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남용 조장, 제약회사의 대량 살인술

- 미국의 처방전 남용실태

2018-03-29     막심 로뱅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사람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오하이오주 외곽에 위치한 로레인 카운티의 시체 안치소에 들어오는 시신들은 ‘자연사, 살인, 자살, 사고사, 원인 불명’ 이렇게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여기서 약물과용은 사고사로 간주된다. 이 지역의 약물과용 사례는 4년 사이 3배로 껑충 뛰어 2016년에는 사망자 수가 132명에 달했다. “약물과용의 95%가 아편류 칵테일”이라고 지적한 법의학자 스티븐 에반스는 사망자가 복용량을 지나치게 늘린 경우, 더러 약물과용에 의한 자살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약 밀매업자가 헤로인보다 100배 강력한 마취제인 펜타닐(Fentanyl) 분말을 판매한 경우, 이를 살인으로 분류하는 지역도 있다. 마약 사용자는 헤로인 주사를 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100배에 달하는 양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2017년 로레인 카운티에서 발생한 최고령 희생자는 자신의 손자와 주사기를 공유한 75세의 노인이었다. 

 
베트남전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낸 약물과용
 
주민 약 30만 명이 거주하는 로레인 카운티의 정부는 클리블랜드 관할권 내에 있다. 북쪽으로 이리호 연안에 가로막힌 이 지역은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농촌의 모습을 띤다. 2012년 약물과용 사례가 처음으로 정점을 찍었을 때 경찰은 마약의 ‘불순물’ 문제를 우선 고려했으나, 독극물 검사에서는 특이사항이 나타나지 않았다. 로레인 카운티에서 정맥주사를 통한 오피오이드(Opioid, 중추신경계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결합해 진정효과를 나타내는 약제. 대표적인 오피오이드류 약물로 옥시코돈, 모르핀 등이 있다-역주) 사용자의 수는 점점 불어나기만 했다. 이 현상은 클리블랜드나 신시내티의 빈민가 및 흑인 거주구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백인 중산층이 사는 소도시에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2016년 약물과용 사망자 수가 4,000명을 넘기자(반면 2003년에는 365명), 오하이오주는 웨스트버지니아주 다음으로 미국에서 마약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 됐다. 피해자의 90%가 백인인 반면, 흑인과 히스패닉(주 전체 인구의 16.5%) 피해자는 8%에 그쳤다.(1) 로레인 카운티 경찰관 500여 명과 구급대원들 대다수는 약물과용의 해독제로 쓰이는 나르칸(Narcan, 해독제의 일종으로, 환자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으로 겪는 호흡 곤란 증상을 완화시키는 ‘날록손’이라는 성분이 든 약품명. 정맥주사나 스프레이 형태로 투여한다-역주) 스프레이를 소지하고 다닌다. 부보안관 데니스 카바너는 “우리가 이 방면에서 선구자였다. 2013년 이 약품 키트가 비치된 후 350명이 목숨을 구했다”고 회상했다. 마약 피해자의 호흡이 멈췄을 때 코로 투여하게 만든 이 제품은 누구든 피해자를 살릴 수 있게 슈퍼마켓에서도 무료로 배포한다.
 
미국 전역에 약물과용이 전염병처럼 퍼지면서, 2016년에는 2년 연속 평균수명이 감소했다.(2) 해마다 6만 5,000명의 마약 관련 사망자가 발생하는데 이는 “베트남에서 전사한 미군 전체 사망자 수보다 많을 것”이며, 에반스 박사는 아편제가 교통사고(3만 7,000건)나 총기사고(3만 9,000건)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비교해 2014년 프랑스에서 243명, 2015년 영국에서 2,655명, 같은 해 독일에서 1,226명이 약물과용으로 사망했다.(3) 
 
