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달콤함에 취한 튀니지의 저항음악

2018-01-31     타뫼르 메키 | 언론인

2011년 1월 튀니지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은 문화, 특히 음악 분야에서 근간을 뒤흔드는 변화를 가져왔다. 예술가들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검열에 맞서면서, 또 새로운 환경이 가져온 경제적 불안, 정치적 회유 등 위태로운 상황에서 살기 위해 계속 날갯짓을 하고 있다.


지난여름, 클레이 비비제이(본명은 아메드 벤 아메드)는 자신의 히트곡 ‘지나갈 수 없다(No Pasaran)’를 비롯해,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어떤 랩도 부를 수 없었다. ‘지나갈 수 없다’에는 2011년 1월 혁명 이후 튀니지 정계 변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있다. 그의 18개 여름 투어 콘서트는 대부분 공공 페스티벌로 기획됐으나 거의 취소됐다. 경찰조합은 소속 경찰들에게 페스티벌 경호 업무의 불참을 지시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의도적으로 행사 진행을 어렵게 했고, 페스티벌 기획자들이 클레이 비비제이의 출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끔 압박을 가했다. 

사건은 2017년 7월 16일 일요일, 클레이 비비제이가 튀니지 중동부의 마디아에서 공연하던 때 일어났다. 공연 내용이 ‘모욕적’이며 ‘비도덕적’이라고 판단한 경찰이, 클레이 비비제이의 노래에 항의하는 뜻으로 야외무대를 철수하면서 공연이 중단된 것이다. 당사자인 클레이 비비제이는 이렇게 전했다. “경찰들은 나를 먼저 공격했고, 이어서 우리 팀원 두 명을 공격했다. 그러고는 우리 차 타이어를 터뜨려버렸다.” 그 후 경찰조합은 고소장을 제출했고 클레이 비비제이는 ‘명예훼손’과 ‘공무원 상해’ 혐의로 법정 기소됐다. 지역 질서유지를 맡은 경찰 단위조합의 사무총장 모하메드 시우드는 “이 래퍼는 모욕적 발언으로 경찰을 공격함으로써 몹시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고 주장했다.(1)

독재의 잔재, 헌법이 보장한 자유를 공격하다

“불 난 곳에 기름을 끼얹지 마라.”(2) 카르타고 국제 페스티벌 홍보담당이자 라디오 및 TV 비평가로 정평이 난 모하메드 부갈렙은 지난 7월 27일로 예정된 클레이 비비제이의 공연을 불과 열흘 전에 취소한 조직위원회의 결정을 이렇게 두둔했다. 독재의 잔재, 특히 경찰의 권위주의는 어떤 것도 견뎌낼 만큼 질겨서, 2014년 1월에 채택된 새 헌법도 그들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듯하다. 새 헌법 31조에 의하면, “국가는 견해‧사고‧표현‧정보 및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며, 또한 그 무엇도 이 자유를 사전 통제할 수 없다.”

실제로 경찰조직은 독재자 벤 알리의 추락(20여 년간 튀니지의 독재자로 군림해온 벤 알리 대통령은 2011년 1월의 민주화운동으로 축출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역주) 이후에도 여전히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나는 2016년 이후 10번의 콘서트에서 같은 레퍼토리의 노래를 불러왔다. 그런데 갑자기 제동이 걸린 것이다. 아마, 정치적 문제와 얽혀있는 듯하다. 여기에는 군부에 맞선 시민들의 공격에 대한 진압과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경찰조합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 클레이 비비제이는 이렇게 토로한다. 튀니지 국회인 국민대표회의(ARP)의 논의를 거친 이 법안은 보안 인력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데 목적이 있으나, 일부 조항들은 애매한 점이 있다. 예를 들어 경찰을 ‘모욕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부분은 변칙적으로 적용될 여지가 있다. 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조직인 튀니지인권연맹(LTDH)의 입장에서 보면 이 법안은 “혁명의 성과를 위협하고 경찰독재의 토대를 다지는”(3) 내용을 담고 있다. 다양한 음악적 역량을 바탕으로, 정치당국뿐 아니라 사회 질서 및 관습에 도전하는 수많은 튀니지 예술가들은 이 법안으로 고난을 겪을 위험성이 있다. 

클레이 비비제이는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의 메디나 외곽에 자리한 서민 지구 밥 자디드 출신이다. 그에게는 2013년 8월의 상황이 다시 되풀이된 것이다. 당시 그는 함마메트 국제 페스티벌 무대에서 폭행당한 뒤 수갑이 채워진 채 체포됐다. 이후 검찰은 “풍기문란, 명예훼손 및 경찰 전체에 대한 공격”을 빌미로 그를 기소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으나, 소외지역부터 진보적 인권단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계층의 결집에 힘입어 항소심에서 무죄 석방됐다. 그러나 콘서트 기획자들은 2년 넘게 그를 피했으며, 2016년이 돼서야 무대에 복귀해 20건이 넘는 공연을 선보였다. 

