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개방의 지속 가능한 섬나라를 위해
[Dossier]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라레위니옹’
“누 레 카파브.”(‘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
라레위니옹의 세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테무아나주>가 2009년 11월 에어버스 대형 기종인 A380의 시험비행 뒤 붙인 제목이다. 에어 오스트랄은 라레위니옹 여러 기관의 지원에 힘입어 창설된 소규모 항공회사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 A380 두 대를 구입했다. 이 기종은 메이저 항공사만 감히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에어 오스트랄 점보기는 오는 2014년부터 에어프랑스, 코르스에어플라이 같은 메이저 항공사보다 3분의 1 할인된 요금으로 매번 840명 이상의 승객을 실어 나를 것이다.
라레위니옹 롤랑가로스공항의 업무를 대행하는 상공회의소는 2025년이 되면 지금보다 두 배가 많은 승객 300만 명을 맞아들일 것으로 예상한다. 1970년대의 평온한 질로공항 시절보다 무려 100배나 늘어난 수치다. 그때는 반바지 차림에 짧은 양말을 신은 헌병이 질로공항을 지켰다. 총리 출신인 미셸 드브레(1963~88년 라레위니옹 하원의원으로 활동)는 민족주의 우파 이름으로 이른바 ‘영토의 연속성’을 주창해왔다. 프랑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1만km), 위험한 자치주의와 공산주의의 여러 분파가 헤집고 다니는 주를 ‘본토’에 붙들어두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지정학적 이율배반의 섬
라레위니옹을 고립 상태에서 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 드브레는 “통신, 교통 등 모든 유형의 소통은 본토와 해외 영토 간에 해야 한다”고 했다.(1) 그는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해외영토이주국의 지원을 받아 체계적으로 수천 명의 레위니옹 젊은이를 프랑스 본토로 이주시켰는데, 자치주의자는 이를 두고 “새로운 흑인 노예무역”(2)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영토의 연속성 방침이 라레위니옹을 배타적이면서도 본토와 숨막힐 듯 갑갑하게 대면하는 상황으로 몰아갈 뿐이며, 인근 지역과의 단절을 심화시키고 세계화 논리를 더욱 강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3)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좌파가 다수를 차지한 지방의회는 몇 년 전부터 라레위니옹이 ‘영토의 연속성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것에 분통을 터뜨렸다. 영토의 연속성 보조금은 (또 다른 프랑스 해외 영토령인) 코르시카섬의 각종 지형적 제약을 덜어주기 위해 지급하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금이다. 결국 프랑스가 법률을 개정해 이 지원금의 수혜 대상을 해외 영토 전역으로 확대했지만, 라레위니옹 사람은 코르시카 사람이 받는 돈의 60분의 1밖에 받지 못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1월 라레위니옹에 잠시 체류하며 이곳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고, 프랑스 본토의 종속에서 벗어나려면 주변 지역에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라레위니옹은 그걸 기대한 게 아니었다. 문호 개방은 라레위니옹의 대외업무를 맡는 의회기구의 10년째 당면 과제다. 라레위니옹이 관계를 희망하는 곳은 인도양 남서부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근 섬(2025년이면 그곳 거주자가 3천만 명에 이르고, 그 가운데 9할이 마다가스카르에 살 것이다), 그다음은 아프리카 동남부 지역 국가, 그리고 거대 문명권이자 경제권으로 떠오르는 국가(인도·중국), 끝으로 유럽이다. 유럽은 이제 열대지방에서도 피할 수 없는 곳이 된 것이다.(4)
운명 개척할 종잣돈이 없다
거대한 해양 지역도 사정거리에 두고 있다.(5) 물론, 라레위니옹 사람은 어업을 생업으로 하지 않는다. 작가 로제 바이양은 1960년대 초,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생드니의 대로에 사람이 보이지 않자 이렇게 썼다.(6) “그들은 사이클론이 갑자기 나타나는 인도양을 쳐다보는 것을 싫어한다.”
라레위니옹 주변에서 ‘프랑스’ 해상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업가 이브라임 구라말리는 이렇게 단언한다. “40년 전부터 나는 국민을 먹여살리는 데 이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부가 알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바다를 경작하는 것은 예술이나 다름없습니다.”
모잠비크에서 ‘바이오’ 라벨을 붙인 새우업체를 설립한 그는 이 나라에서 프랑스 기업으로는 석유회사 토탈에 이어 두 번째로 투자를 많이 했다.
구라말리는 프랑스의 ‘배타적’ 해역인 라레위니옹의 어업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될 위성 수신국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에어 오스트랄의 변화된 모습을 본떠 그곳에 해운회사를 설립하려 한다. 중국, 캐나다, 브라질 투자자가 그 지역으로 몰려드는 시점에 프랑스어 사용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인도양에 프랑스 대학을 다시 세우기를 꿈꾼다.
