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민주당은 부자들의 ‘자유’를 지킨다

2018-04-30     토마스 프랭크 | 기자 겸 작가

이해하기 어려운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월스트리트 개혁안 등 민주당에서 만든 정책에 스스로 점수를 매겨보라고 하니 민주당원들은 “그 누구도 우리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보다 더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민주당 출신 위정자들은 고집불통 공화당이 상원에서 사사건건 의사 진행을 방해하고 이해득실을 따져 선거구를 재편해도 그들과 타협해야만 했다면서, 윌리엄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전직 대통령이 의회에서 통과시킨 온건하거나 이도 저도 아닌 모든 정책이 민주당의 진정한 열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며, 그렇게 넘겨짚지 말라고 덧붙인다. 


민주당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어서 공화당의 의사진행 방해나 사보타주 같은 걸림돌이 전혀 없는 지역을 선택해 그들의 주장에 근거가 있는지 살펴보자. 미국 선거지도를 살펴보면 선택지가 여럿 나오지만 진보계층의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매사추세츠 주의 주도 보스턴이 단연 눈길을 끈다. 보스턴은 미국 고등교육의 메카이자 공화당 소속 의원을 신기하게 여기는 민주당의 텃밭이다. 탈산업화로 침체된 여타 도시와 주에서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꾸며내고 소속 대학교에 돈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내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보스턴을 모방하고 싶어서다. 고등교육과 이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산업을 바탕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보스턴이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주’의 경제적 모델을 직접 만들어낸 셈이다. 

‘진보’를 앞세운 민주당의 친 기업정책

2010년, 보스턴 주민 수의 16.5%인 15만 2,000명이 학생이었다. 보스턴에는 사립대학 85곳이 있는데 미국 내에서는 물론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고등교육기관이 밀집된 곳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보스턴 지역은 교육수준이 높은 주민, 압도적 수준의 특허출원, 미국 내 다른 도시보다 월등히 많은 노벨상 수상 등 다양한 부수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는 ‘지식·기술·혁신 산업, 기업가 정신, 세계화 수준’ 등의 역량을 평가한 첨단 신경제지수 평가에서 수년간 어김없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보스턴에는 ‘생명과학초거점’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제약 및 생명공학기업들이 모여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생명과학 논문 저자들은 위험자본투자사와 ‘연합’하고 거대 제약업체는 보다 작은 규모의 업체와 합병을 일삼는다. 다른 산업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보스턴의 생명과학초거점은 승승장구하고 있어서 전 세계의 생명과학 전문가들이 ‘미국의 아테네’로 불리는 보스턴과 보스턴 서쪽에 자리 잡은 케임브리지 대학가에 몰려 있는 새로운 ‘혁신센터’로 모이고 있다.

조금만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보스턴은 미국 중산층의 붕괴를 일으키는 두 산업, 고등교육과 제약업계의 온상이다. 두 분야 모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반드시 치러야 하지만 급여나 물가상승률보다 빠르게 올라가는 비용을 물린다. 매사추세츠 주가 불평등 분야에서 선두에 오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 보스턴과 근처 대학밀집 지역을 벗어나자마자 폴 리버(Fall River)가 나온다. 한때 산업도시였으나 지금은 살길이 막막한 노동자들만이 남은 쇠락한 지역이다. 보스턴 남쪽의 폴 리버에서 몇 년 전 수많은 원단제작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도시의 존재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텅 빈 공장들만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19세기에 세워진 견고하고 거대한 화강암과 벽돌 건물이 시야를 압도한다. 낡은 공장 창문들에는 절망감의 상징인 듯, 판자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덧대져 있다.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다른 풍경과 마찬가지로 폴 리버의 이런 모습도 지난 수십 년간 공화당이 추진하고 민주당이 합리화한 탈산업화 정책의 산물이다. 여기서 80km 떨어진 보스턴만 활개를 펴고 있다. 그러나 보스턴 구석구석에서 보이는 ‘번영의 도그마’로 폴 리버 곳곳에 깃든 실패를 설명할 수 있다. 국가지도자들이 혁신가, 창작자, 고위 임원의 보수를 올리면서도 폴 리버 주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급여는 계속 깎아내리는 사회질서를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곳이 다시 풍요로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폴 리버에 인적 없는 방적 공장이 수두룩하지만, 반면에 보스턴에는 거리마다 기업가 정신을 쉽게 발휘하도록 만들어주는 시설로 가득하다. 보스턴에 머무는 동안 혁신센터를 방문했는데 하나같이 밝은색 건물에 개방형 사무공간을 갖추고, 창의력을 자극하는 문구를 이곳저곳 걸어놓고, (이용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휴식시간에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탁구대와 ‘기타히어로’ 콘솔 게임기를 비롯한 다양한 오락설비를 갖추고, 마커로 자유롭게 쓰고 지울 수 있는 유광 아크릴 벽을 세워놓고 있었다. 

