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은 권력 투쟁일까?

미셸 푸코와의 인터뷰

2018-04-30     미셸 푸코 | 인터뷰이

 1977년 7월 초, 극좌파 기자 4명이 한 철학자를 만났다. 이 글은 2012년 본지의 마르크스 초기 특집에 처음 실렸고, 현재 캉에 소재한 프랑스현대출판물기념과(IMEC)의 푸코 자료실에 등록돼 있다. 주로 권력과 계급투쟁의 정의를 다룬 이 글은, 미셸 푸코가 당시 좌파에 대한 마니교적 이분법(단순한 대립구도)적 분석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 자크 랑시에르의 작업을 살펴보면, 1848년 혁명과 민중봉기를 다루면서 현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민중이 이 기억을 소유화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주체라고 주장했는데, 당신은 이 주체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제도나 체제 안에 굳혀진 권력이 아니라, 사회체제를 통틀어 계급투쟁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 그 자체로서의 권력을 말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권력이 곧 계급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힘의 관계인 것이다. 이는 사회체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필연적으로 불평등하지만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관계요, 계급투쟁의 일상극이다. 

예를 들어서 한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선대와 후대, 윗세대와 아랫세대 간에 발생하는 권력관계, 이 힘의 관계가 바로 계급투쟁이라는 권력관계다. 우리가 분석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나는 ‘이런 계급투쟁이 어느 정도의 기초적인 수준에서만 발생하고, 그 이외에는 그저 결과일 뿐이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계급투쟁은 우리가 실제로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권력은 어느 한쪽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대립 속에 존재한다. 한쪽이 도구를 가지면 다른 쪽은 무기를 갖고 있고, 한쪽에 일꾼이 있으면 다른 쪽에 군대가 있고, 한쪽에 총알이 있으면 다른 쪽은 다른 걸 갖는 식이다. 그러므로 부르주아가 무기를 소유한 덕에 권력을 잡을 수 있었고, 이들이 권력을 소유화한 것도 국가 기구를 장악한 덕택이라는 도식은 내게 있어서 충분히 명확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논리다. 적어도 우리가 사회체제에 존재하는 권력관계 전반을 분석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 그런데 당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두 입장이 서로 대치한다는 표현이 아닌가? 주체들 간의 대립 말이다. 

“한 사회체제 안에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이쪽 계급에 속한 자와 저쪽 계급에 속한 자 등 사람을 이분화하는 것은 그 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분석이다. 이는 이분법적 분포가 실제 발생하는 특정한 상황에만 들어맞는다. 또는 특정한 시각에서 바라볼 때, 예를 들어서 경제적 권력관계 등을 따질 때 어느 선까지만 통하는 분석인 것이다. 하지만 의료, 신체, 성 등 권력이 행사되는 수준에 이르면, ‘아이와 여성은 프롤레타리아와 같다’는 식의 이분법적 대립구조는 무용지물이 된다.” 

- 당신은 결국 질문의 자격을 박탈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질문 자체의 의미를 완전히 없앤다는 게 아니라, ‘이것이 유일한 질문이 아니다. 게다가 본질적인 질문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인가. 
 
“좀 과장해서 이렇게 비유해보겠다. 사실상 마르크스가 분석을 시작할 당시에는 ‘가난’에 대한 질문을 다룬 사회주의적 분석과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우리는 가난하다. 우리는 부를 창출하는데 도대체 왜 가난한 것일까?”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장은 우리에게서 어떻게 빼앗아 가는가? 부르주아는 우리에게서 어떻게 빼앗아 가는가?”라는 ‘탈취’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해결할 수 없었던 부정적인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빼앗겼기 때문에 가난하다”라는 부정적인 답변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거꾸로 이렇게 질문했다. “우리가 목도하는 이 가난, 이 빈곤화는 무엇과 연관돼 있는가?” 그는 이 모든 것의 이면에 명백한 메커니즘, 즉 자본주의와 자본축적의 메커니즘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경제 메커니즘들이 당시에 진행 중이던 산업사회의 특성인 것을 밝혀냈다.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빈곤화를 부정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특별한 위치를 부여했다. 

이번에도 좀 과장해서 비유해보겠다.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성(性)적 불행’이라는 현상에 그대로 현혹되면 안 된다(성적 불행은 분명 존재하지만, 다소 동의반복적인 방식으로 단순히 ‘억압’이란 말로써 이를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가 않다. “억압당했기 때문에 성적으로 불행하다”는 설명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성적 불행의 이면에 있는 권력의 명백한 메커니즘을 발견해야 한다.

