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라는 환상 혹은 현실

2010-06-07     김현영/여성학자

 

1960년에 만든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재개봉된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신세경은 이른바 ‘청순글래머’라는 형용모순적 조합을 가정부라는 역할과 절묘하게 결합시켜 2010년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칸영화제에 초대받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2010년은 ‘하녀’ 신드롬의 해로 기억될 만하다. 하녀라는 말이 현실에서 사라져가는 지금 다시 하녀들이 화려하게 부활한 이유는 무엇일까.

1960년 <하녀>

경북 김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식모에 의한 영아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1960년에 만든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한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한다. 이 부부는 2층 양옥집을 짓는 데 성공했지만, 그 지위는 아직 불안정하다. 영화의 내레이터이자 남자 주인공인 동식(김진규)은 여공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1) 그는 자신을 사모한다고 고백한 여공의 편지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몸을 던져 유혹하는 경희(엄앵란)의 돌진 역시 거부한다. 이런 스캔들이 여자 감독관의 귀에 들어가 직업전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동식의 아내(주중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밤낮으로 바느질을 하면서 드디어 2층 집의 여주인이 되는 데 성공하지만 거기에 걸맞은 생활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이 부부가 중산층이 되기 위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욕구를 억압하는 인물로 나온다면, 이 집에 들어온 하녀는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있는 그대로 실행하는 인물이다. 하녀는 담배를 피우고, 피아노를 배우고, 주인 남자와 잠자리에 들고, 나중에는 여주인의 자리를 거침없이 요구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동식과 하녀는 결국 동반자살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파국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꿈에 그리던 집에서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의 가장 노릇을 하는 동식에게 이런 불행이 밀어닥친 시점은 여공의 유혹을 거절한 이후다. 여공 경희의 구애는 그에게 도덕적 금욕의 문제가 아니라 직업적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선택의 문제로 이해된다. 이미 그의 거절이 한 여공을 자살로 몰아갔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또다시 경희를 거절한다. 그러나 이렇듯 단호하던 그의 태도는 하녀의 유혹에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경희와 아내의 분리를 잘 유지하던 동식이 하녀의 유혹에 무너진 것은 그가 하녀를 가장 아무것도 아닌 존재, 완전한 타자의 자리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공과 하녀를 다르게 생각한 것이 그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된다.

반면 하녀가 파국을 초래하는 순간은 밥을 짓고, 아이를 돌보고, 성관계까지 맺는 자신과 여주인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때다. 욕구와 욕망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지 않는 하녀는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이 일치한다. 파국은 하녀가 미쳤기 때문, 즉 그녀의 자아가 분열됐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하녀의 욕망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제 막 지킬 것을 만들면서 남들과 달라지고 싶어하는 중산층 가족의 불안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 <하녀>

2010년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지만 결코 접근할 수 없다고 생각한 어떤 극단적 상류층의 저택을 배경으로 한다. <하녀>가 개봉한 날 심야의 극장은 초만원이었다. 영화표를 내밀면 언제나 가장 작은 상영관으로 안내됐기 때문에 발길은 기억을 따라 왼쪽으로 향했지만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안내됐다. 최근 가장 장대한 스케일의 스펙터클을 구현했다고 알려진 <아바타>가 상영된 곳이었다. <하녀>는 전형적인 복수극도 치정극도 아니다. 그래서 스릴러가 되기에는 너무 맥이 빠지고, 사회극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냉소적이다. 그럼에도 2010년의 <하녀>가 규모의 스펙터클로서 매혹을 유지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재현되는 훈(이정재)의 저택 덕이다. 저택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의 위치 중 한몫을 차지한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전도연이 캐스팅됐다는 사실만큼이나 자주 <하녀>의 세트장에 대한 소문, 수십억 원대의 저택과 그 안을 채운 호화로운 가구와 고가의 미술품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김기영의 <하녀>가 남들처럼 살고 싶고, 또한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중산층의 이중화된 욕망과 불안에 대한 영화였다면 임상수의 <하녀>는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 서 있다. 이 영화에서 은이를 제외한 모든 여자는 대체 가능한 차이 없는 존재며, 어떤 불안도 겪지 않는 인물은 오직 훈뿐이다. 이 영화에서 비평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도입부에서 등장한 여성들의 대비였다. 노동하는 여성과 노는 여성의 대비, 젊은 여성과 나이 든 여성의 대비를 통해 시작된 여성 간의 대비를 보여주는 장면은 한 이름 모를 여성의 죽음으로 끝난다.

