이 자신들의 삶의 시간을 다시 점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학 용어로는 ‘높아진 생산성을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이용한다’는 말이다.
마침내 노동의 여러 궁극적인 목적을 가로질러 세 번째 쟁점이 도출되는데, 생산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쟁점, 다시 말해 개발 방식에 관한 쟁점이다. 이 쟁점을 대수롭지 않다고 말하면 큰 잘못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늘어난 생산성을 이용하는 것은 자본의 무한 축적에 내재한 생산 제일주의와 배치된다. 따라서 COR의 성장 가설을 간단히 믿어버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생산성 증가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도 마땅히 비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대에 의거한 퇴직연금제도를 보존하고 개선하기 위해 벌이는 싸움은 이처럼 직접적 쟁점을 훌쩍 뛰어넘는 사안이다. 금융계는 이런 상징을 없애버리기로 결정했다. 금융계는 옳았다. 퇴직연금 이면에서 문제 삼을 만한 것은, 바로 어떻게 삶의 개념을 구상하는 것인가다.
글•장마리 아리베이 Jean-Marie Harribey
주요 저서로 <내게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다오>(르보르드로·2009) 등이 있으며, <퇴직연금, 진실의 시간>(실렙스·2010)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번역•안수연 nohere71@hanmail.net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변화하는 세계의 아틀라스>(2008) 등이 있다.
<각주>
(1) 세실 코르뉘데, ‘니콜라 사르코지의 다기능 개혁’, <레제코>, 2010년 4월 13일.
(2) 미셸 위송, ‘부가가치의 분담-유럽의 사례’, <라 르뷔 드 리르>, 2010년 참조.
(3) COR, ‘퇴직연금: 2010년의 회담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현실에 맞게 수정된 전망’, 2010년 4월.
(4) COR, 위의 보고서, p.18, p.20.
(5) COR, 위의 보고서, p.24, p.88.
(6) 장필리프 코티스, ‘부가가치의 분담, 이익 분배, 그리고 급여 격차: 프랑스 사례’, INSEE, 2009.
(7) 거기에는 부가가치 총액의 약 3%가 실질이자 형태로 추가된다.
(8) 사회보장 부담금 한도액 밑으로 일반 제도에서 적용되는 비율이다.
(9) 대심사단 RTL-LCI-Le Figaro에서 한 선언, 2010년 4월 11일.
(10) www.exigences-citoyennes-retraites.net에서 선동. 또한 ATTAC과 코페르니쿠스재단, <퇴직연금: 진실의 시간>, 파리, 실렙스, 2010년 참조.
(11) <르몽드>, 2010년 5월 9~10일.
(12) COR의 사무국, ‘퇴직자와 경제활동인구의 생활수준 비교: 최근의 동태’, 연구문헌 n°2, 2009년 10월 21일.
(13) 각각 <프랑스 수아르> 2010년 2월 4일, <르몽드> 2010년 5월 9~10일, <C/폴리티크> 2010년 4월 26일, <Capital.fr> 2010년 5월 12일, <France Inter> 2010년 5월 19일.
(14) COR 보고서 ‘퇴직연금: 근속연수, 점수 혹은 개념상의 계산은? 여러 가지 선택안과 실무방식’, 2010년 1월 참조. 비평용으로 앞에서 인용한 ATTAC과 코페르니쿠스재단, <퇴직연금: 진실의 시간>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