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와 해적

2018-02-28     에블린 피에예 | 문학평론가

스크린과 책, 그리고 현실에서까지 무법자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들은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며 무엇이 거짓인지 보여주고, 자유를 누리는 기쁨의 순간들을 맛보게 한다. 다시금 해적이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른 가운데, 해적 영웅들의 위법행위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낭만주의 시대에는 무법이 위세를 떨쳤다. 영국의 시인 조지 바이런은 「해적(The Corsair」(1814)이라는 시로 스타가 됐다. 이 시에서 그는 살육과 사랑을 아무 거리낌 없이 일삼는 해적을 창조했는데, 이 캐릭터는 엘리트 청년들을 사로잡았다. 빅토르 위고는 추방당한 귀족 출신으로 악명 높은 산적두목이 된 주인공을 그린 <에르나니(Hernani>(1830)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또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여러 작품에 등장한 천재 범죄자 ‘보트랭’의 원형은 프랑수아 비독(1775~1857)이라는 실제 인물이었다. 비독은 경찰 간부가 됐을 뿐 아니라,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처럼 범죄자 출신이란 점으로 사람들을 매혹했다. 이 같은 매력은 댄디즘 신봉자이자 시를 썼던 살인범 피에르 프랑수아 라스네르(1803~1836)의 놀라운 성공 요인이기도 하다. 라스네르는 ‘사회 구조를 허물어뜨리고 싶었다’고 고백했으며, 그를 일컬어 샤를 보들레르는 “현대적 삶의 영웅 중 하나”라고 찬양했다. 
 
이보다는 조금 가볍지만, 유사한 형태가 ‘로베르 마케르’라는 캐릭터다. 마케르는 벵자맹 앙티에가 창조한 악당이다. 희극배우 프레데릭이 마케르를 연기하며 마케르는 비극 속 부르주아의 가치들을 비꼬는 패러디로 다시 태어났고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경찰의 끄나풀과 형사들을 죽이는 건, 아무 감정 없이 할 수 있어.”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보면 어떤 모습일지 짐작할 수 있는 마케르 캐릭터는, 두 번의 혁명으로 점철된 1820년대와 1840년대를 돋보이게 했다. 더 넓게 보면, 19세기는 대부분 ‘세상에서 배척당한 자들’에게 사로잡힌 시기였던 것이다. 사회규범으로 억압받았던 이들, 그리고 저항적이고 기이한 성격을 지닌, 사회를 변혁하려던 이들에게 말이다.
 
국가에 맞서는 반역자. 이는 거리의 위협인 동시에 희망이었다. 폭동, 음모, 모반, 봉기야말로, 프랑스 대혁명과 고별하며 빗발치는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19세기를 특징짓는 단어들이다. 이 시기에는 ‘복수자들의 단체(바르베스가 7월 왕정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한 공화파 성향의 비밀단체-역주)’ 등 비밀단체들이 융성했으며, 이 단체들은 토론에 그치지 않고 직접 무장까지 했다. 루이 블랑키나 아르망 바르베스 같은 주모자들은 투옥된 후에도 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연이은 패배로 이 단체들은 반역도들을 내버린 채 무정부주의자, 노동자, 불량배 등 위험인물들과 하층민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이 대중의 공감을 얻기 힘들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가 설립되고 1871년 파리 혁명자치정부가 들어선 후인 1905년, 모리스 르블랑이 탄생시킨 괴도 아르센 뤼팽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 외 캐릭터들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해적의 귀환, ‘일시적 자율지대’의 축제
 
그러나 오늘날, 무법자들은 또다시 영웅이자 선구자로 등장했다. 극장가에서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2003년 이후 상당한 수익을 연일 경신했으며, 이런 무법자 신드롬은 출판계와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무법자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피츠버그대학의 대서양 역사학자 마커스 레디커는 자신의 저서(1)에서 해적들의 공동생활을 평등주의적, 집산주의적(집산(集産)주의는 주요 생산수단을 공유화하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보는 정치 이론-역주), 민주주의적 이상의 실현으로 해석했다. 이 해적들은 착취당하는 것을, 권력을, 그리고 정부를 거부함으로써 ‘주인 없는 인간’이라는 문화를 만들고, “민족과 국가의 근대적 정의”에서 벗어나 “탈국가적 저항의 숨겨진 이야기”를 구현해냈다.
 
