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의 화려한 식도락 파크

2018-02-28     장바티스트 말레 | 기자

DIY 및 스포츠용품, 조명, 장난감 상점이 즐비한 볼로냐(에밀리아로마냐주) 외곽의 상가지역 중심부에 있는, ‘피코 잇탈리 월드(Fico Eataly World)’에 들어서자, 유원지에나 있을 법한 대형 금속탐지장치가 초입을 알렸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울타리 너머에는 10헥타르에 걸친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8헥타르는 4만 4천 개의 태양전지판으로 덮여 있고, 2헥타르는 동물이나 미니정원을 위한 작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중앙입구의 회전문 다음으로는, 사과 수백 개가 선반에 가지런히 진열된 높은 벽이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이 벽은 2015년에 매출 2억 5,500만 유로 이상을 기록한 과수 재배 전문 기업연합인 멜린다의 후원을 받아 설치됐다. “유럽의 사과 품종은 1,200종 이상인데, 그중 1,000종이 이탈리아에서 생산되고, 200종은 나머지 유럽국가에서 생산된다. 그래서 우리가 피코를 만들게 됐다”라고 벽보에 쓰여 있었다. “이것은 진짜 사과다. 우리는 보름마다 과일을 교체한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파크인 피코는 낭비 방지를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된 사과를 버리지 않고 자선사업에 기부한다”라고 파크 홍보 담당인 실비아 자넬 리가 웃으며 말했다.
 
프랑스 매체로부터 ‘식도락 디즈니랜드(프랑스 인포, 2017년 11월 15일)’ 또는 ‘농산물 가공식품 유원지(르 피가로, 2017년 11월 14일)’라는 수식어를 얻은 피코(Fico)는 ‘Fabbrica italiana Contadina’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이 ‘이탈리아 농민 작업장’은 일렉트로룩스 기업과 라바차 커피, 뉴홀랜드 트랙터, 무티 토마토 통조림회사, 삼성, 볼로냐 대형소시지 기업연합, 월풀 코퍼레이션, 카르텔 가구, 알레시 커피 메이커, 마지막으로 유제품 대기업인 그라나롤로의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2017년 11월 15일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환경부 및 노동부, 농림부, 문화관광부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150명 이상의 기업 회장들이 주최한 파크의 개관식이 열렸다. 이들 중에는 유원지에 회사명을 준 식료품 배급 회사인 ‘잇탈리’의 창시자이자 회장인 오스카 파리네티도 있었다.
 
그의 부친이 설립한 가전제품 전문 슈퍼마켓 체인인 유니유로를 상속받았던 파리네티는, 이듬해 ‘잇탈리’ 설립을 위해 이 회사를 팔았다. 콧수염이 난 이 기업가는 지구 곳곳의 상점이나 레스토랑에 식료품을 수출하면서, “이탈리아에서 국가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도전적인 회사”라는 명성과 함께 전설적 영웅이 됐다. 잇탈리는 미국과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독일, 일본, 터키, 한국에 직판점을 두고 있으며, 연안에 메디터레이니언 쉬핑 컴퍼니(MSC) 회사의 몇몇 유람선을 이용한 판매점도 있다. 이탈리아의 최정상급 정치 지도자 및 기업가들이 참석한 피코 잇탈리 월드의 개관식은, 이제 잡지 표지뿐 아니라 공항의 대형광고판에서도 볼 수 있는 새로운 ‘사업 왕’, 파리네티의 대관식이었다.
 
