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총리가 이끌 이탈리아 새 정부의 노선은?

2018-03-29     루카 마누치 | 취리히대학 정치학 연구원

지난 3월 4일 총선으로 이탈리아의 불안정성이 가중됐다. 개표 결과, 자칭 ‘반체체적’ 정당 두 곳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이며 권력을 차지했지만, 국정 운영에 필요한 과반을 득표하지는 못했다. 몇 년 만에 이탈리아의 최대 정당으로 성장한 ‘오성운동’은 이탈리아와 유럽의 정치 판도에서 UFO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 이탈리아 총선에서 오성운동(Movimento Cinque Stelle, M5S)이 승리를 거둔 것을 두고,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계속된 정치·경제위기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정치인과 언론인, 유럽의 기관들을 비판하는 오성운동은 많은 유권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창구였다. 이탈리아인들은 오성운동이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를 높이 평가하는 듯하다. 

2016년, 경제학자 굴리엘모 바로네와 사우로 모세티가 발표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피렌체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들은 15세기에 막대한 부를 쌓았던 가문의 성(姓)과 동일한 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 혈통임이 밝혀졌다.(1) 어쩌면 이렇게 경제적 기득권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인들 중 1,100만 명이나 오성운동을 지지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부터 이탈리아를 이끌어 온 대형 정당들은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특히 청년실업률이 높음), 통제 불가능한 공공부채 등에 책임이 있다.(2) 곳곳에 존재하는 마피아와 결탁한 부패 스캔들까지 연이어 불거지면서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오성운동은 많은 이들에게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자, 자신들이 가진 특권만을 걱정하는 ‘특권층’에 보복한다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오성운동의 창당자인 주세페 그릴로는 2014년 자신의 블로그에서 오성운동의 세 가지 적에 대해 언급했다. 그에 의하면, 그 세 가지 적은 우선 ‘특권층’(과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를 두둔하는 언론인들, 다음은 공공조달이나 국가사업권 접근을 대가로 ‘특권층’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또는 특권층에게 투표용지 뭉치를 보장해주는) 체제 속 기업인들, 그리고 매춘부보다도 가치가 낮은 정치인들이었다. 오성운동의 총리 후보인 루이지 디 마이오(31)는 지난 3월 4일 총선 결과를 높이 평가하면서 현재의 제2공화국의 폐허 위에서 ‘시민의 제3공화국’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즉, 1994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생긴 대형 정당들이 몰락하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총리직에 당선되기까지 이탈리아 정치역사에 늘 있어왔던 부패 스캔들이 남긴 잿더미 위에 제3공화국이 건설됐다는 것이다. 

2013년 총선 첫 등장에서 오성운동은 “통조림의 뚜껑을 따듯이 의회를 개방해 비밀과 음모, 타협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디 마이오 대표는 오성운동은 집권할 준비가 돼 있으며, 다른 조직들은 오성운동과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릴로가 2005년에 만든 블로그는 4년 뒤 사이버 운동인 오성운동으로 발전했으며, 오성운동은 이제 이탈리아 최대정당이 됐다. 

인터넷으로 직접민주주의 실험에 성공 

이 현상은, 무엇보다 오성운동의 독특한 인터넷 시스템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지자들의 참여를 쉽게 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개발된 이 시스템을 통해 오성운동의 선거 후보와 대표자가 선택되고, 당의 주요정책이 결정되며, 전체투표가 이뤄진다. 오성운동은 ‘온라인 의결 원칙 위에 세워진 민주주의’를 장려한다. 보다 많은 이들이 당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성운동이 추구하는 디지털 유토피아(인터넷 포럼을 통해서 투표가 이뤄짐)는 이미 정치풍토를 바꿔놓았다. 앞으로 이탈리아인들은 정당이나 노조, 신문사 등의 불쾌한 중재 없이 클릭 한 번으로 의견이나 기분을 직접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요소도 있다. 적어도 지금 이탈리아에서 ‘깨끗한 (또는 거의 깨끗한) 범죄기록’을 중시하는 유일한 정당이 오성운동이라는 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서로 공격을 퍼붓느라 정당에 대한 신뢰를 계속해서 무너뜨리는 정치·경제 사건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치 경험이 없는 시민이 구체제의 어느 ‘전문가’보다 언제나 더 정직하다”라는 명제에서 오성운동의 성향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과거 집회 때마다 참가자들이 외치던 “정직! 정직!”이라는 구호는 이제 오성운동의 구호가 됐다. 

