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경제기적에 신음하는 최하위계층
2018-03-29 달렐 벤바발리 | 인류학자
인도는 세계 5위 강대국으로 올라서려는 시점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카스트제도에 계층분화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다. 공직 및 교육직 쿼터제도 덕분에 소수의 달리트(불가촉천민)들이 중산층으로 편입됐지만, 여전히 대다수가 빈곤에 머물러 있다. 토착민(아디바시)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아디바시와 달리트는 인도의 고도성장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 때문에 만신창이가 됐다.(1) ‘원주민’을 뜻하는 아디바시 부족은 스스로를 ‘토착민’으로 규정한다. 인도 12억 인구 중 이들 부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8.6%로 약 1억 명이 넘는다. 그리고 한때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던 달리트는 스스로를 카스트제도의 압제로 ‘산산이 조각나버린 피억압자’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16.6%인 2억 명에 달한다.
행정적으로 아디바시와 달리트는 불합리한 역사 때문에 ‘지정 부족민 및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로 분류돼 교육기관, 공직, 의회에서 인구수에 비례하는 자리를 할당받는 특혜를 받는다.(2) 1950년 인도 헌법에 명시된 이 적극적 우대 조치는 아디바시와 달리트의 사회계층이동에 물꼬를 터줬다. 물론, 민간 부문의 임원직은 여전히 카스트제도 내 지배계급이 장악하고 있다.(3)
기록적인 경제발전, 더욱 깊어진 차별
아디바시와 달리트는 여전히 인도 빈곤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제자유화 이후 기록적인 경제발전(1980년 중반부터 20년간 평균 6% 기록, 이후 10년간 8%로 상승)에도 불구하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 이래 연평균 빈곤감소율은 1% 미만이고, 국제 빈곤선 기준인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이 82%에 달한다. 각종 지표(수입, 전기·수도사용, 위생, 교육 등)를 바탕으로 산출한 지수를 보면, 다음의 도식이 그려진다. 총인구의 55.4%가 빈곤층인데, 카스트 지배계급 중 빈곤층에 속하는 이들은 33.3%에 그친다. 반면 달리트는 65.8%, 아디바시는 81.4%까지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참고로 중국의 경우, 빈곤층이 총인구의 12.6%에 속한다.(4)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인도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차별, 카스트·계급·성별·민족·종교에 따른 억압을 살펴봐야 한다.
급속도로 진행된 자본화 및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신분 세습에 따른 격차는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됐다. 인도 정부의 1980년대 신자유주의 개혁과 1991년 금융위기 때의 단호한 정책들은 시장개방 장려와 국외자본 유치가 목표였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인도의 값싼 인력과 격차가 극심한 사회계급제를 적극 활용했다. 오늘날 인도 노동자의 90% 이상이 아무런 사회보장혜택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임금인상은 물론 그나마 상황이 나은 공공부문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사회 내에서의 계급은 물론 민족, 카스트, 성별도 일자리 분포에 여전히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 강도가 가장 높은 일자리는 달리트들에게, 불안정성이 가장 높은 일자리는 최빈곤 지역 출신의 아디바시 계절노동자에게 먼저 분배되는 식이다. 여기서 최빈곤 지역이란, 정부로부터 영토를 몰수당한 아디바시 부족민 거주지역을 말한다. 할당제 덕분에 이들 계층 내에서도 교육의 혜택을 받는 이들이 생기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평균임금을 받는 노동자 비중이 다른 카스트 계급에서는 55%에 달하지만, 달리트와 아디바시의 경우 18%에 불과하다.(5)
영국 인류학자 브렌단 돈간(Brendan Donegan)에 의하면, 인도 타밀나두 주(州) 동부의 쿠달로르 산업단지 부근 마을에서 과도한 빚 때문에 카스트 지배계급 대지주들에게 종신노예마냥 종속됐던 달리트 농민들이 해방됐다.(6) 그러나 이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다. 농민의 아내들은 여전히 대지주들 밑에서 날품팔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 인부들은 공무원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심각한 오염을 초래하는 공장에서 최하위 직급을 맡아 위험물질을 다루고 있다. 한 예로 쿠달로르에 위치한 파이오니어 젤리스 공장(직원 총 500명)에선 인부들이 젤라틴 제작용 소뼈를 씻으려고 화학물질을 사용하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보호책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2008년, 공장 인부들(이 중 70%가 달리트)이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자, 경영진은 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아디바시 출신의 계절노동자들로 인력을 대체했다.
이러한 기업 중심적 전략은 케랄라 차(茶)농장에서도 발견된다. 이곳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달리트들은 조금씩 아디바시 인부들로 대체됐다. 자야실란 라쥐에 따르면, 인도 동부(자르칸드 주) 빈민촌 출신인 아디바시 부족은 비교적 고분고분한데다 시간제로 고용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반면 달리트는 정규직으로 고용된 상태였고, 성향도 공격적인 편이었다.(7) 이 같은 ‘과잉착취’ 현상은 인도의 자본주의 발전이 사회적, 민족적, 종교적 분열을 발판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히 드러낸다.
