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공공의료시스템 구축의 어려움

2018-03-29     로익 라미레즈 | 기자

지난 10년간 에콰도르 정권은 모든 시민에게 의료 보장 혜택을 제공하는 등 다시 국가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는 데 힘쓰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야심 찬 기획은 시시때때로 미숙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그초스(Sigchos)가 우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네요.” 의사 세사르 몰리나는 밝은 햇살 속에 모습을 드러낸 하얀 눈이 뒤덮인 산꼭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굽이굽이 봉우리를 넘고 골짜기를 지나 한 시간 남짓 산을 올랐을까. 이윽고 우리가 탄 차량이 최신식 병원 앞에 닿았다. 2017년 1월 개원한 심플하고 단아하고 모던한 스타일의 이 신축 병원에는 현재 1백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건물 정면에 전 라파엘 코레아(2007~2017) 정부가 제정한 국가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삼원색의 원. 어느새 ‘국가 브랜드’가 된 마크였다.

2010년 취재진과 만났을 당시 파리 주재 에콰도르 대사였던 카를로스 하티바는 “라파엘 코레아가 집권하기 전 정부의 의료 예산 중 1/3이 넘는 예산이 NGO에 곧장 흘러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코레아 대통령과 그의 소속정당인 조국동맹당은 180도 노선을 바꾸고 국가가 근본적으로 주도적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코레아 집권 후 적지 않은 정부 사업이 출범했다. 그러나 사업실행 과정은 종종 미카도 게임(나무 스틱을 복잡하게 쌓은 다음 다른 나무스틱들이 무너지지 않게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스틱을 하나씩 빼내는 보드게임-역주)을 연상시켰다. 뭔가 손대려면 반드시 나머지를 무너뜨릴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부문이다.

마리아 베로니카 에스피노사 보건장관은 “코레아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 30년간 공공병원은 단 한 개도 건설된 적이 없었다. 이 나라에서 공중보건이 얼마나 미흡하고 또 중요한 문제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2008년 개정헌법을 계기로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됐다. 새 헌법은 국민이 무료로 의료 서비스와 의약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할 책임을 명시했다. 2008~2016년, 정부는 150억 달러(2000년 이후 에콰도르의 화폐는 미국달러로 전면 교체됐다)가 넘는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며, 2000~2006년 연평균 의료 예산지출을 5배나 확대했다. 2008~2015년, 보건부와 일하는 인력도 1만 1,201명에서 3만 3,000명으로 증원했다. 더욱이 이와 더불어 임금인상도 병행했다.(통계 참조)(1) 

그러나 코레아 정부는 전 정부로부터 구조적 문제들을 과제로 떠안았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보장체계의 산발적 운영이었다. 에콰도르의 공공의료시스템 안에는 공공보건부(MSP), 에콰도르사회보장청(IESS), 경찰사회보장공단(ISSPOL), 군인사회보장공단(ISSFA) 등 모두 4개 기관이 공존했다. 에스피노사 장관은 “공공의료시스템은 모두 4개 하위체계로 구분된다. 여기에 민영의료시스템과 NGO 등이 더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공시스템의 각 하위체계가 저마다 각각의 규범과 규정, 한계를 지닌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코레아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인 2006년, 일반적인 에콰도르인의 상황에 대해 한 번 떠올려보자. 보통의 에콰도르인은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사회보장청(IESS)(사용자와 노동자가 함께 보험료를 부담하는 선택적 의료보험제도)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프면, 공공보건부(MSP)로부터 의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고난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회보장청(IESS)과 연계된 공공병원(에콰도르에서는 의료비 환급을 받으려면 연계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역주)은 이용할 수가 없다. 최소 3개월간 보험료를 납부한 환자에게만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타협의 여지는 없다.

의료보장혜택 확대, 수요 폭증으로 이어져

2008년 개정 헌법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대책을 마련했다. 새 정부는 석유 수출 수익을 재원으로, 건강보험제도를 의무화하고, 가입기관에 관계없이 모든 환자가 의료서비스를 받고 의약품 비용을 환급받을 수 있도록 공공의료통합시스템을 구축했다. 더욱이 정부는 단순히 노동자(비공식경제 종사자들은 희망하는 사람만 가입)(2)의 사회보장청(IESS) 가입을 의무화하는 데만 만족하지 않았다. 2년 뒤에는 추가 보험료 부담 없이 배우자나 자녀에게까지 의료보장혜택을 확대했다. 경제학자 호세 마르티네스는 “오늘날 사회보장청(IESS)에 가입한 국민은 약 350만 명(과거에는 250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수혜자는 무려 900만 명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환자가 민간이 운영하는 종합병원이나 의원, 의학연구소 또는 전문가들에게 이송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2008~2015년, 사회보장청(IESS)은 총 32억 달러가 소요되는 무려 846건의 계약을 용역업체와 체결했다.(3) 마르티네스는 “사회보장청(IESS)이 민간부문에 있어 가장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고객이 됐다”고 말을 맺었다.