오성운동의 약진은 기본소득도입 공약 덕분이기도 하다. 780유로라는 금액이나 지급 기간을 보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오성운동은 총선에서 이 공약 덕을 톡톡히 봤다. 이는 이탈리아의 실업자 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오성운동은 EU에서 청년 실업률이 가장 높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40% 이상의 득표율을 보였다. 전국적으로 보면 실업자, 노동자, 근로자, 가정주부와 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오성운동은 이 외에도 학교와 병원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연금을 늘리겠다는 복지 공약과 세금을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공약은 상대 진영에서도 내세우는 것이었다. 3월 총선에서 모든 대형 정당들도 공공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인하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오성운동, 기본소득제 도입 후 크게 약진  

‘포스트 이데올로기적’ 접근도 오성운동에 대한 지지가 높았던 이유가 될 수 있다. 오성운동은 기성 노선이나 신조에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정책에 있어서 큰 유연성을 가질 수 있었고 원하는 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완전히 상반된 관점을 가진 유권자들을 결집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오성운동의 의사소통으로 공고해졌다. 목소리가 큰 베페 그릴로와 그의 추종자 알렉산드로 디 바티스타는 가장 급진적인 유권자를 끌어당겼고, 진지하고 협조적인 루이지 디 마이오는 온건파 유권자들을 안심시켰다. 정치학자인 일보 디아만티는 오성운동을 두고, 첫 번째 정류장에서 좌파 성향의 승객을 태우고 다음 정류장에서는 우파나 극우파 승객을 태워서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항의자들을 모으는 운송수단이 된 버스에 비유했다.(3)

2013년 그릴로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오성운동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시민의 곁에 있을 뿐이다. 완벽하게 포퓰리스트적이다. 어떤 법이 좋으면 그 법에 투표하지만, 법이 나쁘면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세계관에서는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나 역사적으로 유죄인 것은 동일하며, 유물에 가까운 기성 정당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인 중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이데올로기’란 단어는 심지어 욕설처럼 인식된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분열을 극복하고’ 다른 것을 시도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성운동은 동성애자의 권리나 이민 등의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릴로의 블로그(현재 오성운동의 공식 의사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음)에 10년간 올라온 글을 바탕으로 오성운동의 연설에서 보이는 융통성을 미치 앰슬러와 공동으로 평가해 봤다.(4) 그릴로는 너무 많다 싶을 만큼 많은 글을 올렸고(하루에 포스트가 하나씩 올라옴), 인상적일 정도로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그릴로의 블로그에는, 언급된 각각의 주제에 대한 입장보다는 직접민주주의의 특정 개념에 대한 거대 담론이 더 많았다. 그리고 부패한 엘리트와 순수한 인간을 비교하는 마니교적 세계관을 다룬 글들이 많았다. 

오성운동의 핵심과제를 나타내는 ‘오성(다섯 개의 별: 공공 수도, 공공 교통수단, 지속가능한 개발, 모두를 위한 무료 인터넷, 환경보호)’은 점점 본래의 의미를 잃었다. 이 다섯 개의 핵심과제는 2005년과 2006년에 담론의 중심에 있었지만 2011년과 2012년에 다시 등장했다가 또다시 사라졌다. 

