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들이 세운 유럽합중국, EU

[Spécial] 황금 과두체제의 시대

2010-06-07     프랑수아 루핀

브뤼셀의 유럽의회 입구에 서 있는 나무 밑단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 있다. ‘인내와 열정, 단호함으로 설득과 토론, 투표를 통해 중대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그 하단에는 ‘2001년 12월 6일 낙성식, 유럽의회 의장 니콜 퐁텐’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이 문구와 서명 사이에는 ‘유럽문제전문가협회(Society of European Affairs Professionals·이하 SEAP), 유럽로비스트 및 공무전문가 연맹(Fédération Européenne du Lobbying et Public Affairs·felpa)’라는 로고가 박혀 있다.

파리나 로마, 마드리드에서 이같은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프랑스기업운동이 프랑스 국회 입구에 이런 걸 세우는 것이 가능한가? 핵에너지 로비스트가 뤽상부르 공원에 자리한 상원에 감사 푯말을 세우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로비단체 로고 박힌 유럽의회 푯말

SEAP는 유니레버·카르푸·프랑스가스공사·볼보·로레알·수에즈 등이 참여하는 단체로, 자선사업가만 모여 있다. SEAP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온 주소인 브뤼셀 생미셸가 79번지에 가보면 특징 없는 주택 한 채가 서 있다. ‘관리사무실’이라는 곳의 인터폰에는 ‘SEAP를 찾아오신 분은 UNESDA 초인종을 누르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유럽의회 건물에 단체 로고를 박아놓을 만큼 영향력 있는 단체가 우편함조차 없다. 이 단체는 코카콜라, 다논, 네슬레, 유니레버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유럽식음료협회연맹’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다.

 

“SEAP가 설립된 것은 로비스트 규제가 공론화된 1997년입니다.” 유럽기업감시기구연합(1) 올리비에 호데만의 말이다. “SEAP는 설립 당시 자율규제를 내세웠습니다. 로비스트 스스로 규율 및 직업윤리를 수립할 것이며, 따라서 굳이 법률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지요. 법률 제재 없는 당시의 방식을 고수하자고 주장했고, 종국에는 그들이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 스스로 내세운 최소한의 규정마저 지키지 않고 있지요. 유럽연합 건물에 들어가기 전 로비스트임을 밝혀야 하는 규정이 한 예입니다. 어쨌든 유럽의회가 형편없다는 것은 대학교수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의회를 감시하는 국민의 눈이 없기 때문에, 의원에게 ‘당신들은 그럴 권한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지요. 의원과 유권자 사이의 단절은 심각하고, 유권자 대신 로비스트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방문 당시 자리를 비워 만나지 못했던 SEAP 의장 이브 드 레스피나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도 모르게 의회 건물에 문판을 세운 것이 아니에요. 그 자리에는 당시 유럽의회 의장이던 니콜 퐁텐도 있었고, 퐁텐의 뒤를 이어 의장이 된 한스 게르트 포터링도 있었습니다. 모두 투명하게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이 로비단체가 의회와 지속적인 친분을 쌓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들에게는 모두를 위해 “로비스트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과 같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그러면 기업인 단체가 한 것처럼 노조도 문판을 세우는 게 가능하겠군요?”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니지요. 노동조합은 산업 분야에 따라 특정 이익을 좇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기업인 단체는 일반적인 업계 이익을 수호합니다.”

철강노조·우편노조·교원노조·철도노조는 “동업조합의 이익”만을 따지고, 기업인의 이익은 자연스레 유럽연합(EU)의 공익을 좇는단 말인가?

“하지만 어쨌든 EU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내 생각에는 그쪽에서 현실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실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1993년 유럽집행위원회 의장인 자크 들로르일 것이다. “유럽 기업인 라운드 테이블(이하 ERT)이야말로 내 제안을 앞장서 지지해준 사람들이었다”고 들로르는 설명했다. EU 건설을 위해 들로르는 ERT와 결속을 다졌다. ERT는 토탈·네슬레·르노·지멘스 등 45개 기업 경영인이 가입한 기업인 단체이다. 유럽 단일시장 도입을 위한 작업은 은밀히 계속됐다.

“따라서 1984년 당시 저는 유럽시장 통합을 제외하고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각국 정부와 차선책의 합의점을 찾는 한편, 기업의 적극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기업인들과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2) 사회주의자인 들로르가 “유럽 통합을 향한 움직임을 재개”한 것은 결국 이런 맥락에서였다. 즉, 유럽 노조나 유럽 국민을 통해서가 아닌, 기업인과의 로비 활동을 통해서였다.