‘마약과의 전쟁’ 선포, 그러나 예산이 부족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선거운동 기간, 이 이슈를 미국의 뿌리 깊은 고통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행동에 나설 것을 약속했고, 지난 2017년 10월에는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해, 현장에서는 대부분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다. 로레인 카운티 알코올 및 약물치료 센터(LCADA Way, 지역 마약중독자 수용 및 치료 시설)를 이끄는 토머스 스터버 대표는 “긴급 공중보건 연방기금 예비비는 15만 6,000달러다. 이 돈은 우리 지역에서만 쓰기에도 부족하다. 그러니 전국적으로는 어떻겠나”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차라리 허리케인 강타 때와 같은 ‘국가 비상사태’ 선포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2018년 1월 현재 로레인 카운티에는 중독치료센터라고 부를 만한 시설이 전혀 없다. 클리블랜드 혹은 주도(州都) 콜럼버스에나 가야 그런 시설을 찾을 수 있다. 스터버는 “통원치료에 만족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한다. 환자들은 하루에 한 번 일리리아에 있는 치료소를 찾는다. “금단현상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구토나 경련을 가라앉히고자 환자들에게 비비트롤(Vivitrol)을 처방한다. 이 약을 쓴다고 해서 금단증상을 없애거나 환자를 안정시키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환자를 관리하기는 훨씬 수월해진다. 약을 처방한 다음 날에는 상담에 들어간다.”
 
부보안관 데니스 카바너는 15명 내외의 경찰관들로 구성된 마약퇴치 전담반의 책임자다. 카바너에 의하면, 로레인 카운티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80~90%는 마약 거래와 연루돼있다고 한다. 3년 전 한 지방법원 판사가 마약중독자 관련 특별법원 설치를 요구했을 때 오하이오주 대법원이 이를 승인한 것만 봐도, 형사상 이 사태가 얼마나 긴급하게 다뤄지는지 알 수 있다. 추수감사절 직전인 11월의 마지막 화요일 아침, ‘마약 법정’으로 명칭을 바꾼 일리리아 형사법원 제702호실 앞에는 30여 명이 모였다. 비슷한 성비로 구성된 청년들은 주 1회 소집을 통해 서로 잘 알게 됐다.
 
이들 덕분에, 핫한 뉴스거리가 떨어진 미국 전역의 언론이 전국적인 이 유행병을 중대사안으로 규정짓기 시작했다. 아편류 마약이 파도처럼 밀려들던 1970년대와는 달리, 이제 전형적인 마약중독자는 록스타나 할렘의 흑인이 아니다. 토지와 밭, 차고와 자동차 두 대를 소유한 미국인들에게도 죽음이 덮치고 있다. 용돈을 벌기 위해 잔디를 깎는 이웃집 소년도, 풋볼팀의 치어리더로 활동하는 고등학교 여학생도 마약중독자일 수 있다. 헤로인 소비는 사회 전 계층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나,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계층은, 연 소득 2만~5만 달러(1만 6,200~4만 500유로) 수준인 소시민층 가정이었다(2002년부터 2013년 사이에 77% 증가).(4)
 
마약중독은 결코 완치될 수 없는가
 
마약으로 타격을 입은 로레인 카운티의 젊은이들은, 일단 사법당국으로 넘어가면 구치소 내 마약중독자 수용시설에 흩어져 지낸다. 존 미럴디 판사가 이들에게 제시하는 조건은 간단하다. 그들이 마약을 끊으면 법원은 범죄사실을 삭제해준다. 그러면 그들은 감옥에 가지 않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또한 목숨 걸고 마약밀매를 하거나, 에반스 박사의 시체보관소 통계 수치를 올리는 데 보탬이 될 가능성도 피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 가장 이성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피오이드 의존성에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38년간 이 방면에 종사해온 스터버 대표는 비관적인 관점을 드러냈다. “마약중독자는 약이 없으면, 말 그대로 더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 금단현상의 고통은 매우 극심하다”고 말한다. 임신한 후에도 마약을 끊지 못하는 여성들을 만났다는 그는 “마약은 한 인간 전체를 지배하며 뇌 구조를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이러한 악순환을 피하려면 초인적인 힘이 필요하며, “마약중독은 결코 완치될 수 없다”고 과거 마약중독자였던 에드 배럿은 지적한다. 그는 현재 일리리아에 위치한 치료 시설인 ‘주목적 센터’를 운영한다. 그는 “그것(마약중독)은 삶에 대한 중독과 집착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법정에서 미럴디 판사는 소집에 참석한 젊은이들 수준에 맞춰 법정 전문용어를 피하되 엄한 어조로 말한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운 시기라는 걸 잘 압니다. 추수감사절 모임에 가면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는 친척들이 있겠죠. 힘들 겁니다. 자신을 잘 다스리십시오.” 감독관 한 명이 배치돼 치료 참여자들이 재활과정을 잘 따라가도록, 특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에는 소변검사를 하거나, 매일 의무적으로 소환하는 등 엄격한 조처를 한다. 엄격하면서도 인자한 미럴디 판사는 성공한 참여자들을 한 명씩 공개하기도 하고, “소환에 불응하거나 소변 샘플을 희석하는 참여자들에게는” 감옥으로 되돌려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두 사람을 프로그램에서 탈락시켰습니다. 한 사람은 임신부인데, 지난주 약물과용으로 죽을 뻔했습니다. 또 어떤 법원 직원은 시내 주차장에서 한 여성을 쓰러뜨릴 뻔했습니다. 며칠 동안 마약을 투여한 그 여성은 자동차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녀는 현재 6개월간 복역 중입니다.” 이런 경고성 설명을 마치고 나서, 미럴디 판사는 참여자들을 차례로 불러 박수갈채를 보내며 수료증을 나눠준다. “메건은 31일 동안 ‘깨끗한’ 상태입니다. 현재 2단계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며, 숙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만세!” 그러나 마약을 끊는 것은 곧 부서지고 마는 파도의 물마루와 같다. 지난 6월 지역신문은 한 여성 참여자가 치료 기간 내내 약물을 과다 복용했다고 보도했다.
 