오성운동은 특히 유럽 문제에 있어서 탁월한 적응력을 보여줬다. 유럽 문제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큰 비중이 없었다가 2014년 유럽의회 선거 전, 오성운동이 이탈리아는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논쟁에 뛰어들면서 주요 주제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잊혔다. 당시 그릴로는 이에 대해 오성운동에는 “교리도, 이데올로기 중심의 기반도 없고”, 오성운동의 입장은 “매우 명확하며 유연하다. 국가 이익에 따라 유로를 유지할 수도, 유로와 단절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경험보단 정직성과 투명성 어필  

온라인 투표를 근거로 기수를 계속 변경하는 것은 선거에서 단기적으로는 충분히 이익을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혀 계속할 만한 일이 아니다. 국정운영을 위임받았다고 생각한다면, 오성운동은 의견이 분열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입장 표명을 그만두는 편이 낫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유권자들이 불만을 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역량이나 경험보다는 정직도를 기준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 원칙에 항상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디 마이오가 자신의 전문가 그룹에 영입한 ‘경제학자’ 알렉시아 달렉산드로는 실제로 경제 분야에 대한 막연한 관심만 있을 뿐, 해당 분야에서 어떤 직책도, 학위도 없는 사실에 대해서 언젠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그녀는, 개인적으로는 <이코노미스트>를 읽는다고 했다). 2016년 6월 로마 시장에 당선된 이래 끊임없이 잘못된 행보를 일삼고 추문에 휩싸인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의 경우를 보더라도, 인터넷상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는 가장 나은 후보를 선택하기에도, 완벽한 투명성을 보장하기에도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성운동의 유권자들은 이탈리아가 처한 상황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거나 실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비단 이탈리아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도 ‘포스트 이데올로기적인’ 단체들이 영향력을 얻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사회-민주당이 힘을 잃고 있고, 보수당은 당원들 중 일부가 극우로 향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국면에서 모든 이데올로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선거에서 폭넓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마법의 공식처럼 보일 수 있다. 

‘좌vs우’라는 논리로 정당을 분류하는 것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민이나 동성결혼에 대해 반대 캠페인을 하는 등 정체성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우파의 성향을 보이면서도,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조치에 찬성하는 정당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오성운동은 유럽에서 새로운 형태에 속한다. 오성운동만큼 포스트 이데올로기적인 본질을 지닌 정당은 없다.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 또한 불평등과 부패에 반대하는 참여운동(‘분노한 사람들’)에서 비롯됐으며, 오성운동처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포데모스는 명확하게 좌익정당이다. 반대로, 마린 르 펜이 이끄는 프랑스의 국민전선(FN)이나 나이젤 패라지가 이끄는 영국독립당(UKIP)은 민족주의적인 담론으로 보자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지만, 자신들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오성운동은 스웨덴, 독일, 체코, 아이슬란드에서 한동안 번성했던 해적당에 비교할만하다. 이들 해적당 역시 직접민주주의, 투명성, 정보공개의 자유, 반부패를 찬미했지만, 이 중 일부는 강력하고 일관된 지도층의 부재 및 폭넓고 대중적인 사회 기반의 부재로 결국 무너졌다. 이제까지 이탈리아가 다른 유럽국가들의 실험실 역할(1920년대의 파시즘, 1960년대의 정치적 불안정, 1990년대의 전문가 정부 등)을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다른 국가들은 오성운동의 전략에서 영감을 얻을 것이다. 최선이 될지 최악이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원문 보기>> Ni droite ni gauche… ni centre
 
글·루카 마누치 Luca Manucci
취리히대학 정치학 연구원.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Guglielmo Barone&Sauro Mocetti, ‘Intergenerational mobility in the very long run: Florence, 1427~2011’, <Working Papers>, n°1060, Banque d’Italie, Rome, 2016년 4월.
(2) Andrea Fumagalli, ‘Jobs Act, le grand bluff de Matteo Renzi 이탈리아 신규고용법은 렌치 총리의 사기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7월호.
(3) Ilvo Diamanti, ‘M5s, né destra né sinistra: il partito “pigliatutti” che punta ai delusi della politica’, <La Repubblica>, Rome, 2017년 4월 10일.
(4) Luca Manucci&Michi Amsler, ‘Where the wind blows: Five Star Movement’s populism, direct democracy and ideological flexibility’, <Itali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48, n°1, Cambridge, 2018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