라레위니옹의 대표적 기업가인 그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여러분의 운명을 다시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텅 비어 있는 주머니로 그렇게 하란 말입니까?”라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는 그동안 라레위니옹이 얻은 노하우와 이곳 사람들이 이룬 개발을 자랑스러워하며 “우리는 교육, 보건, 사탕수수, 재생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최고”라고 했다. 그럼에도 투자를 보장해주는 체계가 없어서 이런 강점을 살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1990년대까지는 프랑스 대외무역보험회사(Coface)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그 후 프랑스 해외령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 2009년 12월 8일 프랑스 정부 산하 해역위원회(Cimer)가 해양 정책에 관한 녹서를 발표했다.(7)
당장 라레위니옹은 세계 금융위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12년 이래 경제상황이 가장 악화돼 심각한 불평등과 빈곤을 겪는다. 인구의 52%가 한 달에 817유로 미만(프랑스 기준 최저빈곤층 해당)으로 생활하는데, 프랑스 본토에서는 13%이다. 지방의회 의장인 폴 베르제스는 이를 두고 ‘사회복지 차원의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했다. 더구나 라레위니옹 사람 가운데 17%는 473유로 미만(지역 내 최저빈곤층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살며, 그들 가운데 14만7천 명은 최소 사회보장비 혜택을 받는다. 실업률은 프랑스 본토보다 세 배 높다(2007년 24%, 본토는 8%). 특히 25살 미만 실업률은 훨씬 높다(실업자 가운데 49%). 무직자는 2009년에만 24% 급등했다.
바칼로레아를 취득하고 2년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문맹이 10만 명을 넘고, 16~25살 인구의 21%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본토는 9%). 2009년 5~7월 라레위니옹에서 소집된 해외삼부회의에서는 민간 분야처럼 공공 분야에서 “젊은이에게 고용 우선권을 부여하고, 모든 교육에서 라레위니옹의 정체성을 고려하며, 교육체제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사회 결속을 강화하자”는 안건이 제시되었다.
소득은 반토막, 문맹·실업은 두세 배
“철도는 1963년 12월에 마지막으로 운행되었고….” 이는 바이양이 그 섬에 체류했을 때 확인한 사실이다. 라레위니옹 사람은 한편으로는 향수를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분노를 표출하면서 그 이후로 끊임없이 다음 문제를 놓고 논쟁해왔다. 기차냐 아니면 자동차냐? 집단이냐 아니면 개인이냐? 공공서비스냐 아니면 자유냐? 하지만 (주민 81만7천 명에) 자동차는 이미 40만 대가 넘어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고 있다.
2025년에는 주민 100만 명에 자동차가 80만 대에 이를 것이다. 라레위니옹 지역에너지청의 로랑 고트레는 교통체증 구간을 합산하면 약 3천km에 이르게 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8) 이에 따라 지방 전역을 다시 전철이라는 공동 교통수단으로 연결하자는 안이 나왔다. 하지만 해외 영토에선 전례가 없다.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전철이 운행되고 공공부문 업무가 부활할 것이며, 일자리(공사장에 2천 개, 향후 운용에 300개)가 창출될 뿐 아니라, 오염은 줄어들면서 전철이 연결되는 지역에는 새로운 활동 중심지가 형성될 것이다.
2007년 1월, 도미니크 드빌팽이 이끄는 정부와 체결한 ‘마티뇽 협약’에 의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합동으로 자금을 대는 체제가 마련되었다. 정부·유럽연합·라레위니옹이 참여했으며, 몇몇 기업은 나중에 ‘임대료’ 형식으로 돌려받기로 하고 나머지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는 프로젝트 출자에 대한 보증을 해주었다.
전철 프로젝트, 공공성의 승부수
지방의회 다수당인 라레위니옹 공산당(PCR)이 마티뇽 협약을 든든하게 떠받쳐주고 있어 프로젝트는 이미 상당히 진척되었다. 하지만 자금 조달 문제는 완결되지 않았고, 공사도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라레위니옹 공산당 대표인 베르제스는 선거에서 승리해 추가로 전철 보조금을 받아내고 전철 건설의 당위성도 인정받으려 한다.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한 의회 의장 앞에 새로운 마라톤이 예고된 셈이다. 그의 일간지 <테무아나주>는 1970년대부터 철도 운행 재개를 옹호해왔다.
하지만 철도 건설과 전철 운행 재개는 무엇보다 이 섬의 핵심 정치 쟁점이 되었다. 이제는 고전적 정치 주제(이를테면 ‘법적 지위’)보다 ‘개발’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우파에서는 ‘자유’라는 명분과 돈을 더 내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또 끔찍한 베르제스를 제거하려는 의도로 전철을 반대한다. 좌파에서는 새로운 교통수단에 대한 선택을 확고부동하게 만들어 섬 전역으로 지선을 확장하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자동차 일색’인 현재 상황을 대체하는 개발 유형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게’ 될 것이다. 반대로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투자 계획은 우파에 의해 재검토될 것이다.