마약 처방의 권리를 얻은 사람들
 
스스로 마약을 끊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적어도 100일간은 누군가가 붙어있어야 하며, 습관을 모조리 바꿔야 한다. 31일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 젊은 여성 메건 케이플은 “과거의 삶을 단념하고 옛 친구들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메건은 “마약에 찌들고 모든 것에 지친 상태로” 3주 전 자발적으로 경찰 조사에 응했다. 메건은 이제 여성수용시설에서 지내며, 매일 오피오이드를 달고 살던 시절과는 담쌓고 엄격한 식이요법을 따른다. “새벽에 기상, 요가, 그룹 치료. 전화 금지.” 메건은 11년 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가족 주치의가 요통 때문에 진통제를 처방해줬는데….”
 
메건처럼 대부분 희생자들은 주사가 아니라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통해 아편제에 노출됐다. 이 유행병은 선한 의도, 즉 아주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해 환자의 고통을 없앤다는 명분 뒤에 숨어 의사의 진료실에서 시작됐다. 스터버는 “처음부터 헤로인으로 직접 마약을 시작하는 중독자는 매우 드물다. 고통이 작든 크든 어쨌든 처음 처방전을 내는 건 대개 의사다. 환자는 약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헤로인 복용 쪽으로 기울고 만다”고 강조한다. 앞서 1970~1990년대에 약물과용이라는 유행병이 돌던 때는 습관성 마약 사용자의 약 80%가 남성이었다. 현재는 남녀가 따로 없다. 소년이건 소녀이건 “누구나 병원에 간다. 중독은 가족 주치의를 만나거나, 치과에 가거나, 운동 관련 진료를 받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의사들은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운동을 하는 많은 여성 환자들을 치료한다.”
 
판도라의 상자는 20년 전 미국의 몇몇 제약회사에서 열렸다. 자문을 해준 전문가들은 특히 퍼듀파마(Purdue Pharma)사(社)와 이 회사의 주력상품인 옥시콘틴(OxyContin)을 하나같이 이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했다. 가장 강력한(3단계) 오피오이드류 진통제로 분류되는 옥시콘틴은 아편 합성물의 유도체인 옥시코돈으로 만들어진다. 이 약은 처음에는 말기 암 환자나 중증 외과수술에만 사용됐고, 매우 제한된 시장에서 거래됐다. 퍼듀파마는 시장을 넓히기 위해 1995년 적극적인 로비를 벌인다. 환자와 고통 간의 관련성을 높이게끔 하려는 의도였다. 강도가 세든 약하든, 고통은 의사에게 새로운 적이 된다. 퍼듀파마가 자금을 지원한 여러 연구들은 고통을 맥박, 체온, 혈압, 호흡과 동등한 ‘다섯 번째 생체 신호’로 간주하라고 개업의들에게 권고한다.
 