- 당신은 권력이 기본(base)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권력이 계급투쟁, 또는 계급투쟁이 지닌 형태라고 한다면, 권력을 계급투쟁 안에 재배치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계급투쟁을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고 정의하는 분석이 많다. 마르크스의 글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나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에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마르크스에게 충성해야 할 의무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가 이론서가 아닌 역사서에 1848년, 루이 나폴레옹, 파리코뮌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살펴보면, 권력에 대한 분석을 근본적인 계급투쟁 속에 잘 배치했다고 생각한다. 계급투쟁을 ‘권력을 위한 경쟁’이라고 분석하지 않고 말이다. 정확히는 권력을 위한 경쟁이 서로 투쟁하는 여러 집단의 내부에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인터뷰이·미셸 푸코(1926-2984년)
프랑스 고등사범학교에서 루이 알튀세르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는 생각과 행동, 더 나아가 성(性)이 어떻게 한 시대의 담론에 억지로 끼워 맞춰져 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감옥에 대한 비평적 역사서인 『감시와 처벌』은 그의 대표 저서 중 하나다.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박스기사 1

자본과 노동의 교환, 자본주의적 생산의 원천

1865년 6월, 한창 『자본론』을 집필 중이던 마르크스는 자본에 의한 노동착취를 분석하고, 이를 국제노동자연합 총평의회에서 발표했다. 자본가가 잉여가치로 투자된 자본을 늘리는 ‘비법’은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중 일부만이 임금(노동력의 재생산을 가능케 함)으로 보상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고 노동자에게 그 가치를 지불함으로써 다른 모든 구매자들처럼 자신이 구입한 상품을 소비하거나 사용할 권리를 획득한다. 기계를 돌림으로써 기계를 소비하거나 이용하는 것처럼, 노동자에게 일거리를 줌으로써 노동자의 노동력을 소비하거나 사용한다. 자본가는 일당이나 주급으로 이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기 때문에, 노동력을 ‘하루 종일 또는 일주일 내내’ 사용할 권리를 확보한다. 하루나 주중이라는 시간에는 물론 제한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살펴보겠다. 지금으로서는 아래의 중요한 사항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을 유지하거나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노동력의 ‘사용’은 노동자의 육체적인 힘과 활동력에 의해서만 제한된다. 노동력의 1일분 가치나 1주일분 가치는 노동력을 하루 또는 일주일 동안 행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말에게 필요한 음식과 그 말이 기사를 태울 수 있는 시간을 서로 구분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량에 따라서 결정되지만, 그 노동량이 노동력이 실현할 수 있는 한계치인 것은 아니다. 

방적공을 예로 들어보자. 매일 방적공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려면 3실링의 가치를 생산해야 하고, 이는 6시간 일했을 때 가능하다고 해보자. 이 말은 방적공이 10시간, 12시간 또는 그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가는 노동력에 대해 1일분이나 1주일분의 가치를 지불하고 노동력을 하루 종일 또는 주중 내내 이용할 권리를 획득했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더 오래 일하라고 강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하루 12시간 정도로 말이다. 이제 방적공은 자신의 임금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6시간, 즉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 ‘외에도’ 6시간을 ‘더’ 일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를 ‘잉여노동시간’이라고 부른다. 

이 잉여노동은 ‘잉여가치’와 ‘잉여생산’으로 나타난다. 만약 6시간 동안 일하는 이 방적공이 자신의 임금과 완벽하게 동일한 3실링의 가치를 목화에 덧붙이면, 그는 12시간 동안 6실링의 가치를 덧붙이는 것이고, 그에 따라 직조용 실이 초과생산된다. 방적공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했기 때문에 그가 만들어낸 ‘생산된 전체 가치’는 노동력을 일시적으로 소유한 자본가에게 속한다. 이렇게 자본가는 3실링을 지불하고 6실링의 가치를 얻게 된다. 사실 자본가는 6시간의 노동으로 나타난 가치를 지불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12시간의 노동으로 나타난 가치를 얻는 것이다. 

이를 매일 반복하면 자본가는 매번 3실링을 지불하고 6실링을 얻게 되고, 이 6실링 중 절반인 3실링을 새로운 임금을 지불하는 데 사용하면 나머지 절반은 ‘잉여가치’가 된다. 하지만 자본가는 이 잉여가치에 상응하는 그 무엇도 지불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자본과 노동의 교환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토대가 됐다. 이 제도는 임금제도이며, 노동자는 노동자로, 자본가는 자본가로 재생산하는 변함없는 결과를 낳는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잉여가치율’은 하루 중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자본가를 위해서 수행된 ‘잉여시간’ 또는 ‘잉여노동’ 간의 비율에 달려 있다. 이 비율은 노동자가 겨우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 즉 자신의 임금을 재생산한 시간 ‘그 이상으로 노동시간이 연장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임금, 가격 및 잉여가치’, 1865, in Œuvres I. Economie(Gallimard, 1965), pp.512~513.
번역·이연주



박스기사 2

“부정의 부정”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으로부터 나온 자본주의적 취득방식(즉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낳는다. 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소유자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개인적 사적 소유에 대한 첫 번째 부정(否定)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에 따라 자기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사적 소유를 부활시키지는 못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즉 협업과 토지 및 엄밀한 의미에서 노동에 의해 생산된 생산수단의 공동 점유)에 입각한 개인적 소유를 확립한다. 

물론, 개인들의 자기 노동에 입각한 분산된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로 전환되는 것은 사실상 이미 사회적 생산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되는 것보다 본래 훨씬 더 오래 걸리고 가혹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전자는 소수의 강탈자가 다수의 대중을 수탈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다수의 대중이 소수의 강탈자를 수탈하기 때문이다. 

『자본론』제1권, 1867(PUF, coll. ‘Quadrige’ 2009), pp.855~857.
번역·이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