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오마주 행사’, 불편함 지운 환상

2010-06-07     에블린 피에예 | 작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프랑스는 약 40년 전부터 공식적인 기념행사 기간, 즉 특정 인물과 사건을 기리는 ‘오마주(Hommage)의 해’를 정해 각종 행사를 여는 등(1) 각별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오마주와 관련한 토론·강연·공연 등의 행사가 대대적인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기괴하지만 전혀 해롭지 않은 광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기념행사는 달콤한 축제 분위기를 통해 대부분의 논란을 잠재우고 있다. 물론 영광스럽게도 특별한 임무가 요구된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행사는 예외였지만, 대부분의 이런 행사는 현재 논의 중인 의제와 관련해 특정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지대한 공헌을 하며, 정치적 역할을 진지하고 끈질기게 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 문화통신부 장관 프레데리크 미테랑은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추모행사는 충직과 성찰을 요하는 국가 정체성에 꼭 필요하다”며 “집단의 기억을 추모하는 이 순간은 우리가 함께하는 삶에 자양분이 되며, 우리의 응집력을 강화해준다”고 말했다.(2)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동료인 에리크 베송 이민·통합·국가 정체성·연대개발 장관이 시작한 ‘국가 정체성’에 대한 토론에서 “추모행사의 의미를 확실히 거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찬양행사가 우리에게 도대체 어떻게 ‘함께하는 삶’이니, ‘국가에 대한 아이디어’니 하는 의미를 준단 말인가?

‘국가 정체성’을 위한 찬양행사

 


비록 쇼팽·뮈세·주네 등 예술 분야 인사에 대한 추모행사는 그 의미가 축소되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 행사가 2010년 모든 행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서 그 호기만은 찬탄할 만하다. 이들 행사는 웅대한 프랑스의 상징인 갈리아나 오베르뉴의 수탉(프랑스의 상징이 되는 동물-역자)에 기댄 관행적인 오마주와는 거리가 멀다. 이 오마주는 실패나 실수, 혹은 단순히 성공을 이뤄내지 못한 공허함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발현되는 것이 ‘민족정신’이라고 강조하며 역설을 즐긴다.

 

요컨대 백년전쟁 초반인 1360년 영국과 체결한 브레티니 조약, 즉 프랑스 왕국과 프랑스 영토 그리고 프랑스 백성의 3분의 1일을 영국에 바친 ‘굴욕적인 불공정 협약’에 대한 기념행사도 열릴 예정이다. 이와 똑같은 피학적인 충동 속에서, 사람들은 프랑스 북부 노르파드칼레 지역에 있는 캉브레스 성당의 피에르 다일리 주교와 물리학자 루이 드브로이 공작을 기리고 있다. 전자는 ‘과학과 기술’ 서적으로 분류돼 조금 어색한 그의 유명 저서 <세계의 형상>(Imago Mundi)을 점성술 이론서로 검증해주기 위해, 후자는 “그의 동생 루이의 눈부신 지성을 과학에 입문시킨, 과학 분야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과학자”라며 기리는 것이다.(3)

혼란스러운 시민들은 이런 다양한 행사가 한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하고 있다. 이것은 경직된 일부 오만스러움에 대해 시민들이 쏟아내는 소리 없는 탄식이 아닐까?

공화국인가 가톨릭 국가인가?

이런 근대식 사유에 대한 찬양에는 프랑스의 ‘근본적 뿌리인 기독교’에 표하는 존경심이 깔려 있다.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로마 라트란궁 연설에서 사용한 인상적인 용어를 빌리면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은 국가 정체성의 응집력을 약화하는 것”인 셈이다. 그리하여 기념행사는 응집력 약화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곧 ‘경제와 사회’라는 주제로 개최될 오마주 행사에서까지 그 뿌리를 열광적으로 찬양할 예정이다. ‘경제와 사회’ 타이틀로 개최되는 11번의 행사 중 7번이 종교적 행사다. 생프랑수아 드살이 세운 성모 방문회 수도원 추모행사에서부터 생뱅상 폴이 세운 자비 수녀회 추모행사까지, 그리고 클뤼니 수도원 추모행사에서부터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가 각별하게 여기는 솔렘 수도원 추모행사에 이르기까지, 마지막으로 ‘기독교 쇄신’을 위해 활동한 앙리 생시몽 백작 추모행사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오마주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니게 된다.

특히 사람들이 다른 행사에서까지 기독교의 기여를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면 오마주에 대한 고정관념은 심화될 것이다. 한 예로 사람들은 1910년 자신의 저서, 즉 모리스 바레스와 에두아르 드뤼몽이 극찬한 작품 <잔 다르크의 자비의 신비>(4)에서 노래한 것처럼 “신앙생활로 복귀한 시인 샤를 페기”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 예정이다. 하지만 페기가 자신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해소할 뚜렷한 목적을 갖고서 저술한 또 다른 1910년 작품 <우리들의 청춘>에 대한 추모행사는 예정에 없다. 그는 이 책에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자신의 투쟁 의지는 물론 사회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이상을 꺾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왜 ‘국가’란 말이 가톨릭 국가 프랑스와 동일시되는 것일까 하는 의혹을 저버릴 수 없다. 물론 그건 아니다. 국가란 말은 훨씬 더 미묘한 뜻을 지녔다. 왜냐하면 전반적인 행사 프로그램 구성은 갈등·근본주의·강요를 제거한 차분해진 프랑스의 비전, 즉 영적이거나 예술적인 것 이외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몇몇 주요 오마주는 뚜렷한 특색을 지녔다. 제1회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쉴리프뤼돔과 앙리 4세를 기리는 오마주 행사에서는 “종교적 극단주의에 종지부를 찍은 능력”을 강조할 예정이고, 알베르 카뮈 오마주 행사에선 “식민지와 같은 땅에서 두 민족 간에 평화로운 공존의 종식을 두고 마치 실패한 유토피아처럼 괴로워했던” 그의 알제리전쟁에 대한 시각에 경의를 표할 예정이다. 멋진 일관성이다. 사람들은 페기가 세상의 질서를 수용한 것이라며 추앙하고, 카뮈는 알제리의 독립과 프랑스·알제리 양국 간 평화 공존 사이에서 선택을 거부했다고 칭송한다. 간단히 말해, 카뮈는 불관용에 은밀히 침잠된 편견의 틀을 뛰어넘을 줄 알고, 오마주보다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온 최상의 법, 즉 그의 유토피아 정신을 과감하게 기리는 국민적 추모를 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트러블 메이커’ 위인에겐 자리 없다