여기엔 어떤 문제가 있을까? 후안 쿠비 도눔재단 대표는 “환자가 치료를 받을 때 과연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인지 민간인지를 중요하게 생각이나 할까?”라고 자문했다. “지난 10년간 대부분의 의료부문 투자는 민간의 배만 불려줬다. 더욱이 민간부문은 의료비를 과다 청구하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정부는 환자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여력을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부정부패가 양산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됐다.” 2016년 1월 2일, 코레아 대통령은 공공병원과 사병원 사이에 수술 후 합병증(과다 비용이 청구되는 원인) 발병률이 심한 격차를 보이는 현상을 지적했다. “사회보장청(IESS)과 연계된 공공병원의 합병증 발병률은 20%입니다. 하지만 민간부문은 얼마인지 아십니까? 무려 80%입니다. 국민 여러분, 뭔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충격이 컸던 것일까? 2001~2016년 민간으로의 환자이송 비율은 1/4 급감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아니라, 열대식물을 보호하는 비닐하우스의 행렬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36,000m2의 대지 위에 펼쳐진 푸요시립종합병원은 에콰도르 동부 아마존 밀림을 옆에 낀 매우 독특한 스타일의 건물이었다. “우리 병원은 2013년 3월 개원했습니다. 현재는 모두 125개 병상을 갖추고 있지요.” 크리스티안 루이스 원장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흡사 이 병원 개관식에 참석했던 코레아 대통령의 말투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코레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 병원을 한 번 방문해 부디 “새 조국의 긍지를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는 공교롭게도 미숙아실의 그나마 하나뿐이던 신생아용 인공호흡기가 고장 난 상태였다. 외국 기자 앞에서 당황한 담당자는 아기 환자를 차로 2시간 거리에 떨어진 공공병원으로 이송할 것을 요청했다. “애석하지만,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루이스 원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물론 프랑스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박에 고개를 끄덕이리라.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기계 고장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혹자는 이것이 훨씬 더 큰 문제와 연계돼 있다고 본다. 

“모든 것을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코레아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 에콰도르의 정국은 극도로 불안했다. 2000년에서 2007년 사이 대통령이 무려 4명이나 교체됐고, 그중 제대로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단 2명이었다. “코레아 정부는 마음이 다급했을 것이다. 정권을 유지하고 차기 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가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가령 병원을 새로 짓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때때로 정작 그에 필요한 돈이나 장비, 전문가 등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사설병원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는 베아트리스 레온은 좀 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빈정거렸다. 정부가 때로는 멀쩡한 것마저 손을 댔다고 말이다. 그녀는 ‘레오폴두 이스키에타 페레스 열대 위생 및 의약품 국립연구소’의 일화를 일례로 들었다. 2012년 대통령령에 따라, 위 연구소는 공중보건연구국립연구소(INSPI)로 교체됐다. “물론 이스키에타 페레스가 모든 점에서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 없는 의사라도 25년간 현장에서 일했다면 25년의 경력을 쌓은 거잖아요.” 하물며 이스키에타 페레스 연구소의 경력은 무려 70년에 달했다. 반면 신생 연구소는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별다른 능력을 증명해 보이지 못하고 있다. 도눔 재단이 발간하는 한 과학저널에 따르면, 과거 이스키에타 페레스 연구소는 효과가 뛰어난 항뱀독소(Antivenin)를 직접 생산했지만, 현재는 코스타리카의 수입품에 의존하고 실정이다.

에콰도르에서 국가체계를 재건한다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적극적으로 발을 빼려던 분야에서 통제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극에 달했을 당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에콰도르 역시 민영화를 중대한 선결과제로 내세웠다. 에콰도르 정부는 빈곤층에 대한 공공복지를 조직적으로 무력화하며(1990년 극빈층의 45%) 모든 복지정책의 실행을 NGO에 하청을 주고 위임했다. 이런 식으로 설립된 NGO는 1960~1980년 104개에서 이후 15년에 걸쳐 무려 376개로 급증했다.(4)

그러나 자코뱅 정신의 소유자인 코레아 대통령은 이런 행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2007년 에콰도르 국제협력기술사무국(SETECI)을 설립했다. 2009~2016년 이 사무국의 국장을 맡은 가브리엘라 로세로는 국제협력기술사무국(SETECI)을 “국외 NGO 활동 규제의 놀라운 모범”을 보여주는 예라고 자찬했다. “국제 NGO 중에는 일부 활동을 국내 NGO에 하청 주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재원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규제책을 마련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법적 제도의 하나로 마련된 2013년 6월 자 법령 제16호는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 이 법령은 관련 기구를 해체할 수 있는 사유를 명시하고 있었는데, 가령 “정치적으로 편향된 활동에 매진”하거나, “공공의 평화”를 위협하거나, “정부정책에 간섭”하는 경우 기구를 해체할 수 있었다. 가령 2014년 이 조처 덕에 미국이 에콰도르 개입의 발판으로 이용하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북미기구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에콰도르에서 축출됐다. 그러나 동시에 이 조처는 과거 신자유주의 정권이 정부 정책에 ‘동참’시키기 위해 끌어들인 NGO의 활동마저 가로막았다. 이 때문에 정부와 관련 단체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일부 단체가 해체됐다. 

