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올어, 단일주의에 부닥친 공존의 언어

[Dossier]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라레위니옹’

2010-06-07     악셀 고뱅

“어떤 언어가 아이의 장래에 유용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라레위니옹의 부모 중 99%가 프랑스어를 꼽았다. 다음은 95%가 영어, 85%가 라레위니옹의 크레올어라고 대답했다.(1) 크레올어가 라레위니옹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며, 따라서 학교에서 크레올어를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프랑스어와 크레올어는 라레위니옹에서 문화적 화합과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언어다.

프랑스어는 라레위니옹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프랑스 본토와의 통합에서 핵심적 언어다. 또한 프랑스어는 영어와 함께, 라레위니옹을 인도양 서부 국가를 비롯해 국제사회와 화합할 수 있게 하는 언어다. 라레위니옹인에게 프랑스의 문화창작물(혹은 프랑스어로 번역되거나 더빙된 외국 문화)에 대한 학습이 필수불가결한 만큼, 프랑스어가 라레위니옹에서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한 언어라는 것은 자명하다.

크레올어에 대한 깊은 애착

 


라레위니옹 사회에서 프랑스어가 위용을 떨치는 것을 상기하면, 크레올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정도를 보여준 설문조사 결과는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크레올어 퇴치 정책이 진행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최근까지만 해도, 교육청 소속 감사가 “크레올어를 말살합시다!”라고 주장하고, 교육청 고위직은 이에 박수를 보냈다. 이 설문조사 결과가 공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크레올어학자나 사회언어학자, 언어학 관련자를 막론하고 아무도 크레올어가 라레위니옹 사회의 ‘유용한’ 언어에 속한다고 감히 주장하지 못했다.

 

사실인즉, 놀랍기는 해도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모국어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은 둘째 치고(오늘날 모국어에 대한 애착 표현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크레올어는 항상 라레위니옹 사회의 통합과 화합의 언어로 기능해왔다. 19세기 중반 사탕수수 경제의 성장을 가져온 수만 명의 인도인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20세기 초 무역과 유통망을 발전시킨 중국과 인도 구자라티 지방 이민자가 라레위니옹 발전에 주요 역할을 할 수 있던 것도 크레올어 덕분이었다. 오늘날 말라가시어나 시마오레어를 쓰는 이민자 대부분 역시 프랑스어와 연계된 크레올어를 통해 라레위니옹 사회에 적응해가고 있다.

반면 학교에서 크레올어 교육 배제는 부적응과 소외, 학업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맹률과 관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2) 라레위니옹의 16살 이상 65살 이하 문맹률은 14~18%로, 프랑스 본토의 두 배에 달한다(1946년 ‘프랑스령 해외도’로 편입되면서 교육제도는 본토와 유사함에도 말이다). 문맹퇴치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두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속도로는 문맹률이 4~6%라는 평균 수준에 도달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소요 비용 또한 막대하다.(3)

지배세력의 배척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 가지 원인 중에서도 언어적·문화적 요소에 중점을 두고 살펴봐야 할 것이다.(4) 라레위니옹 어린이가 알파벳의 기본원리와 작동구조를 익히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차치하고도(이도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이 어린이 대다수가 익숙지 못한 프랑스어로 알파벳을 배워가고 있다(프랑스어 쓰기가 얼마나 복잡한지는 다 아는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쓰기 교재의 문화적 측면은 어린이의 경험과 거의 관련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리언어학자는 이 두 가지 요소만으로도 어린이가 언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라레위니옹의 어린이는 두 가지가 아닌, 네 가지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어가 익숙지 못한 아이는 이런 어려움을 거의 극복할 수 없다. 크레올어를 쓰는 부모 밑에서 자라고, 초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는 프랑스어 교재에서 말하는 봄과 가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프랑스 크리스마스 음식인 칠면조 요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이 아이들이 사는 문화권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절만 봐도, 라레위니옹에는 건기와 우기 두 계절이 존재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를 모르는 것 같다. 그 덕택에 우리 아이도 계절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른바 ‘우리 조상인 골족’은 이제 사라졌지만, 이들의 아바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코트, 장갑, 목도리, 모직으로 된 하얀 생쥐가 겨울을 상징하는 것이라 배운다. 라레위니옹에서 12월은 점점 기온이 올라가 30~35℃에 달하는데 말이다. 겨울이란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겨울 모르고 ‘추위’ 배우는 아이들

