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풀리테’의 좌절, 더 대담해진 부패

[Spécial] 황금 과두체제의 시대

2010-06-07     프란체스카 란시니

1992년 프란체스코 보렐리 밀라노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마니풀리테’(깨끗한 손)이라는 대대적인 부패 수사가 시작됐다. (7년여 장기화한) 수사 결과 뇌물로 얽힌 거대한 정경유착이 드러났고, 전직 총리를 비롯해 사회당 크락시 서기장, 국회의원 및 장관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았다.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정당인 사회당과 기민당도 수사로 큰 타격을 받아 권력을 잃었고, 이탈리아 정치권에 대한 쇄신의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은 제2공화국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였다고(1) 회자되는 마니풀리테의 영향과 의미를 이야기한다. 수사에 참여한 검사로는 (1995년 법조계에 들어와 뒤늦게 마니풀리테에 합류한 일다 보카치니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현직에 남아 있는 밀라노검찰청 프란체스코 그레코는 아직도 컴퓨터에 당시 수사 물망에 올랐던 리스트가 들어 있다고 했다. “당시 우리 수사는 하나의 시스템에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정부 조달 및 이와 관련한 수급 체계, 정부관리제도가 제1공화국과 함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는 또 다른 격동을 예고하는 사건이기도 했는데, 바로 기업 중심 경제에서 금융 중심 경제로의 전환이었다.

정경유착, 죄는 있되 처벌은 없었다

 

대대적인 부패 청산 수사가 비단 이탈리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같은 기간에 프랑스도 우르바 스캔들뿐 아니라, 영세민 임대주택과 관련한 파리시청 스캔들(2)에 이르기까지 정치 및 금융 스캔들이 잇따랐다. 에리크 할빈, 에바 졸리, 티에리 장피에르, 르노 반 루임베케 판사 등의 부패 수사가 국민에게 공개됐고, 정당을 불문하고 법원에 소환된 정치인이 부지기수였다. 국제적으로는 1996년 판사 7명이 제네바에서 부정부패 방지를 골자로 하는 유럽연합 사법협력 강화 촉구 선언문을 발표했다.

 

반 루임베케 판사를 제외하고, 마니풀리테의 또 다른 주역인 게라르도 콜롬보 판사도 서명에 참가했다. 33년간의 법조계 생활 끝에 법관직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가 했던 수사는 이탈리아 국민에게는 진일보였던 셈이지만, 실질적인 사법 처벌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나마 혐의가 인정된 경우라도, 대부분의 기소 사건이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면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마니풀리테 담당검사로서 당대 최고의 인물로 떠올랐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는 “결과적으로 정당의 불법자금 운영과 회계 부정을 막으려고 특별법들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1996년 중도좌파로 정치계에 입문했고, 현 이탈리아 야당인 ‘이탈리아가치당’ 총재를 맡고 있다. 디 피에트로는 마니풀리테의 실패 원인을 정치권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로 수천 건의 부정부패 사건이 불거졌지만, 만만치 않은 저항 때문에 사회에 뿌리박힌 문제를 척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치권은 판사들을 물고 늘어지는 방법을 택했고요.” 사법부를 상대로 한 정치권의 공격이 이어졌고, 그 선봉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있었다.

“검찰, 적혈구 죽이는 백혈구” 성토

기업인이자 크락시 사회당 서기장의 친구이기도 한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 마니풀리테의 수사 대상에 오른다. 중도우파 신당인 ‘포르자 이탈리아당’을 세운 베를루스코니는 여러 차례 공판에서 자신의 혐의가 거론되자, “검찰에 대한 공격에 나섰고, 검찰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려 했다”고 게라르도 담브로시오 전직 검사는 말했다(담브로시오는 올리비에당과 민주당의 중도좌파연합 소속의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베를루스코니파는 검찰을 ‘빨갱이 검사’, ‘공산당’으로 몰며 공격했다.

베를루스코니파는 검찰 수사를 피하려 의회를 이용했고, 로비 집단을 이용해 면책법을 통과시켰다.(3) 그 뒤 중도좌파 정부(4)가 베를루스코니 정부(5)를 이었으나, 면책법을 존속시켰다. “이탈리아에서 법관은 무슨 방해물처럼 취급된다. 당파를 막론하고, 일단 정권을 잡으면 어떤 견제도 받기를 거부한다”고 마니풀리테 담당 판사이던 피에르카미요 다비고 판사가 말했다. 그는 현재 이탈리아 최고법원인 파기원 판사로 재직 중이다. 그는 책으로 가득 찬 자신의 서재 소파에 앉아 말을 이었다. “정치인은 검찰과 법관이 너무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들에게는 우리가 무슨 백혈병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마치 세균을 죽이는 대신 적혈구를 죽이는 백혈구 같은 것이지요.”

