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금융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18-04-30 프랑수아 셰네 | 정치학자
마르크스는 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발달 양상을 이해하기 위한 관심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 런던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관찰자의 시각에서도 금융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19세기 중엽에 이미 런던은 세계 최대의 금융시장이었고, 런던에 본사를 둔 은행들은 이미 당시의 신흥국들에 막대한 규모의 대출 설계를 해줬다. 이런 런던 금융시장은 ‘대대적인 금융공황’ 사태가 처음으로 벌어진 무대이자 그 진원지였다. 이에 마르크스는 1857년과 1866년, 1873년의 세 차례 주요 금융위기를 목전에서 지켜보며 “채권의 조성과 발행, 매매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기 및 탈선 구조”를 확인했다.
그 중심에는 “은행과 증시”가 있었으며, 산업혁명의 발원지에서조차 금융 호황기에는 “자본주의의 생산 과정이 돈을 만들어내기 위한 필요악으로만 나타났다.” 또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 방식에 치중한 국가들이 이따금씩 생산 과정의 개입 없이 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심에 현혹됐다”고 기술했다. 그 당시는 “화폐의 물신성”이 사회 전체에 만연하면서 자본으로서의 화폐에 가치가 부여되는 구조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어떤 자본이 축적됐나?
19세기에는 시기적으로만 극심했던 상황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들어서면 점차 구조적인 양상을 띠면서 선진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주된 특징이자 지속적인 속성으로 자리 잡는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서막을 알린 금융 자유화에 따라 이자 낳는 자본(대부 자본)이나 화폐자본의 축적은 정치적‧제도적 기반 위에서 이뤄질 수 있었고, 이런 정책적인 발판이 너무도 탄탄한 나머지 위기가 찾아오면 은행과 투자 기금의 구제가 무조건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정부와 국민은 속수무책으로 그 부담을 져야만 했다. 화폐자본의 축적은 엄밀히 말해 자본의 실질적인 축적과 구분돼야 하는데, 화폐자본은 곧 채권과 결부되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공채 등의 채권은 현재 및 미래의 생산에 대한 선금에 불과하다.
이자를 낳는 자본은 본질적으로 수익에 기생하는 구조인데, 마르크스주의의 해석에서처럼 그 요구액이 높아질수록 산업 자본주의자들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로부터 잉여 가치를 끌어내야 한다. 또한 국가가 채권에 손을 댈수록 ‘정부의 채권자’들이 늘어나는데, 이들은 “세금에서 일정 금액을 떼어갈 수 있다.” 주식의 자본화 및 채권 매매 시장으로 인해 자산은 그 소유주에게 있어 ‘가상의 자본’이 되고, 이 가상의 자본을 대상으로 금융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 및 투기는 가상의 성격을 더욱 가중시키고 화폐의 물신성을 키워간다.
임금 저축의 덫
마르크스가 글을 쓸 당시 은행의 성장은 특히 “산업 자본가들의 예금”을 통해 이뤄졌다. 즉 기업의 자금과 비(非)투자수익을 바탕으로 은행이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저금이 은행에서 이뤄지고, 전 계층의 유휴자금 또한 은행에 예치된다. 소액자금이 단독으로 쓰이면 화폐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지만, 이런 자금이 모여 막대한 금액을 이루면 막강한 금융 자본으로서의 위력을 가진다.”
이에 마르크스는 임금 저축의 덫에 대해서도 경고했는데, “저축예금은 정부가 상당수의 노동자를 쥐고 있는 금 목줄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저축예금은 “그 기금을 조성하는 노동자 계층부와 저축을 하지 않는 계층부 사이를 분리”하고, 노동자들은 “그 적의 손에 기존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무기를 쥐여준다.” 바로 이 부분이 핵심인데, 처음에는 자본화를 통해 퇴직기금의 조성에 이바지하던 단순 ‘납부자’로서의 노동자가 은퇴를 하고 나면 본의 아니게 현업 노동자의 임금을 착복하는 구조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금융자산의 이자소득자
금융자산이 늘어날수록 “(금융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자는 수익과 무관”해지고, 채권의 소유자 및 운용자는 생산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채 사회 전체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발자크의 작품을 읽은 마르크스는 금융자산의 금리 소득자에 대해 말하면서 “배나무에 배가 달리듯, 지극히 자연스럽게 돈은 가치를 창출하는 소유권을 획득한다”고 이야기했다. 바로 이 허황된 자본이 오늘날 열 배나 커진 위력과 폐단을 가지고 조종대를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의 핵심에는 은행이 있었으며, 그에 따라 금융위기도 초래된다. 금융적으로 가치를 갖고자 하는 화폐의 상당 부분을 집결시키면서 은행은 대출 거래를 확대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모든 자본은 동일한 자본, 혹은 동일한 채권이라도 각기 다양한 양상을 띠며 여러 사람의 손에 쥐어짐으로써 두 배,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세 배로 불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메커니즘은 채권의 예탁을 통해 그 절정에 달한다.
은행은 간절히 구제됐어야 할, 그리고 구제돼야 할 당위성에 대해 어떻게 정부와 그 수많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걸까? 사회 전체에 만연한 화폐의 물신성은 여기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으며, 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생산 및 교환 구조 역시 이런 상황을 설명해준다. 이에 우리는 금융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을 읽어야 하며, 특히 이와 관계된 『자본론』 제3권의 16개 장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글·프랑수아 셰네
1992년까지 OECD 수석 경제학자였으며, 파리8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는 반세계화 국제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트로츠키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유럽에서 실천력을 겸비한 대표적 진보 지식인으로 꼽힌다. 주요 저서로, 국내에 소개된 『자본의 세계화』(2003, 한울)을 비롯해, 『자본의 세계화』(La mondialisation financière, 1996), 『토빈이냐, 토빈이 아니냐: 자본에 대한 국제관세』(Tobin or not Tobin: une taxe internationale sur le capital, 1999)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업. <22세기 번역>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