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분노를 정치화하라

2018-02-28     클레망 프티장 | 소르본 대학 박사과정생

미국에서처럼 프랑스에서도 서민층은 선거를 신뢰하지 않으며, 정치판에서 배제돼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회운동가들은 미국의 지식인인 솔 앨린스키가 고안한 ‘지역사회 조직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앨린스키는 이 조직화를 통해 지역사회가 겪어온 포기나 체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했다.


2017년 11월의 어느 저녁, 100여 명의 사람들이 급진좌파정당 ‘라 프랑스 앵수미즈(LFI·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자가조직화(Auto-organisation)팀’에 초대받아 파리 동쪽에 있는 한 회의실에 모였다. 이날 워크숍 주제는 ‘앨린스키의 방법’이었다. 앨린스키는 ‘지역사회 조직화’를 이론화한 인물이다. 지역사회를 조직화하려는 운동은 미국에서 거의 80년 전에 나타났지만, 프랑스에선 잘 알려지지 않다. 윌리암 마티네와 레일라 차이비는 주민들이 “자신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끔 하는 시민의 자가조직화 방법”을 찬양했다. 차이비는 “지역사회 조직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앨린스키의 방법은 통한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간 솔 앨린스키(1909~1972)에 대한 프랑스 내 관심은 계속 증가했다. 앨린스키의 주요 저서들이 번역되거나 재번역됐고, 여러 워크숍과 대학교재, 간행물에서 앨린스키에 대한 주제를 다뤘다.(1) 그르노블 시민연맹과 오베르빌리에 시민연맹, 빌팽트의 감옥 93(Zonzon 93) 협회, 경찰의 차별적 검문을 반대하는 ‘경찰 검문 반대 단체’ 등 앨린스키를 표방한 단체들이 생겨났다. ‘전진하는 공화국당(La République en marche)’ 역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7년 11월 ‘전진하는 공화국당(LREM,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은 미국의 렉스 폴슨 교수를 초빙해 당원들에게 지역사회 조직화의 장점을 설명했다.(2) 

하지만 정치단체 중 명시적으로 앨린스키를 표방한 것은 ‘라 프랑스 앵수미즈’가 처음이었다. 2017년 8월, 라 프랑스 앵수미즈가 주최한 여름학교에서는 “빈민가를 되살릴 수 있는” 지역사회 조직화 기술을 다룬 워크숍이 여러 차례 열렸다.(3) 여기에서 자가조직화팀이 만들어졌다. ‘자가조직화(Auto-organization)’란 라 프랑스 앵수미즈가 ‘지역사회 조직화(Community organizing)’라는 영어를 불어로 옮긴 표현이다. 자가조직화팀은 공공 워크숍을 준비하는 것 외에도, “문을 두드리고, 고충담을 나누고, 힘 있는 사람을 공략하고, 우리 스스로 움직인다”라는 ‘시민의 자가 조직화 4대 원칙’을 담은 문서를 최근 발표했다. 

곳곳에서 현실화되는 앨린스키의 이념

앨린스키가 이론화하고 실행한 지역사회 조직화는 서민층을 결집하는 데 있어 매우 체계화된 방법이다. 소규모로 계속 활동하는 지역사회 조직운동가들은 먼저 해당 지역의 상황에 동화해야 한다. 그다음, 집집이 방문을 하거나 개인 면담을 통해서 주민들의 고충을 듣고,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도출해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개입전략을 짜고, 사전 회의를 계획하고, 어떤 창의적인 단체 행동과 로비를 할 것인지 연구한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이 운동은 인종차별주의나 자본주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퇴거조치나 고등학교 폐교, 의료보험 혜택 등 주민들의 삶과 직접 연관된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 

앨린스키는 이 방법이 공동의 계획을 위해 모인 “조직들의 조직”을 생겨나게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동의한 일체의 원칙과 목표, 관행”에 대해서는 너무 세분화해서는 안 된다.(4) 앨린스키는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적인 계획이란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민참여는 정책(재분배 등)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목적인 듯하다.
 