2016년 9월, 달리트 8,000명이 모여 한 달간 파업을 추진했다. 대지주 농장에 남은 인부의 아내들이 주축이 됐다. 농업이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노동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이 지역 차(茶)공장에서 일하던 남편들이 해고되자 결국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녀의 남편들은 어쩔 수 없이 타밀나두 주(州) 부근 대도시로 이주해 직물공장에 취직했지만, 계속해서 차별대우를 받았다. 심지어 몇몇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 카스트 계급을 드러내는 성(姓)을 바꾸기도 했다. 아디바시 부족이 거주하는 지역이 빈곤해지는 주원인은 ‘강탈에 의한 축적’ 이다. 카스트 지배계급 출신 기업가와 농업가들이 이 지역에 대거 들어오면서, 토착민들의 생계수단이던 천연자원을 빼돌린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당사가 현지조사를 진행했던 텔랑가나 주(州) 동북의 바드라찰람을 들 수 있다.(8) 아디바시 부족민 거주지인 이곳은 ‘지정 구역’으로 분류돼 있으며, 헌법의 보호를 받아 타지역인의 토지매수가 특별법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상일 뿐, 토지법을 두고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한쪽에서는 자본주의 농업가들이 상업작물(담배, 목화 등)을 재배하기 위해 불법으로 토지를 점유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 스스로가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토지를 매수해서 투자자에게 넘겨주거나 댐과 같은 인프라 구축 사업을 벌인다.
결국 바드라찰람의 비옥한 고다바리강 유역에, 그것도 보호구역 중심에 인도 담배회사(ITC)의 거대 제지공장이 들어섰다. ITC는 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제지·포장재 사업 부문을 보유한 그룹이다. 정부는 이 지역의 산업화를 합리화하고자 아디바시 부족민들을 고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고용된 인원은 극소수였다. 당사의 현지조사에 의하면, 공장에 채용된 정규직 1,575명 중 아디바시 부족민은 5% 미만, 일용직 4,000명 중에서는 8%에 그쳤다. 민족영토에 관한 토지법 혜택을 받지 못한 달리트들의 상당수도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예전처럼 자신의 영토에서 식량 작물을 재배하고, 경제적 독립과 문화적 자율성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들이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구역 안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영토와 수자원(공장폐수로 인한 고다바리강의 오염)을 잃었고, 결국 ‘프롤레타리아화’ 됐다. ITC는 숲에서 자생한 대나무밭을 황폐화한 후, 유칼립투스 농장에 투자를 시작했다. 유칼립투스는 환경파괴적 성격이 강한 식물로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고 지하수를 고갈시킨다. 그런데 아디바시 소유의 영토에서 유칼립투스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디바시 부족은 고향에서 쫓겨나 일자리를 구걸하거나 도시로 이주해야만 했다. 지역적 특성을 떠나 당사가 조사한 다른 많은 주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전개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인도의 농업부문 GDP가 1990년 29%였던 것이 2016년 17%로 감소한 이후, 카스트 지배계급 출신의 지주들에게 농업은 더 이상 중요한 자본축적 수단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은 무역과 산업에 투자함으로써 영역을 다각화했다. 이런 경제변화는 종속방식과 통제전략의 변형을 가져왔다. 그러나 근본적인 권력관계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권력관계가 비로소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투쟁 덕분이었다.
포스코, 환경파괴 우려한
현지주민 반대에 부딪혀
아디바시 부족의 토지몰수에 대항한 투쟁은 마오쩌둥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다.(9) 이 때문에 인도에서 철수한 다국적기업들도 있다. 한국 철강기업 포스코는 인도 정부로부터 면적 800헥타르(8㎢)의 영토를 인가받았으나, 환경파괴를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로 2017년 3월 반납 의사를 밝혔다.(10) 런던에 본사를 둔 광업회사 베단타는 바욱사이트(Vauxit) 광산을 개발하면서 심각한 오염을 초래했다. 인도 굴지의 철강기업 타타(Tata)도 철수한 기업 중 하나다.(11) 반면, 인도 정부도 강경한 억압으로 맞섰다. 2006년, 타타 철강공장 설립을 반대하는 시위자들을 대상으로 경찰이 최소 12명을 사살하고 수십 명의 부상자들을 냈던 인도 오디샤 주(州)의 칼링가나가르 대학살 사건처럼 말이다.