레디커에 의하면, 다른 삶을 감히 꿈꾸며 실행에 옮겼던 이 해적들은 낭만적이고 강력한 중독성을 발휘했다. 이들의 원칙과 행동이 “1760~1770년대 혁명기의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게다가, 해적들은 제법 도덕적이기도 하다. ‘정의(Justice)’야말로 이들에게는 근본적 가치다. 여타 해적 전문학자들도 이 점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검은색 해골 해적기를 나부끼는 해적단이 민주적인지에 대해서는 미심쩍어 한다. 그렇지만 해적왕 벨라미(1689~1717, 영국 출신의 해적으로, 2008년 포브스가 선정한 역대 해적 약탈금액 리스트 1위에 오른 바 있음-역주)가 자신의 재판에서 한 말은, 통쾌함을 넘어서서 현실감을 선사한다.
 
“저들, 저 방탕한 자들이 우리를 단죄하는구나. 저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법망을 피해 빈자들을 약탈하고, 우리는 스스로 용기에 힘입어 부자들을 약탈한다는 것이다. 저 불한당들의 엉덩이를 핥으며 일거리를 얻느니 너희 또한 우리 중 하나가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2)
 
때로는 그런 여유, 그리고 열정을 부추기는 능력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일시적 자율지대(Temporary Autonomous Zones, TAZ)와 ‘보호지대(Zone to Defend)’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 ‘하킴 베이’라는 예명으로 더 알려진 피터 램본 윌슨도 이 ‘혁명가’라는 관점을 택했다. 그는 『해적의 유토피아』(3)라는 저서에서 17세기 중반 모로코 인근의 무어인 해적들과 “이슬람교로 개종한 배교자”들이 만들어낸 “사해의 해적 공화국”이라는 가설을 언급했다. 이 해적 공화국은 모두가 평등하게 권력과 부를 공유하는 민주적 영토였다는 것이다. 레디커나 윌슨은 해적의 폭력에 관대한데, 지배를 거부하기 위해 폭력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해적은 경제를 거부하며, 오래 사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마치 자기 밴드에 둘러싸인 로커(Rocker)처럼, 짧고 굵으며 강렬한 삶을 선호하는 것. 지금 이 순간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으랴!
 
이런 시각은 적극적인 반문화의 기반을 제시한다. ‘일시적 자율지대의 원형’을 구축했던 해적들처럼, 오늘날 그 후계자들 역시 “합의된 현실에 대한 성공적인 기습”(4)에 나설 의무가 있다.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기 위해, 기쁨의 순간을 앞당기기 위해, 지배와 피지배의 근간을 흔들기 위해, 그리고 함께 자유를 누리는 축제의 순간을 위해.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의 코믹북 『브이 포 벤데타』로 유명해진 마스크를 쓴 채, 온갖 종류의 사이트를 쾌활하게 해킹하며 “우리는 99%의 사람들”이라 표방하는 ‘어나니머스’ 역시 이런 이상을 공유할지 모른다. 2006년 줄리언 어산지가 내부고발자들이 폭로한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설립한 사이트, 위키리크스처럼 사회의 감춰진 이면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에드워드 스노든이나 첼시 매닝(5)처럼 고독한 정보 무법자들은 염탐당하고 있는 대중의 상황이나 미국 외교의 이면을 폭로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돌격을 계획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권력자들로부터 대중에게 진실을 되돌려줌으로써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길을 제시한 셈이다.
 
‘아름다운 불복종’의 가치, 그리고 한계
 
여기에 대중에게 진실을 전하는 또 다른 ‘무법’이 존재한다. 바로 ‘시민 불복종’이 그것이다. 이 용어는 1849년 미국 문학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짤막한 저서(6)이자, 2017년에만 5쇄를 발간한 『시민 불복종』이라는 책에서 따온 것이다. 노예제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소로는 이 책에서 “법과 재물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시민’이라는 주체를 과대평가하지는 않았지만, 무릇 진정한 시민이라면 설령 징역이나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입법자의 압력 아래서 자신의 양심을 단 한 순간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불공정한 법에 따르길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뼛속부터 혁명적인” 행위인 셈이다.
 