이듬해 퍼듀파마는 미국 보건당국인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아 옥시콘틴을 출시했다. 이 제약회사는 미국의 개업의들에게 이 약의 성능을 과시하기 위해 700명이 넘는 영업사원 부대를 배치했다. 영상물과 책자는 물론, “오로지 기적의 치료제”라는 내용만을 담은 CM송을 제작했고, 무료처방전을 제공하는 쿠폰 3만 4,000장을 발행했다. 1996년에 옥시콘틴은 4,5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4년 뒤 매출액은 10억 달러로 증가해 비아그라의 수익을 능가했다. 워싱턴의 사무국에서 시골병원의 진료실까지, 곳곳이 일제히 들썩였다. 이 중 경력자인 에반스 박사는(법의학자가 되기 전 응급처치 전문의였다) 이 현상에 역사적 관점을 제시한다. 
 
“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 초에는 외래 환자, 즉 통원치료를 할 만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목적으로 옥시콘틴처럼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러다 1990년대 말에 사랑니 발치나 발목을 접질렸을 때 마취제를 처방하기 시작했다. 이제 여러분은 작은 고통에도 옥시콘틴이나 퍼코싯(Percocet)을 처방받을 권리를 얻었다.” 
 
미국의 환자들은 이런 엄청난 복용량에 급속히 내성을 보인다. 에반스 박사는 모두들 ‘대수롭지 않은 고통의 희생양’이 돼, 어린이가 사탕을 달라고 떼쓰듯, 응급실로 달려와 진통제를 요구하는 이 상식 밖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들은 퍼코싯을 내놓지 않으면 당신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들은 환자인 척한다. 어떤 사람들은 진통제를 구하려고 팔목을 긋기도 한다. 행정명령, 환자의 요구, 병원의 ‘고객 만족’ 정책, 여기저기서 압박이 쇄도한다.” 어제는 응급환자에게 아편제를 처방하느라 정신없던 에반스 박사는, 오늘은 사망자 수를 세고 있다. 
 
화폐가 된 약, 1인당 68알의 처방전
 
옥시콘틴은 2000년대 내내 특히 오하이오주에서 뿌리를 내렸다. 공장 폐쇄로 경기침체에 빠진 몇몇 시에서는 유통센터의 확산에 힘입어 의약품 거래가 손쉬워졌고 도심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편중된 사회부조 혜택을 이용해 편법들이 만연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빈곤층은 소위 ‘알약 공장(Pill mill)’이라 불리는, 무료로 약을 나눠주는 선심성 진료소에서 약을 조달받았다. 그리고 그 약을 암시장에 되팔아 그들과 손잡은 개업의를 거쳐 납세자의 돈으로 배를 불린 것이다. 포츠머스를 비롯해 오하이오주 동서쪽에 위치한 몇몇 도시에서는 일명 ‘옥시’가 화폐로 자리 잡았다. 주민들은 알약 한 알로 이웃과 온갖 물건을 거래했다.(5) 
 
오피오이드 처방전 수는 결국 터무니없는 기록을 세웠다. 2012년 오하이오주의 개업의들은 7억 9,300만 건의 처방전을 작성했는데, 이는 1인당 68알에 해당된다.(6)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퍼듀파마는 마약 카르텔의 방식으로 움직였다. 육체노동자의 실업률, 산업재해 발생률, 빈곤율이 높고 가장 취약한 지역을 가려내 공략한 것이다. 정직한 의사들과 이 약의 잠재적 중독성을 인지하지 못한 의사들의 처방전을 제외하고, 유출된 내부문건을 보면 퍼듀파마가 고의로 선심성 진료소의 성업과 오로지 옥시콘틴을 유통시키기 위한 꼭두각시 업체의 설립을 조장한 사실이 드러났다.(7) 
 
