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와 너무나 닮은 ‘굿이어’의 망령

2018-03-29     알렉시아 에셴 | 기자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면서도 정작 프랑스 내에서는 1천 개 이상 일자리를 감축하는 것이 바로 굿이어가 노조를 내쫓기 위해 사용한 수법이다. 굿이어 노동자들의 투쟁은, 지난한 공장점거 농성 끝에 결국 2013년 막을 내렸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자살행렬이 이어지기 시작됐다. 굿이어 아미앵 공장의 사례는 주주의 배를 불리기 위한 구조조정으로 인간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매년 1월만 되면, 사비나 카도레 여사는 2014년 초의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해 남편 로랑은 굿이어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당시 30대였던 남편은 12년째 솜 지역 아미앵노르 공장에서 타이어를 생산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1년 전쯤 장장 5년에 걸친 노조투쟁 끝에 결국 그룹 경영진이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충격의 여파는 너무도 컸다. 카도레 씨는 우울증으로 요양원에 입원했고, 결국 쇠창살이 쳐진 어두운 병실 안에 유폐된 채 약 기운에 절어 2014년 3월 20일 목을 매달았다.

남편을 잃은 부인은 목이 멘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남편의 해고로 모든 것이 끝장났습니다. 그이는 항상 자기 일을 신성시하던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해고통보를 받은 뒤로는 틈만 나면 관리비를 못 낼까 봐 걱정하곤 했지요.” 로랑 카도레에게는 며칠 뒤 정규직 채용이 예정돼 있었지만, 다시 안정된 직위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2017년 말, 프랑스에서 고용률이 높기로 유명한 아미앵에서조차 실업률이 11.7%에 달했다. 

문제는 경기 상황만이 아니었다. ‘굿이어 공장 출신 노동자’라는 꼬리표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돼 구직활동을 방해했다. 근 20년, 청춘을 굿이어 공장에서 보낸 44세의 세바스티앵은 회한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게는 강성 노조원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습니다. 채용면접을 수도 없이 봤지만 번번이 떨어졌지요.” 굿이어가 제공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8년 1월 중순 인력재배치 대상 노동자 1060명 중 정규직 채용자는 15%, 6개월 이상 계약직 채용자는 18%에 불과했다.(1)

끊이지 않는 해고노동자 자살사건 
 
 로랑 카도레의 자살 이후, 굿이어 해고 노동자의 자살 건수는 계속 늘어났다. 1143개 일자리 감축의 충격이 일종의 시한폭탄처럼 훗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전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굿이어 지부는 약 15건의 자살 사고가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사고였다. 이들 노동자 중 일부는 부고장에 ‘굿이어 전직 노동자’로 소개되기도 했다. 사실 노동자들의 자살 동기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공장폐쇄조처가 이 비극적 사건들과 연관돼 있음은 부인할 길이 없다.

수년간 시위현장을 함께 하며 더욱 끈끈해진 전 굿이어 노동자들은, 장례식장에서 만나 동료들의 사망 소식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들었다. 어떤 ‘굿이어’ 노동자는 달리는 차량에 뛰어들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욕실에 목을 매단 채 아들에게 발견됐다. 알코올중독에 빠져 권총 자살을 한 이도 있었다. “동료의 죽음을 지켜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 칼로 제 몸을 도려내는 것만 같지요. 신체 일부를 잃어버린 것만 기분이에요.” 세르주가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2) 그는 2017년 5월 목숨을 끊은 직장동료 장르네 브레쟁과 돈독한 사이였다. 50대였던 이 남성은 자살 당시 두 손이 병마로 인해 마치 “화산 분화구처럼 곰보로 가득했다”고, 역시 동료였던 한 여성이 묘사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굿이어 공장에서 화학제품을 만지며 일한 탓에 얻은 병이었다. “대체 만신창이가 된 그 손으로 무슨 일을 다시 구할 수 있었겠어요?” 세르주가 자문했다. “그 친구 그렇게 잠도 못 자고 괴로워만 하더니 결국 세상을 떠나버렸지요.” 2017년 9월, 57세에 생을 마감한 레지스 포미에도 그처럼 “신체가 망가진” 경우에 해당했다고 전 CGT 굿이어 지부 대표가 말해줬다. “그 친구, 극심한 허리 통증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우울증이라는 극약은 2014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미 많은 노동자들 사이로 전염됐다. “일부는 공장이 문을 닫기도 전에 이미 비틀거리며 무너졌어요. 2년 동안 하루 2시간 정도 불려 나가 일을 했습니다. 구내식당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쥐렉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일없이 노닥거리는 시간은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가 하면, 알코올 의존증이나 부부 갈등에도 불을 지폈다. 40대의 마뉘엘(3)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생활이 점차 우리 부부 사이를 파탄 냈습니다. 게다가 투쟁이 몇 년씩 이어지지 않았습니까. 주말에는 일하고 주중에는 바리케이드 뒤에서 경찰 기동대(CRS)와 대치하는 삶이 계속됐지요. 아내를 신경 쓸 틈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바람에 미처 문제가 있음을 깨닫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이 아내가 저를 떠나버린 겁니다.” 

