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그동안 몰랐던 바로 내 곁의 이야기

2018 아시아 기획전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

2018-04-30     김지연 | 예술에세이스트
우리는 나와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스컴 속 유명인의 사소한 일과나 발언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누군가 ‘당신의 어머니는 최근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당신의 형제가 가진 트라우마는 무엇인지’ 묻는다면 적잖이 당황하며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나 자신은 잘 알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그것조차 쉽지는 않다. 같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각 다른 관점과 마음을 갖는 나의 가족들, 그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 내가 스스로 파악하는 나의 모습,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하는 거미줄 같은 관계의 끈, 그 사이에서 나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우리는 늘 가까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들일수록 무심하게 지나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아시아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시아 국가이자 아시아인으로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공통점을 지니는 동시에 전혀 다른 개별성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아시아에 펼쳐진 무수한 관계들의 어딘가에 우리는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아시아를 모른다. 먼 유럽과 미국의 문화는 배워야 할 선진문화라고 여기는 반면, 가까이에 있는 아시아는 언제나 뒷전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서양미술이 기본이자 중심이 된다. 미술사의 이야기는 언제나 고대 그리스·로마의 미술로 시작해 유럽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인상주의와 입체주의를 거쳐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로 이어진다. 현대미술을 논할 때도 거점이 되는 곳은 항상 뉴욕이나 런던이다. ‘아시아 미술’이라고 한다면 불교 미술 정도를 떠올리는 것이 고작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는 필리핀의 사회적 계급 문제를 잘 모른다. 제국주의 시대 이후 현대의 일본인들이 타자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 해방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어떤 사회적 모순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중국 동포들에게 국가와 민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지난 50년간 대만의 농업경제와 사회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우리를 둘러싼 아시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해왔다.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아시아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시아 집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4월부터 열리고 있는 전시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2018.4.7.~7.8.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역동적인 현재의 아시아를 만날 수 있다. 내년 1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세상에 눈뜨다_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전에서는 20세기 아시아 각국의 사회와 문화, 정치적 변화에 따른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면,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전은 바로 지금, 아시아 현대미술의 현장을 만날 수 있는 기획전이다. 

전시는 아시아 현대미술을 국가·주제별로 분류해 보여주며 현재의 흐름을 정리하거나 설명하기보다는, 관객에게 자유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8개국의 젊은 작가 15팀이 선보이는 21점의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교차적 공간’, ‘관계’라는 섹션으로 나뉘어 소개된다. 

마닐라 케손시티의 대문들을 소재로 힘과 권력, 사회적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마크 살바투스, 가느다란 실로 잘게 해체해 섞어버린 각 나라의 국기들과 흑백으로 복사한 색상 카드로 고유한 개념과 가치에 도전하는 요게쉬 바브, 미래를 위한 진보가 첨단과학기술의 선점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미래열병’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염지혜, 서구의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아이누, 오키나와, 대만, 한국을 바라보던 세기말 일본인의 모습이 현대의 일본인에게는 남아 있지 않은지 점검해보는 후지이 히카루 등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을 환기하고 지적한다. 

또한 맵 오피스는 아시아의 여러 현대 미술가의 작업을 통해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다양한 비판적 시각을 탐색하며, 최종적으로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을 탈피해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안유리는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고국과 모국 사이의 괴리감, 동포와 외국인 사이에서 자리 잡는 어려움을 풀어내며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묻는 영상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커리버거’라는 요리가 어느 국가에 속하는지 각 국가의 대표들이 토론하는 과정을 담은 엘리아 누비스타의 영상, 장례용 종이공예 인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대만 전통장례 문화를 이야기하는 장 쉬잔의 작품은 국가와 고유의 정체성, 전통과 현대의 의미 등에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이들에 의하면, 하나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입장과 상황의 차이에 따라 변화한다.