당국은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정치 지도자들의 당면 과제는 이 현상의 초기 희생자인 백인 소중산층뿐만이 아니었다. 정부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선심성 처방전을 색출하기 시작했을 때는 약을 구할 수 없는 많은 시민들이 약물 중독을 달래기 위해 이미 거리로 나간 뒤였다. 에반스 박사는 “일단 환자가 약에 중독되면, 처방기한이 만료됐을 때 그 환자는 어디서든 약을 찾아내야 한다. 암시장에서 퍼코싯은 1정에 50달러이고, 헤로인 한 봉지는 5~10달러다. 맥주 한 팩보다 싸다. 이는 어떻게 한 지역 인구가 몽땅 헤로인 중독자로 바뀌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포인트 적립까지, 진화되는 판매방식
 
의약품 소비자에서 헤로인 중독자로 바뀌는 일은 점진적이고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멕시코의 헤로인 판매업자들은 대개 양귀비 재배 특화 지역인 잘리스코 출신으로, 농촌에 위치한 이 거대 시장에 투자를 하고, 판매수법을 현대화했으며, 대도시의 마약 밀매업자들보다 훨씬 신중하게 움직였다. 헤로인 소매가가 턱없이 낮은 이유는, 치열한 경쟁 탓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이 촌구석의 딜러들은 대금 정산이나 자기 구역 보호를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헤로인 분말을 주문할 때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이용하고, 물건은 판매업자가 자동차로 안전하게 전달한다. 판매업자는 ‘고객 만족’이라는 개념을 통합했고, 명함을 나눠주며, 단골에게는 포인트도 적립해준다. “맨 처음에는 어쩌면 수상한 곳에 드나들어야 할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관계를 맺고 우수고객이 되면, 피자 주문하는 일이나 마찬가지가 된다”라고 배럿은 말한다. 고객이 마약을 끊으려 한다거나 더는 약을 찾지 않으면 밀매업자는 집요하게 전화를 걸거나 집까지 찾아와 약을 건넨다.
 
옥시콘틴 시장이 형성되자, 마약의 물결은 이리호 연안의 퇴적물처럼 켜켜이 쌓였다. 처방전이 필요한 옥시콘틴 같은 알약뿐 아니라, 헤로인에도 이제 무시무시한 효과를 지닌 합성물들이 첨가된다. 당국은 여러 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과 마주쳤지만, 그 머리들 중 하나도 잘라내지 못했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두 가지 태도를 보인다. 스터버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 부류는 지인의 마약중독으로 충격을 받는다. 마약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이들은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또 다른 부류는 마약중독자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아들이 제 방 카펫에 뻗어 있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들은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에서 조직한 예방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밀매업자들을 없애달라는 호소를 자주 듣는다. 
 
에반스 박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밀매업자는 가족 주치의나 부모의 약상자에서 태어난다. 자녀들의 80%가 부모의 처방전 때문에 위험 속에 발을 들인다. 그렇다면, 아빠나 엄마에게 총을 겨눠야 한단 말인가?”  
 
<<원문 보기>> Overdoses sur ordonnance
 
 
글·막심 로뱅 Maxime Robi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조민영 sandbird@hanmail.net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석사 졸업. 역서로 <지도로 읽는 아시아> 등이 있다.
 
(1) ‘Opioid overdose death by race/ethnicity’, The Henry J. Kaiser Family Foundation, 멘로 파크(캘리포니아), www.kff.org
(2) 2014년 78세 9개월이었던 평균수명이, 2016년 78세 7개월로 낮아졌다. ‘Soaring overdose deaths cut US life expectancy for a second consecutive year, CDC says’, <Los Angeles Times>, 2017년 12월 20일.
(3) 마약 및 약물 중독에 관한 유럽감시센터(European Monitoring Centre for Drugs and Drug Addiction)가 발표한 최근의 공식집계에 따름.
(4) ‘Today’s Heroin Epidemic Infographics’,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애틀랜타, www.cdc.gov
(5) Sam Quinones(샘 키뇨네스), ‘Dreamland: The True Tale of America’s Opiate Epidemic’, <Bloomsbury Press(블룸즈버리 프레스)>, 런던-뉴욕, 2015.
(6) ‘Opioids prescribed to Ohio patients decrease by 162 million doses since 2012’, Board of Pharmacy(약학위원회), 오하이오 주, 2017년 1월 25일.
(7) Harriet Ryan, Lisa Girion and Scott Glover, ‘More than 1 million OxyContin pills ended up in the hands of criminals and addicts. What the drugmaker knew’, <Los Angeles Times>, 2016년 7월 10일.
 