로비스트 없었으면 EU도 없었다

시기도 기막히게 일치했다. 필립스 회장이자 ERT 회장이던 비스 데커는 1985년 1월 <유럽 1990년: 미래로의 행보를 위한 어젠다>를 발간했는데, 관세 및 무역 장벽을 철폐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들로르가 유럽집행위원장에 취임한 것이 1985년 1월로, 이때 그도 유럽의회에 ‘자신의 제안’을 발표했다. ‘관세 및 무역 장벽을 철폐하자’는 제안이었다.(3) 데커 회장이 저작권 침해라고 항의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 첫 번째 제안은 실현됐고, 그로부터 6년 뒤 EU 건설을 위한 움직임이 재개되면서 또다시 ERT가 힘을 발휘했다. 범유럽주의자가 이른바 유럽 통합 ‘심화’ 단계라 부르는 시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1991년 가을 방송 시민교육 프로그램인 ‘시대의 흐름’ 진행자인 장마리 카바다는 “유럽 통합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300만 명의 임직원을 대표하는 유럽 45개 기업 경영인을 위시한 많은 이들이 다 같이 느끼는 현상입니다. 이들은 유럽 통합 건설 지연에 경종을 울리고 있고, 하루빨리 서두를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민주운동당을 거쳐 대중운동연합당으로 간 카바다는 다음과 같이 객관적인 설명을 곁들이려 했다. “이 방송 프로그램은 ERT의 유럽 45개 기업 경영인이 합작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고, 그중 특히 리요네즈데조 제롬 모노 회장, 르노 주주이자 미쓰비시 주주이기도 한 볼보 페어 길렌하마르 회장, 피아트그룹의 움베르토 아그넬리 회장의 힘이 컸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아마도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금융회사인 로스차일드의 베르나르 에장베르 회장도 참여했다.(4)

1990년대 초 동유럽이 붕괴되면서, 통합 유럽 건설의 기반이던 ‘공산주의의 위협’도 사라졌다. 이와 함께 1986년 채택된 단일유럽법의 목표도 달성됐다. 바로 유럽 통합을 재개할 시기가 온 것이었다. 기업인들은 당시 1991년 12월 개최될 마스트리히트 정상회담을 적극 활용하려고 벼르고 있었고, 제롬 모노는 이런 목표를 제안했다. “우리 기업인들은 교육 및 훈련 강화, 전 유럽을 잇는 인프라 확충, 단일 통화 채택 등의 목표를 갖고 있다. 이런 목표는 모두 서둘러 추진돼야 한다. 미국에는 달러가, 일본에는 엔화가 있다. 유럽 내 12개의 서로 다른 통화로는 이들과 경쟁할 수 없다.”

사회주의 예방 위한 생명보험

브뤼셀에도 동시에 방영됐던 ‘시대의 흐름’에서 들로르는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오늘 제가 읽은 ERT 보고서에서 기업인은 EU 회원국 정부의 시급한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저는 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군가 재촉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점점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회원국 정상은 곧 개최될 중요한 회담에서 2000년 통합 유럽의 모습에 합의해야 하며, 이것이 시급한 사안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역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고, 그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시속 60km로 가던 시대는 지났고, 우리는 시속 100km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이제는 시속 140km로 달릴 때입니다.”(5)

그로부터 3개월 뒤, 유럽 통합은 그의 말대로 되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암스테르담 조약과 리스본 전략을 거쳐 유럽헌법 조약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시속 140km로’ 달려왔다. 물론 기업인들이 생각한 방향대로였다. 프랑스기업운동 회장을 지내고, 유럽 주요 경제인 단체 중 하나인 비즈니스유럽의 현 회장인 에른스트 앙트완 세이에르는 이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U 차원의 규제는 회원국이 일정한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유럽 2인자인 드니 케슬러는 이렇게 단언했다. “유럽은 프랑스가 비록 자발적이지 않더라도 개혁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알랭 마들랭(6)이 약속했던 것처럼 사회주의 예방을 위한 일종의 생명보험으로 보인다. 유럽 통합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고, 사회주의적 유럽의 실현은 까마득하다.(7)



 

 

 

물리적 장벽의 철폐

1만2천km 길이의 고속도로 건설은 1991년 유럽위원회가 시작한 사업이었다. 누가, 그리고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는 사업이 시작되기 몇 주 전 TV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도로가 너무 협소하다. 유럽 통합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앞으로 몇 년 뒤 도로 교통량은 배로 증가할 텐데 말이다”라고 지오바니 아그넬리 피아트 회장은 개탄했다.(8)