이런 관점은 레프 톨스토이의 관점과 매우 유사하다. 톨스토이는 보통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으나, 인생 후반부에는 일부 러시아인들과 많은 유럽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정치 및 영성 지도자로 활약했다. 톨스토이는 전환기인 1905년에 비폭력 불복종을 찬양하는 글(7)을 집필해 또 다시 시류를 이끌었다. 그는 “우리가 겪는 악의 대부분은 (…) 도덕적 개선에 몰두하는 대신, 정부의 압정에 순순히 따르는 데서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또한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는 자신의 저서에서 소로의 ‘불복종’ 개념에 공감을 표하며 소로를 예찬했다.(8) 이는 죽음을 맞이하면서까지 신념을 고수하며 크레온 왕의 명령을 거부한 안티고네의 불복종을 연상시킨다. 1793년의 인권선언에서도 유사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때, 국민 전체와 그 각 구성원에게 폭동은 신성한 권리이자 필수적인 의무다.”
 
그러나 ‘일시적 자율지대’의 해적들에서부터 시민 불복종을 실현한 근사한 영웅들에 이르기까지, 이런 새로운 형태의 단체들은 현재의 법과 규범에 반발해 이를 고치려 하지만, 혁명을 통해 법과 규범을 뿌리부터 뒤엎으려 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무기는 평화적이며, 정치적 행위보다는 도덕적 의미에 가깝다. 개인적 차원의 저항이나 영혼의 반란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정치적 행위라고 할까. 
 
그 유명한 MIT에서는 ‘시민 불복종’을 치하하는 상금 25만 달러 상당의 상을 제정했다. 이 상의 소개 영상은 마틴 루터 킹의 격언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누구나 불공정한 법에 불복종할 도덕적 책임을 지닌다.” MIT 미디어랩 소장 조이 이토는 이 상의 지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남들이 당신에게 하길 바라는 것을 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이 상의 상금 중 일부는 비즈니스 네트워크 ‘링크드인’의 공동 창립자 렐드 호프먼의 지원을 받았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작가 겸 문학평론가. 저서 『반역자들의 예언』(2002), 『세계를 조종하는 리모컨』(2005) 등이 있다.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세금혁명』 등이 있다.
 
(1) Markus Rediker, 『Pirates de tous les pays. L’âge d’or de la piraterie atlantique 1716~1726(각국의 해적: 대서양 해적활동의 황금시대, 1716~1726년)』, Libertalia, Paris, 2017. 문고판 재간. 동 저자, Les hors-la-loi de l’Atlantique. Pirates, mutins et flibustiers(대서양의 무법자: 해적과 폭도, 사기꾼), Le Seuil, Paris, 2017.
(2) ‘유보적’ 입장을 보이는 역사학자들: Jean-Pierre Moreau, 『Une histoire des pirates. Des mers du Sud à Hollywood(해적들의 역사: 태평양에서부터 할리우드까지), Tallandier(Texto), Paris, 2016. Gilbert Buti, Philippe Hrodej, Histoire des pirates et des corsaires. De l’Antiquité à nos jours(해적과 사략선의 역사: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CNRS, Paris, 2016.
(3) Peter Lamborn Wilson, 『Utopies pirates. Corsaires maures et Renegados d’Europe(해적의 유토피아: 무어인 해적들과 유럽인 배교자들)』, L’Eclat/ Poche, Paris, 2017. 초판은 1998.
(4) Hakim Bey, TAZ-Zone Autonome Temporaire(TAZ-일시적 자율지대), L’éclat, Paris, 1997.
(5) 에드워드 스노든: 중앙정보국(CIA)과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했던 미국의 컴퓨터 기술자로, 2013년 미국내 통화감찰 기록과 PRISM 감시 프로그램 등 NSA의 다양한 기밀문서를 공개해 파장을 일으킴 첼시 매닝: 위키리크스에서 최대 규모의 미국의 군사 기밀 사항이 포함된 내부 자료를 제공한 내부 고발자 -편집자 주.
(6) Henry David Thoreau, La désobéissance civile(시민 불복종), Gallmeister, Paris.
(7) Léon Tolstoï, 『Le refus d’obéissance. Ecrits sur la révolution(복종의 거부: 혁명에 관한 에세이)』, L’Echappée, Paris, 2017.
(8) Frédéric Gros, Désobéi(불복종하기), Albin Michel, Paris, 2017. Roger-Pol Droit, ‘L’insurrection est une affirmation intime(저항은 내면의 표명이다)’, <르몽드>, 2017년 8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