 
박스기사 1
 
셈을 치러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옥시콘틴 제조사인 퍼듀파마 그룹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옥시콘틴을 판매하는 먼디파마(Mundipharma) 기업 네트워크는 전체적으로 한 가문에 속한다. 바로 새클러(Sackler) 가문이다. <포브스(Forbes)>의 추산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축적한 새클러 왕조의 재산은 130억 달러에 이른다. <뉴요커(New Yorker)>는 새클러 왕조의 가장 큰 업적이 “가문의 이름과 기업의 이름을 분리한”(1)것이라고 썼다. 
 
새클러 가문의 자선활동은 전 세계 최고의 박물관들에 퍼져 있다. 가문의 선조 격인 모티머 새클러(Mortimer Sackler)는 이런 자선활동을 통해 1999년 영국여왕에게 기사 서임을 받을 수 있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쪽 날개는 이 가문의 이름을 따 ‘새클러관(Sacker Wing)’이라 불린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은 새클러 가문의 돈으로 박물관 규모를 재편성할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새클러 가문의 후원 덕분에” 1997년 개관한 쿠르 카레(사각 안뜰) 북쪽 날개는 ‘동양유물 새클러관(Sackler Wing of Oriental Antiquities)’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19세기의 위대한 사업가들이나 그에 앞선 메디치 가문처럼 새클러 왕조도 예술후원, 결국 돈을 통해 불멸성을 얻었다.
 
아편제 거래는 1805년, 독일의 머크(Merck)사가 대중에 모르핀을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1853년에는 스코틀랜드의 의사 알렉산더 우드(Alexander Wood)가 피하 주사를 고안했다. 그러나 이 발명품은 그의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우드의 아내는 정맥주사 과용으로 인한 역사상 첫 번째 피해자로 기록됐다. 아편으로 중독 없이 고통을 줄인다는 건 처음부터 무모한 생각이었다. 마약이 마약을 대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처럼 헤로인은 1890년 “모르핀에 따른 중독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판매되기 시작했다. 약물과용으로 초토화된 오하이오주 로레인 카운티의 법의학자 스티븐 에반스 박사는 이것이 다시 입에 올리기도 꺼림칙한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이 전문가는 ‘헤로인’ 속에 빠트린 현재의 재난에 퍼듀파마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중독의학협회(American Society of Addiction Medicine)에 따르면 헤로인 사용자의 80%가 처방받은 아편제를 복용하면서 마약에 손대기 시작한다. 
 
2001년부터 주 정부는 불법적인 거래 수법으로 공중보건에 위기를 초래한 혐의로 퍼듀파마에 소송을 제기했으며, 오하이오주는 현재 새로운 소송을 준비 중이다.(2) 이 제약회사는 대대적인 수단을 동원해 변호에 나섰다. 원만한 해결로 형사처분을 피하고자 여기저기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으면서 지금까지는 소송에 잘 대처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들이 쌓이면서 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변호인단이 현재 대형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집단 소송은 자신들에게 불리했던 이전의 사법적 결과들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사람 죽이는 물건을 팔아 부를 축척한다? 퍼듀파마는 1990년대 필립 모리스(미국의 담배 제조 및 판매 업체-역주)를 떠올리게 한다.(3) 이 제약회사를 상대할 공격조의 선두에는 전직 미시시피주 검찰총장을 지낸 마이크 무어도 있다. 그는 1998년 미국에서 담배 제조업체들에 2,460억 달러의 벌금을 선고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1) Patrick Radden Keefe, ‘The family that built an empire of pain’, <더 뉴요커>, 2017년 10월 30일.
(2) Jef Feeley & Jared S Hopkins, ‘Ohio’s opioid suit should be thrown out, Purdue Pharma argues’,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뉴욕, 2017년 9월 9일.
(3) Hal Kane, ‘La cigarette américaine à la conquête du monde(세계를 정복한 미국산 담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7년 5월호.
 
 
박스기사 2
 
마약과의 다음 격전지는, 우편물 분류센터?
 
