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가까움, 투명함 그리고 순진함

[Spécial] 황금 과두체제의 시대

2010-06-07     레미 닐센

북반구에 민주주의 낙원은 존재하는가? 비록 정치와 돈 사이의 투명성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해도, 그 투명성에서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는다는 점을 노르웨이의 경우가 잘 보여준다.

“안녕하시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향후 3년을 대비해 지급 가능 현금을 신속히 확보하고, 단호하고 확신에 찬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오!” 간결하면서도 직설적인 이 문자메시지는 노르웨이 최대 은행인 디엔비 노르(DNB Nor)의 룬 비예르크 총재가 2008년 가을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에게 보낸 것이다. 은행이 심각한 유동성 문제를 겪으면서 금융위기가 노르웨이를 강타한 시점이었다. 그 다음날, 마치 우연처럼, 노르웨이 정부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3500억 크로네(약 45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 대책을 발표했다.

이 메시지는 ‘공공 행정문서 접근의 자유에 관한 1970년 법’(2006년 대폭 강화) 덕분에 공개됐다. 스톨텐베르그와 비예르크가 막역지우임을 알고 있던 언론은 총리와 은행 총재 사이의 사적인 통신 내용에 접근해 공개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공개된 것이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노르웨이 노동당(Arbeiderpartiet)에서 함께 투쟁했고, 비예르크가 스톨텐베르그의 결혼식 증인을 서기도 했다.

고위직 사적 통신 내용도 공개

이 사건은, 프랑스 영토의 반에 해당하는 넓은 국토에 국민 480만 명이 거주하면서, 누가 누구인지 서로 잘 알고 있는 노르웨이 국민 모두가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는 ‘가까움의 민주주의’를 잘 보여준다. 노르웨이는 자신의 나라가 불평등이 적고, 사회 각 계층 출신의 대표자로 대의제도(대표민주제)가 보장된 투명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노르웨이는 특혜받은 나라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남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1)라고 노르웨이와 프랑스의 이중국적을 소지한 에바 졸리(본명은 그로 파세스) 유럽의원(유럽 녹색당)은 말한다.(2) 노르웨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석유 수출국이다. 세계 4위인 이란보다 많은 석유를 수출한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이란이 ‘투명’하지 않은 것에 비해 노르웨이의 부패도는 아주 낮다. 정치계와 경제 엘리트 사이의 결탁은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당은 폭넓은 하부 조직을 바탕으로 사람을 뽑는다.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기 위해 반드시 부자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노르웨이 국민은 뛰어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3) 좌파 싱크탱크인 매니페스트 애널라이즈의 마그누스 마스달은 “개인 재산은 중요한 결점이 된다. 재산이 많으면 선거에서 소외되기 십상이고, 특히 민주사회당에서 그런 현상이 심하다”고 말한다. 가수이자 콩트 작가인 오드 뵈레젠은 “노르웨이 사람들은 온건하다. 그들이 신에 대해 생각하는 관계는 국왕에 대해 생각하는 관계와 비슷하다. 그들은 신(그리고 국왕)이 품위 있게 행동하고 너무 지나치지만 않으면 상당히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재산 많으면 선출직 되기 어려워

에바 졸리 의원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발행된 세금고지서를 열람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노르웨이의 이 전통은 19세기에 시작된 것이다. 이는 노르웨이를 열린 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4)고 강조한다. 사실 개인 세금신고는 매년 10월 공개된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는 시장이나 구청장, 이웃 또는 지역 상인의 수입을 알아보기 위해 자신이 거주하는 시 관할 세무서에 가서 3주간 공개되는 리스트를 열람해야 했다. 이 권한을 실행하는 데 따르는 한 가지 제약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신문들은 정치 책임자, 기업 대표, 스포츠인, 예술계와 연예계 유명인사, 이른바 공인의 재산과 유산, 소득을 공개해왔다.

결국 언론은 이렇게 해서 권력을 가진 사람과 ‘보통 사람’ 사이의 평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인터넷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클릭 한 번으로 재무부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사생활 보호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 법은 제한적이었지만 점차 완화됐고, 2008년부터는 재차 모든 정보의 무제한 열람이 가능해졌다.

이 정보들은 특히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의 전체 명단, 무엇보다 일부 최고 부유층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2008년 노르웨이 민주사회당의 실력자이자 총리와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로 할렘 브룬틀란이 세금을 내지 않은 채 전직 의원 자격으로 상당액의 연금 혜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그녀는 몇 년 전부터 니스에 거주하면서도 노르웨이 공영 병원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는 몰상식한 행위를 저질렀다.

이 제도가 시행된 것은 1970년부터지만, 행정문서 접근권은 1766년부터 확립돼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1950년대 이후 노르웨이 민주사회당은 언론·문화·시민사회·정당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폭적 재정 지원을 통해 대의제도를 용이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5)을 견지해왔다. 대선이 치러지지 않은 2008년, 정당 자금의 72%가 공적자금으로 지원됐다. 모금된 전체 4억7천만 크로네(약 6천만 유로) 중에서 3억4천만 크로네가 공적자금에서 나왔다. 납세자가 낸 세금이 진보당(Fremskrittspartiet)(6) 후원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지만 우파보수당(Hoyre)에도 돌아간다.(7) 정당들은 지방선거에서 4% 이상 득표하면 구와 도 차원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 전국적으로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체 2.5% 이상 득표하면 재정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2005년 채택된 법은 1만 크로네 이상의 기부금을 공시하게 하고, ‘정당 재정’ 사이트(Partifinansiering.no)에 명시하게 규정하고 있다.