한편 훈의 저택 안에 있는 여자들인 훈의 아내인 해라(서우), 장모(박지영), 병식(윤여정)은 모두 훈의 지배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훈‘의’ 여자들이다. “난 뼛속까지 이런 여자”라고 고백하는 병식, 바람을 피워 임신까지 시킨 사위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장모, 오로지 더 많은 아이를 낳는 것만이 자신의 지위를 안정시킬 것이라고 믿는 해라, “너도 그런 걸 원하는 거잖아”라고 딸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장모와 그들이 남긴 만찬을 마치 그들처럼 우아하게 먹는 병식, 그리고 투사된 욕망을 그대로 집어삼켜 더 큰 욕망의 덩어리를 소화하는 해라는 그대로 서로의 거울이다. 그녀들이 서로를 비추는 차이 없는 욕망의 얼굴들이 깨지는 순간은 은이가 자살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병식이 저택을 나간다고 해도, 할머니의 잘못 때문에 죽을 뻔한 은이가 자살하는 것을 나미가 목격했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화되는 것은 없다.

아니 그런데 대체 한국 사회의 어느 누가 상류층의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은 적이 있단 말인가. 어느 누가 빈부의 양극화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며 점점 계급이동이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이 영화는 마치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2)며 민주화 이전 1980년대의 시대 정서로 재벌가를 둘러싼 시중의 루머를 냉소적이고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촌스러운 데다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문제는 이 냉소가 상류층을 향한 냉소가 아니라 관객을 향한 냉소라는 데 있다. 영화의 결말에서 여전히 훈이는 더 많은 하녀들과 더 많은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안전하고도 굳건한, 고유하고 유일한 왕국을 세우고 있으며 그의 왕국은 급기야 세계로 확장됐다. 끝.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은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임상수 감독은 신자유주의 질서와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고결한 삶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3)고 했는데, 은이가 고결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감독이 생각하는 고결함이란 노동의 순수한 즐거움과 의미를 체득한 ‘생활의 달인’들처럼 하녀가 하는 일 자체를 즐기는 것, 훈과의 성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고 기대하는 태도 등에서 보인다. 만약 은이가 돈을 받고, 아이를 신분 상승 수단으로 사용하는 등의 행동을 했더라면 그녀는 고결함을 잃었을 것이다. 은이는 상품교환 경제에 들어오지 않은 섹슈얼리티로 출산의 신성함을 그대로 유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고결하다. 돈과 권력에의 음험한 욕망에서 벗어나 있는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은 배설 장면들이다. 그녀는 병식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변을 보고 산속에서 소변을 본다. 그녀는 이렇게 문명이라는 악귀에게 붙들리지 않은 신성한 노동자이자 어머니이자 자연 그 자체, 다시 말해 인간이 할 수 없는 종류의 고결함을 가진 이로 나온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관객을 진 빠지게 하는 것은 훈이의 승승장구라기보다는 은이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이다.

다시, ‘하녀’의 의미를 묻다

본래 ‘하녀’는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봉건적 명칭이었다. 노예가 사라진 자리에 노동자의 이름이 들어왔다면, 하녀가 사라진 자리에는 식모·부엌데기·가정부·파출부·가사도우미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근대의 하녀였던 식모들은 주인집 남자와 통정이 들키면 보따리를 싸야 했고, 집 안의 물건을 언제든지 훔쳐갈 수 있는 준도둑으로 경계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하녀의 역할을 하는 입주가사도우미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세계화의 하인’들(4)로서, 대부분 이주여성 노동자가 맡고 있다. 그녀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비천하고 이름 없는 비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은 어디에도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국경을 건너고 있다. 경계는 결코 어떤 순간에도 완전히 고정될 수 없으며, 누구도 자신의 위치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2010년 화려하게 부활한 <하녀>가 한국 사회에서 지금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계층 간 양극화와 공간적 분리를 보여주는 증거라기보다는, 이런 현상을 미학적 볼거리로 만들어 무력한 경탄으로 수용하게 하는 탈정치적 징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상류층의 삶에 대한 너무 무성한 소문들에 질릴 때도 되었다.

글•김현영
국민대 강사, 인권재단 <사람> 편집위원.

<각주>
(1) 당시 여공들에 대한 화려한 묘사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으나, 1960년 김기영 감독이 <하녀>를 제작할 당시만 해도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여성이 가장 소망한 직업은 ‘직공’이었고, 공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또래 여성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다소 과장됐지만 직공과 식모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김정화, ‘1960년대 여성노동-식모와 버스안내양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제11호, 2002, 역사학연구소).
(2)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사, 1980.
(3) 김용언, ‘하녀-임상수 감독이 말한다: 신자유주의 광풍과 빈부의 양극화, 이 시대의 고결한 삶에 관해 묻고 싶었다’, <씨네21>, no.752, 2010년 5월 11일자.
(4) 여기에서 모순적인 계급이동이란 사회적으로는 지위가 하락하고, 경제적으로는 형편이 좋아지는 이주가사노동자의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다(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세계화의 하인들-여성, 이주, 가사노동>, 문현아 옮김, 도서출판 여이연,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