한편 관객 역시 이 전시에 직접 참여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미술관의 넓은 공용공간에 작가들이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생산라인’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어머니가 오랫동안 일했던 봉제 공장의 이야기, 그리고 중국의 봉제 공장 여공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50년간의 대만의 경제와 사회 변화상을 이야기했던 황 포치는 이곳에 레몬와인 바를 차린다. 봉제공장을 그만둔 어머니가 이제 레몬나무나 키우고 싶다고 하자, 작가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500그루의 레몬나무를 샀고, 버려진 땅에 나무들을 심어 5년 만에 첫 수확을 했다고 한다. 황 포치의 바에서는 바로 그 레몬으로 만든 와인을 제공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또 엘리아 누비스타는 관객들이 제각각의 요리를 완성하고 국가, 전통문화, 고유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비정통 요리교실’을 연다. 관객들은 현장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질문에 부딪힐 수 있다.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의 작가들은 개인적 경험을 매개로, 지역에 얽힌 복잡다단한 관계와 변화의 흐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역사 속에서 잊힌 개인과 지역의 가치를 또렷하게 드러내고, 그들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려준다. 언뜻 지역이나 개인에 천착한 이야기들로 보이지만, 사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효한 것들이다. 한꺼번에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문이 가득한 전시장이 반갑다. 

현대미술에서는 작가가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 그것이 주변과 관계 맺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관객의 반응이 더욱 중요하다. 작품이 우리에게 일방적이고 교조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대화하며 질문을 건네는 것이다. 오가는 대화와 관계 속에서 의미가 탄생하고, 때로는 그것이 우리의 삶을, 사회를 변화시킨다. 때문에 더더욱 이 순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내가 발 디딘 곳에서 내가 아는 이야기를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세계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중요하고 또 특별한 일이다. 

전시장 밖으로 나와서도 우리는 여전히 아시아가 무엇인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잘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시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정되지 않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주체라는 것, 아시아를 타자화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 타자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만의 시각으로 나를, 아시아를,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점과 관계를 재편성할 필요가 있다. 그에 필요한 질문들은 전시장뿐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까이 있는 존재일수록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변화의 바람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질문들에 맹렬하게 답해야 한다.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당신과 나는 누구인지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이는 순간, 아시아는 바로 거기에 있다.  

 
글·김지연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전시를 만든다. 홍익대 예술학과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술전문지 <그래비티 이펙트>의 미술비평공모에서 입상했다. <샤갈·달리·뷔페>전과 <그대 나의 뮤즈>전을 기획했다. 



주목할 만한 전시

그림이 된 벽
지금까지 작품의 배경이었던 벽이 작품의 주요소로 등장했다. 프랑스 현대미술작가 8명이 직접 미술관의 벽에 제작한 벽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6/17 경기도미술관

히든워커스
국내외 여성 작가들이 다양한 국적과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노동활동을 이야기한다. 여성의 노동이 주목받지 못했던 사회 구조에 의문을 던진다. ~5/15 스페이스씨

베니스 비엔날레 보고전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인 코디최와 이완의 작품을 선보이며, 지난 비엔날레의 성과에 대해 정리한다. ~5/20 아르코 미술관

에르빈 부름
사물의 형태가 달라지면 그 안에 담긴 콘텐츠도 달라진다는 것에 주목하며 유머러스한 조각과 사진을 선보이는 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름의 개인전. ~9/9 현대카드 스토리지

파킹찬스
박찬욱(영화감독), 박찬경(미술가) 형제가 지난 8년간 ‘파킹찬스’라는 공동프로젝트로 제작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 신작 단편 <반신반의>도 만날 수 있다. ~7/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디지털 프롬나드
‘자연’과 ‘산책’을 모티브로 해, 김환기, 천경자, 김수자, 이불 등의 기존 작품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젊은 작가들의 신작이 어우러지는 전시. 6/12~8/15 서울시립미술관

니키 드 생팔
프랑스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의 생명력과 기쁨이 넘치는 조각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 일본 마즈다컬렉션이 소장한 127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6/30~9/25 예술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