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한 섬, 주식회사로 변한 지방정부
[Spécial] 황금 과두체제의 시대
지방자치단체장 2명, 전직 장관 5명, 그리고 자치의회 의장까지 총 40명 의원이 기소되면서, 스페인 발레아레스제도가 유럽 정치 부패의 온상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특히 발레아레스제도에서 가장 큰 마요르카섬(이 섬의 주민은 1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이 요즘 마드리드 검찰청 반부패수사부의 표적이다. 거대한 휴양·투기단지로 전락한 이 섬에 공금 횡령과 관련한 밀고가 끊이지 않아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지중해의 섬인 마요르카에서는 해안,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섬 전체가 부동산 개발업자가 눈독 들이는 그야말로 금싸라기 땅이다. 이렇게 섬에 부동산 투기 바람이 일다 보니, 공공기관의 운영이 혼탁해지고 뇌물 수수가 횡행하고 있다. 토지형질 변경이나 개발구역 지정에 조금 관여하는 것만으로도 거액의 돈을 만질 수 있거나, 1천 배 가까이 건설사업의 이익을 뻥튀기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에는 뇌물 세례가 줄을 잇는다.
하지만 어느덧 이런 정경유착(밀고자들이 ‘발레아레스 주식회사’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유지해주던 침묵의 서약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파벌 간 암투는 검거·소송·1심판결을 불러왔고, 철창행을 피하기 위한 자백·배신·수사 당국에의 협조가 이어졌다.
의원 40명 무더기 기소 사태
연이은 비리 재판은 마요르카에 감춰진 낙원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대중당(PP) 의원 3명과 영향력 있는 군소정당 마요르카연합(UM)의 전 사무총장인 투메우 비센스 도시개발 담당까지, 모두 부정부패 혐의로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마요르카연합(UM)은 2007년 선거에서 2만8천 표(유효 득표 수의 6.75%)를 득표한 중도우파 성향의 정당으로, 지금까지 발레아레스 자치공동체의 정치색을 좌우해왔다. 마요르카연합의 이념은 어떤 당과도 정치 연합이 가능할 만큼 유연했다. 사회계층을 초월한 당이라고 자처하는 마요르카연합은 때에 따라 자유주의를 지지하고, 민족주의를 표방하기도 했으며, 국가 개입 확대를 주장하는 편에 서기도 했다. 마요르카연합에 소속된 의원 3명은 상황에 따라 혹은 기대이익을 좇아 대중당(PP)의 보수주의자와 손을 잡았고, 때로는 스페인사회노동당(PSOE)과 연대했다. 주요 정당과의 이런 연대 덕분에 마요르카연합은 30년 가까이 여러 정치 사업을 장악하며, 당의 존속을 위한 일자리와 공공예산을 누려왔다.
이익 좇아 좌·우파 오가는 정당
2009년 비센스 의원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공금횡령죄였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건에도 연루돼 있었다. 4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비센스 의원이 인터넷상의 세무서류를 전면 날조해주는 대가로 개인 세무사에게 1만2천 유로를 ‘제시’한 사실이 심리 결과 밝혀졌다. 비센스 의원의 퇴진은 마요르카연합 지도부를 분열시켰다. 의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전 관광자문이던 미구엘 나달 마요르카연합 당수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2월, 그는 법정에서 마요르카연합의 지도층 인사이자 발레아레스의회 의장인 마리아 안토니아 무나르(20년간 그의 정치적 대모 역할을 했다)가 자신에게 30만 유로가 담긴 돈 봉투를 건넨 사실을 자백했다. 그때 받은 돈은 2007년 선거에 대비한 ‘정치’ 공작에 사용됐다. 당 홍보에 동원할 목적으로 TV 방송사(<팔마TV>)를 매입했고, 지지자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의 소속 회원을 마요르카연합 관리 아래 있는 공공기관에서 지원받는 기업의 직원으로 허위 신고해 지원금을 챙겼다. 줄줄이 이어지는 자백으로 마요르카연합 비리의 전모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냈다.
관도 팔고 묘지도 팔아 돈 챙겨
마요르카연합은 공공기관과 관련된 영세기업을 보호해주고, 그 대가로 회계 조작이나 당원 모집에 이들을 이용해왔다. 마요르카의 한 저명한 변호사는 마요르카연합을 일컬어 “유권자 모집에 완전히 눈이 먼 기회주의 정당이다. 특혜 비리의 온상이다”라고 비난했다. 무나르·나달·비센스 의원에서 변호사, 투자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요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익을 챙기는 방법을 알았고, 그 덕에 관광 및 도시개발 사업을 장악했다. TV 방송사 2곳, 경륜장, 고속도로, 관광 관련 기관 2곳, 기술 관련 기관 1곳, 국토사업 등 이들이 연루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심지어 장례사업까지 손을 댔다. 마요르카연합은 그동안 관 사업이나 묘지 판매 사업에서 수수료를 챙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발레아레스 자치정부의 경제재정부 장관을 맡고 있는 사회당 소속 카를레스 마네라는 지난 입법부 임기 동안 “2억6천만 유로에서 2억7천만 유로에 이르는 공금이 말 그대로 약탈”된 것으로 본다.
경쟁 정당끼리 뒤를 봐주다
무나르와 나달은 스페인사회노동당(PSOE)과 연대했다(1999~2003년, 2007~2010년). 그러나 마요르카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해온 것은 대중당(PP)이었기에, 마요르카연합이 연루된 대다수 비리 사건의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당(PP)으로 튀었다. 발레아레스 초대 자치단체장을 지낸 가브리엘 카녤라스는 1995년 지인에게 터널사업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뇌물을 챙긴 사실이 밝혀져 자치단체장직을 사임해야 했다. 재판이 진행됐고, 죄가 성립됐지만 공시 시효가 지나버렸다. 카녤라스는 마요르카연합의 편의도 봐줬다. 해안가에 위치한 자기 집안의 토지가 개발될 수 있게 법령을 개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후임 자치단체장 중에 카녤라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는 두 번이나 자치단체장을 지낸 자우메 마타스 차례였다. 그는 무나르와 함께 일했다. 무나르처럼 그도 부동산 개발업자와 호텔 사업자를 만났다. 17세기 양식으로 지어진 팔마의 호화 아파트를 비롯해 새롭게 얻은 부를 과시했다. 그리고 무나르처럼 부정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착복, 배임, 위조지폐 사용, 사기, 수뢰 등 죄목도 다양했다. 그는 300만 유로에 달하는 보석금을 내고서야 철창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글•안드레우 만레사 Andreau Manresa
마드리드 <엘파이스>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