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폐공간 활용이 도시 게릴라 ‘스쾃’의 계보?

2018-04-30     앙투안 칼비노 | 기자

어린이들과 노숙인들에게 안락한 쉼터이자, 예술가들에게는 항시 열린 작업공간이 돼주던 폐건물들. 앞으로 대도시에서는 이 폐건물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미개발 부지만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과도기적 형태의 도시개발’은 이런 미개발 부지를 문화나 사회연대경제활동을 위한 시설로 변신시키기 위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내세우는 명목과 또 다른 면을 지니고 있는 양면성이 강한 기획이다.


팡탱의 수크마쉰(Soukmachines), 파리의 그랑 부아쟁(Grands Voisins), 낭트의 섬(Ile), 마르세유의 포레스타(Foresta), 보르도의 앙가르 다윈(Hargar Darwin). 과거 빈 건물의 무단점거 행위를 뜻하던 ‘스쾃(Squat)’이 오늘날 엄격한 규제 하에 현대식 버전으로 재탄생해 도시 속으로 ‘정식’ 편입됐다(스쾃 운동: 빈 건물을 예술가들이 무단 점거해서 작업실 등으로 사용하는 예술운동이자 새로운 문화적 도전). 그동안 빈 건물, 공터, 폐터널 등 도심 속 폐공간은 노숙인이나 예술가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돼줬다. 

반면 오늘날에는 아직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은 미개발 부지를 사회운동단체나 사업자들에게 한시적으로 거의 무상에 가까운 저렴한 임대료만 받고 제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개는 분위기 좋은 술집, 예술가의 거주공간, 전시회장, 콘서트홀, 클럽, 도시농장,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임시보호쉼터 등으로 활용되곤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형태의 폐공간 임시점거 기획을 다양한 목적으로 공간을 공유하는 동시에 수평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미래 도시의 실험소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문화, 환경, 연대라는 가치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새로운 형태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불과하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과도기적 형태의 도시개발’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베를린이나 뉴욕에서 그 유례를 살펴볼 수 있다. 이 도시들에서는 산업이 퇴조하면서 생겨난 많은 폐건물들이 오래도록 ‘스쾃’ 공간으로 활용됐다. 일드프랑스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도시계획전문가 세실 디게는 “최근 나타난 폐공간 임시점거사업은 자활단체들이 관계된다는 점에서 과거 스쾃의 계보를 이음으로써, 부족한 사회적, 경제적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과거와 달리 쉼터 제공이 목적인 경우는 드물고, 문화·여가·경제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점유자가 한시적 사용에 동의한다는 점에서 과거 반체제 운동의 성향이 강했던 스쾃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재산(부동산)을 확실히 돌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점점 더 많은 개인이나 국토 소유자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이 소유한 미개발 부지는 수년째 방치된 경우가 허다하다. 시장 사이클 때문에 개발이 미뤄지거나, 혹은 정부가 개발지 주변을 정비하고 교통망을 완비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해당한다. 그러나 문제는 시공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땅을 마냥 놀리는 것은 만만치 않은 관리 유지비가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런 사정으로 최근 임시점거 사업이 현격히 늘어난 것이다. 도시계획개발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일드프랑스 지역에서 도시 폐공간 임시점유사업은 무려 70건에 달했다. 마르세유, 보르도, 리옹, 릴르, 낭트 등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형태는 여가문화 성격의 임시점유 사업이다. 가령 바를 열어 수입원으로 활용하는 등 일반 대중에게 공간을 개방하는 사례다. 프랑스 최대 토지 소유주인 프랑스국영철도회사(SNCF)도 지난 2년간 이런 종류의 사업을 무려 18건이나 실시했다. 그 가운데 2/3는 모두 파리 지역에서였다. SNCF에서 부동산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브누아 키뇽은 “점유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그들의 생각이 문화적,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해당 공간의 성격이 지역사회의 특성과 연관되는지에 좌우된다”고 지적했다. 