달리트의 경우, 자신들만의 정당과 단체를 설립해 카스트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꾀했다. 브라만을 비롯한 카스트 지배계급이 여전히 정부조직과 생산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지만 말이다. 카스트 지배계급이 이끄는 인도 공산당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이론을 주장하며 이런 문제 때문에 골치 아파진 상황에 대해 노여운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인도의 계급착취와 카스트제도의 억압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새로운 억압의 메커니즘은 기존 질서에 편입하면서도 이를 완전히 뒤바꿨다. 이 새로운 형태의 억압은 아디바시와 달리트를 피지배계급에 계속 머무르게 하고자 한다. 교육수준이 높아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입학자격이 있는 아디바시와 달리트 중 빈곤층의 비율은 47.8%에 달하며, 대학 내에서의 카스트제도로 인한 차별도 여전하다. 2016년에 하이데라바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달리트 출신 로히드 베물라 연구원이 자살한 비극적인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12) 카스트 지배계급이 소외되고 낙인찍힌 최하위계급들을 억압해온 역사적 권력관계는 후자가 경제시장에 편입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신분·민족·종교·카스트에 따른 피억압자들의 내부적 분화는 자본주의 도입으로 더욱 심화됐고, 이 때문에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이 약화됐다.
이런 분열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도가 현재 당면한 최우선과제라 할 수 있다.
글·달렐 벤바발리 Dalel Benbabaali
인류학자, <Ground Down by Growth: Tribe, Caste, Class and Inequality in 21stCenturyIndia>(Pluto Press, 런던, 2017년)의 공동저자(Alpa Shah, Jens Lerche, Richard Axelby, Brendan Donegan, Jayaseelan Raj, Vikramaditya Thakur).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Ground Down by Growth>, op. cit.
(2) Purushottam Agrawal, ‘En Inde, des quotas pour les basses cast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7년 5월.
(3) 인도 인구의 80%가 힌두교도이며, 매우 까다로운 카스트제도의 지배를 받는다.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은 성직자와 학자로 구성된 ‘브라만’이며, 전사, 군인 등으로 구성된 ‘크샤트리아’와 상인 등으로 구성된 ‘바이샤’가 그 뒤를 잇는다. 가장 낮은 계급은 농민, 장인 등으로 구성된 ‘수드라’이며, 달리트는 카스트제도 밖에 있다.
(4) <Ground down by growth>, op. cit.
(5) Ibid.
(6) Brendan Donegan, ‘Cuddalore, chemical industrial estate, Tamil Nadu’, <Ground Down by Growth>, op. cit.
(7) Jayaseelan Raj, ‘Tea belts of the Western Ghats, Kerala’, <Ground Down by Growth>, op. cit.
(8) Dalel Benbabaali, ‘Bhadrachalam Scheduled Area’, <Ground Down by Growth>, op. cit.
(9) Naïké Desquesnes & Nicolas Jaoul, ‘Les intellectuels, le défi maoïste et la répression en Ind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10월.
(10) ‘Inde. Posco ne s’en tirera pas comme ça’, Courrier international, 파리, 2011년 7월 4일.
(11) Jyotsna Saksena, ‘Des accaparements facilités par les pouvoirs public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4월.
(12) ‘Suicide d’un étudiant dalit et discriminations de caste dans les universités indiennes’, Contretemps.eu, 2016년 2월 22일.
박스기사
포스코의 뒤늦은 한발 빼기
포스코가 2017년 3월, 인도 동북부 오리샤 주에 확보했던 제철소 부지를 현지 정부에 일부 반납하기로 했다. 난항을 겪던 현지 공장 설립 작업에 변화 조짐이 감지됐다. 이는 오리샤 주측이 토지세와 삼림전용 비용 등 8억 2,000만 루피(약 142억원)를 지급하라고 요청한데 따른 것. 이에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해 3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철소 건립 작업이 장기화되면서 일부 부지에 대한 (반환)의사를 표시한 것”이라며 “다만 현지 제철소 건립 작업을 완전히 취소한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1)
현지에서는 포스코의 제철소 건립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졌고, 환경 파괴 가능성에 대해 국제 환경단체까지 개입하면서 2005년부터 추진해 온 제철소 건립이 10년 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원래 4200에이커(약 1700만㎡) 규모로 조성하려던 계획은 2700에이커(약 1093만㎡) 수준으로 줄었고, 현재 포스코가 오리샤 주 정부로부터 인수한 부지는 550에이커(약 223만㎡) 수준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포스코가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에 180만t 규모의 냉연강판 공장과 45만t 규모의 자동차·가전용 용융아연도금강판 공장을 설립하고, 델리·푸네·첸나이 등에 철강가공센터 등을 운영하며 인도 내 하공정(철강제품 생산) 중심의 투자를 확대하는 등 다른 지역의 투자를 늘리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포스코와 현지 정부 사이에 일종의 ‘기싸움’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포스코가 오디샤 주 제철소 건립에 급할 것이 없는 반면, 인도 내에서도 낙후 지역으로 꼽히는 오디샤 주 입장에서는 산업 시설 유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글·성일권
(1) <이데일리 뉴스>, 2017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