‘앨린스키의 방법’은 1939년 7월 시카고에서 백오브더야드 지역협의회(Back of the Yards Neighborhood Council, BYNC)가 설립되면서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백오브더야드는 시카고 남부에 위치한 빈민가로, 노동자, 이민자들의 밀집 지역이었다. 사회운동가였던 솔 앨린스키는 BYNC를 구성하기 위해서 도축업자 노조의 공산당 간부와 진보 성향의 천주교 주교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해당 지역 내 여러 조직들(가톨릭교회, 상부상조 연합, 주민 단체, 노조 등)의 대표들을 모아,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 목표는 주민들이 겪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신에 따라 나눠진 주민들을 공동의 이익을 위해 결집하는 것이며, 두 번째 목표는 주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대중 대항세력과 대변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역언론 및 국내언론은 BYNC를 유럽의 파시즘과 소련의 공산주의로부터 위협받는 “미국의 삶의 방식을 구원할 민주주의의 기적”이라고 극찬했다.(5)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둔 후, 앨린스키는 시카고에서 실험했던 개입전술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1940년에 산업사회단체(Industrial Areas Foundation)를 설립했다. 앨린스키는 자선사업가, 개혁주의자 성향의 사업가, 자유직 종사자, 강력한 가톨릭교회 등의 힘을 빌렸다. 앨린스키는 프랑스의 가톨릭 철학자였던 자크 마리탱(1882~1973)과 친분이 있었고, 가톨릭 시카고 대교구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이렇게 가톨릭교회로부터 특혜를 받았던 관계 덕분에 앨린스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매카시즘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시민참여’ 기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강연을 하고, BYNC에 견줄 법한 여러 단체를 설립하고, 지역사회 조직화 인력을 양성할 수 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이 민주주의 관건

앨린스키의 방법은 가톨릭교회와 제도적으로만 가까웠던 게 아니다. 한 지역에 동화되고, 주민들의 고충을 수합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단체행동을 하는 앨린스키의 방법은 가톨릭교회에서 사회정책의 기초가 되는 ‘보고 판단하고 행동한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개입의 중심이 되는 ‘지역사회’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지역 생활을 구성하는 교구를 떠올리게 한다.  

지역사회 조직화는 1970년대 들어서 엄청나게 증가했다. 68세대(68년 5월 프랑스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대학생들과 이에 동조해 시위와 청년문화를 이끌어갔던 당시 유럽과 미국 등의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말-역주)의 학생, 흑인, 평화주의자, 히피,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사회·정치·문화적 개혁을 가져오지 못했다. 대의를 위한 국가적 결집은 마이클 폴 리가 말한 ‘현관 정치(Front-porch politics, 최고권력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에 자리를 내줬다.

‘현관 정치’란 광범위하고 전략적인 쟁점이 아니라, 온전하게 그 지역에 대한 문제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6) 일례로 뉴욕의 퇴거조치, 농식품 업계의 중서부 지역 토지 독점 문제, 캘리포니아의 유독 폐기물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많은 단체들이 생겨났고, 과거의 활동가들이 혁명적인 열기를 누르고 보다 더 개혁적이되 보다 덜 급진적인 사회변화에 대한 비전을 위해 이 단체들에 합류했다. 대학에서 사회학, 역사, 정치학을 전공한 이 활동가들은 앨린스키의 원칙으로부터 때때로 거리를 두면서, 지역사회 조직가들을 빈민층 결집의 전문가들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빈민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족했다.

