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자들 기름띠에 당하다

[세계의 창]

2010-07-12     세르주 알리미

 중국 투자자도, 영국 퇴직연금생활자도 지난 4월 20일 미국 루이지애나 연안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로 기름띠가 그렇게 빨리 확산될지 몰랐다. 유정 시설 인부 11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시작으로, 세인트루이스만 어업 종사자는 생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멕시코만 시민은 펠리컨서식지로 유명한 자연환경을 잃어버렸다. 피해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 정부와 영국 퇴직자 또한 이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들이 보유한 BP(영국 석유회사) 주식 가치가 2개월 만에 48% 하락했다. 중국을 위시한 쿠웨이트·싱가포르 펀드가 서구 정유회사에 가진 맹목적 신뢰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1)

금융시장에 발이 묶인 유럽 정부에서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추진하는(즉, 사회보장 지출을 축소시키려는) 점을 감안하면, 영국 퇴직연금생활자 사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정부가 (의도한 대로) 의료보험 환급액과 퇴직금 규모를 축소함에 따라, 봉급생활자의 개인 퇴직보험이나 퇴직연금 가입은 현저히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퇴직연금 기업이 런던 주식시장에서 부동의 수위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연간 84억 유로를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BP의 유혹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 퇴직자는 BP에 대한 투자만으로 수입의 6분의 1을 충당할 수 있었다.

BP가 심지어 안전 관리 지출을 줄이면서까지 비용 감축을 추진해 영국 퇴직생활자가 기대할 수 있는 BP 투자 수익은 상당했다. 하지만 미국은 무법지대가 아닐뿐더러, 다국적기업의 압력에 대통령이 굴복하는 소국도 아니다. 자국 내 자연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나라이기에, BP는 바다에 유출된 기름 1배럴당(159리터) 4300달러의 배상액을 지급해야 할 처지다.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즈호 사건 유출량의 17배에 이르는 기름띠를 보며, BP 투자자는 한 푼이라도 투자 이익을 더 내려는 욕심에 무리하게 비용 감축을 추진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퇴직금을 개인적 자본투자를 통해 마련할 수밖에 없게 된 영국 봉급생활자는 노후의 안정적 생활을 퇴직연금 기업에 맡겨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그렇기에 BP의 주식 가치를 떨어뜨리고, 현저한 신용등급 하락을 가져온 미국의 보복책이 이들에게는 곱게 보일 리 없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BP는 과오의 대가를 철저히 치르게 될 것이라 단언하자, 노동당 출신 톰 왓슨 전직 장관이 “영국 퇴직생활자 수백만 명이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 우려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평생 힘들게 일한 수백만 명의 봉급생활자가 스스로 노후보장책을 찾아나서야 했고, 이들은 투자 수익 확대에 혈안이 된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이들의 미래와 희망은 루이지애나 연안 어부가 아닌, BP 간부와 함께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현 체제의 실상이다. 위기가 거듭됨에 따라 지금까지 현 체제를 지탱해왔던 연대 의식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블룸버그>에 따르면, 루이지애나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태가 시작된 이후 노르웨이·쿠웨이트·중국·싱가포르는 34억 파운드(약 41억 유로)에 이르는 손해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