심지어 6·18 호소(드골이 1940년 6월 18일 영국에서 <BBC> 라디오를 통해 나치에 협력한 비시 정부 치하의 프랑스 국민에게 대독 항전을 호소하며 애국심을 고취시킨 연설-역자) 기념행사는 50주년과 100주년 단위로 치르던 국가 기념행사의 주기 분할 권한마저 없애버리는 처사다.(5)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드골의 6·18 연설을 무엇보다 불굴의 투쟁 정신, 즉 “현대 프랑스의 사회적 협약의 토대가 된 행위”로 소개했다. 그는 이 연설이 “남녀 간의 평등”에서부터 “1944∼46년의 사회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해방운동의 기폭제라고 했다. 참 멋진 말이다. 이런 말에 흥분한 우리는 당시 프랑스 공화국의 임시정부에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그리고 이런 오마주를 시행한 프랑스 인민공화운동당(MRP)의 의원들이 포진해 있었다는 것을 거의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요즘 역사의 의미를 축소해버린 6·18 호소의 매력을 부각시키며, 전국레지스탕스평의회(CNR)의 역할을 거의 잊고 있다. 사회적 불화의 요인인 트러블 메이커 위인에 대한 기념행사는 설 자리가 없다. 물론 예외는 있다. 선동가로 분류된 “정권을 잡으려고 시도한 최초의 공산주의자”이자 프랑스혁명 당시 프랑스 집정내각(Le Directoire) 치하에서 기요틴에 의해 처참하게 처형된 그라쿠스 바뵈프는 기리지만, 추모 리스트에 끼어도 될 혁명적 저널리스트 카미유 데물랭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한 정치인이자 법률가인 후작 생파르조 등에 대한 추모는 검토 중인 “기타 추모 가능한” 일련의 행사 속에 방치된 채 도외시되고 있다.

이는 지난날의 꿈을 접는 것이 좋으며,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추모를 갈등의 쟁점이 아닌 갈등을 해소하는 해결의 축으로 보고, 국민의 본분보다는 개인의 본분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지역 국가는 특히 프랑스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을 기념한다. 감탄스럽다. 사람들은 노동자·농민퇴직연금법, 물론 ‘자본화’(Capitalisation) 방식으로 제정된 ‘연금개혁’을 기념하지만, 같은 해 제정된 노동법에 대한 언급은 피할 것이다. 위대한 생물학자 자크 모노가 즐거운 등산로인 “샤모니의 계곡을 발견한 오라스 베데딕트 드 소쉬르”보다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추모를 받아야 할 좀더 확실한 명분을 지녔지만 “비도덕적이라서 찬란하게 빛난” 그의 자연 개념은 그런 확실한 명분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어느 누구도 ‘경제와 사회’ 타이틀을 내건 기념행사에서 해군함 ‘프랑스’호의 진수식보다 ‘파리의 홍수’를 선호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해군의 위상에 대한 성찰보다는 기후변화 위기를 걱정하는 집회에 참여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소망하는 평온한 프랑스

당연히 사람들은 알마교의 주아브 동상(홍수시 센강의 수위를 재는 수표의 척도가 됨-역자)의 침수를 기념하는 행사가 국가 정체성에 무슨 기여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6) 하지만 대통령이 소망하는 평온한 프랑스를 홍보하기 위해 헌신하는 이 기념 프로그램은 이런 몰이해를 불손한 정신으로 취급해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빚은 들뜬 환상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유머에서 유래했다고 말하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데다 강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들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모른다’라는 격언에 내포된 진실을 사람들이 좋아하게 유도하고 있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ll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작가.
주요 저서로 <반역자들의 예언>(2000), <세계를 조종하는 리모컨>(2005) 등이 있다.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1974년부터 시작한 이 운동은 1998년 국가추모행사 최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 기관은 국립기록보관소 산하기관으로 배치돼 있다.
(2) 2010년도 국가추모행사 홍보책자 인용.
(3) 루이 드브로이(1892~1987)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192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다.
(4) 1921년 파리에 있는 출판사 ‘갈리마르’에서 출간되었다.
(5) 국가추모행사는 100주년이나 50주년을 기념하기 때문에, 드골의 1940년 6월 18일 연설은 이 행사에 직접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행사가 계획돼 있다.
(6) 파리 사람들은 주아브 동상의 발이 물에 잠기면 센강이 불었다고 말한다. 1910년 홍수 때는 물이 주아브 동상의 어깨 높이까지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