베르제스는 무리수를 두지 않고 안정하게 행동한다. 사회복지 주택 프로그램 중단 등 경제 위기로 1년 사이 공공 토목공사 분야에서 7천 개 일자리가 날아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라레위니옹 공사장을 구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터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는 우파를 상대로 한 정치 쟁점화를 노리고, 경제 활성화의 결정적 수단으로 제시된 전철 프로젝트에 막판 승부수를 던지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마티뇽 협약을 승인한 것은 바로 우파 ‘대중운동연합’(UMP) 정부였는데, 오늘날 지방의 우파 진영은 의회의 프로젝트라는 이유만으로 감히 전철 프로젝트와 마티뇽 협약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사르코지는 지난 1월 19일 라레위니옹에서 자신의 소망을 프랑스 해외 영토 전역에 드러내놓기로 했지만, 시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환경보호 문제에서 본토와 다른 해외 영토보다 상당히 앞서 나가는 라레위니옹에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그는 향후 ‘대양과 태양’의 장점을 가진 라레위니옹을 치켜세웠고, ‘디지털의 확충’(번영의 증거이자 ‘본토’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을 약속했으며, 의과대학 설립 등을 희망했다. 그는 “(라레위니옹에서는) 본토의 의존도를 줄이는 새로운 개발 모델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결론지었다.
프랑스가 맡아야 할 책임들
파리 중앙정부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라레위니옹 지방의회 의장인 베르제스를 배려하고 조심성 있게 대하는 법을 알았다. 비록 어떤 이들은 그 섬의 이 유력 인사가(83살이라는 그의 나이 때문에라도) 자신의 ‘마지막 카드’를 던진다고 생각할지라도 말이다. 공산당 지도자(9) 베르제스는 1998년에는 ‘연합’을, 그리고 2004년에는 ‘동맹’을 중시한 인물로서, 지금도 가능한 한 폭넓은 개방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대학교수 로베르 쇼당송은 베르제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혼자서 반세기 이상 라레위니옹 정책을 상징하고 종합해온 인물이다. 큰 말썽과 감정의 동요 없이 정치 자립에 이어 본토 사회복지 체제와의 조화, 그리고 유럽연합 가입을 옹호하거나, 오늘날에는 에너지 자립과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해 연구해 환경을 수호하고, 항상 자신의 신조를 버리지 않으면서 PCR의 정책 노선에 라레위니옹과 프랑스, 유럽과 세계의 정세 변화를 통합할 줄 알았다.”(10)
국립 기후온난화영향관측소(Onerc) 소장인 쇼당송은 “유럽이라는 정치적 위상 때문에 우리가 지리상 어디에 속해 있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는 태양에너지, 머잖아 전철에 이어 전기 자동차, 좀더 뒤에는 사탕수수로 생산되는 가스, 조력, 위성 등 미래의 약속이 라레위니옹에서 실현될 것으로 본다.
그동안 점보기는 계속 공기를 오염시킨다. A380은 지난 11월 11일 조종실 창문에 별이 총총히 박힌 유럽연합 깃발을 보란듯이내걸었다.
글•필리프 레마리 Philippe Leymarie
주요 저서로 <아프리카 이해를 위한 100개의 열쇠>(2006) 등이 있다.
번역•안수연 nohere71@hanmail.net
<각주>
(1) 미셸 드브레, <레위니옹을 위한 정책>, 플롱, 파리, 1974.
(2) 장클로드 르루트르, <프랑스 주 레위니옹>, 프랑수아 마스프로, 파리, 1968.
(3) 1946년 이전 세대의 좌파는 옛 식민지 라레위니옹이 해외 영토가 되고 그곳의 시민이 원칙상 완전한 권리를 가지게 되자, 민주적 권리와 사회복지 혜택이 내포된 동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저항 행위가 증가하는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재빨리 환상에서 깨어났다.
(4) 라레위니옹의 지역협력 연감, 레위니옹 생드니, 2009년 5월.
(5) 모잠비크 운하와 마다가스카르 주변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섬들’은 비록 크기가 작고 사람이 살지 않아도, 프랑스로서는 다랑어가 풍부한 64만km²의 ‘배타적 개발수역’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7500km²에 이르는 케르겔렌 군도, 크로제 제도, 암스테르담섬에 의해 140만km²의 ‘배타적’ 해역이 생성된다. 필리프 폴리에와 와비에 루이, <프랑스의 해상: 잊혀진 제국>, 로셰 출판사, 파리, 2009.
(6) 로제 바이양, <라레위니옹>, 여행 지도, 랑콩트르, 로잔, 1964.
(7) 해양사무국, <청서. 해양 및 대양을 위한 국가 전략>, 파리, www.gouvernement.fr.
(8) 로랑 고트레, <라레위니옹의 미래 교통수단>, 2009년 9월 2일, 라레위니옹 지역에너지청(ARER), 생드니.
(9) 폴 베르제스는 레위니옹 공산당을 창건해 30년 동안 사무총장으로 지냈다. 그는 여전히 그 정당의 대표이지만, 더 이상 집행부 일을 맡지 않는다.
(10) 로베르 쇼당송, <베르제스 일가, 아버지, 형제와 아들: 라레위니옹 베르제스 가문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아르마탕, 파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