변화무쌍한 오피오이드 시장에서 오하이오주가 최우선으로 걱정해야 할 대상은 이제 헤로인이 아니다. 헤로인은 100% 합성물질에 2위 자리를 내줬다. 몇 년만에, 펜타닐과 카펜타닐이 새로운 공공의 적이 됐다. 4년 전만 해도 변방에서나 팔리던 이 괴물 같은 강력한 분자는 헤로인보다 수십 배나 강력한 물질로, 2016년 미국에서 조사된 4,050건의 약물과용 사례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펜타닐도 헤로인처럼, 미국 정부의 ‘처방된 아편제’ 밀매 단속 이후 퍼져나갔다. 펜타닐은 제조비용은 턱없이 낮은데다가, 밀매업자에게 엄청난 미래를 보장한다. 헤로인은 식물에서 추출한다. 오하이오주 북부 로레인 카운티의 소도시 오벌린의 당국자는 “헤로인은 제조비용이 비싸다. 재배에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먼저 양귀비를 재배해야 하고 몇 년이 걸려 수확을 하지만 작황이 나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펜타닐은 아무것도 재배할 필요가 없고, 웨이쿠(Weiku)나 엠에프알비닷컴(Mfrbee.com) 등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이면 주문할 수 있다. 농구 유니폼이나 치킨너겟과 함께 1파운드당 약 1,450달러 정도면 도매나 소매로 펜타닐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외교적 긴장을 불러온다. 몇 건의 상세보고서 및 의회위원회는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한 발언을 들어 베이징이 이 “치명적인 싸구려 펜타닐”의 불법 제조와 수출을 모른 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 당국은 펜타닐 밀매를 부인하지 않았고, 마약 불법제조 단속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의약-화학 산업 규제에서 중국당국의 자유방임적인 일반적 태도를 강조하면서 비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일단 미국 영토 내에서 펜타닐은 소비자가 모르게 다른 물질과 합성되거나 수입 당시 상태 그대로 팔린다. 일리리아 수용 시설 소장이자 과거 마약중독자였던 에드 배럿은, “마약 중독자들이 도움을 청하면 우리는 먼저 무슨 약물을 복용했는지 묻는다. 그들은 ‘헤로인’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소변검사를 해보면 본인도 모르게 펜타닐을 복용했음이 드러난다. 어떨 때는 그들의 소변에서 천연 아편 물질이라곤 1온스도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이 합성물질은 정제된 형태로도 유통된다. 가까운 인디애나주의 포트웨인(Fort Wayne) 경찰은 완전히 펜타닐로만 만들어진 가짜 옥시콘틴이나 퍼코싯을 압수했다. 
 
3밀리그램의 펜타닐이면, 성인남성 한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펜타닐이 든 봉지를 묶을 때 공기 중에 날리는 가루를 들이마시더라도 위급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 가족, 경찰, 소방관, 간호사, 장례식장 직원 등 희생자와 접촉한 사람은 몽땅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원료물질을 다룰 때는 장갑은 물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나, 안전수칙은 지역마다 다르다. 미드웨스트시 경찰들은 압수된 비닐꾸러미에서 마약을 식별해낼 수 있는 기계를 물색 중이다. 도로통제 시 기본적인 검사에 쓰이던 낡은 장비는 이제 완전히 구식이 돼버렸다. 
 
로레인 카운티 법의학실은 2017년 펜타닐과 그 악랄한 사촌격인 카펜타닐 탓에 씁쓸하게도 약물과용 기록이 새롭게 써질 것으로 예상한다. 카펜타닐은 원래 코끼리처럼 몸집이 큰 동물들에 쓰이는 신경안정제로 수의과용 약물이며, 펜타닐보다 100배나 강력한 물질이다. 마약단속국(DEA)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동물원과 동물병원에 속한 모든 동물들을 원료물질 18그램이면, 즉 각설탕 4개 분량이면 전멸시킬 수 있다고 한다. 2017년 11월 유럽형사경찰기구(Europol)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현재 카펜타닐은 유럽에 이미 침투해 있고, 최근 연례 분석표에는 48건의 카펜타닐 과용이 보고됐으며 그중 29건이 영국에서 발생했다.
 
가짜 약들은 추적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전 세계 어디서나 클릭 한 번이면 구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아편제도 국제시장의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마약에 맞선 다음 대격전지는 아마도 우편물 분류센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