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대신 뇌물을 걷는 라틴아메리카 세무공무원

2018-03-29     베르나르 뒤테름 | 3대륙센터(CETRI) 원장

권력이 있는 사람의 기분을 지나치게 거스르지 않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진보주의 성향의 라틴아메리카 정부는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의 초점을 수출 증대에 맞춘 탓에 그들이 실패하기를 원하던 이들의 바람을 쉽게 이뤄줄 수 있었다. 경제가 기울자 국가예산은 바닥났고, 정부를 비난하는 일이 더없이 쉬워진 것이다. 불평등 해결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조세 제도부터 과감하게 손을 보기 시작할 때가 아닐까?


2017년 5월 4일, 마나과(니카라과의 수도)를 방문한 국제통화기금(IMF) 고위 대표단은 니카라과 정부에 앞으로 감세와 면세 규모를 줄이고 면세지역의 기업들에 법인세를 부과해 세수를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1) ‘신자유주의 로드맵 전파’라는 사명을 띤 국제금융기관이 (사회주의 성향으로 알려진!) 정부에 좀 더 과감한 과세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상황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라틴아메리카에서 IMF,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IDB)이 현지 우파는 물론 좌파 정부 관계자들보다 조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에 방점을 찍은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부의 분배 측면에서 국가 내 불평등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 라틴아메리카임을 입증하는 일련의 연구와 보고서가 앞다퉈 발표되고 있다. 소득이 상위 1%의 부유층에게 집중된 10개 국가 중 7개 국가가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있다.(2) 이 구조적 불평등을 이해하려면, 라틴아메리카의 조세정책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설명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 조세 전문 경제학자 마리아 페르난다 발데스는 “시장 불평등, 즉 정부가 ‘조세정책’을 통해 소득 재분배에 개입하기 전에 만연했던 라틴아메리카의 불평등은 유럽의 불평등 문제보다 심각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한 마디로 이 두 지역 간 소득 불평등의 차이는 조세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유럽의 조세정책은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조세정책은 그렇지 못했다”(3)는 방증이다. 국제연합(UN)과 중남미·카리브 경제위원회(ECLAC)에 의하면 (소득 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세전 대비 세후 지니계수의 감소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평균 17%인 반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엘리트 친화적인 역진세 구조

결국 라틴아메리카에서 조세제도는 소득 재분배, 사회통합, 정의구현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구체적인 상황은 당연히 국가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세율은 그 수치가 가장 낮은 도미니카공화국, 과테말라와 비교해 2.5배 높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소득세의 징수율이 유독 낮다는 점이다. 역진세 구조는 서민층에 비해 소득 대비 조세 비율이 낮은 엘리트층에 친화적이다. 그 방식은 이미 알려져 있다. 재산이나 부동산에 부과되는 세금(국내총생산(GDP) 대비 0.8% 수준)은 미미하거나 없고,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적용되는) 소비세는, 누진세인 소득세보다 5~6배 높다. 2015년 라틴아메리카 국가 평균 간접세 징수액은 GDP의 10%였지만 소득세는 1.8%에 불과했다.(4) 같은 해 OECD 국가 평균 소득세가 GDP 대비 8.4%, 아프리카 국가 평균이 3.2%인 것에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에서는 3%를 넘었지만 볼리비아와 과테말라에서는 0.5% 미만이었다. 

라틴아메리카 평균 소득세 징수액이 GDP 대비 1%에 그치던 21세기 초반의 상황은 더욱 열악했다. 소득세 징수율은 상승세지만, 다양한 세목의 총 과세액은 OECD 회원국 평균(약 35%)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2005년 GDP 대비 18%에서 2015년 21%)이다. 대부분은 부가가치세(VAT)와 관세를 비롯한 간접세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그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었다. 법인세, 특히 천연자원의 채굴과 판매에 부과된 세금이 원자재 붐과 채굴 열풍에 힘입어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며 OECD 평균을 뛰어넘었다가 2014년부터 원자재 국제시세가 하락하면서 다시 감소했다. 

여러 국제경제금융기구가 분석했듯, “라틴아메리카에서 소득세, 법인세, 재산세 수입이 낮은 이유는 느슨한 면세 규정, 높은 면세율, 고소득층 납세자의 조세회피 등으로 설명된다.”(5) 또 다른 요인은 비공식경제 근로자의 비중이 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효율적이고 소득 재분배 기능이 강화된 조세제도로 개선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 국가에서 피라미드식 사회 구조가 남아 있고, 특권층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계를 좌지우지해 사회정책은 물론 조세정책의 주요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진보정부도 근본적인 개혁은 이루지 못해

근래에 집권했던 (때로는 여전히 집권 중인) 진보주의적, 혹은 포스트 신자유주의적인 정부가 상황을 변화시켰는지 묻는다면 그렇다고도 또 아니라고도 답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세수를 눈에 띄게 확대했고, 이렇게 늘어난 수입은 사회정책을 통해 재분배돼 빈곤과 불평등을 큰 폭으로 해결했다. 또 다른 수입은 대체로 원자재 생산과 수출로 얻은 이익에서 들어왔다. 발데스는 “천연자원으로 얻은 수입은 세수 확보를 위해 기업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줬다”고 설명했다.(6) 3~4년 전부터 시작된 몇몇 법적 조치들을 제외하고는, 세수와 누진세율을 유의미하게 인상하기 위한 조세 구조 개편과 근본적인 개혁이 실행되지 않았다. 

