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의 예정된 종말

2018-02-28     마르쿠스 베스나르

실리콘 밸리 한복판에 위치한 싱귤래리티 대학교(Singularity University)는 기업가들에게 인공지능, 신경과학, 나노기술, 유전 공학같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됐다.(1) 이 학교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라!(Be exponential!)”는 슬로건을 사이트에 내걸고 있다. 그 철학은 대학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특이점(Singularity)’은 인공지능(AI)이 비약적으로 성장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가상의 기점을 말하며, 이 개념이 트랜스휴머니즘의 핵심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슈퍼컴퓨터의 대적용으로 ‘증강’인류를 제시한다. 그들은 이 증강인류에 대해 기술적 진보를 거쳐 현저히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 평가한다. 싱귤래리티 대학교의 주요 창립자인 레이 커즈와일에 의하면, 인간은 2030년이 되면 자기 생각을 전자매체에 전송할 수 있게 되며 불멸(不滅)이 가능해진다.(2) 호모 사피엔스가 퇴장하는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이 주도하는 미래를 위해 일하는 이들 중에는 미국 기업가 엘론 머스크가 있다. 초고속 진공 열차 하이퍼루프, 테슬라 전기 자동차, 스페이스엑스와 함께하는 우주여행 등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엘론 머스크는 2017년 뉴럴링크(Neuralink) 회사 설립을 발표한다. 이 신생기업은 대뇌피질에 전극을 이식해 사람의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선 이 기술은 파킨슨병 같은 신경질환을 치료하는 의학적 용도로 이용되겠지만, 점차 일반화돼서는 인류를 대상으로, 반은 사람이고 반은 로봇인 사이보그로 만들고 우리의 기억을 클라우드에 전송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은 공상과학에서 툭 튀어나온 듯싶다. ‘특이점’이라는 개념도 미국 소설가 버너 빈지가 처음 만든 것으로, 그는 1993년 그 개념을 이론화한다. 영국 작가 이언 M. 뱅크스의 저서 <컬처> 시리즈에 등장하는 뉴럴 레이스(neural lace)라는 신경 그물망의 이름은 엘론 머스크가 뉴럴링크 사에서 개발한 기술의 이름으로 이용된다.(3) 이언 M. 뱅크스가 엘론 머스크에게 영감을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스페이스엑스에 등장하는 우주기지 두 곳의 이름도 이 영국작가가 지은 우주선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4) 영국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듯 “재계의 거물들이 신기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려면 이언 M. 뱅크스의 소설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다.”(5) 이 작가가 쓴 책의 배경은 특이점에 도달한 미래사회다. 이곳에서 인공지능은 사실상 신성한 의식으로 간주된다. 인간은 인공지능과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지만, 과학은 인간의 몸을 자유자재로 고칠 수 있고 질병도 죽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우월성을 그린 ‘공상과학 소설’작가들은 수두룩하다. 이언 뱅크스도 예외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작가 찰스 스트로스가 그리는 미래에서 인간은 진화가 덜 된 원시인처럼 보이고 ‘증강’ 인간만이 전지전능한 로봇과 대적할 수 있다.(6) 이 공상과학소설은 트랜스휴머니즘 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소설가 돈 드릴로는 <제로 케이(Zero K·가제)>에서 억만장자들을 극저온 처리(사후에 극저온으로 보관하는 것)해주는 가상의 기관을 그리며 트랜스휴머니즘의 불멸에 대한 열망에 경종을 울린다.(7) 작가는 트랜스휴머니즘을, 부를 통해 신인(神人)의 지위를 사려는 종파로 묘사한다. 

그러나 ‘초인간적인(Transhumanized)’ 존재들은 부품과 건전지를 교체할 수 있는 전화기 같은 기계적인 물체, 즉 개성도 감정도 없는 몸일 뿐이다. ‘증강’ 인류에게 인간적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다. 

글·마르쿠스 베스나르 Marcus D. Besnard
렌 제1대학교(Université de Rennes1) 학내 디지털 매체인 와이드(WIDE)의 편집장을 역임하고 천문학 잡지 <시엘엔에스파스(Ciel&Espace)> 및 시사잡지 <롭스(L’Obs)> 등에 글을 기고한 바 있다. 트랜스휴머니즘,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번역·권경아 petitnoel@naver.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수료

(1) Singularity University, www.su.org
(2) 마음 업로딩(Mind-uploading)이라는 이론. Mark O'Connell, ‘Your animal life is over. Machine life has begun. The road to immortality’, <The Guardian>, 2017년 3월 25일.
(3) William Gibson, 『Neuromancien(뉴로맨서)』, 9권, Livre de poche. 1988년 판도 읽어볼 것
(4) Kevin Loria, ‘Here's how Elon Musk comes up with the very cool but weird names for his drone ships’, 2016년 4월 8일, uk.businessinsider.com
(5) Tim Cross, ‘The novelist who inspired Elon Musk’, <1843 Magazine(The Economist)>, 2017년 3월.
(6) Charles Stross, 『Accelerando(점점 빠르게)』, Livre de poche, Paris, 2016년.
(7) Don DeLillo, 『Zero K』, Actes Sud, Arles,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