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빈은 구제불능의 사회주의자?

2018-04-30     르노 랑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올겨울이 끝날 무렵, 영국 정계에는 한바탕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파이낸셜 타임스> 사설은 “그 정치 연설은 엉터리다. 대규모 국유화에 찬성하는 구제 불능의 사회주의자 제레미 코빈은 (…) 전통적으로 민간 부문과 가까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보수당보다 경제적 이익에 더 신경 쓰는 눈치다.”(1)라고 논평했다. 권력자들의 이익을 꿋꿋하게 옹호하는, 저널리스트로 변신한 전직 재무부 장관이자 보수당 출신의 백만장자 조지 오스본도 이 진단에 동의한다. “노동당 당수라는 자가 기업에 더 우호적이며 정부보다 더 자유무역을 선호한다.”(2) 코빈이 노동당 당수로 선출됐을 때 이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3) 영국산업연맹(CBI)은 노동당이 “자유무역을 보장하기”(4) 위해 힘써온 업적들에 “경의를 표한다”고 즉각 성명을 냈다. 


그런데 몇 달 전만 해도 자산가들 사이에서 코빈이라는 이름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머니 위크>는 코빈이 영국 총리에 오르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에서 칵테일 고별 파티를 하고, 뉴욕에서 크리스마스 쇼핑을 한다. 사태는 이렇게 마무리될 것”이라며 탄식했다.(5) 이런 예상에 대해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는 호흡곤란을 호소할 지경이었다. “세금 인상과 국유화도 생각해야 하지만, 지난 10년 내지 20년간 노동을 제물 삼아온 자본에 우호적이었던 경제 시스템이 이제는 자본을 제물 삼은 노동에 우호적인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6) 그러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코빈은 2월 26일의 담화에서,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로 결정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이행을 위한 노동당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노동당이 브렉시트의 효력이 발생하는 2019년 3월 29일 이후 개시될 전환기에 권력을 잡는다면 유럽연합 단일 시장에처럼 영국이 유럽의 파트너들과 관세동맹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분량이 훨씬 많은 담화문 전문 가운데 이 발언은 고작 450단어에 불과했으나, 이것만으로도 웨스트민스터 정계의 나침반이 요동치기엔 충분했다. 

이 발언은 보수주의 집단이 갖고 있는 상처에 소금을 친 격이었다. 테리사 메이가 개시한 협상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쪽도, 완전한 분리를 추진하는 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후자 쪽은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한) 새로운 싱가포르가 국가적 변화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던 일이나, 영국이 일본에게 ‘빼앗긴 싱가포르에 대한 통치권’을 되찾은 방법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재무부 장관 필립 해먼드가 구체화한 첫 번째 축은 대다수 기업인들이나, 협소한 의회 기반(어쨌든 ‘하드’ 브렉시트를 막아줄 수 있는), 그보다 더 빈약한 경제 기반의 지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진영은 이제 제이컵 리스모그(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라는 흔히 특권층을 대변하는 인물과 연결돼 있으며, 보수당원들의 전폭적이고 넓은 지지를 누리고 있다. 

퀸메리대학교에서 실시한 최근의 연구는 보수당원들이 다른 사회계층과 자신들을 구별 짓는 전형적인 초상화를 그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들은 성숙하고 죽음의 고통을 거부하지 않으며, ‘영국적 가치들’이 더는 존경받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한다. 또한 이들은 보수당이 추진하는 재정 긴축 정책의 영향력이 여전히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며, 여성, 장애인, 소수민족이나 (더 나쁜 경우) 동성애자 대표들이 의회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7) 즉, 이는 영국 최대 정당인 토리(보수당)에 ‘형편없는 당(Nasty party)’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태도들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2002년 보수당 의회에 참석한 한 인물의 별명은 당장 기억에서 지워져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게 누구냐고? 바로 테리사 메이다. 

노동당의 입장에서 코빈의 발언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불가능을 능가한 것처럼 보인다. 유럽주의에 대한 경계는 대체로 블레어주의에서 생겨났고, 브뤼셀(유럽연합)과 기업들의 경고에 민감하지만 유럽에 가장 적대적인 부문들의 경고에도 민감하다. 이 부문에서는 제안에 조건이 따른다는 사실을 빼놓지 않았는데, 조건 중에는 일부 산업에 대해 국가가 보조를 승인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달리 말하면 신자유주의를 욕망했던 유럽이 이제는 그런 욕망을 끊어버린 것이다. 노동당 하원의원 프랭크 필드(신노동당 및 유럽연합에서도 가장 비판적인)는 처음에는 노동당 당수가 담화에서 밝힌 계획에 맞서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코빈의 견해가 ‘탁월하다’고 생각하며, “그의 요구가 브뤼셀(유럽연합) 측에서 볼 때 허용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는 코빈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8) 2월 26일, 노동당 당수의 수염 뒤에 서려 있던 미묘한 웃음이 바로 이런 것이었나?

목숨이 위태로운 아첨꾼들은 이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그들은 정적(政敵)의 ‘돌변’에 경의를 표하면서, 보수당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부류나 메이 총리보다는 정적, 즉 코빈에게 더 호소하는 입장이다. 영국산업연맹 총장인 캐럴린 페어번은 “기업들은 재국유화의 측면에서 노동당의 야심을 잊지 않았다”고 지적했다.(9)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면서 사설을 끝맺었다. “코빈과 그의 극좌 당파는 영국의 성장을 위해 브렉시트의 대부분 시나리오보다 더 위험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조민영 
서울대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Jeremy Corbyn’s welcome shift on the customs unions’, <Financial Times>, 런던, 2018년 2월 26일.
(2) George Osborne, ‘Brexiteers have handed Labour an open goal’, <Evening Standard>, 런던, 2018년 2월 26일.
(3) Pierre Rimbert, ‘Faites qu’il s’en a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9월호 참조.
(4) ‘CBI welcomes Labour backing for customs union’ 런던, 2018년 3월 1일.
(5) Merryn Somerset Webb, ‘Batten down the hatches : a Corbyn government could be on the way’, <Money Week>, 런던, 2017년 12월 5일.
(6) Aleksandra Gjorgievska, “Morgan Stanley says politics can upstage Brexit for UK stocks”, 2017년 11월 28일, www.bloomberg.com에서 인용.
(7) Tim Bale, Monica Poletti & Paul Webb, ‘Grassroots. Britain party members : who they are, what they think, and what they do’, Mile End Institute, Queen Mary University, 런던, 2018년 1월.
(8) Jim Pickard, George Parker & Laura Hughes, ‘Rebel Tories’ Brexit alliance with Labour set to raise heat on May’, <Financial Times>, 2018년 2월 27일.
(9) ‘Comprehensive customs union with the EU a “real world” solution’, CBI, 런던, 2018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