디 피에트로 의원도 이렇게 비유했다. “헤롯왕처럼 베를루스코니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정의를 짓밟았습니다. 빌라도처럼 중도좌파는 이를 말없이 따랐지요. 진실인즉, 당시 좌파는 이해 상충과 물밑 거래로 송두리째 썩어 있었던 것이지요.” 베를루스코니의 길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2009년 그는 사법부가 자신의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며 법관들을 맹비난했다.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한 알파노법(사법부 수장 등 국가 최고 공직자 4인에 대해 재임 기간에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리자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이후 베를루스코니의 사법행정 관련 비리, 그가 소유한 미디어그룹 미디어셋의 소유권 거래와 관련한 부패 혐의 등이 잇따라 불거져나왔다. 2009년 10월에는 베를루스코니 소유의 지주회사인 ‘핀인베스트’에 그의 라이벌인 미디어 거물 카를로 데 베네데티에게 손해배상 및 이자로 7억5천만 유로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출판기업인 ‘몬다도리’의 소유권을 두고 지난 20여 년간 두 거물 사이에 지속돼온 재정 및 법정 싸움이었다. 뿐만 아니라 베를루스코니는 정치 관련 프로그램을 폐지하려고 이탈리아통신조정위원회(AGCOM), CSA이탈리아 같은 통신 관련 기관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고, 로마검찰청은 총리 및 정부 각료가 연루된 재판을 담당하는 특별법원으로 이 사건을 송부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베를루스코니가 관련된 법정 소송은 계속됐다. 팔레르모검찰청과 칼타니세타검찰청, 피렌체검찰청과 밀라노검찰청은 1992년 지오바니 팔코네 판사와 파올로 보르셀리노 판사 살해 사건에 정치인이 연루됐는지에 대해 재수사를 시작했다. 또한 1993년 밀라노 현대미술관과 피렌체에서 발생한 폭탄테러(10명이 사망했다)의 정치인 관련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가 재개됐다. 베를루스코니와 함께 그와 친분이 두터운 마르셀로 델우트리 의원의 이름도 다시 거론됐다. 하지만 지방선거 승리로 힘을 회복한 베를루스코니는 ‘사법권 개혁’을 계속 추진하려고 한다.(6)

간교하고 대담해진 부정부패

이탈리아에서 부정부패 사건 관련 소송은 여전히 상당수에 이른다. 검찰은 바리 지역 위생서비스 관련 비리를 수사 중이고, 페루지아에서는 민간사업 부문 책임자인 귀도 베르톨라소가 관급공사 도급 관련 비리로 고발됐다. 밀라노에서는 중도우파 소속 카밀로 밀코 페니시 시의원이 한 기업인에게서 건네받은 현금 다발이 현장에서 발각돼 국민을 놀라게 했다. 로마에서는 이탈리아 스파르클레 텔레콤이 탈세 및 돈세탁 혐의에 휘말렸는가 하면, 중도우파당인 자유국민당의 데니스 베르디니가 사르디냐 지역 풍력발전사업 관련 정부조달 비리 혐의를 받았다. 베를루스코니 정부 각료 중 한 명인 클라우디오 스카졸라 경제개발부 장관이 콜로세움 근처 180m²짜리 아파트를 부정 취득한 스캔들로 사임을 발표한 2010년 5월 5일 다음날이었다.

이렇듯 줄지은 부정부패 사건을 두고 디 피에트로는 “신정경유착”이라 칭했지만, 그레코는 새롭다기보다는 부정부패가 변천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마니풀리테 때와 달리, 부정부패 수사는 정치권과의 연결 고리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지 않는데, 이는 지방분권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5년간 채택된 법률들 때문에 수사가 더욱 까다로워진 탓도 있다. “10년 전만 해도 회계 부정이 부정부패의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적 재산의 불법 투자가 금융 관련 사건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이른바 세계화로 인해 금융권 부패가 정치권 부패를 누르고 부정부패의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지요. 이전에는 정당들이 뇌물 수수로 정치자금을 충당했지만, 지금은 정부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기업에 별도로 뇌물을 요구할 필요가 줄어든 것이지요. 더욱 정치적으로 변해버린 부정부패는 이제 상호 공조화했고, 불법 자금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불법 자금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탈세가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억압이 아니라 권력의 균형 잡기

