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수탈자를 수탈하다, 자본주의의 모순
“수탈자를 수탈하다”
자신의 노동으로 획득한 사적 소유, 말하자면 개개의 독립적 노동자와 그의 노동조건과의 융합에 입각한 사적 소유는, 타인노동의 착취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의해 축출된다.
이 변환이 낡은 사회 전반을 충분히 깊고 광범위하게 분해하고,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자본으로 전환되자마자, 그리고 또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스스로 일어서게 되자마자, 노동이 더욱더 사회화되는 것, 토지와 기타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이용되는 생산수단(즉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더욱더 전환되는 것, 결과적으로 사적 소유자를 더욱더 수탈하는 것-이러한 것들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제 수탈의 대상은, 스스로를 위해 독립적으로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이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의 내재적 법칙의 작용을 통해, 즉 자본의 집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항상 한 명의 자본가가 수많은 자본가를 파멸시킨다. 이러한 자본의 집중 또는 소수 자본가에 의한 다수의 수탈과 함께 여러 발전도 더욱 대규모로 일어난다. 예컨대 노동과정이 협업의 형태로 성장하는 것, 과학의 의식적·기술적 적용, 토지의 체계적 이용, 노동수단이 공동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는 것, 모든 생산수단이 결합된 사회화된 노동을 생산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절약되는 것, 모든 국민들이 세계시장 네트워크로 편입하는 것,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화 등등이 더욱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이 전환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이익을 부당하게 차지하고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지만, 이와 반대로 빈곤, 억압, 예속, 타락, 착취의 정도는 끊임없이 증가한다.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메커니즘 그 자체에 의해 훈련 받고 결집하고 조직화된 노동자 계층의 반항도 증대된다. 자본의 독점은 이 독점과 함께 또 그 영향력 하에서 성장해온 생산방식을 얽어매는 족쇄가 된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면 자본주의적 외피가 파열된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시간이 온다. 이제 수탈자가 수탈당한다(소수의 대자본가가 재산을 빼앗긴다).
『자본론』제1권, 1867(PUF, coll. ‘Quadrige’ 2009), pp.855~857.
번역·이연주
자본주의의 모순
마르크스는 『자본론』제3권에서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확장하면서 자본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 중에서 ‘내재적 장애물’을 구분했다. ‘내재적 장애물’이란 자본이 과잉생산을 통해서 만든 장벽으로 극복이 불가능한 ‘진정한 장애물’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내재적으로 ‘살아있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평생 동안 이 이 모순이 깨지기를 바랐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장애물은 자본 그것이다. 자본과 자본의 자기 증식은 생산의 출발점이자 종점, 동기이자 목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생산은 오로지 ‘자본’을 위한 생산에 불과하며, 따라서 생산수단은 생산자들의 ‘사회’를 위해 생활과정을 끊임없이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장벽이 있다. 생산자대중의 수탈과 빈곤화에 의거하는 자본가치의 유지와 증식은 이런 장벽들안에서만 운동할 수 있으며, 이런 장벽들은 자본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생산방법들(생산의 무제한적인 증가, 생산을 위한 생산,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무조건적인 발달로 향해 돌진하는 생산방법)과 끊임없이 모순된다.
수단-사회적인 생산력들의 무조건적 발달-이 제한된 목적(기존자본의 가치증식)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물질적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이 생산력에 적합한 세계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역사적 수단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또한 자기의 역사적 과업과 자기의 사회적 생산관계 사이의 끊임없는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론』 제3권, 1894, in Œuvres II. Économie II(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65), p.1032.
번역·이연주