이탈리아산은 거의 없는 ‘Made in Italy’
 
입구의 사과 아래에는, 다른 협력회사인 자전거 브랜드 비앙키가 ‘이탈리아에서 조립한’ 수백 개의 파란색 세발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제출하면 자전거를 하나 대여할 수 있다. 자전거에는 앞뒤로 나무바구니가 장착돼 있다. “피코를 위해 고안된 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누구나 대규모 파크에서 편히 이동하며, 어려움 없이 구매품들을 운반할 수 있다”라고 홍보담당관이 말했다. “우리는 1억 2천만 유로를 투자했다. 파크는 방문객들이 최소 20유로씩만 지출해도 수익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표는 2020년까지 방문객 수 600만 명을 달성하는 것인데, 방문객 중 1/3은 이 지역에서, 1/3은 이탈리아의 그 외 지역에서, 나머지 1/3은 해외에서 오는 것이다. 내부에는 사탕들로 장식된 커다란 회전목마에 붙은 문구가 파크의 기본 가치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우리는 이탈리아를 위해 일한다. 
2. 우리는 진심을 담은 장소를 만든다. 
3. 우리는 이야기해야 한다. 
4. 지구가 우선이다. 
5. 우리는 세상과 소통한다. 
6. 즐기는 법을 배운다. 
7. 존중과 비즈니스의 가치를 이해한다.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의 ‘녹색 자급자족체제’에서 탄생한 농산물 가공 산업의 ‘완벽한’ 총합체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현실에 완벽하게 적응해, 엽서 속 이탈리아의 이미지, 즉 이국적인 것에 대한 상상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러나 농산물 가공식품 포장엔 ‘Made in Italy’로 표시돼 있을 뿐, 재료 중 상당부분은 이탈리아 산이 아니다. 이는 관세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2016년에 이탈리아는 상당량의 면류(21억 9천만 유로), 퓨어 올리브오일(14억 2천만 유로), 커피(12억 9천만 유로), 치즈(22억 6천만 유로)를 수출했는데, 이는 대량의 밀가루(12억 9천만 유로), 올리브유(13억 9천만 유로), 커피(12억 유로), 우유, 발효유 제품과 농축유(10억 유로)를 수입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자마자, 관람객은 커다란 목재 조명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슬로건이 자연보호와 ‘전통’, ‘이탈리안 식도락’, 생물 다양성을 쉼 없이 강조하는 새로운 장르의 소비전당을 발견하게 된다. 플래카드 중 하나는 ‘존중, 멋지다’라고 요약하기도 했다. 원반형 치즈, 돼지고기 제품, 올리브오일이나 발사믹 식초, 와인 또는 맥주가 담긴 유리병, 과자 상자, 각종 잼이 담긴 통 등…. 피코는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농산물 가공식품 쇼핑센터다. “우리는 장르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라고 홍보 담당관이 설명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선 ‘made in Italy’의 신전에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탈리안 식도락에 견줄 수 없다. 이곳은 농산물 가공 산업의 전시장이자 상점, 관광지이며 동시에 즐기는 법을 배우기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라고 자넬 리가 말했다. 
 
거대한 창고형 매장인 이케아처럼, 피코의 닫힌 세계 속에서 우리는 강요된 코스를 피할 수 없다. “피코에 방문하는 것은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홍보 담당관이 말했다. 펼쳐진 파크의 지도는 인상 깊었다. 사람들이 아주 작게 그려져 있었는데, 이들은 45개의 레스토랑 중 한 곳에서 저녁을 먹고, 제품 시식에 참여하고, 스포츠 전용공간에서 운동하고,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요리 수업에 참석하고, 10제곱미터 남짓한 울타리 안에 있는 돼지와 소를 구경하면서 즐겁게 지낸다. 피코 잇탈리 월드는 ‘푸드 투어리즘’을 선도하는 쇼핑센터의 재발견을 상징한다. 
 
직원 식권도 없고, 무보수 노동 30만 시간
 
이곳의 소규모 생산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쇼핑센터 방문객들은 ‘농민 작업장’이라고 불리는 40개의 내부 생산시설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론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이 작업장에서 생산한 제품들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거대하고 시끄러운 공장 풍경이 아닌, 편하게 볼 수 있는 큰 주방과 같은 작업장에서 나온 제품들 말이다. 이곳에선 구수한 빵 굽는 냄새도 맡을 수도 있다. 
 
