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자치운동, 좌파 노린 미국의 원격조종

2010-06-07     에르난도 칼보 오스피나

2009년 4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남미 국가 대통령 앞에서 “평화 증진을 위해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온두라스 쿠데타에 대한 워싱턴 태도는, 이런 공언은 구두선에 그치고 남미 지역에 군사 개입을 계속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방식이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경제적 ‘당근’과 군사 개입이라는 ‘채찍’을 통해, 미국은 남미 국가의 정치적 해방 의지를 저지하려고 한다.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역설적으로 지역 지도층의 정치적 해방 요구를 지지하는 것이다. 진보주의 성향 정부가 추진하는 재분배 정책으로 ‘정체성’이 흔들리는 기득권 지도층의 불만을 부추긴다.

미국은 1980년대 초 니카라과에서 이 전략을 사용했으며, 최근 볼리비아에서 시도하고 있다.(1)

2005년 12월, (토착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에보 모랄레스가 볼리비아 대통령에 선출된다. 도심 서민층의 지지를 받은 사회주의운동당 대표 에보 모랄레스는 토착민 조직까지 선거운동에 끌어들인다. 선거운동 중 모랄레스 대통령은 정체성과 관련한 연설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2) 그런데 사회주의운동당이 주창한 다민족국가는 곧 예기치 못한 요구에 직면한다. 지역 지도층이 ‘사회적 분리주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토착민 구역, 시, 지방 등 다양한 차원의 자치 단위를 뚜렷한 구분 없이 규정하는 신헌법이 문제의 발단이다.(3) 억압받는 소수민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에서부터, 이로 인해 볼리비아 당국의 불안이 가중될 가능성까지, 모든 것이 미국이 이러한 움직임을 지지하게 만든다.

   
▲ <메타구조>, 1958-헬리오 오티시아

곧이어 미국은 산타크루스주를 전략지역으로 선정한다. 볼리비아 경제가 이 지역 천연자원(특히 탄화수소·금·철 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타크루스와 더불어 ‘반달 지역’으로 알려진 볼리비아 동부 메디아루나 지역의 베니·판도·타리하 등 가스와 비옥토가 풍부한 주도 산타크루스의 분리 요구에 합세한다.

2개월 후, 2006년 10월 13일 신임장을 제출한 필립 골드버그 볼리비아 미국대사는 메디아루나 지역의 야권 세력과 논의에 들어간다. 1994~96년, 필립 골드버그는 발칸전쟁 때 보스니아 국무부 사무국을 지휘했던 외교관이다. 이후 2004~2006년, 그는 코소보 프리스티나의 ‘사절단장’ 자리에 있었다. 모랄레스에 따르면 이곳에서 “필립 골드버그는 이 지역의 분리주의를 지지했고, 결국 수천 명의 죽음을 가져왔다”고 한다.(4) 골드버그의 이런 이력은 ‘분리주의’ 야권 정치 조직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단순한 지지 이상임을 보여준다.

미, 발칸전쟁 연루자 대사 파견

일간지 <라 에포카> 편집장 위고 몰디즈는 “볼리비아에서 그가 맡은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한다. “골드버그 자신도 이를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그가 수립한 계획의 목적은 군대와 경찰의 개입을 야기하는 폭력적이고 치명적인 활동으로 통치불능 상태를 유발하는 것이고, 이는 대통령의 사임이 목표며, 아울러 골드버그 대사가 뽑은 후보가 승리할 선거까지 겨냥한다.”

이 계획은 산타크루스 청년연합의 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청년연합 회원은 중앙정부가 하는 건 무엇이든 반대한다. 이와 함께 준군대 집단이 2008년 9월, 힘없는 농민을 30명 가까이 살해한 뒤 타리하 및 산타크루스 유전과 베니공항을 점거했다. 퇴역 장교인 세르지오 에스피날은 “저들의 행동 방식을 보면 외국 전문가가 어떤 조언을 해주었는지 훤히 알 수 있다. 콜롬비아의 준군대 집단도 개입한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정부군의 수동적 태도를 보면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음모에 가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메디아루나 지역 지도층과 가까운 민간 언론도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사비노 멘도사는 “언론은 이 모든 사실을 보도했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하고 두려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코카 재배 농민이며 현 국회의원인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언론이 대중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에보가 사임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땐 미군이 개입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나처럼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혼란을 심어주려고 루머, 거짓, 과장 등이 동원됐다.”

“대통령 사임 안 하면 미군 개입”

미국국제개발청은 2007년 7월부터 야당 집단에 자금을 대준 혐의를 받고 있다. 볼리비아 정부는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계획에 대한 자금 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한 문서를 입수했다. 사회학자 크리스티나 구스만은 이 표현을 미국이 잘 쓰는 완곡어법이라고 말한다. “국제개발청은 직접적으로 혹은 대행 사무처를 매개로 비정부기구인 ‘시민사회’를 표방하는 조직·정당 등에 자금을 지원해 인권, 언론과 기업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정부에 대한 적대심을 북돋운다.”

그동안 모랄레스 정부는 미국이라는 이웃과 기이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대통령궁 내부에 미 중앙정보국(CIA)의 안테나를 달아두고 있었다(이는 주권에 대한 고민보다 미국과의 좋은 관계를 걱정하던 이전 정부가 남긴 유물이다). 이와 관련해, 볼리비아 언론청장 호르헤 쿠바는 “특수경찰작전청(Copes)이 대통령궁 내부를 관리했는데, 이 기관은 미 대사관 직속기관이었다”고 한다.