클레이 비비제이의 경우가 대단히 특별한 것은 아니다. 2013년 여름, 래퍼들끼리의 연대 물결에 대한 반발의 일환으로 경찰조합이 랩 콘서트의 보이콧을 촉구한 일도 있었다. 이 연대 움직임은 같은 해 6월, 래퍼 웰드 엘 15(Weld El 15, 본명은 알라 에딘 야쿠비)가 징역 2개월을 선고받은 사건에서 비롯됐다. 결국 집행유예 6개월로 형기는 단축됐다.(4) 이 사건은 ‘경찰은 개’라는 제목의 한 영상이 발단이 돼, 정치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 온건주의 정당인 인하다(Ennahdha)가 주도하는 연정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웰드 엘 15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5) 당시 노골적인 표현으로 경찰을 대놓고 비꼬는 랩의 10여 구절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중계됐다. 동시에 몇몇 예술가들은 대마초 흡연 및 소지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튀니지 래퍼들이 특히 좋아하는 주제는 경찰과 사법체계의 집요한 괴롭힘에 시달려온 일부 젊은이들의 반발과 열망에 관한 것이었다.(6) 야쿠비 사건으로 논쟁이 끓어오르자, 경찰은 가수 겸 작곡가인 벤디르 만을 반(反) 경찰적인 래퍼로 간주하고, 그의 콘서트도 보이콧했다. 

클레이 비비제이의 랩 가사는 경찰의 악습을 고발하고 권력층을 비판하며, 사회의 불공정함을 지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클레이 비비제이가 최전방에 서서 경찰력을 비판했다면, 새로운 무대에 선 예술가들은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예를 들면, 다양한 스타일과 새로운 미학을 도입하고, 장르를 혼합하며, 언어의 혁신을 추구했다. 2011년 1월의 민중항쟁 이전, 지네 엘 아비딘 벤 알리 독재체제는 통제와 전횡을 일삼아 미디어 접근을 봉쇄하고, 몇몇 웹사이트를 검열했으며, 비위에 거슬리는 목소리들을 억압했다. 젊은 예술가들은 무대에 설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비정치적인 아랍 가요와 튀니지 전통음악이 미디어의 프로그램들과 권력의 입맛에 맞게 기획된 행사들을 독차지했는데, 독재자의 추락과 더불어 젊은 예술가들이 이 두 장르를 대체할 주자로 등장했다. 사회 분위기도 덜 부자연스러운 스타일과 변화를 요구했다. TV 채널과 개인 라디오 간의 경쟁 및 디지털 붐이 젊은 예술가들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이렇게 음악은 권력의 엠바고를 산산조각낼 수 있었다. 

새로운 권력관계를 설정한 인터넷 검열 해제

인터넷 검열 해제는 이런 새로운 권력 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새로운 무대에 나선 예술가들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의 작품은 흔히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상들을 통해 프로모션이 이뤄지고 있고, 대부분이 빈곤층이나 중산층 출신의 예술가들과 영상 기술자들이 맺은 일종의 결속 덕분에 제작되고 있다. 이 영상들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수십만, 수백만 번이고 재생할 수 있다. 랩은 제작법이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기 때문에 가장 손쉽게 접하는 장르가 됐다. 작곡 프로그램을 무료로 (불법) 다운로드 받는 것도 쉽고, 스토어에서 단돈 1유로로 프로그램을 구매할 수도 있다. 록, 레게, 재즈 같은 다른 장르의 음악들과 달리 랩은 마이크 한 개만 있어도 녹음할 수 있으며, 믹싱작업도 훨씬 수월하다. 신흥 예술가들은 이런 제작방법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므로 자유롭게 곡을 쓸 수도 있고, 미학적으로도 훨씬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음악 보급에는 유튜브가 제격이고, 업로드된 영상들의 프로모션은 주로 페이스북 같은 기타 소셜 네트워크의 스폰서를 받아 발표된다. 