예술가들의 재능을 이용해 무료로 벽 단장

가령 SNCF는 파리 18구에 위치한 화물 창고를 월 1500유로의 임대료만 받고 생산협동조합(SCOP) ‘폴리브리드’에 임대해주고 있다. ‘폴리브리드’는 이 장소에 ‘아에로솔’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래피티와 벽화 전시장, 혹은 일렉트로 음악이 배경음으로 깔린 롤러스케이트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에로솔의 대표 케빈 랭쥬발은 “우리가 선택받은 이유는 지역사회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1980년대, 초기 힙합 축제가 열린 곳인 동시에 이 지역에 위치한 오르드네 거리는 그래피티 명소로 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획은 예술성을 추구하지만, 정작 사회적 성격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SNCF가 인가를 내준 ‘그라운드 컨트롤’ 등의 맥주가게들처럼, 이곳도 서민가인 인근 지역주민들이 이용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부담스럽다. 더욱이 아에로솔의 벽을 장식한 그래피티 예술가들에게 사례를 지급한 것도 아니다. 한편 석탄수송용으로 쓰이던 옛 오베르빌리에포르트 역사를 개조해서 만든, 록·일렉트로 뮤직 전문 콘서트홀 ‘라 스타시옹’의 경우는 그보다 더 상황이 심각하다.

수십 년 전에 등장한 임시점거 사업은 이처럼 파티 성격이 가미된 활동 외에도, 또 다른 새로운 특징을 지니기도 한다. 바로 젊은 사업가나 수공업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작업공간을 내주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업은 대개 여러 전문 플랫폼이 조율을 맡는데, 대표적인 예가 ‘수크마쉰’이라는 이름의 단체다. ‘수크마쉰’은 센생드니에 위치한 옛 팡탱 타이어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파팽홀에 많은 투자지원을 아까지 않았다.

‘그랑파리’(수도권 확대를 위한 개발사업-역주)(‘에스트 앙상블’의 후신) 개발담당기구로부터 전체 프로젝트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2만 3천 유로를 지원 받은 수크마쉰은 82명의 실크스크린전문가, 보석세공가, 동판화가, 디자이너, 건축가, 스피커제조전문가, 무대장식전문가에게 1m2당 월 6~10유로(팡탱 지역의 평균 임대료는 13유로)의 임대료만 받고 40여 개의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수크마쉰은 여름이면 안마당에서 무료 아틀리에 수업을 열거나 기부금을 내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파티 등을 개최하고 있다. 

한편 저렴한 바와 각자 요리를 가져와 즐길 수 있는 바비큐장이 마련된, 콘서트장과 디제잉 공연장에는 많은 팡탱의 지역민뿐 아니라 파리 파티객들까지 방문을 하곤 한다. ‘수크마쉰’의 창설자인 요안틸 디메는 “우리는 분명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상업적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많은 젊은 사업가와 단체들이 예술적·사회적 목적을 지니고, 만인에게 열린 행사 기획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는 데 더욱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3개 단체의 참여로 파리 소재 생뱅상드폴 병원에서 시작된 ‘그랑 부아쟁(Grands Voisins)’ 프로젝트도 임시보호쉼터 운영을 주목적으로 하지만, 그 외에도 축제 행사를 여는 등 수익 사업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 자활단체인 ‘오로르(Aurore)’가 시설 운영을 맡고, 사회사업(최대 600명의 노숙인들에게 쉼터를 제공)을 벌이고 있다. 특히 ‘오로르’는 ‘플라토 위르뱅(Plateau urbain)’과도 협업하고 있다. 가령 ‘플라토 위르뱅’은 협업을 하기에 최적의 구조를 갖춘 다목적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250개 기업과 단체에 1m2당 17유로를 받고 작업공간을 임대하고 있다. 그랑부아쟁 사업에 참여 중인 마지막 세 번째 단체는 ‘예스 위 캠프’다. 이 단체는 나무 테라스, 공방, 캠핑트레일러, 아프리카 음악·록·일렉트로 뮤직 전문 콘서트장이 한쪽에 딸린 레스토랑카페를 마련해, 쉼터에 거주하는 입주자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문을 열고, 그 수익금을 각종 사회사업에 재투자하고 있다. 

‘오로르’의 책임자인 윌리엄 뒤프르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세 가지 사업은 상호보완적 성격이 강하다. 우리가 보금자리 없는 이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면, 그들은 이곳에서 프랑스어나 컴퓨터 수업을 듣거나, 혹은 일주일에 6~9시간씩 도로 청소, 녹지 관리, 레스토랑카페, 물물교환상점, 가금사육장 등에서 일을 한다. 본래 불법체류자는 정식으로 노동계약을 체결할 수 없지만, 우리는 대신 ‘시간 화폐’ 시스템으로 노동 대가를 지급한다. 노동시간으로 식사를 하거나 옷을 사거나 지하철표를 구할 수 있다. 우리 쉼터에 머무르는 분들은 같은 시설에 입주 중인 여러 단체들이 제공하는 각종 바느질, 사진, 연극, 보석세공, 목공 등의 수업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또 때로는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한다.”  