보스턴 시 ‘혁신 구조물’의 중심축은 대학이다. 창업으로 첫 경력을 쌓는 것이 고등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창업이 곧 경력인 셈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혁신 담당 부학장이 두 명이나 되는 것도, MIT 학장이 “혁신을 키우는” 올바른 방법을 설파하는 기고문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그래서 노스이스턴대학교에 IDEA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기업육성전문업체)가 생기고, 하버드대학교에 그 이름도 유명한 ‘이노베이션 센터’가 있고, 보스턴대학교에 ‘전략·혁신 학부’뿐만 아니라 ‘혁신과 기업가 정신’ 전문가 대학원 과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가짜대출 책임도 피해간 ‘혁신’의 전도사

매사추세츠 주와 민주당 사이의 관계는 역사가 길다. 케네디 가에게 삶의 보루였던 이곳에서 지난 수십 년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두 명, 1988년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 주지사와 2004년 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을 배출했다. 매사추세츠 주에서 (2015년부터 공직을 수행 중인 찰스 베이커처럼) 공화당원이 주지사로 당선되더라도 그들은 경쟁자인 민주당의 ‘파란색 주’ 모델을 기꺼이 신뢰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 의회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의 거물급 정치인 대부분, 아니 전부가 지식산업, 스타트업, 창조적 계급 예찬론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베이커 주지사의 전임인 더발 패트릭이 단연 돋보인다. 그는 진보 계층의 전형적인 지도자이자 가장 주목받는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이들이, 심지어 정적까지도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패트릭은 전통적인 민주당원으로서의 삶의 궤적을 따랐다. 명철한 두뇌를 지닌 흑인 청년은 가난했지만 장학금을 받아 우수한 사립학교에 입학해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다. 몇 년이 지나 그가 하버드대학교 법대에 입학하자 그에게도 클린턴과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그랬듯이 그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세상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졸업 후 그는 소수인권보호단체에서 일하다가 워싱턴으로 자리를 옮겨 법무부에서 시민권 부서를 이끌었다. 1994년에는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를 상대로 한 유명한 인종차별 소송에서 5,400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패트릭은 2000년대에 기업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특정 부류’에 속하는 민주당원이라면 당연히 거치는 다음 수순을 밟았다. 2004년 (고위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업체인 아메리퀘스트 본사의 이사로 부임하면서 그때까지 맞서온 대기업의 편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아메리퀘스트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업체였다. 이 회사가 선봉에서 이끌던 대출행태가 세계적 금융체계를 붕괴시킬 뻔했다는 점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아메리퀘스트의 전문가들은 ‘가짜대출’을 잘 포장해 월스트리트 증권가에 채권으로 유통시키면서 수익률이 높은 사업, 심지어 ‘혁신적’인 사업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그들을 제외한 전 세계의 다른 이들에게 그 사업은 시한폭탄과 다름없었다. 은행가들은 전 세계가 그 비용을 댈 때까지 수익을 벌어들였고, 전 세계는 여전히 그 비용을 물고 있다.