코레아 대통령은 (2007~2017년 집권하면서) 마지막 임기 중에 다른 국가에 비해 야심 찬 조세개혁안을 입법하려고 시도했지만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물러서야 했다.(7) 3대륙센터 창립자 프랑수아 우타르는 2015년에 “상속과 투기와 관련된 법안이 오해를 불러왔다”고 분석하면서 “이 이중개혁안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될 특권층은 농민과 원주민을 비롯한 서민층과 중산층의 상당수가 이 제안에 반발하도록 부추기는 데 성공했지만, 사실상 이 조치는 부의 재분배에 기여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8) 분석 결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지난 10년간 진행된 조세제도의 변화는 모두 근본적으로 일관적이지 못하고 허점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는 진보주의 정부의 정책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었다. 

ECLAC는 (좌파 정부가 집권한) 우루과이가 2006년, 칠레가 2014년 시작한 조세개혁을 반겼고, 오래전부터 우파가 집권하고 있던 콜롬비아(2012)와 멕시코(2013)의 시도도 높이 평가했다.(9) ECLAC가 볼 때 당시 이들 국가만이 ‘구조적 조세개혁’을 시행했다. ECLAC는 소득세를 전면 개정하고 간접소비세를 감세한 우루과이의 개혁안이 ‘혁신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개혁이 이뤄지기 전까지 우루과이의 불평등 수준, 즉 지니계수는 세전보다 세후에 더 악화됐었다. 우루과이의 개혁은 좀 더 공정한 방향으로 조세 구조를 개편하면서도 총 세액을 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6년 후 콜롬비아에서 시행된 개혁과 일맥상통한다. 반면 멕시코는 재정수지 적자를 메꾸고, 칠레는 교육 부문의 새로운 조치에 투자하기 위해 국가 수입을 확대하려고 (누진율 면에서 칠레가 멕시코보다 한층 야심 찼지만) 조세개혁을 추진했다. 

각종 개정조치의 소득 재분배 효과는 미미했다. 이와 별개로, 2000~2015년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전반적인 과세율은 상승세였는데,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아이티에서 가장 큰 폭(GDP 대비 6% 이상)으로, 브라질, 우루과이, 파나마, 코스타리카에서 가장 낮은 폭(1.5% 미만)으로 증가했다.(10) 과테말라만이 심각한 사회 불평등과 국가 분열로 발생한 내전을 끝내기 위해 체결한 1996년 평화협정 서명과 함께, 20년 전에 시행된 개혁 조치를 역행해 (이미 바닥에 있던) 세율을 0.8% 더 갉아먹었다.

조세회피 문제만 해결할 수 있어도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 광산물, 농산물의 가격이 3~4년 전부터 하락하면서 세수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래서 조세제도의 결함이 다시 문제가 됐고 일부 국가가 또 재정위기에 처하면서 새로운 조세개혁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상당수의 국가에서 우파가 정권을 탈환하거나 유지하고 있는 상황은 과세의 방향이 누진세보다는 역진세를 향해갈 것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에서 이미 그런 양상을 보여줬다. 콜롬비아 정부는 2002년 도입된 부유세를 폐지하고 부가가치세를 사상 최대 수치로 인상했다. 2015년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당선된 이후로 우파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정부는 법인세와 재산세를 인하했다. 2017년 기업가 출신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칠레에서는 미첼 바첼레트 전직 대통령이 2014년 도입한 개혁안을 재검토하기로 약속했다. 

조세회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족한 국가 예산을 확보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이 방안은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2002년부터 지역경제보다 6배나 빠르게 증가하는 자산을 보유한 라틴아메리카 백만장자들은 다국적기업과 함께 불법이든 합법이든 납세 의무를 수월하게 회피하고 있는 이들로 꼽힌다.(11) ECLAC를 필두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기관의 예상치를 살펴보면 연간 정부 재정 손실액을 GDP의 6.3%, 즉 3천 50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 손실은 1/3은 부가가치세, 2/3는 소득세와 법인세 체납으로 인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평균) 50%에 달하는 비공식경제와 (이곳보다 더욱) 면세율이 높은 곳으로 자금이 유출되는 상황은 정부 재정을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 소득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기는 불평등의 이면에는 부의 일차적 배분인 소득으로 발생하는 불평등이 존재하고, 소득 불평등의 규모가 점점 커져서 조세정책만으로 이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 돼 버린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년간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부가 겪은 상황으로 미뤄볼 때, 부유층에게 더 많은 ‘도움’을 청하지 않고서 사회 변화를 꿈꿀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당연한 것이다.   


글·베르나르 뒤테름 Bernard Duterme
루뱅라뇌브 소재 3대륙센터(CETRI) 원장, 『빈국의 사회운동 현황-라틴아메리카 편』(Cetri-Éditions Syllepse, 2017.)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Néstor Avendaño, ‘El FMI y su propuesta de política fiscal para Nicaragua’, 2017. 7. 9. https://nestoravendano.wordpress.com
(2) ‘Panorama fiscal de América Latina y el Caribe’, 국제연합 중남미·카리브 경제위원회(ECLAC), Santiago, 2017.
(3) María Fernanda Valdés, ‘¿Dónde estamos? Desigualdad y reformas tributarias en América Latina’, <Nueva Sociedad>, n° 272, BuenosAires, 2017년 11~12월.
(4) ‘Revenue statistics in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OCDE, Paris, 2017.
(5) Ibid.
(6) María Fernanda Valdés, ‘¿Dónde estamos?’, art.cit.
(7) Rafael Correa, ‘Gouverner sous les bombes… médiatiqu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2월호‧한국어판 2018년 4월호.
(8) François Houtart, ‘Vers l’épuisement du “modèle” équatorien?(에콰도르 ‘모델’의 붕괴)’, 2015년 10월 2일, www.cetri.be
(9) Alberto Arenas de Mesa, ‘Sostenibilidad fiscal y reformas tributarias en América Latina’, ECLAC, 2016년 9월.
(10) Ibid.
(11) ‘The multiple faces of inequality in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Christian Aid, London, 2017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