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프롬나드] 비 오는 토요일 아침의 조르주 바타유

2018-04-14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토요일 오전 조근조근 비가 내린다. 게으르고 딱딱한 침대에서 미적미적 빗소리를 듣는다. 잠결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눈을 뜰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영원히 뜨지 않기는 힘들겠다. 오래전에 전해 들었던 천장이 유리로 된 방. 그 방이 생각난다. 거기 누워 있으면 눈을 감고 있기는 힘들었겠다. 

 

조르주 바타유 아버지의 눈. 감긴 눈이 아니라 감지 못하는 눈. 또한 뜨지도 못하는 눈. 그렇다고 없지는 않은 눈. 보지 못하는 눈을 보는 소년 바타유의 눈. 그렇게 눈 이야기가 배태됐다. 

 

워낙 차분하게 내리는 비인지라 꽃이 걱정되지는 않는다. 미친 세상. 어제는 라일락이 피었다. 따지고 보면 떨어질 벚꽃을 걱정한다는 건 주제넘은 짓이다. 벚꽃이든 라일락이든 내년 이맘때 또 필 터이고, 지금 꽃 진 자리, 혹은 꽃이 지는 자리엔 이미 잎들이 파릇파릇하다.

 

꽃이 진다고 바타유 엄마처럼 나무가 목을 맬까. 매독 걸린 나무를 걱정하며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일도 없다. 나무가 목을 매면 어디에다 줄을 걸어야 할까. 내가 나무라면 그런 걱정이 들겠다. 

 

일주일에 한 번 개가 내 잠을 깨우지 않는 토요일 아침, 느지막하게 스콜이 코빼기를 내민다. 침대 밖으로 팔을 뻗자 스콜이 내 손에 얼굴을 갖다 댄다. 가늘게 빗소리가 전해지고 손바닥에 닿은 개털이 부드럽다. 여전히 눈 뜨기 싫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