2007년 유럽이사회 주도로 시행한 제3차 반부패 국가그룹 평가에서 노르웨이는 최우수 국가 중 하나로 분류됐다. 이 보고서는 노르웨이 국가 시스템이 신뢰에 근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출한 돈을 관리할 메커니즘이 없는 이상 선거운동 기간에 정당과 정당 대표자가 받을 수 있는 상한액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 유의 통제는 전통에 어긋난다. 무엇보다 약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부패 최우수 국가

공직을 떠나 사기업으로 옮기는 행동, 이른바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투쟁의 결과 2005년 법이 채택됐다. 하지만 이 법은 효율적으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2009년에 첫 스캔들이 터졌다. 노동당 지도자 중 한 명인 비야네 하콘 한센이 정부 부처 요직(농림부, 노동부, 사회통합부, 보건부 등)을 거치고 나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민영 통신기업 고문으로 새 생활을 시작할 의도를 내비쳤다. 그는 스스로 40인 위원회가 정해놓은 퇴직 뒤 재취업 제한 기한을 최대한 적용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자신이 재직한 공직 관련 유사기업에 재취업하기로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에바 졸리 의원은 “그런 자리 옮김은 대단히 근친상간적이다. 제한 기한을 6개월로 정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바캉스가 더 늘어난 것뿐이다. 그렇게 짧은 기간에 자기가 접촉해온 인맥 네트워크를 상실하지는 않는다”(8)고 반박한다.

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노르웨이 지부 사무총장 그로 슬레트마크는 ‘가까움의 민주주의’가 “공적 결정과 공적 자산에 좀더 쉽게 접근하게 보장해준다”면서 “시민은 다른 어느 것보다 경제문제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2007년 테라증권 사건은 노르웨이에 금융위기를 예감하게 만들었다. 금융상품 특화 회사인 테라증권은 수력발전 덕택에 재정 상태가 좋은 시들을 설득해 미국계 은행 시티그룹이 발행한 고위험투자금융상품에 투자(4051억 크로네, 약 580억 유로)하게 설득했다. 담보로 설정한 것은 그들이 보유한 발전소에 들어올 향후 수익금뿐이었다.

제도 평등해도 기득권은 고착화

하지만 이런 예외를 통해 거의 전체의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공적자금을 현명하고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규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석유 이익배당금으로 대부분 마련되는 국부펀드(SWF·Sovereign Wealth Fund)가 그 모범 사례다. 지난 3월 현재 2조7600억 크로네(약 3550억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미결제 어음 잔고는 금융위기에도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이 기금에 관한 모든 정보는 공개된다.

사회민주주의와 더불어, 노조·사주·국가의 노·사·정 협력이라는 역사적 합의가 제도화됐다. 이 시스템 덕택에 노동계의 노조 가입률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정당과 사회 파트너 간의 관계도 긴밀해졌다. 노동당은 연간 500만 크로네(약 64만1천 유로)를 최대 노조연맹인 노르웨이 노총에서 지원받고, 지도자들은 흔히 노동당과 노총, 두 기구에서 책임자를 맡고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도 취약점이 있다. 마스달은 “부유층과 차상위 부유층 사이의 채용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되는 다양한 조치가 예전에는 중요한 사회적 동력을 만들어냈지만 요즘은 (고리타분한 탓에) 시스템의 폐색을 가져온다”면서 “선거 활동에 대한 평등한 접근은 보장돼 있지만 정치계 인물은 교체되지 않고 재생산되며, 정체되고 창조성도 부족하다. 정당자금 제한으로 새로운 정당 창설 의욕이 사라지며 정당이 축소되는 효과를 낳았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민중당(Fremskrittspar tiet)과 좌파사회주의당이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자본의 위력은 민주주의 시스템 밖에서 효율적으로 그들의 권력을 추구하고 행사하려는 반면, 정치는 다양화되지 못한 채 하나의 정치계층에 의해 재생산되며 시스템이 지배당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글•레미 닐센 Remi Nilsen
언론인·오슬로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각주>
(1) <다그블라데>, 오슬로, 2009년 11월 8일자 인터뷰.
(2) 졸리는 2002∼2005년 노르웨이 외무장관을 대리해 반부패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3) 2009년 노르웨이 국회의원 169명 중 약 50%는 고등교육을 받았다. 2007년 지방의원 1만946명 가운데 5%는 초등교육을 받았고, 51%는 고졸, 34%가 고등교육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자료: 노르웨이통계청(SSB), www.ssb.no).
(4) <다그블라데>, 오슬로, 위의 신문.
(5) 앙드레 시프랭, ‘독립미디어와 출판을 사랑하는 바이킹의 후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3월호.
(6) 2009년 총선에서 22.9% 득표.
(7) 노르웨이통계청(SSB), www.ssb.no/partifin.
(8) <다그블라데>, 오슬로, 2009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