물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 됐다. AIDS와 성병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NGO, 키미리나 소속의 의사 마리아 엘레나 아코스타는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코레아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에는 오히려 관련 부처와 더 원활하게 협력을 했고, 의사결정 과정에도 관여했다. 그러나 새 정권은 모든 것을 중앙집권화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혹 그녀가 국가개입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잘만 했다면 국가개입이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조조정과정은 단기성과를 내는 데만 목을 맸다. 의료분야에서 단기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효과가 나지 않는 정책을 금세 갈아치웠다. 계속 반복적으로 말이다. 그런 식으로는 관련 부처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작업계획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대의학기술과 원주민 전통지식의 ‘융합’

정치적 의견 차이도 문제가 됐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은 구조개혁작업에 어떤 것이 있었는지 묻는 말에 그녀는 ‘청소년임신예방전략(ENIPLA)’을 예로 들었다. 2011년 출범한 이 사업은 ‘성에 대해 솔직하고 진지하게 말해봐요’라는 직설적인 이름을 내건 무료 상담 전화를 개설했다. 2014년 11월, 코레아 대통령은 이 사업을 지휘할 수장으로 모니카 헤르난데스를 지명했다. 오푸스 데이 계열의 기독교 신자인 그녀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성 문제 예방사업을 이끌었다. 기존의 무료상담 전화를 폐쇄하고, “가족의 역할을 재건”한다는 미명 아래 ‘에콰도르 가족계획’ 사업을 새로 출범시켰다. 기존의 정책과는 180도 다른 정책이었다고 아코스타가 설명했다. 그녀는 “에콰도르 청소년이 첫 성 경험을 하는 연령이 12~13세”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새 사업이 출범했을 당시, ‘성과 임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에콰도르 전선’ 등 많은 단체가 ‘종교적 관점’에 함몰된, ‘과학적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정책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5)
그러나 어쨌든 다른 한편으로 국가주도 사업은 때때로 원주민들의 자율성을 수호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코토팍시 주의 추그칠란, 이곳에서 의사 몰리나와 공무원 세군두 필라타시그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산 정상으로 취재진을 인도했다. 소규모의 원주민 공동체가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곳이었다. 구릿빛 피부에 키가 작달막한 필라타시그도 구아야마 그란데 공동체에 소속된 ‘원주민’ 출신이었다. 그는 “보건 분야에서 문화 간 발전을 증진”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한 모자를 푹 덮어쓴 노부인을 만났다. 사람들 말로는 “마을의 산파”라고 했다. 필라타시그는 에스파냐어와 함께, 케추아어 등 몇 가지 지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그는 “현대의학기술과 원주민 공동체의 선조들이 남긴 전통지식의 융합”의 증진을 담당하고 있었다. 

“우리 산파들은, 나를 지명한 공동체에 방문한다. 공동체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위생 조치를 일러주고, 임신 합병증의 징후를 알아보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래야 임신 시 합병증이 의심되면 우리가 곧장 환자를 치료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국가가 너무 중앙집권적인 것은 아닐까? 혹 다양성을 저해할 위험은 없을까?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상 처음으로 원주민 문화와 관습이 공식인정을 받고 보호 대상이 됐다. 심지어 헌법으로까지 명문화됐다.”  


글·로익 라미레즈 Loïc Ramirez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La reforma en salud en Ecuador’, <Pan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제41호, 워싱턴 DC, 2017년 5월, http://iris.paho.org
(2) 2017년 3월 활동인구의 약 35%.
(3) ‘Los últimos 5 presidentes diagnostican al IESS’. <El Telégrafo>, 키토, 2016년 2월 2일. 
(4) ‘Las ONGs y el modelo neoliberal’, 에콰도르사회개발연구소(INEDES), 키토, 2001년.
(5) 2017년 5월 조국동맹당 소속의 레닌 모레노 신임 대통령이 집권 후 곧바로 이 법령을 철회했다.


박스기사

2005년 vs 2015년

기대수명
2005: 74.2년
2015: 75.8년

영아 사망률
2005: 24.4%
(살아서 태어나는 신생아 1천 명 대비)
2015: 18.3%

보건비 지출(국내 총생산 기준)
2005: 5.9%
2014: 9.2%
(최종 집계한 사용가능 비용) 

출처: 국제 연합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경제 위원회(Commission economique des Nations unies pour l’Amerique latine et les Caraib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