‘시대의 흐름’에서 장마리 카바다는 아그넬리 회장의 말에 수긍하며, ERT가 막 발간한 보고서를 인용했다. “시카고에서 휴스턴에 이르는 2천km를 트럭으로 주행하려면 33시간이 걸립니다. 유럽에서 같은 거리는 앙베르에서 로마까지인데, 거의 2배 가까운 57시간이 걸립니다. 아그넬리 회장의 말이 맞다고 봐야겠지요.” 유럽이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속도 제한, 근로시간, 화물 적정 하중, 주말 교통 규제 등 유럽 내 주행자를 구속하는 규제는 너무 많고 과중합니다.”

자크 들로르도 지체 없이 말을 이으며 전적인 지지를 보냈다. “ERT 초기 보고서는 유럽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한층 빠른 이동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단일 시장에 따른 혜택을 극대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지요. 이에 따라 1985년부터 이미 우리는 유럽각료회의에 대규모 인프라 확충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볼보 회장이 편집 책임자로 참여한 이 보고서는 1985년 발간됐는데, 들로르가 이 대규모 사업을 제안한 것도 같은 해였다. ‘시대의 흐름’이 방영되기 시작한 것이 1991년인데, 들로르가 ‘트랜스 유럽 네트워크’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도 1991년이라 했다. 따라서 1만2천km에 이르는 도로를 빠르게 질주할 수 있는 과중 화물 차량을 허용하자는 생각이 누구에게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자못 분명하다.

고속도록 확충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합의됐고, 2004년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이면서 갱신됐다. 1997년 당시 ERT 회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세부적인 사항뿐이고, 큰 그림은 완성됐다고 볼 수 있지요. 영불해협을 잇는 해저터널은 이미 완성됐고, 고속철도가 건설 중입니다. 스칸디나비아와 덴마크를 잇는 공사도 한창 진행 중입니다.”(9)

도대체 이런 집착의 원인은 무엇일까? 유럽 단일시장화로 유럽 내 관세 및 무역, 화폐 장벽은 이미 사라졌고, 남은 것은 물리적 장벽뿐이다. 물류 운송이 여전히 시간적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면, 유럽 단일시장의 혜택도 제한적이라는 말이 된다. 단일시장의 혜택을 극대화하려면 유럽 내 이동을 더욱 원활히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다름 아닌 알프스 및 피레네 산맥, 영불해협 터널 건설을 통해서 말이다. 이렇게 시장 내 모든 장벽이 사라지면 다국적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유럽 내 제품당 한 곳의 생산지만 보유해도 충분한 까닭에 하청업체들은 생산 비용이 더 저렴한 곳으로 공장을 이전하도록 요구받는다. 1989년 당시 월풀은 서유럽 내 38개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 통합 뒤 남은 공장은 단 10곳뿐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수천 명의 실업자가 양산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환경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1985∼95년 물류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은 3분의 1이 증가했다. 2004년 유럽위원회가 승인한 계획에 따라, 물류 운송량은 향후 2배가량 증가하고, 2030년 물류 차량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54%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유럽위원회가 장려한 정책은 다름 아닌 ‘에너지 고효율 전구 사용’과 ‘한 등 끄기’다.

글•프랑수아 루핀 François Ruffin
아미앵 지역독립신문 <파키르>(Fakir) 발행자.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유럽기업감시기구, 유럽 Inc, <세계 경제와 유럽 통합 내 다국적기업의 역할>, Agone, 마르세유, 2005.
(2) ‘내일의 유럽’, <Antenne2>, 1993년 7월 7일.
(3) 유럽 Inc, 위의 책, p.61.
(4) 후일 보요레그룹 부회장이자 라가데르그룹 감독위원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주식거래감독위원회(COB)와 금융시장감독원(AMF) 회원이자, 토탈과 생고뱅사 간부를 역임했다.
(5) ‘시대의 흐름’, <FR3>, 1991년 9월 18일.
(6) 앞선 3개 인용구 출처: <유럽1> 2003년 8월 27일, <라트리뷴> 2000년 12월 4일, <르몽드> 1992년 6월 23일.
(7) 프랑수아 드노르, 앙트완 슈바르츠의 책 제목임. Raisons d’agir 출판, 2009.
(8) ‘시대의 흐름’, <FR3>, 1991년 9월 18일. 그다음 이어진 인용구들의 출처임.
(9) 유럽 Inc, 위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