눈여겨볼 만 한 점은 용역회사 란스타드의 임시사무소 진열대였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 “피코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란스타드 계약을 했으며 우리 사무소를 거쳐 갔다. 우리는 월 단위, 주 단위, 일 단위 계약만 제안한다. 계약은 1일부터 4개월까지 가능하다. 현재 우리는 종업원과 요리사, 작업기사, 판매원을 모집하고 있다”라고 채용담당자가 말했다. 아마렐리 감초상점 직원들이 4개월, 라바짜 커피상점 직원들이 3개월 계약을 맺었다면, 운이 가장 좋았던 것이다. 광고대행사에서 채용된 안내원들, ‘핑크 레이디’로 등록된 브랜드 사과를 나눠주는 이들은 단 며칠간의 임시계약만 가능하다(최근 교배로 얻은 사과임에도 불구하고, 진열대에는 ‘전통 사과’라고 표기돼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이 일을 하게 됐다”라고, 장밋빛 모자를 쓴 젊은 여직원이 설명했다. “속는 사람은 없다. 피코는 우리의 불안정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 파크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식품이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정작 여기서 일하는 이들의 식사에 대한 고려는 없다. 심지어 식권조차 없다.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오늘처럼 점심 먹으러 나갈 틈도 없이 바쁜 날에는, 여기서 12유로짜리 파스타를 사 먹어야 한다. 내 일당은 43유로인데 말이다.” 대다수 직원들의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에, 대부분 호텔이나 요식업 분야를 전공하는 미성년 학생들이 무보수로 교대 근무하는 상황까지 추가된다. 란스타드와 피코 잇탈리월드에서는 이탈리아 전역의 200여 개의 학교에서 온 2만 명의 학생들이 무려 30만 시간의 무보수 노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 
 
2016년에 매출 1억 7천만 유로 이상을 기록했던 비스킷 및 파네토네 생산 거대 기업인 발로코의 상품 진열대 위에 놓인 연대표가 ‘밀의 보편적 역사’를 소개하며, 고대 이집트부터 자본주의 시대, 그리고 회사의 창립까지 손님의 시선을 끌었다. 이곳에서 유리창으로 트여 있는 공간을 통해 소규모 생산시설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모히토로 만든 탑 앞에서 관광객들의 카메라 플래시 아래로 하얀색 위생모를 쓴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비스킷 생산을 위해 공작기계를 다루고 있었다. 관람객 쪽에는, 10개의 게시판이 가공단계를 설명하고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기서 멈추지 마라. 역사를 통한 여행은 계속된다. 우리 제과점에서는 프란체스코 안토니오 발로코가 1927년에 포사노에서 개점했던 첫 제과점의 분위기로 맛있는 자사의 특제품을 만날 수 있다.”
 
모조 장식 안에는, 오래된 저울과 (독일 체인 마켓인 리들의 PB제품처럼 발로코가 자체개발상품을 위해 생산한 비스킷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회사 제품들이 보관돼 있었다. 비스킷 재료에 들어간 밀가루는 어디에서 생산됐을까? 상점 담당자가 “모르겠다”라고 털어놓았다. 수북이 쌓인 홍보책자의 표지 속 주인공인 알베르토 발로코의 얼굴 밑에는 대문자로 다음과 같은 제목이 쓰여 있었다. ‘나는 제과사가 되고 싶었다.’ 
 
 
글·장바티스트 말레 Jean-Baptiste Malet
기자. 『L’Empire de l’or rouge. Enquête mondiale sur la tomate d’industrie(붉은 황금의 제국. 전 세계 토마토 산업 조사보고서)』(Fayard, 2017년)의 저자.
 
번역·김세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Fico Eataly World e Randstad insieme per alternanza scuola-lavoro’, 2017년 10월 9일, www.adnkron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