‘시민사회’와 협회는 이 당시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로부터 4년 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강화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으로 크게 성장했다. 지역사회의 자립과 독립(흑인해방운동에서만큼이나 자유주의자들에게도 중요한 주제임)이란 이름 아래, 공권력은 빈민 관련 문제에서 해방됐고, 빈민층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과 서비스도 ‘지역사회 조직’이 맡도록 했다.(7) 앨린스키의 방법은 미국에서 이미 진행되던 사회국가 해체에 맞서기 보다는, 오히려 여기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1980년대부터 지역사회 조직운동가들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제도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8년 11월에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 개입전술은 인정할만한 정치관행이 됐다. 1980년대에 시카고에서 지역 활동가로 일했던 오바마는 선거운동 기간 이 전략을 사용했다. 50년 전에는 “자신을 지역사회 조직운동가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에서 온 여행자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제는 지역사회 조직운동가란 역할이 전국적으로 인정받고 있다.(8)
신자유주의 시대는 이 모델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드러냈다. 노조는 소멸 직전에 있었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단순한 선거기계로 전락한 상황에서, 지역사회 조직화는 지난 30년간 미국 정계에서 드물게 대중을 대표하는 채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사회 조직화가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시카고의 일부 단체들(이들은 앨린스키가 남긴 유산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이를 자처하고 있다)은 시카고대학 부속병원이 25년 만에 시카고 남부지역에 성인 전용 중증외상치료센터(트라우마 센터)를 다시 여는 데 기여했으며, 오랜 기간 브론즈빌의 흑인 밀집 지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공립 고등학교인 월터 H. 다이에트 고등학교의 폐교를 막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신세대 활동가 중 몇몇은 지역사회 조직운동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중에는 흑인인권운동인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창시자 3인 중 한 명인 패트리스 컬러스와 시카고 시의회의 젊은 의원이자 버니 샌더스와도 친분이 있으며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조직의 일원인 카를로스 라미레즈-로사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우경화되는 미국 정치판의 성향 때문에 지역사회 조직화는 정치전략적 기회주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큰 해를 끼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앨린스키는 항상 공공연하게 모든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실용적인 현실정치(Realpolitik)의 장점을 칭찬했다. 협상이 가능하고 작은 승리라도 거둘 수 있다면, 누가 지배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앨린스키는 그의 저서에서 권력의 문제, 즉 국가기구(State apparatus)의 장악이 아니라 대중의 대항세력을 구성하는 문제를 고심했다. 따라서 지역사회 조직운동가의 주 업무는 미국 민주주의를 개혁하기 위해서 ‘대중’을 집결시키는 것으로 한정된다. 앨린스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민주주의의 불, 에너지, 생명은 대중의 압박에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 그 자체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지속해서 가하는 압력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정부(政府)다.”(9)

앨린스키가 말하는 ‘대중’은 대표자들을 통해서만 존재감을 지닌다. 앨린스키는 지역사회 조직운동가들은 해당 지역에서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선천적인 리더’를 찾으려면, 지역 명사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책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대표자나 리더를 통하는 것이다. 이 리더를 알아보는 것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아는 것과 같다. 이 리더와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결론적으로 자가 조직화의 틀은 이미 마련돼 있다.  


글·클레망 프티장 Clément Petitjean
소르본 대학 박사과정생(미국 문명 전공).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Saul Alinsky, 『Être radical. Manuel pragmatique pour radicaux réalistes(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Aden, Bruxelles, 2012) 및 『Radicaux, réveillez-vous!(급진주의자여, 일어나라!)』(Le Passager clandestin, Lyon, 2017).
(2) Julien Martin, ‘Le peuple de Macron(마크롱의 사람들)’, <L’Obs>, Paris, 2017년 11월 16일.
(3) Quentin Laurent, ‘Méthode Alinsky: comment les Insoumis veulent reconquérir les quartiers(앨린스키의 방법: ‘굴복하지 않는 자들’이 빈민가를 되살리려면)‘, <Le Parisien>, 2017년 8월 26일.
(4) Saul Alinsky, 『Reveille for Radicals』, Vintage, New York, 1989 (1st ed: 1946).
(5) <Chicago Daily News>, 1940년 7월; <New York Herald Tribune>, 1940년 8월 21일. Sanford D. Horwitt가 『Let Them Call Me Rebel: Saul Alinsky: His Life and Legacy』(Vintage, 1992 (1st ed.: 1989))에서 인용.
(6) Michael Stewart Foley, 『Front Porch Politics: The Forgotten Heyday of American Activism in the 1970s and 1980s』, Hill and Wang, New York, 2013.
(7) Olivier Zunz, 『La Philanthropie en Amérique: argent privé, affaires d’État(미국의 자선사업: 민간의 돈, 국가의 사업)』, Fayard, Paris, 2012.
(8) Nicholas von Hoffmann, 『Radical: A Portrait of Saul Alinsky』, Nation Books, New York, 2010.
(9) Saul Alinsky, 『Reveille for Radicals』, 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