우파의 ‘국제주의’ 바람이 분리주의의 불씨를 지피는 것을 목도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앞서 말한 안테나를 철거했다. 게다가 2008년 11월 3일, ‘국가적 존엄성’을 들어, 이제는 CIA가 볼리비아의 환영을 받는 기관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 전날, 그는 미 마약단속국도 추방했다. 공식 업무와는 무관하게, 메디아루나의 분리주의 야권 세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들 권한이 확대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여야 관계가 극도로 긴장된 2008년 11월 11일, 모랄레스 대통령은 미 대사를 ‘기피인물’로 공표했다.

대사 추방, 국제개발청의 활동 제한, CIA 및 마약단속국 퇴출 등 일련의 조치가 취해지자, 기이하게도 분리주의 열기가 진정 기미를 보였다. 모랄레스가 선거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극단적 분리주의자 중 일부는 자신의 임무를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에서 요인 살해 계획으로 바꾼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과 함께 ‘인디언’ 대통령을 끝장내는 것이다.

요인 암살 작전은 사업가 브랑코 마린코빅이 주도한다. 볼리비아로 망명한 우스타샤 크로아티아 혁명 운동원의 아들인 그는 당시 산타크루스 시민위원회를 이끌고(5) 메디아루나 지역의 ‘독립’을 주장하는 해방투쟁국민운동을 이끌었다. 해방투쟁국민운동은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글을 게재하고 있다. “강에서 피가 흐르기 전에, 우리가 우호적인 분리에 나서 각 민족이 자신의 자원을 관리하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와 관련해, 호르헤 쿠바는 “마린코빅이 짐짓 상냥한 체하지만, 발칸전쟁의 인종주의·종교·분리주의 시나리오를 볼리비아로 고스란히 옮겨 왔다”고 평가한다.

남미로 몰려드는 전범들

마린코빅은 크로아티아의 초민족주의 분쟁에 참여한 에두아르도 로사를 불러들였다. 로사가 함께 대동한 인물은 마이클 드와이어(아일랜드인), 아르파드 마갸로시(루마니아계 헝가리인), 엘로드 토아소(헝가리인), 마리오 타딕(크로아티아인) 등으로 모두 발칸전쟁의 노장이다. 이에 대해 호르헤 쿠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들이 ‘작은 인디언’이라고 말했던 경찰 한 명이 조직 내에 잠입할 때까지 암살 계획은 완벽하게 전개됐다. 2009년 4월 16일 경찰이 저들이 있던 호텔을 덮쳤을 때 투항을 거부한 셋은 숨졌으며, 여기에는 로사도 포함됐다. 그날 밤, 끝장이 난 건 바로 최후의 볼리비아 분할 계획이었다.” 마린코빅은 달아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무슨무슨 재단이나 비정부기구는 ‘시민사회’라는 나무랄 데 없는 이미지를 이용해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역사가 비예가스는 이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전세계 여러 상황 속에서 모든 조직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대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볼리비아에서 시험된 이 방법은 오늘날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에서도 채택되는 듯하다. 아드리안 비예가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막대한 석유산업이 자리한) 술리아주의 독립을 원하는 이들을 독려하고 있고, 에콰도르에서는 주요 항구이자 경제 중심지인 과야스주에 대해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을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산타크루스가 베니·판도·타리하 등 다른 세 지역을 연루시킨 것처럼, 술리아도 타치라·메리다와 함께 같은 방식으로 나오고 있고, 과야스는 마나비주와 함께 일을 도모하고 있다.”

글•에르난도 칼보 오스피나 Hernando Calvo Ospina
기자 겸 작가. 주요 저서로 <쿠바라는 곡조 위에서>(20 05)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각주>
(1) Maurice Lemoine, ‘니카라과에서 상실된 미스키토의 자치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7년 9월.
(2) 토착민은 볼리비아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3) Franck Poupeau & Hervé Do Alto, ‘인디언주의는 좌파인가?’, <Civilisations>, 58-1, 2009, http://civilisations.revues.org/index1971.htm.
(4) <El Mundo>, Madrid, 2008년 9월 11일.
(5) 산타크루스주가 세운 지방기구로, 현지 경영자들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박스기사]

 

지방자치권을 위한 국제 동맹 산타크루스(볼리비아), 술리아(베네수엘라), 과야스(에콰도르)의 지역 지도층 주요 대표 인사가 모인 단체. 2006년 (과야스의 주도인) 과야킬에서 창설되었으나, 산타크루스에 본부를 두고 볼리비아의 4개 ‘자치주’에 대한 ‘총력 지원’을 강조한다.

룸보 프로피오 파라 엘 술리아(술리아를 위한 길) 베네수엘라의 운동 집단. 빈곤 퇴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한된 정부 구조, 자유무역, 정부와 분리된 민간기관’을 옹호한다.

라틴아메리카 자유 네트워크 급진 자유주의 성향의 싱크탱크 CATO 연구소, 경영자 압력단체 Empresarios de España, 자유주의 성향이 짙은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이 후원하는 단체로, 앞의 두 조직이 소속되어 있다.

볼리비아 사법 당국이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 피습 계획에 연루된 것으로 보는 이들 가운데에는 볼리비아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 전 대표인 위고 아샤가 포함되어 있다. 아르헨티나군의 전 소령인 호르헤 모네스 루이스는 로사, 아샤, 마린코빅 등의 요인 살해 계획 준비를 후원한다. 역사학자 아드리아나 비예가스는 “간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모네스는 우노아메리카라는 조직의 고위 책임자고, 이 조직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다른 체제 불안정 계획에 연루되어 있다.” 2008년 12월 보고타에서 창설된 이 조직의 정관은 그에게 “카스트로 공산주의의 확장 및 새로운 버전인 21세기 사회주의로 위협받는 아메리카 대륙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한다”는 목표를 부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