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 신자유주의 ‘좌파’, 와인스타인의 정치참여

2018-03-29     토마스 프랭크 | 기자 겸 작가

하비 와인스타인 스캔들이 일간지 일면을 장식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미국 기자들 중에 이렇게 철저하게 그에 대해 무지했던 이는 나뿐이었을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영화제작자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 것일까? 그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는 다른 이유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바로 민주당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진보적’이라 분류되는 활동 및 인물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는 오랫동안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검열 문제에 있어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반대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HIV/에이즈 퇴치 운동 모금을 위한 화려한 이브닝파티를 수없이 열기도 했다. 2004년에는 ‘부시에 반대하는 어머니 모임’(1)이라는 여성단체에 지원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표현의 자유’ 옹호에 앞장서며 2015년 1월 11일 <베니티>와의 인터뷰에서 “그 누구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묘사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능력을 절대 망가뜨릴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열혈 지지자였다. 클린턴재단이 상징하는 민주당 명사들의 모호한 태도를 와인스타인만큼 잘 보여주는 이도 없다. 클린턴재단에서 주최한 자선 파티는 그의 기부활동과 동일한 역할을 했다. ‘이 아름다운 세계’로 새로 발을 디딘 이들에게 ‘귀족작위 수여증’을 부여하는 사회적 청산기관으로서 한때 프랑스에서 ‘신분 세탁’이라 불리던 절차를 이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클린턴재단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순도 높은 선의를 충전하는 일이다. 그곳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가수 보노, 파키스탄 소녀 말라야, 노벨평화상 등 이타주의와 흠잡을 데 없는 도덕적 가치로 존경받는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유수의 기업인들이 희생적이고 선한 인물과 접하면서 기부를 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이름표를 받아가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교류가 이뤄진다. 클린턴 가(家)는 중심에서 이 게임을 능수능란하게 이끈다. 그들의 발 하나는 위대하고 고결한 영혼을 지닌 이들 무리에, 다른 발 하나는 덜 빛나지만 이해에 밝은 기업가 무리에 걸치고 있다. 

클린턴 가와 와인스타인의 공통점

그리고 와인스타인이야말로 이 도덕적 평판의 시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렇게 인간애를 상징하던 인물이 믿기 힘들 만큼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성폭력을 행한 혐의를 받게 됐다. 소리 높여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던 그가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기자들을 다룬 것은 물론, 껄끄러운 질문에는 폭행까지 동원하며 맞섰던 것으로 드러났다.(2) 그러나 할리우드의 스타 제작자인 그는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자신에게 신세 진 사람들을 만들어두면서 베푼 호의의 덕을 보기도 하고 받은 호의를 갚기도 했다. 

2012년 그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프랑스 에세이스트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토브룩의 맹세>의 미국 내 배급권을 손에 넣었다. 이 영화는 2011년 미국에서는 ‘힐러리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진 무아마르 카다피 체제 붕괴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됐고, 이때 무너진 리비아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재건되지 못하고 있다. 와인스타인의 영화평을 보면 한 단락 안에 과장과 지적 허영이 어느 수준까지 담길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놀라운 영화에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엄청난 용기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물론이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의 눈부신 리더십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와 프랑스 정부가 무고한 시민 학살을 막기 위해 어떤 공모를 펼쳐 카다피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던 뒷이야기를 접하게 될 것이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하비 와인스타인을 마음속 깊이 존경한다. 영화업계에서 이룬 성공을 차치하더라도 그는 내게 미국에 국제사면위원회를 도입하고 사형제에 반대하고, 미국 쪽에서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만행에 반발한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하나로 각인돼 있다”고 화답했다. <차이나타운>과 <로즈메리의 아기>를 제작한 폴란스키 감독은 13세의 미성년자를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와인스타인의 진보주의는 그가 낸 기부금뿐 아니라, 그가 쓴 감투로도 가늠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 신동으로 불리는 그는 다양한 비영리기구의 이사를 맡고 있었고 자신의 영화사인 미라맥스가 제작한 영화는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수없이 많이 받았으며 그는 심지어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성추행을 일삼고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기 위해 벌인 수작이 드러나기 넉 달 전인 2017년 6월, 로스앤젤레스 프레스클럽은 ‘진실을 말하는 이’에게 주는 상이라는 트루스텔러 어워드를 그에게 수여하기도 했다.