부동산 홍보수단인가, ‘사회연대경제’인가

그러나 Paris-Luttes.info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이 임시점거 프로젝트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 사업이 정작 빈곤층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고, 그저 겉만 번드르르한 문화 활동만 벌이며 도시의 현실을 미화(어떤 이들은 ‘무균화’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하고자 한다는 것이다.(1) 바뇰레에 위치한 옛 리베르트 공장(센생드니)은 조형예술가와 음악가들의 모임인 ‘원더’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 무단 거주하던 기존의 불법체류자들은 몇 년 전 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됐다. 

그럼에도 파리 시청에 소속된 도시계획 컨설턴트인 마리옹 발레르는 “우리는 임시보호쉼터의 임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주장하며, “대대적으로 난민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가급적 가능한 모든 곳에 임시보호쉼터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수크마쉰’에서 일하는 디메는 “언젠가 어떤 예술가들로부터 메닐몽탕에 소재한 140동 기숙동의 1층을 내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지역민의 이익에 반대되는 불순한 의도가 있음을 알고 요청을 거절했다”며 입주자 선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한편 아에로솔 측은 현실을 순순히 시인했다. “우리는 결코 쉽게 속아 넘어갈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SNCF가 부동산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시설을 정비한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안다. 아마도 훗날 이곳은 주택가로 개발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기획한 사업들은 파리시민들에게 이 동네를 홍보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사실상 폐공간 임시점거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도시 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부추기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어떤 프로젝트들은 훗날 해당 지역에 긍정적인 발자취를 남기기도 한다. 반관반민회사인 파리-바티뇰에서 도시개발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멜라니 모이장은 이렇게 확언했다. “그랑부아쟁 실험 덕에 우리는 더욱 풍요로운 지역사회를 조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업을 임대주택을 포함한 주택사업에 주력했는데, 주택과 더불어 공공시설, 상업시설, 작업 공간 등도 함께 조성했다. 그 가운데 일부 작업공간은 사회연대기업이나 단체들에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해줬다. 앞으로도 공유공간을 조성할 때는 언제나 미래 입주민과 시설 사용자가 함께 융화될 수 있도록 더욱 각별한 신경을 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보호쉼터만은 계속 남겨둘 작정이다.” 

플렌드우르크 내 200헥타르에 달하는 부지의 개발을 맡은, 또 다른 반관반민 도시개발회사, ‘세콰노’도 임시점거 실험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소피 카줄레는 “우리는 로망빌의 일부 부지를 ‘페이장 위르뱅’에 무상으로 임대했다. ‘페이장 위르뱅’은 베이비채소(2) 재배의 경제성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활노동자 7명을 고용하고 있는 자활단체다. 이 단체가 생산한 채소는 이어 인근의 ‘우선협의정비지구’(ZAC)에 위치한 농산물가공업체 ‘발뤼숑’에서 재가공과정을 거치는데, 이 회사 역시 30여 명의 자활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게다가 ‘세콰노’는 건축가모임인 ‘벨라스톡’에도 보비니 소재 일부 부지사용을 허용했다. “벨라스톡은 그곳에서 재료 리사이클링을 주제로 공방이나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플랜(Plaine) 지역의 도시개발 사업에도 이 재료 리사이클링 지식이 널리 활용됐다.”

임시점유 프로젝트 열풍에 크게 고무된 파리의회는 최근 사전 임시점유프로젝트를 새로운 도시개발사업에 전부 적용해보자는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물론 임시점유 프로젝트는 그와 같은 성격의 도시 공간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폐공간을 개조해 만든 가게에서 술장사를 하려는 심산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한시적이라는 특성은 해당 주체들이 안정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데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게다가 토지 소유주들이 해당 프로젝트 기간이 끝난 다음 다시 기존의 구태의연한 부동산 개발에 돌입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사실상 중요한 점은, 민관협력을 바탕으로 한 이런 ‘과도기적 형태의 도시개발’ 열풍이 그럴싸한 선의와 문화 사업으로 둔갑한 나머지, 빈곤 문제를 뒤덮는 허울 좋은 눈가리개가 돼, 보호쉼터 미비, 지속적인 임대료 상승,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축제 및 예술 공간의 부족 등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글·앙투안 칼비노 Antoine Calvino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Le collectif Wonder, ou l'art au service de la gentrification(사회단체 ‘원더’ 혹은 젠트리피케이션을 활성화하는 기술)’, 2017년 2월 25일, http://paris-luttes.info.
(2) 베이비채소란 발아 후 5~10일이 지난 생육 초기의 채소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