부정부패의 변천에 관한 다비고 판사의 이 말은 유명해졌다. “범죄행위에 맞선 우리 법관들은 마치 동물 세계의 포식자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법관들은 포획한 사냥감의 행동이 개선되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잡은 것은 얼룩말 중에서도 느린 놈일 뿐이고, 빨리 달리는 얼룩말은 늘 달아납니다. 수사망을 피한 범법자들이 법에 저항하고, 나름대로 힘을 길러 더욱 수법이 간교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탈리아가 국제투명성기구의 청렴도 순위(7)에서 터키와 쿠바 다음으로 63위를 차지한 것과 관련해, 다비고 판사는 마니풀리테라는 대대적인 부패 청산 작업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 여전히 부정부패가 뿌리박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8)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모순은 헌법 제49조가 모호해, 정당들이 법률을 변칙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이 어떤 정당의 위조 당원증을 사들여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돼 있어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적은데다, 사법부를 권력 남용이라 비난하는 자들에 의해 사법부의 힘이 쇠약해진 상태라 더욱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1990년대 상반기 마니풀리테의 추진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정치권이 약세에 처했기 때문이다. 중도좌파는 여전히 항구적인 정체성 문제에 부딪혀 있고, 중도우파는 내부 계파 갈등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레코는 “정당들은 지금도 여전히 난관에 처해 있지만,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1990년과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제2대 일간지인 <라레푸블리카>를 창간한 에우제니오 스칼파리는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다.(9) “공화국의 종말을 알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화국의 종말이 곧 베를루스코니의 종말을 가져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두 가지가 같이 엮여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제2공화국의 종말은 권력을 잡았던 이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요. 반면 오히려 이들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독재적인 공화국을 새로 설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헌법이 정한 권력의 균형이나 법치주의가 무시되는 그런 공화국 말입니다.”

일각에서는 법의 심판을 피한 혐의자들을 거론하며 마니풀리테는 유명무실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1992∼94년 부정부패 사건 1300여 건에 대해 판결이 내려졌고, 비록 정치권과 대중매체는 대부분의 기소가 허울에 불과했다고 조롱했지만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5~6%에 지나지 않습니다.”(10)

하지만 디 피에트로는 “죄인들이 승리한 것과 다름없다. 당시 법정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사람들이 버젓이 정부와 의회, 국가기구에서 활동 중이다. 법을 수호하는 사법부와 대립하는 자들이 공직에 오르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이탈리아의 불운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갈 길은 아주 멀다”고 말했다. 사법부와 정치권의 대립이 낳은 결과야말로 디 피에트로가 판사직을 그만두고 정치권에 입문한 이유일지 모른다. 이는 비단 디 피에트로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유명 판사였던 할빈·졸리·장피에르도 각기 다른 계기였지만, 디 피에트로와 같은 길을 택했다.

글•프란체스카 란시니 Francesca Lancini
언론인·밀라노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각주>
(1) 기아니 바르바세토, 피터 고메즈, 마르코 트라바글리오, <마니풀리테>, Editori Riuniti, 로마, 2002. 파올로 비온다니, <레지스테레, 레지스테레, 레지스테레>, Micromega, 로마, 2002.
(2) 사회당과 공화국연합의 불법 자금조달에 대한 사건이었다.
(3) 기아니 바르바세토, 피터 고메즈, 마르코 트라바글리오, <마니 스포르체>(Mani Sporche), Chiarelettere, 밀라노, 2007.
(4) 로마노 프로디 정부는 1996~98년과 2006~2008년, 마시모 달레마 정부는 1998~99년과 1999~2000년, 줄리아노 아마토 정부가 2000~2001년이다.
(5) 1994~95년, 2001~2005년, 2005~2006년, 2008년~현재이다.
(6) 2010년 4월 7일 공포된 ‘적법한 장애 사유’에 관한 법은 베를루스코니와 정부 각료에게 법정 소환에 대한 면책권을 부여했다.
(7) 반부패세계연합(www.transparency.org).
(8) 피에르카미요 다비고 & 그라치아 마노치, <이탈리아의 부정부패>(La Corruzione in Italia), Laterza, 로마-바리, 2007.
(9) <라레푸블리카>, 로마, 2009년 10월 25일.
(10) 기아니 바르바세토, 피터 고메즈, 마르코 트라바글리오, 위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