노동감독기구는 2013년 굿이어 노동자들의 고통에 대해 경고 조치를 내렸다. 굿이어는 이때부터 노동자들을 상대로 “심리 및 의료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정작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이 혜택을 누렸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보통 상담센터는 “일주일 24시간 내내 연속으로 문을 열도록 돼 있었지만, 오후 5시만 되면 문을 닫았다”고 쥐렉은 안타까워했다. 그에 의하면, 심리상담을 받으려면, 대부분은 외부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노동자의 자살은 또 다른 비극을 양산했다. 굿이어 노동자였던 남편을 잃은 다른 많은 여성들처럼, 카도레 부인도 딸을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그녀는 “남편이 공장에서 일하고 받는 돈은 월 1,800~1,900유로로 그럭저럭 괜찮았다.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는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편이 떠난 뒤로 그녀는 이제 저소득층 보조금(RSA)에 의지해 살아가는 처지다. 그녀는 아버지를 잃은 딸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걱정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딸은 초등학교 3학년(CE2)이었어요. 그때부터 계속 힘들어했죠. 지금은 중학생인데, 학업부진 때문에 특별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형편이에요.” 또 다른 자살노동자의 두 자녀 역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실정이다.

가실 줄 모르는 노동자들의 트라우마

굿이어 노동자들은 비극적 사건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정신적으로 지친” 마뉘엘은 이제 더 이상 “굿이어에 다니던 시절과 똑같은 눈으로 삶을 바라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마뉘엘과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형제 중 한 명은 평소 입에도 못 대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마뉘엘은 “언젠가 최악의 경우 부인이 자신을 떠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고 했다. 세르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를 하라고. 우리 집에서 함께 커피나 한잔 하는 거야. 절대 혼자서만 힘들어하지 말고.”

굿이어의 해고 충격으로 양산된 희생자 집계는 몇 년 후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굿이어 사례가 일어나기 4년 전에도 우아즈 지역에서 클래루아 콘티넨탈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1100명의 노동자가 길바닥에 내몰리는 비극이 발생했다. 프랑스기독교노동자동맹(CFTC) 소속 노조원 안토니오 다 코스타는 피해 사례 집계는 “14건의 자살과 300건의 이혼 사례를 끝으로”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기 모임이 꾸준히 열리면 비극적 사건들의 추이를 계속 살펴보며 대중에게도 널리 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정보가 없어요. 각자도생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시간이 흐르면 “모든 사건은 점차 잊히기 마련”이라고 정신과전문의 미셸 드부도 개탄했다. “노사분쟁의 주체들은 서로 점차 연락이 뜸해집니다. 상담사들도 해고로 인한 트라우마에 대해 더 이상 환자들에게 질문하지 않고요. 그러나 우울증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또다시 재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자살 전문가인 그는 실업과 해고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부재하는 일종의 ‘블랙홀’ 현상을 무려 12여 년째 비판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정부 당국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글·알렉시아 예셴 Alexia Eychenne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사측에 의하면, 나머지 230명 중 25%는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고, 18%는 재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며, 10%는 퇴직했다. 
(2) 본인의 요구로 가명 처리.
(3) 위와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