이렇게 비겁한 술책에 연루된 정치인이라면, 사건이 알려진 그 순간에 변명의 여지 없이 정치 인생이 끝났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패트릭은 청산의 바람을 피해갔다. 그는 2006년 11월 매사추세츠 주 주지사로 선출되면서 혁신예찬론의 전도사가 됐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의 경제는 혁신의 경제”라고 선포하기를 즐겨서 “혁신은 매사추세츠 주 경제의 중축”이라는 등 낙관적 표어의 순서만 살짝 바꿔 어디에서나 빠짐없이 설파한다.(1) 그는 주지사 재임 중에 ‘혁신 학교’를 열었고, ‘재능 있는 사회초년생을 필요로 하는 민간기업’을 지원한다는 ‘사회적 혁신 계약’도 체결했다.

대개 그의 발언은 그저 제약회사가 매사추세츠 주에 사무소를 열 때마다 꺼내 드는, 규정을 운운하는 진부한 연설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8년 제약 및 생명공학 업계를 매사추세츠 주로 유치하고자 10억 달러에 이르는 보조금과 세금 감면 혜택을 약속했을 때처럼 그가 아끼는 표어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2)

오로지 그들만을 위한 ‘혁신’과 ‘자유’

혁신을 장려하는 것은, 혁신 과정에서 다른 이들을 짓밟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우버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이 택시 운전기사들의 생계수단을 앗아 갔듯 말이다. 보스턴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다양한 항의 시위를 계획했을 때 패트릭은 자신이 기업 편임을 분명히 했다. 그에게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사들에게 지급되는 정당한 보수보다 기사 있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우버가 패트릭과 함께 고문으로 일했던 인물을 고용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동기는 말할 나위 없이 ‘혁신’이었다. 우버는 미래를, 택시 운전기사는 과거를 의미했다. 

‘더발 패트릭 공공혁신상’의 1회 수상자가 더발 패트릭인 것도 놀랍지 않다. 2014년 존 하손 청년기업 인큐베이터센터 매스챌린지 CEO가 그에게 이 상을 수여했고, 이어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창립자가 “주지사님의 리더십, 혁신과 기술을 내다보는 안목은 물론 매사추세츠 주에 혁신 정신이 자라게 해 준 점에 감사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에릭 슈미트 구글 CEO도 함께해 매사추세츠 주와 현지 ‘스타트업 급성장세’를 높이 평가하며 “더 많은 기업가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일자리를 만들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테니까요”라고 신이 나서 말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석 달 후에 패트릭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더 의미 있는 ‘상’을 받았는데, 2012년 대선 공화당 후보인 미트 롬니가 설립한 자산 관리 및 금융 서비스 업체인 베인 캐피털의 전무 자리를 제안받은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매사추세츠 주에 팽배한 진보주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진보주의도 자동차제조사 노조의 진보주의도 아니다. 초고학력 화이트칼라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더라도 사회의 기득권층이 가져가는 어마어마한 보수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기득권층이기에 그만한 보수를 받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고위계층의 진보주의는 마음 약한 사람들의 심장을 순식간에 후벼 파는 불평등 이슈로까지 확대되지 못했다. 

해리스 그루먼 보스턴 노조위원장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혁신의 ‘자유주의’는 ‘부자들의 자유주의’다. 매사추세츠 주에 거주하는 그들(기득권층)이 바라는 것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지금보다 완벽한 능력주의사회다. 그루먼은 그들이 평범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여성이거나 유색인종이 대부분인 야간경비원, 패스트푸드점 점원,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등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보스턴에 살며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자책뿐이다.  


글·토마스 프랭크 Thomas Frank
기자 겸 작가. 이 기사는 4월 20일에 출간된 신작 『Pourquoi les riches votent à gauche(왜 부자들이 좌파에 투표하는가?)』(Agone, Marseille)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더발 패트릭, 2010년 12월 8일과 2010년 6월 17일 연설 
(2) Brian Johnson, ‘Gov. Deval Patrick’s life science legacy’, MassDevice.com, 2015년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