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면허
2018-03-29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경찰은 조사에 ‘몇 달’이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세르게이 스크리팔(러시아 출신의 이중스파이) 살해 명령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온 것이라며, 범인을 단정 지었다. 보르스 존슨 외무부 장관은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러시아 정보부 대령에 대한 독살 시도가 이전의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이나 사이버 공격’, ‘독일 하원 해킹’, ‘유럽 선거 개입’,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의 잔혹 행위 용인’ 등과 같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태로운 행동”이라고 지적했다.(1) 요컨대 푸틴 대통령은 이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고, 그래서 그가 범인이라는 의미다.
레온 트로츠키가 멕시코에서 얼음송곳으로 암살되고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런던에서 폴로늄을 넣은 차로 독살당할 뻔할 때까지, 러시아 비밀공작원은 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반대파를 확실하게 제거해왔다. 다른 정부도 이런 끔찍한 일을 실행하긴 했지만 러시아의 경우처럼 시끄러운 외교 문제로 비화하진 않았다. 이번에 존슨 장관이 분개한, 즉 ‘러시아 정부가 주도하는 긴 암살의 역사’는 서방국가의 수도 여럿(파리, 베를린, 워싱턴)을 더럽혔고, 메리 총리를 비롯해 각국의 지도자를 격노케 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런 문제를 피하는 놀라운 지혜를 지닌 게 분명하다. “국외 위험인물 제거라고 불리는 이런 종류의 작전을 깔끔하게 수행”(2)하는 국가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비밀공작원이 외국에서 암살한 팔레스타인인들(공식 정부 대표 포함)의 수를 보면 러시아는 그저 마음 약한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파리에서만 6명이 살해됐는데 그와 연관된 어떠한 제재도 없었다. 파리에서 모로코 출신의 반대파 메디 벤 바르카가 실종됐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대표인 둘시 셉템버가 암살됐으며 최근에는 쿠르드 용사 세 명이 살해됐다. 워싱턴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 장관 출신 오를란도 레테예르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보낸 요원에게 암살됐다.
그렇지만 로널드 레이건은 피노체트 대통령에 대한 찬사를 끊임없이 늘어놓았고, 마거릿 대처는 쿠데타를 주도한 육군 총사령관 출신 피노체트를 런던으로 초대해 (폴로늄이 들어있지 않은) 차를 함께 마시고 은제 식기 한 벌을 선물하기까지 했다.
‘국외 위험인물 제거’라는 표현은 미국 정부가 해외에서 드론으로 테러리스트를 암살하는 일에도 쓸 수 있을 듯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중 이런 방식으로 2,300명이 넘는 위험인물을 살해해도 좋다고 공식 허가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국가를 위협하는 적들’을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형하라고 명령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살해된 이들은 그의 임기 중 매달 한 명꼴이다. 2017년 1월 사회당 경선에서 이에 관한 질문을 받은 그의 동료 정치인들은 그를 딱히 비난하지 않았다.(3) 당시 하원 의장으로 선출된 프랑수아 드 뤼기는 “물론, 가끔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르 파리지앵> 논단. 2018년 3월 16일 자.
(2) <로피니옹>(파리, 2018년 3월 13일 자)에 게재된 마티외 불레그 연구원의 표현을 인용.
(3) TV토론, TF1, 2017년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