혹자는 “어디를 봐도 똑같지 않은가! 프랑스를 봐도, 유럽을 봐도! 그런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왜 당신 같은 사람들은 늘상 쓸데없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인가? 왜 당신들은 그 좁은 세상만 보는가? 왜 우리 라레위니옹 어린이는 자신이 속한 세계 속에서만 갇혀 살아야 하는가? 왜 당신들은 교육을 정치문제화하는가?”라고 탓할 것이다. 읽기교육을 위한 워크숍 도중, 두 언어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프랑스어와 크레올어를 비교해봐야 한다면, 이는 ‘전면적인 방침 수정’이 요구되는 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진다는 것을 근거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라레위니옹의 5월은 가을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말을 꺼내면,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난을 받는다. 말하기를 거부하던 학생이 크레올어 수업을 받고 난 후 덕분에 프랑스어로 몇 마디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면, 이데올로기를 추구한다는 말을 듣는다(교무실에서 벌어진 토론 중 나온 말이다). 라레위니옹 어린이가 먼저 걷는 법을 배우고, 꼿꼿이 서는 법을 익히고, 그다음에 앞으로 나가는 법을 차근차근 익힐 수 있도록 아이의 다리에 힘을 실어주자고 요청하면, 교직원 회의에서 ‘분리주의자 같은 행위’라는 공격을 받는다.

물론 교사, 교육청 감사담당관, 교장 및 교감, 교육감 등이 모두 ‘언어말살주의자’이거나 ‘문화말살주의자’는 아니다. 이들 중에는 개방적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심리적 거부감과 구조적 문제로 교육 내용을 전면 수정하는 일은 진행이 매우 더디다. 또한 라레위니옹의 지역민 대부분의 모국어가 크레올어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5)

상황이 이렇기에, 문맹퇴치운동을 진행하면서도 의사결정권자 중 누구도 나서서 다음과 같이 감히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교육혁신의 일환으로, 학부모 동의 아래 향후 학업 실패 사례가 눈에 띄게 많은 지역의 학생을 대상으로 알파벳 습득이 학생의 모국어와 모국 문화로 이루어지게 할 것입니다. 이는 많은 이론 연구가의 연구와 라레위니옹에서 행해진 실증연구의 긍정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든 나서서 해야 할 말이다. 왜냐하면 “알파벳을 사용하는 언어로 읽고 쓰는 것을 한 번 배운 아이는 알파벳을 쓰는 다른 언어를 배울 때 알파벳의 기본원리를 다시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6) 따라서 프랑스어가 익숙지 못한 아이가 처한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즉, 이 아이에게 크레올어로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고, 아이에게 친숙한 문화적인 내용의 교재를 쓴다. 그런 다음 프랑스어로 말하기에서 진전이 보이면, 프랑스어로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어와 크레올어를 상호 보완적이며 파트너십을 이루는 관계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과 ‘문화말살주의자’ 사이에서 라레위니옹 사람만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언어야 말로 공존과 통합의 열쇠

단일언어주의와 단일문화주의는 배타적이며, 상이한 것은 고립시키고 제거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라레위니옹에서 프랑스어가 크레올어를 대상으로 보여온 모습도 이와 유사하다.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의 발전, 학업 실패 퇴치를 실현코자 한다면, 또한 라레위니옹 사회에서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와의 통합, 나아가 인도양 지역 및 세계와의 통합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방법은 다음과 같다. 크레올어와 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하고, 프랑스 문화와 크레올 문화를 모두 공식적인 라레위니옹의 문화로 인정하는 것이다(일각에서 주장하듯 프랑스 문화와 크레올 문화 둘 다 다중문화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단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길인 것이다. 앞서 언급된 설문조사에서, 어떤 부모는 프랑스어와 크레올어, 영어 말고 심지어 독일어나 스페인어, 중국어, 타밀어, 말라가시어, 힌두어 등도 언급했다. 이러한 언어들이 일부 섬 주민에게 실질적으로 중요한 언어임은 둘째 치고, 열린 언어교육이야말로 라레위니옹이 인도양을 넘어 세계로 무역과 문화교류를 넓혀갈 수 있는 길이다.

글•악셀 고뱅 Axel Gauvin
라레위니옹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프랑스어와 라레위니옹 크레올어로 창작.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각주>
(1) 라레위니옹 크레올어관리청 주관 아래, 2008년 12월~2009년 1월 입소스(Ipsos)가 한 설문조사 결과다.
(2) 이것이 다가 아니다. 2005년 중등 1년 입학시험 결과, 라레위니옹 학생의 평균 점수는 프랑스 본토 학생보다 적게는 10점에서, 많게는 23점이 낮았다.
(3) 문맹퇴치운동을 위해 라레위니옹과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 CAF(Caisse d’allocation familiale)는 2007~2013년 3100만 유로에 이르는 예산을 책정했다.
(4) 라레위니옹 문맹률과 관련해, 프랑스국립통계청 2008년 보고서를 보면 아동기에 프랑스어를 습득한 사람의 93%가 쓰기에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64%로 낮게 나타났다.
(5) 입소스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0%가 자녀에게 크레올어를 쓴다고 대답했으며, 프랑스어와 크레올어를 모두 사용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36%에 이르렀다.
(6) 미셸 파욜, 호세 훈카 드 모레, <읽기 및 읽기 습득 과정에 대해>(actes de la Journée nationale de l’observatoire de la lecture), 200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