외인스타인에게 정치참여란 무엇인가

충격적인 위선인가? 그의 정치의식이 일관성도, 깊이도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일례로 그는 2016년 버니 샌더스의 민주당 예비선거 출마를 거세게 비난했다. 2008년 11월 대선 당일 저녁에 그는 “전 세계 주가가 폭등”할 것이라며 오바마의 당선을 반겼다. 그의 인도주의가 퇴색하는 때도 왕왕 있었다. 2012년 11월 5일, 그의 영화사가 공동 제작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미국 특수부대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의 <코드네임 제로니모>(원제 ‘실 팀 식스’)가 개봉하자 그는 이라크 전쟁에서 가장 크게 신망을 잃은 인물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지휘관인 콜린 파월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그를 존경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전 군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가 해낸 것을 보고 그를 존경합니다. 그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집권한 8년보다 짧은 임기 동안 더 많은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했습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매파입니다.”

와인스타인의 세계에서 정치참여란 (미국 호화 상류층의 명소 두 곳인) 마서즈 빈야드와 햄프턴, 정치인 후원 행사와 자선파티의 명품업체 후원과 같은 범주에 속하는 일이다. 영향력 있는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와인스타인이 2000년 칸에서 연 HIV/에이즈 연구 후원 리셉션에 참석했던 경험에 대해 “프라이빗 옥션과 패션쇼에 이어 만찬이 나오고 미라맥스 사 대표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진행하는 퍼블릭 옥션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톱 모델) 하이디 클룸의 메시지를 경매에 부친 것은 물론, (배우 케네스) 브래나와 (배우 제임스) 캔으로 하여금 셔츠를 벗고 그녀의 능력을 보여주는 모르모트(기니피그)가 되게 했다. 그 메시지는 3만3,000 달러에 낙찰됐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좌파의 상징) 칼 마르크스가 죽었군’이라고 평했다”(3)고 적었다.

권위에 저항하라, 그러나 ‘창조계급’의 권력을 정당화하라

정당마다 말썽꾸러기들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매주 그 점을 상기시켜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고 와인스타인은 단연 두드러진다. 그처럼 선의를 과시적으로 옹호하면서도 철저하게 짓밟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가 좌파 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도 빌 클린턴의 친구로 꼽히며 전율을 느끼는 권력욕일까 아니면 월마트, 골드만 삭스, 엑슨모빌 등이 자선사업을 후원하는 것과 비슷하게 도덕적 면죄부를 받으려는 욕망인 걸까. 거대한 부자들의 세계에서 진보주의는 탐욕을 포장하기 위한 세탁기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을 향한 비난이 폭주하자, 처음으로 유감 표명 입장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NRA, 미국의 총기 소유 합법화를 주장하는 강력한 로비 단체) 활동에 반대하며 여성을 위한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뉴욕타임스>, 2017년 10월 5일).

이번 성 추문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있다. 대다수 좌파들은 자신을 권위에 대한 저항자로 여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월스트리트, 실리콘밸리, 할리우드 인사 등 이른바 ‘창조계급’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여기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자본주의의 아이콘들을 대상으로 한 우상숭배는 민주당원들이 경쟁자인 공화당원만큼이나 후원금을 잘 끌어모으며, 부유층 거주지의 토박이 출신 대표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세속적 신자유주의 좌파가 와인스타인처럼 자금을 동원하는 천부적인 능력과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가진 인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양심과 사회적 우월감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고, 서민층과 쇼비즈니스 유명인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라는 허상을 키워온 무리 속에서, 미라맥스 공동설립자인 와인스타인은 물 만난 고기와 다를 바 없었다. 

이 집단에 익숙한 이들 중에서는 행동지침을 완벽하게 꿰고 있어서, 이제 그들 중 한 명이었던 이의 파렴치한 행동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받고 분노한 듯한 태도를 취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이 눈을 감아주는 수준은 권력에 비례한다. 요즘 그들은 자신들의 덕행과 뛰어난 취향에 대해 연민의 눈물을 흘리면서 뒤틀린 도덕적 거울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원문 보기>> La gauche selon Harvey Weinstein

글·토마스 프랭크 Thomas Frank
기자 겸 작가, 신작 『Pourquoi les riches votent à gauche(왜 부자들이 좌파에 투표하는가?)』(Agone, Marseille)가 4월 12일에 출간될 예정이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Mothers opposing Bush: 미국을 대표하는 ‘성실, 연민, 공동체, 애국심이라는 가치’를 훼손한 대통령의 재선을 반대하는 이들로 결성된 단체.
(2) 2000년 11월 <뉴욕 옵서버>의 앤드루 골드만에게 벌어진 일이다. Rebecca Traister, ‘Why the Harvey Weinstein sexual-harassment allegations didn't come out until now’, <The Cut>, 2017년 10월 5일, www.thecut.com 참고.
(3) Roger Ebert, ‘Elizabeth Taylor helps host surreal AIDS benefit’, 2000년 5월 21일, www.rogerebe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