인터넷상에서의 이런 가시성은 웹 액세스의 급속한 발전 덕분에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튀니지의 인터넷 가입자 수는 민중항쟁 이후, 2011년 85만 명에서 2015년에 170만 명으로 약 2배 증가했으며, 이는 튀니지 전체 인구의 약 1/5에 해당한다.(7) 즉 신흥 예술가들에 환호하는 관객들은 금쪽같은 표를 지닌 유권자들로,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2014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후보자 베지 카이드 에셉시(이후 대통령에 당선됨)도 함자위 모하메드 아민과 카폰이 결성한 듀엣의 히트곡 ‘후마니(Houmani)’를 활용했다. 이 랩은 덥스텝(Dubstep, 2000년대 초반 런던에서 등장한 일렉트로닉 음악 장르)의 영향을 받았다. 같은 시기,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에서 베지 카이드 에셉시의 경쟁자이자 퇴임을 앞둔 몬세프 마르주키 대통령은 래퍼인 엘 제네랄(본명은 하마다 벤 아모르)의 협조를 얻었다. 이 래퍼는 혁명을 상징하는 인물로 곧잘 소개되며, 2011년 <타임>지의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좌파 성향의 후보자 함마 함마미는, (스스로 말하기를) 벤디르 만과 체제 비판적인 여가수 바디아 부리지의 지지를 얻었다고 자랑했다. 또 다른 후보자로서 최고위직 출신의 보수적 사업가인 슬림 리아히는 래퍼인 카폰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의사 표명을 한 적이 없었음에도, 자신의 선거운동에서 카폰의 콘서트를 열기 위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공영이건 민영이건 주요 미디어의 결정권자들은 대체로 새로운 음악이나 새로운 무대의 음악에 무지한 상태에서, 가수들의 스타일과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특징을 규정한다. 또한 황금 시간대에 어떤 프로그램이 편성될지, 큰 무대에 누가 정기출연할지도 이 결정권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랩을 다른 장르의 음악과 혼동하는 일도 흔하게 일어난다. 가령 카폰은 컴퓨터로 아주 간단하게 작곡하는 레게 마니아인데, 대개 래퍼로 소개된다. 사소하더라도 체제 비판적인 발언만 담고 있으면 이런 부류의 예술가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돈이 필요하다. 누가 낸 돈인지는 상관없다”

그러나 체제 비판이 만장일치로 신인 예술가들의 지지를 얻는 건 아니다. 온건한 부류 중에는 사회 및 도덕 질서에 완전히 순응함으로써 서구의 상업적 무대에서 경험한 방법들을 그대로 베끼는 데 만족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카폰의 사례가 예증하는 것처럼 대체로 세속적이고 물질적이다. “누가 돈을 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서 나는 돈이 필요하다.”(8) 정치토론회에 참여한 것에 대해 비판이 일자, 카폰은 이렇게 대응했다. 그는 또한 교원노조가 벌인 반복적인 파업을 비판하며, “이제 민중이라는 가족을 얻었으므로 그동안 해온 거친 발언들”(9)을 취소했노라고 시인했다. 이처럼 공영 미디어와 공공 페스티벌의 유혹, 상업적 이익과 당국의 압력은 새로운 무대 위에서 특권을 누리는 예술가들을 만들어냈다. 

한편, 대부분의 젊은 예술가들은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뮤지션들은 음반 수익이 없고(튀니지에는 합법적인 음반 유통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렇다 할 음악 다운로드 플랫폼도 없다), 저작권 시스템도 실효성이 별로 없어 이들은 주로 행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새로운 무대에서, 특히 래퍼들이 유튜브를 통해 버는 연간 총수입은 1천 유로를 넘기지 못한다. 튀니지에서 영상 업로드로 창출되는 수익은 다른 서구 국가나 아시아 국가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금액이다. 손꼽는 급진적인 예술가들조차도 생계를 위해 가끔 작곡을 해야 한다. 2016년 클레이 비비제이는 훗날 ‘언더그라운드’ 복귀에 앞서 ‘상업적 제목’을 붙인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ghodwa khir)’라는 곡을 선보였다. 1년 후 여름, 경찰조합으로부터 봉변을 당한 그는 ‘혼돈(혹은 무질서, fawdha)’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내 노래에서) 거친 표현들을 걷어냈다. 그들은 내가 대의를 팔았고, 돈 때문에 음악을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자 일부 젊은 튀니지 예술가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주류’로 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7년 전에는 독재의 추락으로 다양성을 더욱 발현하도록 호소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 현재는 순응적인 자세로 창의성을 발휘하되 유럽과 미국의 유행을 모방하라는 압박의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글·타뫼르 메키 Thameur Mekki
튀니지 언론인

번역·조민영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석사. 역서로 <지도로 읽는 아시아> 등이 있다.

(1) 허프포스트 튀니지판, 2017년 7월 20일.
(2) 모자이크 FM(튀니지 라디오 방송), 2017년 7월 19일.
(3) 2017년 7월 14일의 성명, www.snjt.org 참조.
(4) 2017년 5월, 생말로 경범죄 재판소는 프랑스에 체류 중인 웰드 엘 15에게 ‘가정폭력, 살해위협, 마약류 흡입 및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실형을 선고했다.
(5) 세르주 알리미, ‘벼랑 끝에 선 이슬람주의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3년 3월호.
(6) <Cannabis: nous, jeunes Tunisiens, victimes de la ‘loi 52’(대마초: 우리 튀니지 젊은이들은 ‘제52항’의 희생자다)>, 젊은 아프리카(Jeune Afrique), 2017년 2월 3일.
(7) 국립 통계 연구소(튀니지) 
http://www.ins.tn/fr/themes/technologies-de-communication
(8) <Kafon: je chante peu importe celui qui paye(카폰: 나는 누가 돈을 지불하건 개의치 않고 노래한다)>, 2016년 2월 20일, www.mosaiquefm.net
(9) 모자이크 FM, 2015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