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농민을 다루는 방식

2018-03-29     장 미셸 뒤메이

 농민의 삶을 다룬 많지 않은 영화들 중에서 세자르 영화제마저 강타한 작품이 있다. 다큐멘터리이든 픽션이든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세자르 영화제에서 최우수 데뷔 작품상을 비롯해 세 부문에서 트로피를 거머쥔 영화는 뜻밖에도 휴베르트 차루엘 감독의 <블러디 밀크(Bloody Milk)>였다. 크리스티앙 호드 감독의 <투 오 라르작> 이후 6년 만의 쾌거였다.(1) 휴베르트 차루엘은 낙농업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국립영화학교에서 수학한 30대 감독이다. 낙농업자의 위기를 다룬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이 50만 명을 넘어서면서, 영화는 2017년 예상치 못한 인기를 누렸다. 

이듬해 상영된 필립 르게이 감독의 <노르망디 뉘>가 농가가 처한 위기를 과장되게 묘사한 감동 코미디였다면, 휴베르트 차루엘 감독의 <블러디 밀크>는 심리 스릴러로 젖소를 키우는 젊은 낙농업자의 공포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애지중지 돌보고 있는 농장에 전염병이 돌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농민의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도시의 산물이었던 영화는 그동안 농민을 다룬 적이 거의 없었다. 루이 뤼미에르가 1895년 리옹을 배경으로 만든 <공장 노동자들의 퇴근>은 농민영화의 시초였다. 이후 마르셀 파뇰이 1934년 <조프루아>, 1937년에 <수확(Regain)> 등 몇몇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직후 명작이 탄생했다. 프랑스 남부 아베롱의 한 농장의 이름을 딴 <파르비크(Farrebique)>는 농민들 삶의 사계절을 담고 있다. 조르주 루키에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농민영화의 모범답안이 된다. 감독이 농가에 흐르는 계절, 농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고, 당시 막 현대화가 진행 중이던 농촌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천생’ 농사꾼에 대한 이 흑백찬가는 가업을 잇는 문제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한계를 지니기도 했다. 조르주 루키에가 38년 뒤 차기작으로 선보인 <비크파르(Biquefarre)>에서는 전작에서 출연한 인물들과 함께 시장 경제의 법칙, 기업농의 대규모 농지 소유, 농약에 관해 이야기한다.(2)

레이몽 드파르동 역시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연출을 자제하고자” 했다. 2000년대 초 현장에 카메라를 장시간 설치해 두고 촬영하며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담아낸 놀라운 영화가 3부작 <농부의 초상>이다.(3) 감독은 낮은 산맥에 위치한 마을을 배경으로 10년간 촬영을 진행했다. 시간이 흐르며 카메라를 크게 의식하지 않게 된 지역 토박이들은 부엌과 식탁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등장하며 관객들에게 예기치 못한 감정을 자극한다. 축사에는 가축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고, 고독함과 고립감이 묵직이 내려앉으며 쓰러져 가는 농장의 안마당에는 바람만이 휩쓸고 지나간다. 영세한 농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같다. 실제로 50년 새 프랑스의 농가는 3/4이 사라졌다.

농가에 대한 이 같은 관점과 확신은 크리스토프 아구 감독의 최근작 <또 만납시다(Sans adieu)>에서 재발견된다.(4) 감독의 고향인 오베르뉴의 포레 산맥에는 70대의 괴팍한 노인 클로데트, 그리고 장, 레이몬드, 마틸드, 크리스티안이 살고 있다. 이들 모두는 대형농장과 경쟁하며 정부의 규제 속에서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도, 이해받지도 못하는 사회를 통렬히 비난한다. 이들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으로 여겼던 감독은, 이 영화 편집을 마치자마자 2015년에 세상을 떠난다. 

최근 농업박람회에서 선보인 <삶의 특징(Trait de vie)>은 농촌의 황량한 면을 과감히 생략한다. 앞서 등장한 감독들과 달리, 시골에 연고가 없는 소피 아를로와 파비앙 라빈 감독은 “농민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5) 농민들은 자연을 다시 한번 믿어보는 것으로 화답한다. 감독은 소나 말의 힘을 빌려 농사를 짓는 것을 좋아하는 농민들을 비춘다. 젊은 영농인인 아망딘은 카메라 앞에서 “개인적으로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농부의 삶은 하나의 생활방식이다”라고 말한다. 농부가 된다는 것은 이상향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행하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자유인이여, 언제나 땅을 소중히 할지어다. 


글·장 미셸 뒤메이 Jean-Michel Dumay

번역·권경아 jaimelapomme@naver.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수료

(1) <Tous au Larzac(투 오 라르작)>, Christian Rouaud, 2011년, 120 분, VOD. <Petit paysan(블러디 밀크)>, Hubert Charuel, Pyramide 비디오, 2017, 86분.
(2) <Farrebique(파르비크)> & <Biquefarre(비크파르)>, Georges Rouquier, remaster edition, DC productions, 2013, 각각 90분.
(3) <Profils paysans, la trilogie. L’Approche, Le Quotidien, La Vie moderne(농부의 초상, 3부작, 접근, 일상, 현대적 삶)>, Raymond Depardon, Arte Vidéo, 2009, 각각 93.85분, 90분. <Le Cousin Jules(쥘 조카)>, Dominique Benicheti, 프랑수아 트뤼포 팀이 1970년에 촬영한 또 다른 걸작. restored version, Carlotta Films, 2015년, 92분.
(4) <Sans adieu(작별 없이)>, Christophe Agou, New Story, 2017년, 99분.
(5) <Trait de vie(삶의 특징)>, Sophie Arlot & Fabien Rabin, VraiVrai Films, 2018년 2월 28일 출시, 7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